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정도로 분석적이고, 체계적인데... 별 감동은 없었다.


  자연법론(비실증주의) 대 법실증주의 논쟁을 접할 때마다, 그래서 '무슨 쓸모?' 하는 생각이 앞선다. 서로의 논리적 궁지에 변태적 쾌감을 느끼며 결국은 상대의 약점을 가장 큰 논거로 삼는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렇게 '우리 편 아니면 적군' 식의 경직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나 싶다.

  특히 비실증주의는, 법실증주의를 지극히 좁게 규정하여, 법체계의 자족성, 완결성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없을 것이라면 절대로 실증주의 편에 서서는 안 되고 우리 편에 서야 하고 설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강변한다는 느낌이 든다(자신의 입장은 좁은 실증주의 아닌 모두를 포괄하는 '非'실증주의로 넓게 잡아 예외를 폭넓게 허용한 뒤에...).

  나치에 부역하거나 유신정권에 협력했던 자들 일부가 '법'을 '법률'과 동일시하여 더 이상의 사고를 애써 멈추어 버렸다는 것도 맞지만(이른바 '법률적 불법'의 용인), '정의', '역사적 사명', '시대적 과제'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제한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버린 결과가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 것 아닌가. 대표적인 법실증주의자 한스 켈젠은 오히려 나치의 박해를 받아 해직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자유주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과제로 삼은 카를 슈미트야말로 '황제법학자'로 불리며 반유대주의의 선봉에 서지 않았던가. 더 위험한 쪽은 이성과 군중을 마비시키는 이론의 낭만화 아닐까. 정의는 과연 투명한 개념인가.


* 심헌섭, <서평> Hans Kelsen: Leben-Werk-Wirksamkeit (R. Walter, W. Ogris, Th. Olechowski 공편 Wien 2009, 395면), 서울대학교 법학 제51권 제3호 (2010)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71030/1/0x702004.pdf

* 심헌섭, <서평> Matthias Jestaedt, Hans Kelsen-Institut, 『Hans Kelsen im Selbstzeugnis (Mohr Siebeck, 2006, 126쪽), 서울대학교 법학 제48권 제3호 (2007)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10175/1/law_v48n3_278.pdf

* 박은정, 한인섭 엮음, 『5.18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279-280쪽 등


  비실증주의가 중요한 논거로 드는 것이, 법의 외피를 띤 '극단적 불의'를 단호하게 불법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특히 법관)들이 그러한 예외상황에서 언제라도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평시에 전선의 우위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 이를 떠나 어쨌든 법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무엇을 극단적 불의라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판단의 정확성 내지 타당성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더군다나 그러한 자세를 평소에도 준비시켜 놓는다고 한다면, 어떤 가치에 복무하겠다는 의욕의 과잉이 오늘날과 같은 진영주의, 종파주의, 인민주의와 결합할 때, 상대편을 말살하기 위한 이념전쟁에서 법관들조차 홍위병 노릇 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법의 빈틈을 섣부른 신념으로 채우려다 사실까지 왜곡하게 되는 결과와(프레임이 강할수록 사실을 그에 끼워 맞추어 보게 될 우려가 당연히 커진다), 실제 사실에 집중하여,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다듬어져 대박은 못 쳐도 크게 잘못될 위험도 적은 '있는 법'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바뀌기 전까지는 충실하게 적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해악이고 치명적일까. 입법에 이르는 정서가 열정, 바람, 분노보다 후회에 기초하는 것이 반드시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자신이 주관적으로 어떻게 믿는지와는 무관하게 개인적 가치관을 잠시 접어 두고 꼬장꼬장하게 증거와 절차부터 따지는 법관과, 대의를 위해 약간의 억울함은 희생될 수 있고 구체적 사건의 세부가 큰 틀에서는 무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법관(즉, '누구 편을 들고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가 사건을 직접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에 어느 정도 서있는 법관) 중, 내가 재판 받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때 어느 쪽의 재판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꽤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지더라도 승복할 수 있는 쪽은 전자의 재판 아닐까. 매사에 입장이 분명하고 강하게 서있는 심판자가 공정하고 공평할 수 있을까. 어느 한 쪽 입장이 언제나 빈틈 없이 선(善)이고 정의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 아닐까. 욕망덩어리인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인가. 인간세상이 전래동화나 마블 유니버스처럼 선악이 분명하기만 한가.


  바야흐로 진실이 흔들리고 가치가 혼란한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고할 부분이 있어 일부를 읽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가십성 일화, 서술을 끝내 버리시지 않는 것도 중간중간 쏠쏠한 재미를 준다[여러 괴담과 소문이 있는 『위대한 법사상가들 』 시리즈가 그런 '학문적 B급 감성'(?)의 면에서는 더 대박임... 가끔 장탄식이 나올 정도로...].





이 분의 책 '양산'방식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들이 많고(저 아래에 정렬해 보았다... 2013년에는 당신의 저작을 총정리하는 책을 내셨고, 정년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집필하고 계신 것 같다. 『법과 생활』, 『법학통론』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


외국의 여러 명품 법제사 교과서를 직접 읽으면 당연히 좋고 바람직하겠지만...


특히 로스쿨 도입 이후로는, 우리말로 이 정도로 편하게 분위기라도 훑을 수 있는 교과서나 책이 명맥조차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그동안 국내 법학자가 낸 책들로는... (아래는 '국가자료종합목록' https://www.nl.go.kr/kolisnet/index.do 검색결과)


김증한 , 『서양법제사』(1953년에 양문사에서 나왔다가 1955년 또는 1956년에 박영사에서 신정판이 나오고 이를 1969년에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박광서, 『법제사대요』(1962년 일우사에서 나왔다가 1968년 종의사, 1985년 대명출판사에서 옮겨 찍은 것 같다)


곽윤직, 『대륙법』(1962년 박영사)


이태재, 『서양법제사(개설)』(1963년 진명문화사에서 처음 나와 1993년 진솔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현승종, 『서양법제사』(1964년 박영사에서 처음 나온 뒤, 1987년 또는 1992년에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황적인, 『로마법, 서양법제사』(1981년 박영사에서 처음 나온 뒤, 1997년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김세신, 『서양법제사론』(1986년 법문사에서 처음 나와 1998년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사실상 1950, 60년대에 1세대 법학자들이 독일법제사 위주로 처음 소개한 이래, 황적인, 김세신 교수님의 1980년대 저작, 그리고는 최종고 교수님 책이 전부인 것이다.


"위대한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이 동시에 법적 사실이기도 하다."(Heinrich Mitteis, 1971) 또 그것은 당대 경제현실의 반영이다(영국사를 예로 들면, 정복왕 윌리엄이 1085년 처음 실시한 '토지등록제'는 이후 영국 경제발전을 이끌어 7세기 뒤 산업혁명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까지 받고, 1215년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작성된 '마그나 카르타'는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법적, 제도적 관점에서 경제사를 파고드는 단계까지는 못 가더라도, 법제사를 연구하는 사람 자체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쪼그라들고 말았으니, 우리의 지적 문화가 대단히 빈약한 토대 위에 서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로스쿨 교육과, 이를 과잉결정하는 변호사시험제도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그렇다고 더 이상 사법시험제도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본다).


그나마 올해 일본학자가 쓴 책이 한 권 번역되어 나왔는데, 학문의 기초체력이라는 면에서는 일본 정도라도 따라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그래도 정말, '덕 중의 덕은 양덕'인 것 같다). 아무튼 "법사학 번역총서 1"이라는 '선언'을 담고 나온 책이니 기대가 크다.




그리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신 최자영 교수님께서 2007년에, 『고대 그리스 법제사』라는 무려 961쪽 분량의 책을 내셨는데, 로마법 사료의 번역에 관하여 로마법의 대가이신 최병조 교수님의 비판과 재반박이 이어졌다. 두 분의 논쟁을 평가할 만한 능력은 전혀 없지만, 우리 풍토에서는 지극히 귀한 논쟁이었다고 보고 싶다. 이 책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로까지 선정되었는데, 현재는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는 상태이다. 최자영 교수님께서 10년만에 다시, 관련하여 논문을 내면서 쓰신 제목을 보니 아마도 개정판이 곧 나올 모양이다. 새롭게 나온 논문을 보니 논쟁은 해피엔딩이 되는 것 같다(2019년 논문은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하였는데, 훈훈한 마무리에 감동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1. 최병조, “로마법사료의 이해에 대한 촌평 -최자영, 『고대그리스법제사』(아카넷, 2007)의 출 판에 즈음하여-”, 서양고전학연구, 제31집 (2008. 3.)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54320

2. 최자영, “『고대그리스법제사』 (아카넷, 2007)에 대한 최병조 교수의 촌평에 대하여”, 서양고전학연구, 제33집(2008. 9.) (이 논문은 철회하셨는지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 더 이상 검색되지 않는다. 아래 2019년 논문을 보시면 될 것 같다.)

3. 최병조, “최자영, 『고대그리스법제사』(아카넷, 2007)의 로마법 관련 부분에 대한 재 촌평: 저자의 반론에 대한 관견”, 서양고전학연구, 제35집(2009. 3.)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30979

4. 최자영, "고대 그리스 사회에 대한 한국 중등 교과서의 오류 및 최병조 교수의 촌평에 대한 두 가지 제언 —『고대 그리스 법제사』 개정판 출간에 즈음하여—", 서양고전학연구, 제58권 제2호(2019. 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13513 (요약문에 이와 같은 문단이 있다. "동시에 이 글이 나온 지 이미 1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개정판 출간에 즈음해서야 그 내용을 검토 반영하게 된 데 대해 양해를 구한다. 그때 최 교수는 로마법에 관련하여 필자가 사용한 부적절한 용어, 책명, 라틴어 번역에 보이는 오류까지 수정 의견을 내주었다. 그 세심함은 돈으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세심한 배려 때문에 이번 개정판 출간으로 이 책은 한층 더 그 격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 때문에 감사의 정을 전한다.")



최근에는 (예전에는 드물던) 중국법제사 연구가 조금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이렇게 말해주세요 - 0~6세 자존감과 두뇌력을 키워주는 발달단계 말 걸기
다케우치 에리카 지음, 김진희 옮김 / 카시오페아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 해당 연령대 부분을 다시 읽었는데 놀랍게도 찾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이 있었다! 아이가 보인 행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달단계의 한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을 공부하자" (2020. 4. 12.)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2759

  "일본과 아시아, 세계에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자" (2020. 4. 14.)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7958 에 이어 마무리한다.


  일본 극우세력이 생각 이상으로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낙숫물로 바위를 뚫는다는 심정으로 그 비합리성에 균열을 내고 다수 일본인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역사적 소명(召命)에 공감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동참을 하면 좋겠다.


  유튜브 채널, 웹툰, 한일관계 포털, 여행코스 등 일본어 컨텐츠를 개발하자.

  만나고 교류하자. 일본인 지인들을 경복궁 명성황후 피살지에 데리고 가고, 유관순 기념관, 서대문형무소를 보여주자. 한반도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 일부러 회피하였던 것은 아닌 일본인들이 많다.

  진정한 평화가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됨을 설득하자.

  


일본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할 경우에는 원론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으로 관계있는 사실들을 깊이 꿰뚫은 다음에 덤벼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한 가지씩 전체를 파헤쳐 가야만 일본인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전자책 351/467)

한국과 일본도 똑같은 방식을 택해야 한다. 등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동반자가 되는 쪽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고, 한국은 일본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전자책 386/467)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일본인들에게 역사 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과거를 상세히 알아 조상들의 침략 행위와 과거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그들 스스로가 진정한 사과를 하고자 나서기 시작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은 일제가 저지른 과거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한국 측이 아무리 분개해도 무시해 버린다. (...) 과거의 침략 행위가 일본 책임인데 어째서 책임도 없는 우리가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다른 형태로 한반도를 침략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쪽은 오히려 한국 쪽이다. (전자책 387~388/467)

현실적으로 일본인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웃나라에서 그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가 변화가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여 다행히 일본이 침략성을 버리고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한일 간은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전자책 458/467)

준비를 완벽에 가깝게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본인들에게는 장점도 많지만 사고방식과 행동이 경직되어버리는 치명적인 결함이 숨어있다.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지는 21세기에 이러한 일본식 습관은 오히려 장애 요소가 될 것이다. 120%를 준비하려 하다가 도중에서 지쳐버리는 일본, 90% 정도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시작을 했다 하면 거기서부터는 온 힘을 다해 신속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한국. 한국인은 순발력이 뛰어나다. 이러한 장점을 잘 살리고, 거기에 좀 더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을 가미한다면 한국은 절대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고 21세기 동북아시아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전자책 265~266/467)

(인용자 주: 최근 두 달 사이에 여실히 보고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능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강한 힘을 신봉하는 무사의 나라 일본인들은 한국에 머리를 숙일 것이고, 과거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눈뜨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한국은 앞날을 내다보는 국가 발전의 큰 계획을 짜야 하고, 한국인 개인들도 나 하나만 안일하고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전자책 392/467)

(인용자 주: 일본을 넘어선 분야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내가 종사하는 분야도 어느덧 일본을 충분히 극복하였다고 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을 공부하자" (2020. 4. 12.)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2759 에 이어서...



  막연히 일본도 유교문화권이라 그 영향을 크게 받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호사카 유지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이상주의'라 할 만한 이념이 없다(전자책으로 보고 있는 터라 쪽수를 표시한 인용이 어려우나, 이하는 전자책 191/467에서 시작되는 "일본에 이상주의는 없다"에서 가지고 온 내용들이다).

  서양에서 『군주론』, 『전쟁론』 같은 현실주의가 가진 도덕적, 윤리적 결함을 '기독교'가 보완하였다면, 『손자병법』을 낳은 중국에서는 '유교'가 그 역할을 하고, 특히 성리학은 조선으로 와서 퇴계와 율곡에 의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는, 그나마 그런 역할을 맡았던 '불교'가 탄압받아 침략주의를 견제할 평화주의 이념이 소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의 도덕관념을 마비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정작 역대 일왕들은 '국가신도'가 아니라 대부분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반대로 명분과 이상주의가 앞서는 나라이고, 지금도 현실주의, 실용주의적 사고는 많이 부족하다. 거창한 총론을 뒷받침할 각론에 약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는 완비되지 않은 계획이라도 과감하게 결단하여 우선 실행에 나간 뒤에 세부를 보완해 나가는 전략이 효과적이지만, 요모조모 따지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전략이 평시에도 늘 유효하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반면 일본은 일반적으로 디테일에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가뜩이나 만사 무덤덤한 편인)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세심함을 보이는 일본인들도 많다. 그러나 최근 여러 일로, 일본이라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특히 '국가통계'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일본은 자국 안전 등에 관한 겉으로 보이는 대외 이미지를 중시하여 (특히 국제기구에 보고하는) 부정적 지표는 항목을 세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표본 수를 줄여버리고, 긍정적 지표는 과장하는 전략을 취하곤 한다. 『국화와 칼』이 꿰뚫어 본 것처럼, 일본은 행동 관점의 '죄책감(guilt)' 문화가 아니라, 존재 관점의 '수치심(shame)'의 문화이고, 치욕과 치욕회피를 원동력으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통계 '마사지' 문제는 서구에도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조. “Simple statistical error puts Japan economic data in doubt”, Financial Times, 2019. 1. 17. https://www.ft.com/content/e3a28958-1a24-11e9-9e64-d150b3105d21; “Osaka polic failed to report 81,000 crimes between 2008 and 2012”, The Japan Times, 2014. 7. 13.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4/07/31/national/crime-legal/osaka-police-failed-to-report-81000-crimes-between-2008-and-2012-probe/ 등. COVID-19 사태에서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를 통계에서 빼는 등 유사한 모습을 보였는바, 이는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국가통계에 관하여 이런 평판이 쌓이는 것은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일본은 세부까지 계획이 서지 않으면 선뜻 움직이지 않는(못하는) 사회이고, '전례'가 없는 이번 사태에 관해서도, 미리 작성된 '매뉴얼'이 없다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다시 윤리문제로 돌아와서,


  일본의 도덕관념은 확립된 하나의 확고한 사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불교, 유교, 기독교, 황국사상, 병학, 무사도 등으로부터 일본인들의 생활에 맞게 취사선택된 혼합된 이념이다. 그러다 보니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 쉽게 변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규범도 실은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집단따돌림 문화를 보면 그 규범이 어떤 윤리로부터 도출된 규범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시국에,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내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의료진들을 바이러스 취급하며 이지메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 외에는 찾기 어렵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이다. 일본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관계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침략사상을 내걸고 나서서 강력하게 끌기라도 하면, 알면서 모르면서 거기에 충분히 끌려갈 소지가 있다고 한다.


  "세균 취급당하는 의료진, '코로나 이지메' 퍼지는 일본", 서울신문, 2020. 4. 13. 자 기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414017005

  "코로나19 불안 커지는 일본… '현장대응 의료진 세균 취급'", 연합뉴스, 2020. 2. 23. 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3026500073


  우리를 끝없이 연구하는 일본을 역이용해 우리가 일본에 포장해 발송할 선물로 나는,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꼽고 싶다["일본을 공부하자" (2020. 4. 12.)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2759 참조].


  비록 노동권, 사회권과 같은 근대적 형태로 온전히 제도화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는 '홍익인간'부터 '인내천'까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윤리규범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혹독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가 자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사람이 그래서는 안 돼!"와 같은 자연법적 관습규범이 실정법의 빈틈을 채우고 있다. 그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가장 앞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고, 서서히나마 한 걸음 한 걸음, 인권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 대해서조차도, 전쟁을 일으켜 흡수하자는 식의 주장은 우리사회에서는 어느 때라도 그리 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안주하지 않는 연구자, 운동가들이 있고, 커다란 꿈과 이상(理想)을 입에 달고 살고, 내 권리를 찾는 데 적극적이며, 언제라도 분연히 떨쳐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는 시민들이 있다. 이제 새로운 단계, 조금 더 똑똑한 형태를 모색하여야 할 시기가 되었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큰 추세에서' 시민의 권리를 늘려오고 있다. 이들이 적어도 일본이나 중국, 아시아의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처럼 비판에 무관심하거나 대화조차 안 되는 기관들은 아니다(내부적으로도 개선과 자성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분출되어 왔고, 또 분출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일본의 형사법제는 악명 높다. 올해 초 미국 정부가 자문하는 워싱턴 DC의 아시아법 전문가가, 중국, 일본 전문가들도 모두 앉아 있는 한 비공식 학회 석상에서, "중국에 법의 지배란 없고, 일본도 형사법에 관해서는 중국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라고 대놓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2013년에는 UN 고문방지위원회에서 한 회의 참석자가 “일본 형사사법은 중세시대 수준”이라고 발언하자 일본 대표가 (나름대로 해명하거나 정중하게 사과를 요청하면 되었을 것을) 무례하게 "Shut up! Shut up!"하며 발끈한 바람에 도리어 그 주장이 확증된 것처럼 되어버리고 비웃음만 산 일도 있었다. “‘Shut up!’ U.N. rights envoy quits over tirade in Geneva”, The Japan Times, 2013. 9. 21.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3/09/21/national/shut-up-u-n-rights-envoy-quits-over-tirade-in-geneva/ 당시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koQjIBA_3U 반면 우리는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수립한 형사절차상 (피고인) 인권보장 조치들이 이제는 일종의 '백래시'를 맞고 있는 형국이고, 그것이 거꾸로 강자나 권력형 비리를 비호하는 데 선별적으로 활용되는 규범혼란 상황에 놓여 있다. 형사절차에서 '피해자' 보호와 참여를 강화하는 등 기존 구조상 간과되었던 측면을 적극적으로 제도에 기입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도 국가규모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 국제사회에서 인심을 잃고 있다. 홍콩문제, 소수민족 탄압, 비판억압과 감시사회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중국 내 아프리카인 차별로 큰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프리카 대사들 '코로나19 차별 중단하라'… 중국 '개선하겠다' (종합)", 연합뉴스, 2020. 4. 13. 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413076151083?section=search 혁명은 하였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진지하게 사고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물론 우리도 갈 길은 멀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난민 인정률은 OECD 국가 중 일본 등과 함께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며, UN 사회권규약 등 국제인권규범을 '시기상조'라는 등 이유를 들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포장해서 수출할 정도의 모범이 되려면 우리부터 돌아보고 쇄신해 나가야 한다.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보편적 규범과 상식을 숙고하여야 한다.


  이번 COVID-19 사태로 맞은 위기이자 기회를 능동적으로 사고하면 좋겠다. 우리가, 대한민국(통일한국)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생명과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옹호하고 이를 위해 싸우는 존경받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유럽인권재판소(ECtHR)와 같은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우리나라에 유치, 설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광주도 좋고, (아니면 오히려, 전략적으로) 대구에 세워도 좋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지역 시민들께서도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양보해주실 수 있을 사안이라 생각한다.

  대구가 지금은 '보수의 성지'처럼 되어 있지만, 이는 (고작) 제3공화국 이후의 일이다.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곳은 영남지역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문천회맹'이 그 시작이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처음 의병을 일으켰고("달성출신 ‘韓末 최초 의병장’ 문석봉…집터엔 그 흔한 표지판 하나도 없어", 영남일보, 2019. 6. 1. 자 기사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601.010010715190001), 을사늑약 후 '국채보상운동'을 처음 전개하였으며(김광제, 서상돈 등), 1915년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곳이고(대구 달성공원), 이후에도 일제에 항거한 학생운동(태극단 등 "1920년대 후반~1945년 대구 항일 학생운동", 영남일보, 2013. 12. 13. 기사 및 연결기사 참조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31213.010340757380001), 노동운동(1938년 12월 대구 직조공장 노동자 파업 등), 무장투쟁("'의열단 최초단원 10명 중 3명이 대구경북人' 의열단 100주년기념식 열려", 영남일보, 2019. 11. 11. 자 기사)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대구서 교육자·작가 역사대담 '대구는 독립운동의 성지'", 연합뉴스, 2019. 8. 22.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90822078700053). 독립 후에는 미군정하에서 '10월 민중항쟁'이 일어났고(https://ko.wikipedia.org/wiki/10%EC%9B%94_%ED%95%AD%EC%9F%81),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무려 72%의 대구시민들이 진보당 조봉암에게 표를 던졌다("조봉암이 대선에서 70% 득표한 지역을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2019. 10. 21. 자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74404).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여 '2. 28. 학생의거'를 일으켰고, 이는 '3. 15. 마산의거'와 '4. 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태일조영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시아인권재판소의 대구 설립'은, 섬처럼 고립되어 그 나름으로 상처받고 소외되었다 여기는 대구시민들의 정서를 위로, 재전유하여 우리 사회에서 보다 합리적인 토론 기반을 열어 나가는 좋은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예산을 들여 신공항을 짓는 등 지역개발사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앞에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대당을 언급하였지만, 대구는 정몽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남 유림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고, 그 학풍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사회현실과 정치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조선 초 김종직을 영수로 한 영학파, 경주 손중돈에 이은 이언적 등 동방 사현(그중 조광조의 갈래가 성혼 등 기호지방으로 전해진다), 중기 조식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가 이어지다가 결국 퇴계학파로 대부분 흡수, 정리된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영남학파"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276].

  물론 남북의 평화적 통일 후 비무장지대 인근이나 북한 지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고,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 후 전범재판 등 어떤 국제재판이 제기될지 장담할 수 없고, 인프라나 지역정서 차원에서 대구와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아시아 국제재판소가 서려면 누구보다도 일본의 동의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이는 남북통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구는 우선 일본과 가깝다는 큰 장점이 있다(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직항노선이 있고,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방콕, 하노이로도 연결된다). 국제재판소가 잘 운영되려면 해당 지역 주민의 전폭적 이해와 지지도 필수적이다. 대구는 현 대구고등법원의 전신이 된 '대구공소원'이 1908년 경성공소원, 평양공소원과 함께 가장 먼저 설치된 곳으로(대구 등 '지방'재판소는 1895년 고종이 반포한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새로운 재판소를 흔쾌히 맞이할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에는 '전쟁 자체'를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평화공원, 생태공원이, 평양 등에는 통일 전 북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우리의 민주주의와 투명성, 시민의식에 주목하는 이 시기에,

  우리 자신의 인권의식, 감수성,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과 공감·연대의식을 점검하고 키워나가는 한편, '인권 옹호자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국민적 대화를 열어 나갔으면 좋겠다.


  아울러, 다수의 일본 시민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함으로써, 일본 극우세력의 침략주의를 자연도태시키고, 평화주의의 상징이자 동반자, 둘도 없는 벗이 되자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묵향 2020-04-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가) 일본 뿐인 줄 알았는데 인도도 있었다;;;

˝‘코로나 옮긴다‘며 돌 던졌다···의료진이 되레 구타당하는 인도˝, 중앙일보, 2020. 4. 14. 자 기사
https://mnews.joins.com/article/2375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