위대한 유산  

                  유안진

저녁상을 물리고

지아비를 기다리며

아가와 함께 읽는

예수의 생애

 

내 눈이 보아내는

참 모습 그대로

내 귀가 들을  수 있는

옛 음성 그대로

 

젖먹는 네 입이

처음으로 부르는

위대한 그 이름

 

아가야

네게 줄 나의 재산은

오직

그의 이름뿐이지

 

어린이날이 다가오니 오래전 읽었던 이 시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에 스친다. 진정 아이에게 필요한 선물은 무엇일까 그리고 아이의 평생의 삶에 물려주어야 할 것도.

세상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이제 막 걷는 아이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숨이 찬다. 때로는 같이 뛰고, 때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늘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쳐주었는지...

예수 그분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이야기해 주었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가 어떤 것인지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보여주었나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나
또,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나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고 쫒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내가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잊고 살 때가 많다. 나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간직해야할 그 것...아이의 평생에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며 힘이 될 그 이름이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임을 오늘 이 시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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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서 봄나무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13도

영하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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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이진명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음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댔지만 세상 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워라. 보드랍고 따뜻해. 가여워라.

내가 그랬구나. 어서 다시 잠들거라. 착한 아기.나는 나를 나무에 묶어 놓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지 않으련다.

작은 새 놀란 숨소리 가라앉는 것 지키며 나도 그만 잠들고 싶구나.

누구였을까. 낮고도 느린 목소리. 은은한 향내에 싸여. 고요하게 사라지는 흰 옷자락.

부드러운 노래 남기는. 누구였을까. 이 한밤중에.

 

 

   새는 잠들었구나. 나는 방금 어디에서 놓여난 듯하다. 어디를 갔다온 것일까.

한기까지 더해 이렇게 묶여 있는데, 꿈을 꿨을까.

그 눈동자 맑은 샘물은. 샘물에 엎드려 막 한 모금 떠 마셨을 때, 그 이상한 전언. 용서.

아, 그럼. 내가 그 말을 선명히 기억해 내는 순간 나는 나무기둥에서 천천히 풀려지고 있었다.

새들이 잠에서 깨며 깃을 치기 시작했다. 숲은 새벽빛을 깨닫고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얼굴 없던 분노여. 사자처럼 포효하던 분노여. 산맥을 넘어 질주하던 증오여.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이여.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이여.

내 너에게로 가노라. 질기고도 억센 밧줄을 풀고. 발등에 깃털을 얹고 꽃을 들고. 돌아가거라.

부드러이 가라앉거라. 풀밭에 눕히는 순결한 바람이 되어.

바람을 물들이는 하늘빛 오랜 영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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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이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이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굴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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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성복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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