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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이야기
존 카스티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는 『The Cambridge Quintet: A Work of Scientific Speculation』이다. 찰스 퍼시 스노우(1905~1980),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유전학자, 1892~1964), 앨런 튜링(1912~1954) 다섯 사람이 1949년 어느 여름날,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만찬에 초대받아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두 문화』의 저자 스노우가 국방부와 과학기술부의 사주를 받아(?) 토론을 주재하고, 튜링의 기술적 입장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입장이 주로 대립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저자는 내심 튜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에 항의하려는 듯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후기 철학인 '언어놀이 이론'만 반복하는 고집쟁이로 그려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위한 변명'이라도 하여야만 할 것 같다. 슈뢰딩거는 조심스럽게 튜링을 옹호하면서도 사변적 신비주의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고, 수년간 영국 공산당 기관지인 <The Daily Worker>의 사설 면을 담당하기도 했던 홀데인은 '리센코주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 낸다. 여하간 흥미로운 설정이다. 저자가 집필 과정을 상당히 즐겼구나 하는 것이 느껴진다. '덕후'의 냄새가 난다. 제목에서도 한껏 멋을 부렸다.
1998년 출간된 책으로, 1999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2016년 3월 '알파고 충격' 이후 국내에도 인공지능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번역 제목에서부터 시대를 상당히 앞서 나가지 않았나 싶다. 시대를 타고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튜링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격세지감이 든다. 저자가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이 새로운 울림을 준다.
과학적 소설이 겨냥하는 최우선 목표는 인류 인식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관련된 '지적 또는 감정적 불확실성'을 생생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학적 소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난 날 어떤 결정을 거쳐서 형성된 것인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상상해야 한다는 소임을 떠맡게 된다(9쪽).
'저자 후기'에 압축적으로 소개된 인공지능 연구 발달 약사(略史)와 문헌들이 참고할 만하다.
튜링과 비트겐슈타인이 사망한 뒤인 1956년 존 매카시는 다트머스 회의에 연구자들을 초대하면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회의 석상에서 기계지능 문제에 관한 두 가지 접근방식이 제기되었다. 하나는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이 주창한 '하향식' 인공지능 이론이다. "지적 능력은 두뇌에서 이루어지는 '기호처리 과정'으로, 인식은 두뇌에서 따로 떼어낼 수 있다. 두뇌의 물질적 구조보다는 기호와 기호들의 조합법칙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맞선 '상향식' 인공지능 이론은 프랭크 로젠블래트가 주도하였다. "두뇌의 인식기능에는 '실제의 신경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계적 지능을 만들고자 한다면 하드웨어에 이 구조를 모방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유파는 1960년대 초반까지 팽팽하게 대립하다가, 민스키와 패퍼트의 논문 이후 하향식 이론이 승리를 구가하는 듯 보였다. 인공지능 연구 초기의 역사는 파멜라 맥코덕과 하워드 가드너의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어떻게 기계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조금씩 누적하게 되는 '기초정보'를 제공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하향식 인공지능 주창자들의 발목을 잡았고, 컴퓨터 공학의 경이로운 발전에 힘입어 1980년대에 와서는 신경회로망을 적용한 상향식 접근이 부활한다. '연결주의(connectionism)'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연결주의의 철학적 원천을 다룬 유명한 책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더글라스 홉스태터의 역작,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이다. 정신과 두뇌, 기계에 관한 흥미로운 통찰을 던진다. 잭 코플랜드의 책도 상향식과 하향식, 양대 유파의 연구작업을 잘 정리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존 설이 이른바 '중국어 방' 논증으로 '튜링 테스트'를 반박했고, 로저 펜로즈가 괴델의 공리에 기대어 '강한 인공지능' 개념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기존 연구에 버팀목이 될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강한 인공지능' 연구에 공헌하였다.
몬티 뉴본의 책은 세계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와 딥블루의 체스 게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스 게임 프로그램 개발만으로는 사람의 인식 능력과 방법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였다'는 거대한 실험의 실패 과정을 다루었다. 언어 번역 프로그램에 관하여는 랜디 해리스, 허친스&소머스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이들 모두가 오늘의 '인공지능'을 있게 한 연구들이라 하겠다.
저자의 책이 국내에도 다수 소개되어 있다. 출간일이 오래 된 순으로 정리하였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하워드 가드너의 책들도 『다중지능』을 비롯하여 다수 출간되어 있으나,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