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공부하자" (2020. 4. 12.)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2759 에 이어서...



  막연히 일본도 유교문화권이라 그 영향을 크게 받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호사카 유지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이상주의'라 할 만한 이념이 없다(전자책으로 보고 있는 터라 쪽수를 표시한 인용이 어려우나, 이하는 전자책 191/467에서 시작되는 "일본에 이상주의는 없다"에서 가지고 온 내용들이다).

  서양에서 『군주론』, 『전쟁론』 같은 현실주의가 가진 도덕적, 윤리적 결함을 '기독교'가 보완하였다면, 『손자병법』을 낳은 중국에서는 '유교'가 그 역할을 하고, 특히 성리학은 조선으로 와서 퇴계와 율곡에 의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는, 그나마 그런 역할을 맡았던 '불교'가 탄압받아 침략주의를 견제할 평화주의 이념이 소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의 도덕관념을 마비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정작 역대 일왕들은 '국가신도'가 아니라 대부분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반대로 명분과 이상주의가 앞서는 나라이고, 지금도 현실주의, 실용주의적 사고는 많이 부족하다. 거창한 총론을 뒷받침할 각론에 약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는 완비되지 않은 계획이라도 과감하게 결단하여 우선 실행에 나간 뒤에 세부를 보완해 나가는 전략이 효과적이지만, 요모조모 따지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전략이 평시에도 늘 유효하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반면 일본은 일반적으로 디테일에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가뜩이나 만사 무덤덤한 편인)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세심함을 보이는 일본인들도 많다. 그러나 최근 여러 일로, 일본이라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특히 '국가통계'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일본은 자국 안전 등에 관한 겉으로 보이는 대외 이미지를 중시하여 (특히 국제기구에 보고하는) 부정적 지표는 항목을 세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표본 수를 줄여버리고, 긍정적 지표는 과장하는 전략을 취하곤 한다. 『국화와 칼』이 꿰뚫어 본 것처럼, 일본은 행동 관점의 '죄책감(guilt)' 문화가 아니라, 존재 관점의 '수치심(shame)'의 문화이고, 치욕과 치욕회피를 원동력으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통계 '마사지' 문제는 서구에도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조. “Simple statistical error puts Japan economic data in doubt”, Financial Times, 2019. 1. 17. https://www.ft.com/content/e3a28958-1a24-11e9-9e64-d150b3105d21; “Osaka polic failed to report 81,000 crimes between 2008 and 2012”, The Japan Times, 2014. 7. 13.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4/07/31/national/crime-legal/osaka-police-failed-to-report-81000-crimes-between-2008-and-2012-probe/ 등. COVID-19 사태에서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를 통계에서 빼는 등 유사한 모습을 보였는바, 이는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국가통계에 관하여 이런 평판이 쌓이는 것은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일본은 세부까지 계획이 서지 않으면 선뜻 움직이지 않는(못하는) 사회이고, '전례'가 없는 이번 사태에 관해서도, 미리 작성된 '매뉴얼'이 없다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다시 윤리문제로 돌아와서,


  일본의 도덕관념은 확립된 하나의 확고한 사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불교, 유교, 기독교, 황국사상, 병학, 무사도 등으로부터 일본인들의 생활에 맞게 취사선택된 혼합된 이념이다. 그러다 보니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 쉽게 변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규범도 실은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집단따돌림 문화를 보면 그 규범이 어떤 윤리로부터 도출된 규범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시국에,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내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의료진들을 바이러스 취급하며 이지메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 외에는 찾기 어렵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이다. 일본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관계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침략사상을 내걸고 나서서 강력하게 끌기라도 하면, 알면서 모르면서 거기에 충분히 끌려갈 소지가 있다고 한다.


  "세균 취급당하는 의료진, '코로나 이지메' 퍼지는 일본", 서울신문, 2020. 4. 13. 자 기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414017005

  "코로나19 불안 커지는 일본… '현장대응 의료진 세균 취급'", 연합뉴스, 2020. 2. 23. 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3026500073


  우리를 끝없이 연구하는 일본을 역이용해 우리가 일본에 포장해 발송할 선물로 나는,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꼽고 싶다["일본을 공부하자" (2020. 4. 12.)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642759 참조].


  비록 노동권, 사회권과 같은 근대적 형태로 온전히 제도화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는 '홍익인간'부터 '인내천'까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윤리규범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혹독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가 자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사람이 그래서는 안 돼!"와 같은 자연법적 관습규범이 실정법의 빈틈을 채우고 있다. 그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가장 앞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고, 서서히나마 한 걸음 한 걸음, 인권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 대해서조차도, 전쟁을 일으켜 흡수하자는 식의 주장은 우리사회에서는 어느 때라도 그리 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안주하지 않는 연구자, 운동가들이 있고, 커다란 꿈과 이상(理想)을 입에 달고 살고, 내 권리를 찾는 데 적극적이며, 언제라도 분연히 떨쳐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는 시민들이 있다. 이제 새로운 단계, 조금 더 똑똑한 형태를 모색하여야 할 시기가 되었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큰 추세에서' 시민의 권리를 늘려오고 있다. 이들이 적어도 일본이나 중국, 아시아의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처럼 비판에 무관심하거나 대화조차 안 되는 기관들은 아니다(내부적으로도 개선과 자성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분출되어 왔고, 또 분출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일본의 형사법제는 악명 높다. 올해 초 미국 정부가 자문하는 워싱턴 DC의 아시아법 전문가가, 중국, 일본 전문가들도 모두 앉아 있는 한 비공식 학회 석상에서, "중국에 법의 지배란 없고, 일본도 형사법에 관해서는 중국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라고 대놓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2013년에는 UN 고문방지위원회에서 한 회의 참석자가 “일본 형사사법은 중세시대 수준”이라고 발언하자 일본 대표가 (나름대로 해명하거나 정중하게 사과를 요청하면 되었을 것을) 무례하게 "Shut up! Shut up!"하며 발끈한 바람에 도리어 그 주장이 확증된 것처럼 되어버리고 비웃음만 산 일도 있었다. “‘Shut up!’ U.N. rights envoy quits over tirade in Geneva”, The Japan Times, 2013. 9. 21.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3/09/21/national/shut-up-u-n-rights-envoy-quits-over-tirade-in-geneva/ 당시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koQjIBA_3U 반면 우리는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수립한 형사절차상 (피고인) 인권보장 조치들이 이제는 일종의 '백래시'를 맞고 있는 형국이고, 그것이 거꾸로 강자나 권력형 비리를 비호하는 데 선별적으로 활용되는 규범혼란 상황에 놓여 있다. 형사절차에서 '피해자' 보호와 참여를 강화하는 등 기존 구조상 간과되었던 측면을 적극적으로 제도에 기입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도 국가규모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 국제사회에서 인심을 잃고 있다. 홍콩문제, 소수민족 탄압, 비판억압과 감시사회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중국 내 아프리카인 차별로 큰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프리카 대사들 '코로나19 차별 중단하라'… 중국 '개선하겠다' (종합)", 연합뉴스, 2020. 4. 13. 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413076151083?section=search 혁명은 하였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진지하게 사고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물론 우리도 갈 길은 멀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난민 인정률은 OECD 국가 중 일본 등과 함께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며, UN 사회권규약 등 국제인권규범을 '시기상조'라는 등 이유를 들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포장해서 수출할 정도의 모범이 되려면 우리부터 돌아보고 쇄신해 나가야 한다.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보편적 규범과 상식을 숙고하여야 한다.


  이번 COVID-19 사태로 맞은 위기이자 기회를 능동적으로 사고하면 좋겠다. 우리가, 대한민국(통일한국)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생명과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옹호하고 이를 위해 싸우는 존경받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유럽인권재판소(ECtHR)와 같은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우리나라에 유치, 설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광주도 좋고, (아니면 오히려, 전략적으로) 대구에 세워도 좋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지역 시민들께서도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양보해주실 수 있을 사안이라 생각한다.

  대구가 지금은 '보수의 성지'처럼 되어 있지만, 이는 (고작) 제3공화국 이후의 일이다.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곳은 영남지역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문천회맹'이 그 시작이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처음 의병을 일으켰고("달성출신 ‘韓末 최초 의병장’ 문석봉…집터엔 그 흔한 표지판 하나도 없어", 영남일보, 2019. 6. 1. 자 기사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601.010010715190001), 을사늑약 후 '국채보상운동'을 처음 전개하였으며(김광제, 서상돈 등), 1915년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곳이고(대구 달성공원), 이후에도 일제에 항거한 학생운동(태극단 등 "1920년대 후반~1945년 대구 항일 학생운동", 영남일보, 2013. 12. 13. 기사 및 연결기사 참조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31213.010340757380001), 노동운동(1938년 12월 대구 직조공장 노동자 파업 등), 무장투쟁("'의열단 최초단원 10명 중 3명이 대구경북人' 의열단 100주년기념식 열려", 영남일보, 2019. 11. 11. 자 기사)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대구서 교육자·작가 역사대담 '대구는 독립운동의 성지'", 연합뉴스, 2019. 8. 22.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90822078700053). 독립 후에는 미군정하에서 '10월 민중항쟁'이 일어났고(https://ko.wikipedia.org/wiki/10%EC%9B%94_%ED%95%AD%EC%9F%81),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무려 72%의 대구시민들이 진보당 조봉암에게 표를 던졌다("조봉암이 대선에서 70% 득표한 지역을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2019. 10. 21. 자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74404).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여 '2. 28. 학생의거'를 일으켰고, 이는 '3. 15. 마산의거'와 '4. 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태일조영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시아인권재판소의 대구 설립'은, 섬처럼 고립되어 그 나름으로 상처받고 소외되었다 여기는 대구시민들의 정서를 위로, 재전유하여 우리 사회에서 보다 합리적인 토론 기반을 열어 나가는 좋은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예산을 들여 신공항을 짓는 등 지역개발사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앞에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대당을 언급하였지만, 대구는 정몽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남 유림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고, 그 학풍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사회현실과 정치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조선 초 김종직을 영수로 한 영학파, 경주 손중돈에 이은 이언적 등 동방 사현(그중 조광조의 갈래가 성혼 등 기호지방으로 전해진다), 중기 조식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가 이어지다가 결국 퇴계학파로 대부분 흡수, 정리된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영남학파"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276].

  물론 남북의 평화적 통일 후 비무장지대 인근이나 북한 지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고,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 후 전범재판 등 어떤 국제재판이 제기될지 장담할 수 없고, 인프라나 지역정서 차원에서 대구와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아시아 국제재판소가 서려면 누구보다도 일본의 동의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이는 남북통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구는 우선 일본과 가깝다는 큰 장점이 있다(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직항노선이 있고,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방콕, 하노이로도 연결된다). 국제재판소가 잘 운영되려면 해당 지역 주민의 전폭적 이해와 지지도 필수적이다. 대구는 현 대구고등법원의 전신이 된 '대구공소원'이 1908년 경성공소원, 평양공소원과 함께 가장 먼저 설치된 곳으로(대구 등 '지방'재판소는 1895년 고종이 반포한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새로운 재판소를 흔쾌히 맞이할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에는 '전쟁 자체'를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평화공원, 생태공원이, 평양 등에는 통일 전 북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우리의 민주주의와 투명성, 시민의식에 주목하는 이 시기에,

  우리 자신의 인권의식, 감수성,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과 공감·연대의식을 점검하고 키워나가는 한편, '인권 옹호자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국민적 대화를 열어 나갔으면 좋겠다.


  아울러, 다수의 일본 시민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함으로써, 일본 극우세력의 침략주의를 자연도태시키고, 평화주의의 상징이자 동반자, 둘도 없는 벗이 되자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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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4-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가) 일본 뿐인 줄 알았는데 인도도 있었다;;;

˝‘코로나 옮긴다‘며 돌 던졌다···의료진이 되레 구타당하는 인도˝, 중앙일보, 2020. 4. 14. 자 기사
https://mnews.joins.com/article/2375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