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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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추천권유도 10

 

선조의 시대는 조선 건국 때부터 이어져 온 '공신 훈구'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사림(士林)정치'의 

시대를 연 조선 역사의 전환점이 된 시대라 한다.

선조 시대를 조명하기 이전에, 중종 14년에 사림에 의해 공격을 받아 사사된 [조광조]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광조를 빼고서는 중종, 인종, 명종 및 선조로 이어지는 관련 역사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반정으로 [연산군]을 내몰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약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신진 세력을 통해 

강화하려는 구상을 하게 된다. 이때 이조판서 '안당'의 천거로 조정에 진출한 [조광조]를 활용

하고자 한다. 조광조는 도학정치의 양대 목표인 '소격서 철폐''현량과 도입'을 추진하여 

성공을 이루는 등 중종의 총애를 받으며 개혁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데, 한 발 더 나아가 기득권의

아킬레스건이나 마찬가지인 '위훈 공신'삭제를 '대사간 이성동'과 함께 추진하게 된다

'위훈 공신'이라 함은 연산군을 몰아 낼 때 공훈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벼슬로 당시 시대적 

혼란상을 틈타 아무런 공적도 없는 인물들이 자신의 공적을 포장해 혹은 유력자의 공훈에 끼워

넣기 식으로 국가로부터 벼슬과 훈작을 받은 것으로 당시 '위훈 공신' 문제는 기득권 세력의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이는 연산군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위훈 공신'들을 견제하려는 중종의 구상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급속히 진행되게 된다.

 

훈구 세력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곱 차례에 걸친 강력한 주청 끝에 조광조는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킨다. 조광조가 추진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수구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동을 

불러 일으킨다.

위훈 공신의 중 한 명의 자식이 바로 [희빈 홍씨]로 희빈은 당시 중종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던 

[경빈 박씨]를 통해 중종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대 사건을 기획하게 되는데 그 사건이 바로 

조광조가 연루된 '주초위왕(走肖爲王)'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고 개혁가 조광조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죽은 조광조의 복권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궤(不軌) , 반역을 의미하는 것과 

동일시 되던 시대였다.

 

선조가 즉위하기 전까지 형제간 왕위에 오르는 순서의 문제는 있었지만 왕후의 몸에서 나지 

않은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방계 승통'의 문제는 늘 선조를 따라 

다니는 아킬레스 건이었다.

 

명종 18년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에 이어 두 번째로 터진 국가적인 비극이었다. 세자를 국본(國本)이라 

하여 중히 여겼기 때문에 [순회 세자]의 죽음은 왕실 뿐 아니라 조선의 장래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비극적인 중대 사안이었다.

공교롭게도 명종에 앞선 '인종'도 후손 없이 죽었기 때문에 [순회세자]의 죽음은 조선 왕실의 

후계 문제를 오리무중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다. 명종이 죽기 직전 어머니인 인종의 비인 

[문정왕후]는 적장자로 명종의 계비 중에서 자신과 사이가 가장 좋았던 [창빈 안씨]자식 중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후계자로 지목하게 된다. (을축년의 하서)

 

명종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점검해 보면 정치 세력들은 당파를 만들어 당쟁의 불씨를 

만들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는 민심이 흉흉하여 도적(임꺽정)이 활개를 치던 시기로 선조는 

어린 나이(16)에 왕위에 즉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영민한 행동(유모의 

궁궐 출입 사건, 환관 감축 등)으로 세인들의 관심은 물론 칭송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집권 초기 [영의정 이준경] 등과 같은 우직하고도 충직한 신하가 선조를 든든하게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문정왕후]와 어머니 [인순왕후]의 든든한 후원으로 비록 정통성이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왕권의 연착륙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선조는 즉위 초기, 말수도 없고 너무 내성적이어서 신하들과 왕족의 우려를 자아냈으나 명종의 

'국상 예'가 끝나자 경연에 적극 참여하여 반론하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매우 논리 정연하고 

세밀했다고 한다. 이렇듯 선조는 즉위 당시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몇 가지(권한 이양 및 파천 등) 불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국가적 재난 대처에 대한 학습이 전혀 안 되어 일어난 사항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로서 영국의 왕세자를 비롯한 비록 형식적이지만 왕의 제도가 살아 있는 국가들의 왕위 승계 

예정자들을 보면 대개가 군 출신이거나 해당 국가의 군사학 관련 학교를 졸업한 것을 알 수 

있는, 이는 국가 위기 시에 지도자로서의 그 진가를 발휘하는 연습을 평시에 교육시켜 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시에 많은 위기 시 '극복 연습' '대처 방법을 훈련'하는 

곳으로 적당한 분야가 군대 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조는 그런 연습 즉, 국난 위기 시 리더로서 대처하는 연습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 아마 당시의 왕위 계승자들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한 당시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

그러했기 때문에 자신의 왕세자가 적에게 인질로 잡히고, 선조 자신도 야음을 틈타 백성을 

속이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비록 혜안(명나라의 쇠퇴, 왜의 재침 등)을 가진 선조라 할지라도 최전선에서 

적군과 싸우고 있는 장수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일일이 지시하는 모습과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전투 중인 장수에게 징계를 내리는 모습 또한 전쟁 중인 상태에서 왕위를 

이양하겠다고 난리를 피는 모습은 한 국가의 지도자인 왕이 아닌 옹졸하고, 치졸한 인간의 

전형이었다고 밖에는 달리 평가할 게 없을 정도로 정말 안타까움 그 자체였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잘못 혹은 오판으로 인한 벌어진 사항까지도 전부 신하들의 

잘못(파천 혹은 몽진)된 보필로 돌리는 모습은 왕으로서 절대 보여 주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을 뒤집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여진 정벌의 영웅 [신립 장군]에 관한 것이다.

선조는 자식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자식으로 [신성군]을 꼽고 있었으며 나중에 신성군을 

[신립의 딸]과 혼인시켜 신립 장군과는 사돈관계였다. 임진왜란 당시 여진 정벌의 영웅이었던 

신립 장군이 강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마는데, 이유는 자신의 판단 실수로 적에게 전략적 요충지

(충주)를 너무 쉽게 내 주어 자책감으로 탄금대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역사는 마치 신립을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그의 딸이 신성군

(인조의 큰 아버지)과 혼인을 했고, 그의 매부 구사맹은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렇게 밖에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언급되고 있다.

 

두 번째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를 도운 [명나라의 원군]에 관한 부분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쇄국 일변도의 정책을 펼쳐 덩치만 컸지 제국이라 할 것도 없을 정도로 

엉망인 나라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명나라는 왜군과 싸울 의향도, 전략도 세우지 

않은 채 형제국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출병을 하였으나 왜군과의 싸움보다 협상을 통해 종전

(終戰)을 도모하려 했다고 한다

여기서 '기미론'이 나오는 데, '기미'란 명나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관직을 내리고 일본의 

조공을 받아 들이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으려는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과거 역사 시간에 마치 임진왜란 당시 우리를 적극 도와 준 나라로 명나라를 들고 

있으니 뭘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어 오던 가장 큰 사건을 하나 해결한다.

바로 "종계변무(宗系辨誣)" 수정 사건이다. 종계변무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고려 말의 

권신이었던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대명회전'에 잘못 기록된 사항을 수정하려는 숙원사업을 

말하는 것으로, 선조 이전부터 수 많은 왕들과 신하들이 중국 측과 접촉하여 그 조항의 변경을 

추진하려고 중국에서 온 사절이나, 중국에 있는 권력층들에게 줄을 대고 틈틈이 로비를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종계변무 수정에 관여하였던 인물들은 조선의 이런 곤란한 점을 노려 

뇌물만 챙겨 먹고, 수정해 주지도, 할 의사도 없이 속만 끓여 왔다고 한다.

선조는 이 조항에 대한 변경을 무작정 요구하지 말고 중국의 역학구도가 바뀌는 시점에 집중 

로비하여 이를 바로 잡자는 전략을 세워 이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종계변무의 문구 수정 사항은 잘못된 서술에 대한 문구를 수정했다는 단순함을 뛰어 넘어 

조선 건국 이래 가장 골치 아픈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조상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동시에 자신 

역시 '후궁의 손자'라는 태생적 콤플렉스를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FK고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기의 내용은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을 나름 정리해 놓은 것인데,

나는 작품을 나름대로 분석하여 선조를, 그 당시의 정치, 경제적 사항에 대해 의미를 두기 위해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1. 절대 권력자에게 맞서기 보다는 충성이 최선이다. 

선조(하성군)의 할머니 [창빈 안씨]는 명종비인 [문정왕후]의 절대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 빈의 자격으로 감히 왕의 총애를 독차지 하려 하지 않고 항시 온화한 성품으로 당시의 

실권자인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았다. 다시 말해 '알아서 기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반대로 [창빈 안씨]보다 서열상 위인 [경빈 박씨]는 자신의 아들 '복성군'을 명종의 후임으로 

앉히고자 모사를 꾸미다 [문정왕후]에게 발각되어 아들과 함께 사약을 받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고 한다.

하여간 무조건 절대자에게는 맞서기 보다는 멍청스러울 정도로 충성을 다하는 그런 부하로 

인식되게 하는 게 상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2. 좋은 스승이 많았다.

조선 국왕 27명 중에서 가장 스승 복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이황, 기대승, 이이, 노수신 등과 같이 성리학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이들이 

선조에게 학문적 기초를 놓아 주었다. 실록 어디를 보아도 선조가 하성군 시절 누구로부터 어떤 

교육을 체계적으로 개인 교육을 받았는지 언급된 기록은 없다.

전통적으로 조선 왕실에서는 자칫 권력 투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왕과 같은 서열에 있는 

종친들의 학문 연마는 금기시 하는 것을 관례화하였다고 하는데, 특히 명종은 어린 하성군에게 

왕실의 직접적인 후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왕손 사부'를 임명하여 교육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권좌에 오른 직후 '이준경'은 통치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함양시키고자 제일 먼저 '이황'선조의 

스승으로 삼도록 천거해 이를 관철시킨다. 이황을 스승으로 천거한 이유는 '현실과 이상이 적절

하게 조화를 이루며 당면한 국리민복과 부국강병의 과제를 해결해 가는 국왕의 모습'을 만들려 

했었기 때문으로 생각되어진다.

선조가 개인적으로도 존경하였던 이황은 '소학''땅에 떨어진 ''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이라 하여 '소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이후 선조의 스승으로 이황의 

추천을 받은 정지연과 그의 추천을 받은 인물 '이산해''이 이'가 있었다.

선조의 교육 방향을 놓고 [이준경][이 이]는 언쟁을 벌이게 되는데, 언쟁은 왕의 '경연장'으로

까지 번져 권력 투쟁의 장으로 바뀌고 만다. 또 하나 중대한 사항은 선조의 교과목이었다.

선조의 학습 과목 편성은 주로 '주자학' 일변도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결국 선조로 하여금 

주자학은 물론 중국에 대해 자발적인 굴종으로 나아가게 하는 폐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3. 이준경과 같은 멸사 봉공의 자세를 견지한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이준경은 '실록' 등에서 평소 중망(重望)이 있어 나라 사람들이 그를 믿고 의지 하였다고 기록될 

정도로 신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이준경은 당시 그의 형 '이윤경'과 함께 '이봉(二鳳)'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선조 등극 초기 

명종비인 [인순왕후]에게 '수렴첨정'을 권하여 승낙을 받아 이를 시행하게 하는 등 선조 초기 

정권 안정에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조 5년 이준경이 세상을 떠나면서 선조에게 통치에 관한 유언을 하는데,

첫째 말하는 것을 준엄하게 하고 아랫사람을 대할 때 포용하고 공손히 대하고

둘째 신하가 진언할 경우 너그러이 포용하고 예우해 주고

셋째 군자와 소인을 분간하고

넷째 사사로운 붕당을 깨트릴 것

등을 강조한다. 이렇듯 그는 죽으면서까지도 선조의 통치 기반이 영속되기를 기원하였다.

 

역사가들은 "선조의 시대를 연 것은 이준경이지만 선조의 치세를 뒷받침해 준 인물들을

길러 낸 것은 이황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4. 선조는 심성이 유약한 반면, 변덕이 심하였다.

선조의 소심함과 자신감 결여는 두고두고 신하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데 이는 결국 선조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통성을 지니지 못하고 출발한 선조는 당쟁이 극에 달했을 때에 별다른 조치 내지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항시 미온적이고 수세적이었는데 선조가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안 부재'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권력자들 간의 당파 싸움이 어느 정도 심했는지 전란으로 인한 몽진의 와중에서도 지속

되어 선조의 심신을 끝까지 괴롭혔다고 한다. 이는 정파간의 싸움이 치열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선조의 심성이 유약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 선조의 유약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행동 중의 하나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처우 문제로 

자신의 아버지인 '덕흥 대원군'을 추존왕으로 추대하지 않은 것과 [광해군 시대]의 권력 투쟁 

구도가 광해군과 신성군의 대립으로 나타난 일차적 이유가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 선조에게 

있다는 것이 사학자들의 공통된 평가라고 한다.

 

반면에 선조의 변덕을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 몇 가지 있는데,

선조 24년 자신 스스로 공론화하던 [세자 책봉 문제]를 신하인 '정철'이 정식 공론화시키자

그 이야기를 꺼낸 정철을 심하게 질책을 하였고, 임진왜란 중에 '아홉 번'에 걸친 '양위 파동'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사건이었다고 할 것이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을 속여 가며 '파천'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단행한 

사람은 바로 '선조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 대신만 갖고 나무라고 있는데 왕으로서 또한 

지도자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점은 한편의 희극이었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할 것이다.

 

선조는 '후퇴하는 왜군을 추격해 섬멸하라'는 자신의 명령대신 방비를 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건의를 한 전투 현장의 장수 이순신 역시 극도로 불신하고, 미워한다.

더욱 압권인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는 '공신대감'을 선정하여 포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책임을 '비변사''도원수'의 책임으로 하는 돌리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변덕과 옹졸함의 

극치를 보여 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5. 국가 존망의 위기에 대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우찬성 최 황]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탄 듯 결정을 내리는 선조에게 

신하로서는 도가 지나친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마냥 소극적인 지시로 일관하고 있다.

 

"모든 것은 비변사에 내리면 비변사가 자세히 살핀다. 내가 친히 보더라도 무슨 일을 하겠는가."

 

선조의 이 답변은 위기에 대처하는 정신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조는 외세에 대비코자 이이로 하여금 군사를 양병토록 지시하는 등 나름 대비는 

하려고 하였으나 '유성룡' 등에 의한 반대로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다. 왕으로서 국가의 위기 

사태가 직면하였다고 판단되면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세가

있었어야 되지 않은가 생각한다.

또한 왜란이 한창일 때 '몽진'을 하면서 보여 준 선조의 행동은 전혀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의자가 전혀 없어 보이는 왕으로 비춰지고 있어 못 내 아쉬운 점으로 남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더욱 웃긴 것은 전쟁 중에 있는 상태에서 나라의 왕이라는 사람이 

'권력을 세자에게 이양'하겠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여차하면 명나라 쪽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점은 정말로 그 분이 조선의 왕이었는지가 의심될 정도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6. 발전적인 논쟁과 함께 언로가 살아 있었다. 

허접하고도 저질스런 당파 싸움말고 고차원적인 논쟁이 선조 시대에 있었다.

그런 논쟁을 한 대표적인 두 축이 바로 '이준경''이 이'.

이준경은 이 이의 급진 개혁을 위험스럽게 보았고, 이 이는 이준경이 낡은 세력의 대표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시 부딪혔었다. 성격적으로도 이 이는 직선적이고, 논리적

이어서 일도양단(一刀兩斷)을 좋아 했다. 조선의 맹자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은 것이다.

이 이는 이준경이 죽자 그가 선조에게 올린 '유서장'을 논박하는 '논붕당소'를 올리게 되는데

이는 이준경이 유서장에 언급하며 우려한 붕당에 대한 우려를 쓸데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었으나 끝내는 이준경이 예언한 대로 붕당이 생성되어 갖은 음모를 펼치게 되자 

'이 이'는 어느 한 쪽에 서기 보다는 비교적 중립적 입장에서 붕당을 조정, 화해시키려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한다.

 

선조 13년 충북 음죽에 사는 [전욱]이라는 한 진사가 선조에게 조정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는 데 선조는 이를 묵살하지 않고 적극 수용해 진상 규명을 시키게 한 것만 

보아도 언로는 살아 있었다고 보여 진다.

 

영의정 이산해와 좌의장 유성룡 모두 동인이었다.

왜란 발발직전 조정은 이미 동인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동인의 대일 전략은 기본적으로 

'선린 외교'였다. 이 이가 10만 양병설을 외칠 때 유성룡이 이를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은 자신들

가 달랐기 때문에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한 것이 아니라 일단 '선린 외교를 통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 볼 것을 강력 주청하였기 때문이다.

또 당시의 언로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는 위에서도 몇 번 언급되고 있지만 '수렴 첨정' 관한 

사항이다.

 

선조 등극 초기 명종비인 [인순왕후]에게 '수렴첨정'을 권하여 승낙을 받아내 이를 시행하는 

과정과 세월이 흘러 신하 '백인걸'이 인순왕후에게 섭정을 거둬 줄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는 

내용은 절대자와 신하간에 언로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언로가 살아 있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게 나의 시각이다.

 

위에서 언급한 나의 시각이 '선조'를 전부 평가할 수 없다.

- 누가 인정해 주지도 않겠지만 -

분명한 하나의 사실은 선조는 참 지난한 삶을 살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되지를 않는다.

왕위 계승, 임진란, 당파 싸움 등등등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은 되나, 준비 안 된 

왕권 계승으로 맘 고생이 상당히 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조를 통해 진정한 리더의 표상을 다시 한 번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으로부터 얻는 지식들

- 나라에 큰 공이 있을 때는 조(), 덕이 있는 인물이었을 때는 종()을 붙였다.

 

- 하성군이 즉위하면서 하성군의 아버지 덕흥군은 [대원군]이 된다

   조선 시대의 대원군 제도는 이때 생겨난 것이다. 다른 두 대원군은 철종의 아버지

   '전계 대원군', 고종의 친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있다.

 

- 태강릉이라 불리는 태릉과 강릉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과 그녀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을 일컫는 말이다.,

 

- 선조의 측근 기대승은 전한(典翰)이란 벼슬에 있었는데, 이는 왕의 문서를 작성하는

   지체교의 일을 하면서 경연관도 겸임하는 중요 자리였다.

 

- 어진 이를 알아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고서 신임하는 것이 더 어렵다.(기대승)

 

-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동호문답]은 임금의 학문하는 방법과 정치라는 도리를 문답체로

   정리한 것이다. 또 내성외왕을 이루라며 '성학집요'도 올렸다.

 

- '선묘보감'이란 실록 중에서 선조 시대의 통치와 관련된 기록들만 따로 정리한 일종의 

   다이제스트 실록을 말한다.

 

- 홍문관 관리들이 의기투합해서 중종에게 학문과 정치, 민생을 바로 잡을 것을 청하는

   유명한 상소는 '일강구목소'이다.

 

- 중국 명나라에서는 중기부터 양명학이 지식 사회는 물론 정치세계까지 석권하다시피

   했다. 주자학은 이론을 중시했고, 양명학은 실천 중시 학문이다.

 

- 조선에 양명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 남언경이며 실록에 근거해 보면 '주역'

   처음으로 공부한 국왕은 태종 이방원이다.

 

- 오활하다는 말은 '우활(迂闊)하다'에서 온 것으로 세심하지 못하고 부주의하며 덜렁거려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뜻이다.

 

- 태종이 처남 형제들을 몰살 시킨 이유는 왕권을 농락할 수 있는 붕당을 이루려는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 때와 유사한 붕당의 조짐이 있었던 것은 성종 때부터이다.

 

- '지제교'란 국왕의 공식 문서를 짓는 일을 하는 직책.

 

-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형서(邢恕)라는 인물은 배신의 대명사이다.

 

- 후궁의 서열

   (1) ---> 귀인(1) ---> 소의(2) ---> 숙의(2) ---> 소용(3

    ---> 숙용(3) ---> 소원(4) ---> 숙원(4)

- 조선 시대에는 5명의 추존된 왕이 있었는데

   1) 성종의 의경세자 -----------> 덕종

   2)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 원종

   3) 영조의 배다른 형제 ---------> 진종과 장조(사도세자)

   4) 헌종의 아버지 -------------> 익종

 

-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완성하자 선조는 관계자에게 포상을 하게 되는데,

   이 중에 동시 통역사안 [홍순언]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명나라 장수 '석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 친한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우리는 임진왜란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은 '부로쿠의 역'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는 분로쿠 천왕 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정유재란은 '게이초의 역

   이라고 부른다.

 

- 원균과 그의 아들 원사웅, 원연, 원전은 모두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서 싸우다

   전부 전사했다.

 

- 왜놈의 새끼들이 부산에 첫발을 내디딘 지 67개월 10만에 전쟁이 종료됨.

 * (나의 생각) 일제 36년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합치고 가끔 노략질까지 합치면 거의

                   반세기를 우리를 못살게 군 놈들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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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 2017 신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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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작품을 읽으며 나의 기독교 입문 계기를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게 만든 작품이다.

내가 기독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굳이 들라면 아마도 나의 '아내'와 시인이신 '윤동주

선생'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이유인 '아내'와 관련되어서는 거의 모태 신앙 수준의 종교 생활을 해 오던 나는

아내와 결혼하면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결혼 초 대개 종교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지닌 남녀가 만나 화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결혼을 한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우리 부부도 그런 과정을 역시 겪었다. 아내의 소망은 나와 손잡고 교회에 다니는 게

최고의 소망이었으나 나는 절을 다니시는 어머님의 종교관과 내가 평소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반 기독교적인 정서로 인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었다.

한 여인과 같이 산다는 게 뭔지, 아내라는 여인이 뭔지 간곡한 아내의 부탁으로 또 아내의

()를 살려 주기 위해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고자 - 죽은 자의 소원도 들어

준다는 데 -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출석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윤동주 시인때문이라고 이유를 든 것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나름

심오한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세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길고도 긴 이야기로 개인적인 질문

을 해 오면 답을 하고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교회나 개신교 지도자 분들이 나의 주장을 들으시면 분노하실 수 있겠으나 나는

종교인 - 개신교 - 으로서 중요한 것은 교회에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상의 소유자이다.

그것 보다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또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찬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평소 삶 속에 예수적 삶의 요소를 얼마나 녹여서 실천하고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

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뭐 저래, 목사가 뭐 저래, 전도사가 어째 저래 등등

교회에 다니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을 외치면서도 교회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듣고, 보며 살고 있는가?

따라서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적 삶을 평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예수적 삶을 추구하다 보면 우선은 주변과의 소통도 원활해지면서 나아가서는 저절로

절대자와의 소통의 문도 열린다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다.

평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무서운 외모와 말투를 구사하는 나의 평소

행동을 유심히 살피다가 내가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고 하면 크게 놀라서 묻는다.

 

"형씨도 교회를 다녀요?",

 

", 전에는 고등부 교사도 했었는데요"

 

대화가 이즈음 되면 상대의 표정이 변하면서 말투도 변한다.

 

"외모와는 전혀 다르신 분이네요. 다정 다감하고 마음이 여리시네요"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교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그러다 교회 이야기로

연결이 되고 그러면서 미약하지만 전도라는 것도 하게 된다. 그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은

이전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교회에 다니며 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보아 왔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전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빨리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기도)

먼저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데 이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의 절대자인 하나님이 무슨 큰 채무를 진 사람처럼 이거 해 달라 저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등 끊임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런 기도의 행태는 진정한 교인이라면 시급히

고쳐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교수님은 자신의 딸을 낫게만 해 주면’, ‘손자의 병이 낫게만 해 준다면나머지

여생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인질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가를

바라는 식의 기원은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이렇게 감히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 나는 그런 내용의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독서일기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사원시절 회사에서 무주택 사원들에게 분양

해 주는 사원 아파트만을 바라보고 임신으로 만삭이 된 아내와 희망에 찬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입주자 명단 발표 며칠 전 회사 규정이 갑자기 바뀌어 당연 입주자로

생각하고 있던 내가 등 외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 입주자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속상함과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대낮부터 술을 먹고 널 부러져 사글세 방 귀퉁이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스름한 저녁에 인근 교회의 청년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예수님의 탄생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우리 집 차례가 되어 사글세 방문 앞에서 이들이 노래를

불렀다잠이 달아난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청년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 집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다니며 기도를 했건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 집 사람에게

해 준 게 뭐냐고, 시끄러우니 다른데 가서 노래를 부르라

 

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쫒아 버린 적이 있었다.

-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님이 열성 신도인 집 사람에게 내린 복이 바로 남편인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참 골 때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교회 청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지금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그런 행동이었다. 그 때 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위와 같은 사건을 비롯해 여러 소소한 사건이 내게 겹치고 또 겹쳐서 일어나 상당히 힘든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안 준 것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것을 한 번 세어 보세요 아마

주님께서 안 주신 것보다 여러분께 주신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나는 그 말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더 이상 주님께 무엇을 구원하는 보챔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자신있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하나님이 주신 게 많은지 안 주신 게 많은지를 세어 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단연코 이야기하는 데 주신 게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먼저 간구하는 내용의 기도는 가급적 자제를 하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왜 복을 받고 싶지 않겠으며 또 왜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인 쾌적함을 싫어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절대자의 가르침 속에서 평소 생활을 잘하면 그게 바로 ''이고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을 주실 분은 '아직 너의 차례가 아니다' 혹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데, 복을 달라고 열심히 간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 기도 시간에 다른 내용을 기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교회에 다니며 아직까지도 신앙심이 신실하지를 못해 나는 신실한 신자의 증표처럼 여겨

지는 '방언'이나 '영적 체험'도 뚜렷이 경험해 보지를 못해 신앙심의 깊이를 갖고 이야기할

소재가 별로 없다. 기도 시간이나 구역 모임이라는 데 나가서 다른 신도들이 기도를 하는

것을 보거나 들어보면 거의 신이 강림한 수준으로 기도들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기도

시간이 길어야 대략 5분을 넘기지 못하는 나의 기도빨은 언제나 초라해 진다.

그러다 보니 구역 모임에 나가는 것 자체가 항시 곤욕이요 난처함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의 기도빨이 발휘 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누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믿어 달라고 생 떼를 부리지 않겠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증명할 수 없기에 나 혼자 생각만 한다.

아마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였을 것이다.

 

사고가 난 후 긴 시간 동안 생존자 소식이 없어 전 국민이 애를 태우던 어느 날 밤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조용히 작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신실한 신앙심이 그리 크지 않은

나이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를 않는데 갑자기 '삼풍 백화점' 희생자와 매몰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폭포수처럼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도를 불같이 한 적이 있었다.

- 나도 당시에 왜 그랬는지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 우리 가족이나 친척 중에 삼풍 백화점

사건과 관계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나의 그런 불같은 기도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생존자가 처음으로 한 명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 말고도 여러 건의 기도빨 사례가 있는데, 누가 증거를 대라고 하면

증거할 수 없으니 답답하지만 뭐 그리 억울하지도 않다. 이런 저런 체험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분명히 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저런 이유와 또 사례를 통한 신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교회의 둘도 없는

신자 - 그러나 열성 신도는 아니다. 교회나 일부 신도가 잘못하는 모습이나 판단을 할

경우 핏대를 세우며 지적을 하기 때문이다 -가 되었으며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주일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우선은 집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이렇게 되었다.

유태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울리지 마라. 하나님께서 아내의 눈물방울 숫자를 세고 계신다"

 

나는 세상에서 이 말이 제일 무섭다. 그래서 더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그 분이 언급하신 말씀 중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살펴 보면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속에 얽매인 끈에서 벗어나 영혼을 해방

시키려는 욕망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차피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 다니고 싶다.]

 

비유가 꼭 적절하다고 보여지지는 않으나 성직자의 비리나 부패를 무신론자들이 공격할

때마다 내가 답을 잘 찾지 못함에 단서를 주신 문구는

 

[부패한 교회, 성직자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사람이 죽었으니 병이 나도 병원가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나도 열심히 다니지만 오늘날 교회는 정말 많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나부터도 그런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목적에 맞게 쓰려고 하는 불경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한 명이 본인이다.]

 

정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읽으며 나는 교수님께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최근 개신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고, '헤르만 헤세'라는 석학도 교회의 '이기주의적 성향'에 대한 자기반성을 요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의 첨탑이 높아질수록 인간들의 죄상은 더욱 더 흉악해지고 교회의 크기가 대형화될수

록 몰지각한 인간들은 더 늘어나고 있는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시대의 지도자로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종교와 종교인으로서의 방향에 대한 말씀을 끊임없이

던져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개신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적하고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겨회는 환경적으로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고 또 쓴 소리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이것은 개신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작품에서 언급하셨던 내용 중

 

"부패한 교회, 성직자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가지 말라는 말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교회를 부정하며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까지 모두 안고 갈 수 있도록

기독인이라면 모두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수님의 고견을 말씀해 주실 것을

진정으로 건의를 드려 본다.

 

교수님의 작품을 통해 수 년째 교회를 다니고는 있으나 항시 초심자와도 같은 어수룩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같은 미약한 영성의 소유자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성인으로서의 말의 향연

- ‘기도는 고공비행을 위한 비상(飛翔)입니다.

 

- 죽음보다 강한 것이 창조의 욕망이다.

 

-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뜻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메멘토 모리'라는 부르짖음은 '죽음을 생각하라'로 이는

   무신론자들이 외칠 때 하는 말이다.

 

- 상상력이란 사물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해부하고 쪼개는 행위이다.

   존재의 그 딱딱한 껍질 안에 잠재해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끄집어 내는 것.

  

- '사랑'은 말로, 몸짓으로, 나타나지만 ''은 조용히 지열처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타오릅니다.

 

- 비만은 건강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 리더가 누군가를 이끌어 가려면 감동을 주아야 합니다. 영혼을 일깨워서 눈물이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 무지개가 생깁니다.

 

- 문화(文化)라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준말로서 지도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 예술가가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물귀신처럼 남을 자기 대신 어둠의 심연 속으로

   끌어 들이는 힘은 있지만 그 곳에서 나와 구제의 높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없다.

 

-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 자기파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들다.

 

-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 넣어지는 것이다.

 

- 가족의 사랑과 공경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값어치 있는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하는 마지막 고개의 시험을 과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가족주의적 시각에서 본 

   예수님의 행적들이다.

 

- 혈육의 낡은 가정관을 사랑과 믿음,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장하고 승화한 것이

   예수님의 가정관이었고 기독교의 가족관이다.

 

- 땅에서 사는 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율법을 통해서 비로소 하늘의 아버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 빛은 하나인데도 분광작용에 의해서 제가끔 달리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도 문화에

   따라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 회교문화권에서는 돼지고기만이 아니라 개도 금기의 대상이라고 한다.

   이는 마호메트가 동굴에 숨어 있을 때 개가 짖어 잡힌 적이 있어 악마의 사자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음치를 놀릴 때 "개처럼 노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 인간이 풀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침묵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풀어야 한다.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하나님이 맞춰지지 않으면

   하나님 믿지 않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불평을 한다.

 

-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로맹 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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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 당신을 들어 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준비 과정
오스 힐먼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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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10

 

해당 작품부터 연속으로 몇 권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내 종교적 사고의

깊이를 더하고, 기독인으로서의 소양을 더 하고자 매년 이런 작품을 읽어 왔기 때문에

올해도 읽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나의 종교적 관점과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전파해

오늘도 두 팔 벌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 없이 어린 양들을 기다리고 계실 그 분께 감히

인도하고자 하는 마음과 또 주님의 참 사랑을 전하려 글을 작성하는 것이니 본인의 종교와

종교관이 다르다고 하여 굳이 본 글을 외면하지 마시고 평소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놈인지를, 이 놈이 생긴 것과는 달리 왜 이런 글을 기록하고 있는지 또 주장하며 외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과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읽으시는 분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시면

언제 한 번 저와 함께 교회에 출석해서 주님을 영접합시다.

 

결론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종교에 관한 나의 관점은 이렇다.

성경책이 순 엉터리고 거짓말투성이며 허구로 꽉 찬 이야기로 되어 있다면, 몇 천 년을

온전히 전해져 내려 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만약 그러하다면 성경에 기록된 거짓말과 허구에 찬 행동을 전파하고 나아가서 그 말에

의존해 속된 말로 밥을 빌어먹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목회자들 전부는 벌써 '사기꾼'으로

낙인 찍혀서 철창에 갇혀 있어야 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나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이 성경책을 이용해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성경책에 기록된 내용은 일단 거짓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하기 때문에 몇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성경책을 들고 거기에 적혀져 있는 말씀을

증거하고 이를 적극 전파하려는 사람들 또한 있는 게 아니겠는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성경책에 최소한으로 '인간의 도리를 져 버리는 행동을 하라'는 이야기가 없기에 일단은

나쁜 책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관심이 없는 사람이든 간에 성경책에서 증거하고,

외치고 있는 예수 재림과 죄 사함에 대해 관련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왜 증거

하고 또 이를 결사적으로 전도하려는지 일단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이라

보는데 나의 억지일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 기르는 집 개도 이유없이 짖어 대면 개 주인은 무슨

일이 있어 저렇게 짖어 대는지 확인하고 내다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수 천 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려 가면서 저리도 외치고 있는데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해당 작품은 성경의 "욥기"에 해당되는 부분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개인적 성찰에 관한

것으로 삶이 힘들고, 지치신 분들이라면 성경책의 "욥기"를 먼저 읽고 본 작품을 읽으면

더욱 더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인물은 누가 뭐래도 성경적으로 고난의

아이콘 그 자체인 인물이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전횡을 일삼다 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도, 나꼼수의 김 모씨라는

작금의 시대 '소 영웅'께서도 자신이 과거에 한 발언으로 절치부심 집에서 칩거하며

반성한다고 폼 잡으며 꺼내 든 성경책의 대목이 바로 [요셉]이라는 인물의 고난을 그린

"욥기"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지난 정권 시대에 각종 게이트의 주역이라고 평가 받았던 최 모씨는 검찰에 붙들려 들어

갈 때 예외적으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을 들고 들어간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인물을 빼 놓고는 권력에 빌붙어 지랄하다 붙들려 가거나 문제가 되는 인물들이

반성을 한다고 폼을 잡으면 왜 꼭 성경책을 펼쳐 드는지 참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불경책을 들고 갔거나 불경의 어느 대목을 읽었다는 인간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잡혀 들어가는 인간들은 자신이 받는 고통을 마치 성경 속의 한 인물로

승화시켜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기대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 참

잘못 찾지 않았나 생각된다 -

 

그렇다면 성경 속의 [요셉]이라는 인물에게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왜 어떤 측면

에서 받아 들여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셉]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사탄의 시험과 훼방을 당한 후 '공적 사역'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이야기해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다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어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런 '공적 사역''인류를 구원하시는 활동'에 임하지 않았다

는 이야기이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구덩이에 내던져지고 심지어 노예로 팔려 가기까지 한다.

노예가 된 [요셉]은 여주인으로부터 갖은 유혹과 학대 그리고 무고 등으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받았음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 멋지게 승리자가 된다.

[요셉]에게 전개된 각종 역경과 고난(버림과 배신의 시련, 유혹의 시련, 인내의 시련 ,

성공의 시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역경의 도가니' 속으로 인도한 어떤 증거를 말씀하시기 위해 내린 고난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명제가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독생자 목숨까지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우리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셨으면서도

이율 배반적으로 '사탄'에게 인간을 내 던지셨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을 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걸 맞는 사람으로 재 창조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그럼 나는 어찌하여 이 시점에 이런 작품을 읽고 이런 소회를 쓰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해

보면, 어느 귀화 외국인이 신문 칼럼에

 

"내가 한국에 귀화한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시기가 없었으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 새해를 맞이하면 더 이상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연륜이 그리 길지 않은 내가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아도 그 외국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위기인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든다. 왜일까? 아마도 삶이 그만큼 팍팍해

져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시기에 본 작품을 선정했다는 것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고통을 당한 [요셉]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살아오는 과정에서 기억될만한 큰 고통

- 당사자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과 역경의 크기에 관계없이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일 것이다 - 을 경험한 적이 수 없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순간을 돌이켜 보면 절대로 우리 주님은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가 이길 수

없을 만큼의 크기로 고난을 주어 힘들게 하지는 않으셨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역경'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쉽게 외면 혹은 회피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런 험난한 시기에 봉착하면 대개의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돌파하려는 '독불

장군파'와 절대자에게 의지해 고비를 넘기려는 '순종파'로 구분된다.

그러나 어느 파가 되었던지 간에 역경을 잘 극복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이 될 수

있겠으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했을 때에 발생하는 문제에서 두 파는 극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독불 장군파'의 경우는 득의만만하게 문제점에 대들어다가 철저히 깨지면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자학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반면, '순종파' - 내가 속한 파 - 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순종파'의 든든한 후원군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안 도와 주시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도와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안 된다고 해도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자신 앞에 펼쳐지는 각종 역경과 고난에 대해 그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많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몸 속에 있는 장기(臟器)가 있다. 심장, , 대장, 소장 등등등 그러나 이

중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기관이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헤아려 보자

아니 그 소유자인 우리가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부어 있는 ''더러 작아지라 하면 작아지는가, ''에 공기를 더 넣으라고 하면 말대로

되어지는가?

우리가 우리 몸의 주인이면서도 우리 몸 속에 있는 장기를 우리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나를 비롯한 그런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문제를 '독불 장군파'는 스스로 해결하려 발버둥 치는 반면, '순종파'는 우리의

절대자께서는 다 알아서 헤아려 주신다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들어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나 역시 힘든 상황을

헤치고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가만히 내가 지나 온 세월을 반추해 보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든 공통 분모가 있는데 이는

 

[주님은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 만큼만의 역경을 주셔 왔다]

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현재 처한 어려움을 웃으며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

주고 싶어서 작품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나는 성경 속의 [요셉]과도 같은 높은 지체와 부귀를 그 분께서 예비해

놓으시지는 않았을지라도 분명한 것은 어려움 속의 오늘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반드시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결코 좌절하거나 희망을 꺽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분이 내게 그러한 것을 예비해 놓으시지 않으셨다면 현재의 고통보다 더 크게

다가 왔을 과거의 고통 속에서 이미 나를 벌써 용도 폐기하셨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과거 한 때의 고난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를 잡아 일으켜 세운 것은 주님이셨고, 주님은

결코 내가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을 절대 주지 않으신다는 나만의 최면이었다.

그 결과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나만의 최면을 통해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가 소망했던 목표에 약간 더디 도착하는 것은 있을 수

있을지언정 말이다.

역경과 고통을 당하는 순간의 [요셉]은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크나 큰 선물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감내했고 이겨내 종국에는 그 분께서 예비해 두셨던 큰

선물을 받았다. 나 역시 그런 날이 내게 반드시 올 것을 믿으며 오늘의 고통과 역경을

웃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여기에 쓰고 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웃음과 기쁨 그리고 희망으로

반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절대자의 존재를 '증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작품은 신자, 비신자 모두가 한 번쯤은 꼭 읽어

봄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읽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도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고, [요셉]의 고난사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던 메시지가 잘

전달되어 주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던져 주는 말씀들

 

- 놀라운 미래를 위해 우리를 단련시키고자 하나님이 그 역경을 선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지로 이끌 정확한 계획안을 갖고 계시는데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매달리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 하나님이 우리를 다듬으실 때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자아 중심적인 생각을 제거하는

   일이시다.

 

- 진정한 믿음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마저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믿는 믿음이다.

   그가 원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헌신된 마음이다.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새롭게 고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허용해야 한다.

 

- 우리 삶에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 예수님은 세상적인 이득을 추구하느라고 삶을 허비하는 자를 우상 숭배자와 동일하게

   보셨다.

 

- [할레 의식]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이 표시였다.

   이는 예전 것들을 벗어 버림을 뜻한다.

 

- 종종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맡기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는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사과를 하든지, 하지 않던지 상관치 말라.

   정말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들을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 우리가 인생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그분의 약속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광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드바아르]로 이는 '말하다'는 뜻인 [다바아르]에서 온

   온 말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광야로 부르신 까닭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 특별한 장소다. 성경은 광야가 영감과 고결의 장소 곧 강력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고 했다.

 

- 배고프게 지내는 법을 알기보다는 풍족하게 지내는 법을 알기가 더 어렵다.

 

- 히브리어에서 [요셉]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늘리실 것이다'' 혹은 '하나님이 더 하신다

   는 뜻.

 

- 인내는 역경의 시기에 우리의 성품을 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다.

 

- 겸손이란 자신을 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라는 것이다.

- 성공 시험을 통과하는 비결

   1) 성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라 

   2) 찬사 처리법을 배우라  

   3) 겸손하게 살라 

   4) 겸손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라.

   5)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셨고 또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하라

 

- 하나님의 약속의 빛을 받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

 

- 역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그 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신앙 학교이다.

 

-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속에서 속삭이시고 우리의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고통 속에서는 외치신다. 그것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는 그 분의 메가폰이다.

 

-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역경을 허용하시는 것은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 사탄은 삶 속 깊숙이 뿌리 내린 기만적인 심적 경향, 거짓된 개념들 그리고 죄악된

   습관과 파괴적인 관행들 속에 숨어 있다

 

- [야곱]이란 '탈취자', '기만자 또는 조정자를 뜻하는 데 이들 모두는 그의 통제적인

   성격을 시사한다

 

-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당신이 아직 모르는 어떤 것을 알아내시기 위함이

   아니다. 그가 우리를 시험하시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그 분의 사랑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 실패는 상처를 준다.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성공을 제조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원재료들 가운데 하나 일 뿐이다.

 

* 종교적인 심령을 가진 사람들은 완고하고 교리적이며 죄의식과 두려움에 이끌리고,

   변화와 새 개념들을 거부하교, 거만하고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너 보다는

   거룩하다'식으로 대하며 화를 잘 내고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기 싫어하며 관계보다는

   규정에 더욱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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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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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기생] 그러면 어쩐지 교태스러움과 함께 남자들의 동물적인 욕구를 언제든지 자극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때에 따라서는 질펀한 그 무언가를 이용해 대개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떤 비밀스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런 존재

혹은 탐구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생집]이라는 단어는 출입 경험이 있는 자들에 의해 혹은 출입자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단어 자체가 갖는 본질적 의미보다는 부르는 이들의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상징성을 내포한 단어로 불리워졌을 것이고 여기에 더해 출입

경험이 없는 이들에 의한 상상과 출입자들의 호기로 포장된 묘사에 의해 '니나노 집',

'방석 집' 혹은 '색시 집' 등등으로 재 탄생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관련 종사자가 들으면 극렬하게 반대에 반대를 하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주변 술 친구들

'기생집 = 색시집'이라는 등식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이를 당연한 개념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천한 실력으로 나름 생각해 보면, '기생''색시'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생각되지만

여기에 출입하는 인간들의 인간성에 의해 해당 업소의 업태(?)가 변하면서 색시도 되었다,

기생도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금에 [기생집]하면 드는 생각이 아주 천박하고 저급한 여급들이 하룻밤의 풋 사랑을

팔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삶의 현장'이라는 느낌 정도로 다가 오고 있다.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자를 붙여 과거의 기생집이라는 곳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에게

과거의 '기생 모습'은 물론 변화된 모습을 갖춘 '신 기생'까지 혹시 보여 주고, 알려 줄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이게 웬 횡재냐'는 식으로 해당 작품을 상당한 설렘을 안고 선택해

읽게 되었는데, 읽어 본 결과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기생집]의 주인공 격인 기생들과

또한 기생 활동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삶의 이야기를 잔잔한 시내 물처럼 그린

한 편의 흑백 영화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작품의 주 무대는 군산의 [부용각]이라는 기생집에서 기생 생활에서 주인공적 삶을 살아

왔을 그 집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부엌 어멈인 타박네’, 작품의 주인공격인 오 마담’, 짧은 생을 살고 간 예린,

한 때는 유망한 국악인을 꿈꾸었을 나끝순’, 민 마담, 그런 여인네들에 기대어 사는 기둥

서방, 기생 집에서 갖은 굳은 일을 관장했을 집사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기생을 주제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작품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작가의 전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직 기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실상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너무나도 리얼리티한

기생들의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

들은 해당 업계에 몸을 담지 않고서는 쉽사리 알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리 잘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단연코 잘 나가던 한 때(?) 기생집은 아니지만 기생집 비슷한 곳을 우연한

기회에 다닌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영화에서 간혹 기생집에 대해 접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생집이 변화된 '요정집'이라고나 할까? 그런 곳을 다녀 본 사실

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전직에 대해 쉽게 의문을 품게 된 것이며, 작가의 전직이 그렇지

아니 하다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쏟았을 개인적인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 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 편의 장편 '흑백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격인 '오 마담'에 관한 사항과 그의 단짝이라 볼 수 있는 '타박네'의 기구한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밀려들어 왔다.

작품을 덮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가슴에 닿는 내용으로는 오 마담이 자조적으로

되뇌이는 말 중에서 그녀가 기둥서방에게 갖은 이유로 사기와 농락을 당하면서 내 뱉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가볍게 하는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을 심하게 질타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특히, 부용각 박 집사에 대한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얼마 전 영국의 대 학자

스티븐 호킹박사가 이야기 했다는 '우주보다 더 미스테리한 것이 바로 여자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박 집사''오 마담'간의 애틋한 감정은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진행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집사, 그는 오 마담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설정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해바라기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구도상 있을 수 있는 사랑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극적인 요소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국악인을 꿈꾸었던 '나끝순''민 마담'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문화 건달 박 사장과

화초머리를 올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기생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할 수 있으나 그러한 행위 역시 기생으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삶의 한

방편이었음을 확인하고는 측은한 생각이 앞섰다.

어찌 보면 여인이 나오고, 술과 춤이 나오고, 소리가 나오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화초 머리를 올리는 장면이 전개되어 자칫 통속적으로 또 인간의 본능적 애욕이 넘쳐흐를

수 있는 요소가 많았음에도 여류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심리 묘사가 담담히 펼쳐져

오히려 탄탄한 작품 구조를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정말 모진 여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는 아마도 이 작품을 쓰면서 눈물깨나 쏟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오 마담 야반 도주, 타박네가 낳은 아이를 빼앗기는 장면 등등은 작가도 작가 이전에

한 여인으로서 쉽게 문장을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 작가의 에필로그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의 모친을 모신 그 날도 작품을 집필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독하긴 독한 스타일인 것 같다 -

작품 곳곳에 같은 여성으로서 힘들었을 상황과 장면에서 작가가 눈물을 흘렸을 것으로

추측되나 담담히 긴 호흡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점은 작가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

지를 가늠케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작품을 읽고 난 나는 우연히 접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 이런 명제를 내려 본다.

[기생은 종()이다]

''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물리적 힘을 가할 때만이 소리가 난다.

아무런 외부적 자극이 없는 한 그냥 한낮 공간을 차지하는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신문 칼럼에서

"금이 가고 깨어진 종을 종매로 치면 깨어진 종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깨어진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라고 칼럼을 기고한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바로 이 대목에 착안하여 그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기생'을 단순히 기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깨어진 종'으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생을

솔직히 여염집 규수나 대가 댁 며느리와 같은 평범한 여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사는 여인들을 '일반 종'에 비유한다면, 기생 그들은 '깨어진 ,

금이 간 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라는 문구이다.

쇠에 일반적인 충격을 가했을 때에 나오는 맑고 아름다운 소리는 쇠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음질적 특성이 외부 충격을 통해 발현되는 것으로, 비록 깨어진 파편이라도 거기에 충격을

가하면 쇠가 지니고 있는 본래적 음질적 특성이 그대로 발현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면, 직업이 아무리 비천한 기생이라 할지라도 기생도

여자이며 '세파에 휘둘려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살고 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기생,

그들은 연약한 여인 그 자체였다'는 의미로 나는 신문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칼럼 속

소재에 기생을 대입해 이해하고 싶었다.

 

'기생'''이라면 부용각을 총괄하는 타박네는 무엇인가?

기생도 아닌 것이, 기생들과 손님들을 쥐락펴락하는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타박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나라 '종'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 한 가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종 밑 지면부에 '항아리'를 묻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주 '부석사'와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가 보면 범종 밑에 항아리가 묻혀 있다고

하는 데, 그 항아리는 제 몸을 통과하는 종소리를 맑고 아름답게 여과시키는 '음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리에 있어 '음관'이란 무엇인가 바로 소리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타박네는 바로 기생들의 삶을 정화시켜 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보고 싶다. 바로 이런 항아리같은 역할을 부용각에서 타박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오 마담이 종매에 맞아 떨림에 의한 자신의 소리가 나올 때, 예린이의 죽음으로 인해

부용각이 힘들어 할 때, 민 마담의 화초머리 행사를 할 때, 부용각을 오랜 세월 지키고

온 타박네는 종 아래 묻혀 있는 항아리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 타박네는 부용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소리와 행동에 대해 자칫 폄하와 곡해될

있는 사항에 대해 한 층 가치 있는 내용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작품이 기생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튀지 않도록 제어를 하게 하였으며,

각 소 주제별 내용이 질펀하게 흐를 수도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에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제어도 해 주고, 순화도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타박네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바라 보았으나 나름 이런 기능을

대입해 작품을 읽으며 분석해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음은 물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독자들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 작품이 일반인들에게 작은 감동(?)으로 다가

오는 이유는 아마도 작품을 읽는 재미와 함께 작품에서 적절히 인용되고 있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우리말의 향연이 한 몫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연구와 노력 그리고 조사에 들인 공에 머리

깊이숙여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나름 국어사전을 들추어 가며 작품에 언급된 단어의 뜻을 여기에 옮겨 보았다.

 

   작품에 언급된 순 우리말

   - 남우세스럽다 : 남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을 듯하다

   - 시뜻한 표정 : 1. 마음이 내키지 않아 시들하다.

                          2. 어떤 일에 물리거나 지루해져서 조금 싫증이 난 기색이 있다

   - 함치르르하다 : 깨끗하고 반지르르 윤이 나는 상태이다

   - 새물새물하다 : 1. 입술을 약간 샐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잇따라 웃다.

                            2. 한데 어울리지 아니하고 잇따라 능청스럽게

   - 우듬지 : 나무의 꼭대기 줄기 

   - 휘움하다 : 조금 휘어져 있다.

   - 배리착지근하다 : 냄새나 맛이 조금 배리다.

   - 가칫가칫하다 : 1. 살갗 따위에 조금씩 닿아 자꾸 걸리다.

                            2. 순조롭지 못하게 조금 자꾸 방해가 되다.

                            3. 살갗이나 털 따위가 야위거나 메말라 윤기가 없이 거칠다.

   - 맵싸하다 : 맵고 싸하다 - 애동대동하다 : 매우 앳되고 젊다

   - 더펄더펄하다 : 1. 더부룩한 물건 따위가 조금 길게 늘어져 바람에 자꾸 흔들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2. 자꾸 들떠서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다

  - 해반주그레하다 : 겉모양이 해말쑥하고 반듯하다

  - 살똥스럽다 : 말이나 행동이 독살스럽고 당돌하다

  - 애면글면 :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다

  - 언슨시럽다 : 지긋지긋하다의 경상도 방언

  - 수굿()하다 : 1. 고개를 조금 숙이다.

                          2. 고개를 조금 숙인 듯하다.

                          3. 흥분이 꽤 가라앉은 듯하다

  - 옹송그리다 : 1. 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옹그리다.

                        2.입술을 움츠리어 꽉 깨 물다.

   - 또록또록하다 : 매우 뚜렷하다 

   - 시난고난하다 : 병이 심하지는 않으면서 오래 앓다

   - 비들비들하다 : '비틀비틀'의 원형

   - 사륵사륵하다 : '사르륵사르륵(조금씩 움직이는 소리)'의 준말.

   - 맵차다 : 옹골차고 차다 - 씨억씨억하다 : 성질이 굳세고 활발하다

   - 꼭닥시리 : 단단이

   - 아리잠직하다 : 1. 키가 작고 모습이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2. [북한어]온화하고 솔직하다.

   - 우렁우렁하다 : 소리가 매우 크게 울리다, 울리는 소리가 매우 크다.

   - 화초머리 : 기생이나 창기가 첫 경험을 하고 얹는 머리.

   - 바지랑대 :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기

   - 야지랑 : 얄밉도록 능청맞고 천연스러운 태도.

   - 살캉살캉 : 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자꾸 가볍게 씹히는 소리가 나다.

   - 난만하다 : 1.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하다.

                      2. 광채가 강하고 선명하다

                      3. 주고받는 의견이 충분히 많다.

   - 새들새들하다 : 1. 조금 시들어 힘이 없다.

                            2. 마음이 들떠서 자꾸 경솔하게 까불다.

   - 는적는적하다 : 1. 물체가 힘없이 자꾸 축 처지거나 물러지다.

                            2. 물체가 매우 힘없이 축 처지거나 무른 느낌이 있다.

   - 꼽꼽쟁이 : 1. 성질이 잘고 서두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구두쇠'의 방언(충남).             

                      3. 몹시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구두쇠]의 전라도 방언.

   - 중쑬쑬하다 : 크지도 작지도 아니하고 품질ㆍ수준ㆍ정도가 어지간하여 괜찮다.

   - 푸닥지다 : (비꼬는 뜻으로) 꽤 많다

   - 물덤벙술덤벙하다 : 아무 일에나 대중없이 날뛰다

   - 잔풀호사 : 어린 풀의 호화스러운 치장이라는 뜻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나 허영에 들뜬 옷차림을 이르는 말

   - 빗치개 :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가르마를 타는 데 쓰는 도구.

   - 엄부럭 :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부리는 억지나 엄살 또는 심술.

   - 남상거리다 : 1. 좀 얄밉게 자꾸 넘어다보다.

                         2.남의 것을 탐내어 가지려고 자꾸 좀스럽게 기회를 엿보다.

   - 볕뉘 : 1.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2.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3.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 넌짓 웃음 : 넌지시 짓는 웃음 - 사금사금 가슴 시리다 :

   - 갈강갈강하다 : '갈그랑갈그랑하다(가래 따위가 목구멍에 걸려 숨 쉴 때마다

                             거친 소리가 조금 나다)'의 준말

   - 흥뚱함뚱 : 어떤 일에 정신을 온전히 쓰지 아니하고 꾀를 부리거나 마음이 떠 행동하는

                      모양.

   - 뽀도시 : '겨우'의 방언(경남, 전라).

   - 물때썰때 : 1. 밀물 때와 썰물 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2.사물의 형편이나 내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사부라기 :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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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명인과 딴따라를 가르는 한 끗 - 사료 속 옛 음악꾼들에게 배우는 삶의 통찰
서신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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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작품은 우리 선조들 중에서 역사적으로 혹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예술 분야에서 추앙받고

있는 분들의 입신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한 번쯤은 읽어 볼만한 내용이기는 하나,

초판 발행 이후 작자께서 많은 보완을 이룬 뒤 내 놓은 작품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 아쉬움이 짙게 배어져 나온 작품이었다.

차라리 작품의 내용을 상징적인 분류로 나누지 말고 소재별로 즉 그림, 소리, 글 등으로

나누어 그 중에서 대표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의 접근이 있었으면 알찬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작가께 거짓을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의 스토리

텔링적 요소를 가감하여 묘사를 하였다면 읽는 독자들이 전체적인 맥락차원에서 해당

인물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짜피 소개되고 있는 글이 설화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약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즉, 바람이 멈추고, 폭포 소리를 뚫고

소리가 퍼져 나갔다는 등의 이야기로 묘사가 되고 있어 초반부에서 독자를 끌어 당기는

묘미가 작품 내내 진전되다 보니 그다지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통해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명인들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나름

느꼈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어쨌든 명인이란 몰입과 열정, 연습 그리고 자신이 몸 담은 분야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어우러져 그들을 명인 반열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내가 받았던 몇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

사례1 우륵과 충주 탄금대

신라에 의해 가야가 망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진흥왕에게 투항한다. 진흥왕은 우륵을

충주의 탄금대(彈琴臺) 주변에 거처를 마련해 준다. , 금을 타는 누대라는 뜻의 탄금대가

그래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사례2 백아와 종자기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이해해 준 유일한 친구 종자기가 죽음을 맞게 되자 자신의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절현, 伯牙絶絃)

 

사례 3 술이부작의 관점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사대정신

공자는 자신의 저서를 술이부작 수준으로 스스로 폄하하자 이후 유학자들은 공자의 이런

기조를 유지한 채 성인의 말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거나 옛 것에 대해 가장 근사하게 모방

하는 것을 절대 가치로 생각했다.

이런 정신은 서예, 회화 및 음악 분야에서도 나타나 중국 명필의 서첩, 중국 화가의 화첩을

보고 흉내 내는 데 온힘을 기우렸던 것이다.

 

사례 4 형가와 고점리

형가라는 사람이 진시황을 살해하기 위해 자객으로 침입하지만 실패하자 그의 친구

고점리가 스스로 장님이 되어 진시황의 악공으로 들어가 진시황을 살해하려 하나 실패

하고 만다.

 

사례 5 음악인의 외길을 가기 위해

진나라 악사 '사광'은 귀를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사례 6. 수레 모는 기술

조나라 양왕은 수레 모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레 모는 특별 교육을 왕오기로부터

받는데, 경주를 할 때마다 매번 양왕이 지자 화를 내면서 자신에게 수레 모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왕오기가 정색을 하고는

저는 모든 기술을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왕께서 그것을 잘못 사용하셨습니다.

수레를 몰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를 일치시켜 안정되게 하고, 수레 모는

자의 마음이 말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입니다.

왕께서는 앞섰을 때나 뒤처져 있을 때나 마음이 모두 제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어떻게 말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뒤진 까닭입니다.”

진정한 경쟁은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 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작품으로부터 얻은 지식

 

- 서예 필체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5가지가 있는데,

   전국시대부터 진나라 때까지 전서와 예서만 사용되었다. 한나라 때부터 실용적인 용도로

   만 사용되던 해서, 행서, 초서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 올린 이가 왕희지다.

 

-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선이다.(박지원)

 

- 거안제미(擧案齊眉)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

  

- 가야의 가실왕은 우륵에게 소리를 어찌 한 가지로만 할 수 있겠냐면서 중국 악기

   연주하던 우륵을 격려해서 만든 것이 가야금이다.

 

- '개수란 거지의 우두머리를 뜻하며 우리말로는 꼭지단이라고도 한다.

 

- 한단학보(邯鄲學步)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움. 한단지보(邯鄲之步).

   () 나라의 젊은이[수릉여자壽陵餘子]가 한단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다가 자기 나라에 돌아올 때, 한단 걸음걸이도 되지 않고 연의 본디 걸음도 잊어버려

   기어서 돌아오더라는 고사성어

 

- 쟁선공후(爭先恐後) 앞서기를 다투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뜻

   , 앞자리만 다투며 싸우다가 좋지 못한 일을 당하고 마는 삶을 경계하는 말

  

- 벼슬아치들은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자신의 욕심 없음과 세상과 맞지 않음을 말할 때

   늘 귀거래사(歸去來辭) ,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다

 

- 술이부작(述而不作) 공자의 성품은 겸손하여 자신의 저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옛사람의 설을 저술했을 뿐 창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옛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은 노팽(은나라의 현인)과 비교할 수 있다.

   , 자신의 저술이나 창작을 두고 저자가 겸손의 뜻으로 하는 말이다.

 

- 공휴일궤(功虧一簣)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이야기로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가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뜻

 

- 대교약졸(大巧若拙)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언뜻 보기에는 서투른 것 같음. 즉 겸손과 깨달음은 서로 통한다. 자만하지 않는 한결

   같음. 남을 인정할 줄 아는 넉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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