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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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7

 

작품 제목과 같은 행동을 한 인물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영웅중의 영웅이라고 항시

생각하고 있는 분의 이름이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 무척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지만 나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어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고 살고 있는 요즘 세대 인간들이 읽었음

하는 작품이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새클턴이다.(그가 누구인지는 여러분들이 찾아보시길...)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주제로 다루었던

인간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쓰러질 수는 있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자체였기 때문이며, 오늘날 크게 칭송받고 패배자이면서 패배자의 범위가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부하들을 자신의 목숨같이 아껴서 생환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저자가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대한 패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작품은 최악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타이타닉호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 - 그는 아마 그 어떤

형태의 선박 사고가 나도 매번 그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다 - 와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

예로 들었고, 반대로 영광스런 패배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별칭인 사막의 여우라 불리었던

에르빈 롬멜과 새로운 사고를 부르짖으며 글라스노스트(개방, 투명성 서구 여론에 대한 신중한

접근)와 페레스트로이카(국가, , 총체적 개혁)를 천명하며 썩은 물처럼 정체되어 있던 소비에트

체제를 부숴버린 고르바초프를 들고 있다.

(이들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본 작품을 사서 읽을 것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작가의 주장에 전혀 동의를 하지 못하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쿠바의

영웅이요 사회주의 영웅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그를 위대한 패배자라 외치고 있는데, 나는 그를 이전의 체 게바라 평전통해서도

접하고 평하였지만 그를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간 인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작품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고 평가하면서 게바라는 이 세계에 비해

너무나 선한 모든 사람이 결국 악한 세상 때문에 죽고 마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였다며 영광스런

패배자로 선정하고 있는데,

나는 그가 정말 그런 숭고한 정신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했는지가 궁금하며 오히려 그를 보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IS’알카에다가 생각났으면 생각났지 과분하게도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정도의 인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의 행동을 읽다 보면 우리의 문학작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속에 등장하는 곽오주라는 인물

- 작품 속에서 그는 어린 아이를 자신들의 행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죽이고 있다 - 과 뭐가 다른지

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이런 관점과 시각에 대해 무식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다.

역사도, 자본주의에 맞서 처절히 싸운 용사도 모르는 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시각도 있지만 나의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는 단순히 현실 세상에 부적응 상태를 보이다 우연히

그런 길로 들어선 인물이고 거듭난 것이지 어떤 시대적 사명감에 의해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

나의 관점으로는 그는 현실에 부적응을 보여 일상의 돌파구를 찾아 분쟁 지역을 찾아 나선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거나 분쟁지역만 찾아다니며 자기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게릴라전에 참여한

인물(전투 용병)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어니스트 새클턴’(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찾아 보시라)같은 인물로

나는 미국의 엘 고어부통령을 들고 싶다.

그의 행동은 지금도 툭하면 우리 대통령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질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을 했기 때문이며 아직도 좀 세상을 안다고 외치는 인간들과 매스콤을 통해 민중적 스타일의 스타적 자질이 있다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는 일부 모자란 인간들이

툭하면 지랄치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그는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

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패배자로 또 매리 스튜어트스코틀랜드 여왕(헨리 7세 증손녀)헨리 16그리고

독일의 황제이자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빌헤름 프리드리라는 인물을 들고 있다.

이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는 작품을 사서 읽으며 느끼기 바라고 나의 경우는 그들의 이름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 정치판에 항상 문제를 몰고 다니는 문제적 인사들이 항시 떠오르고는 하는데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쯤 읽어 보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헨리 8세와 둘째부인 에블린 사이에 태어나 일세기를

풍미한 엘리자베스영국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왕위로 올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상세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도 그들이 그런 찬스를 잡을 수 있을지가

오늘도 궁금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독일 수상까지 될 뻔하다 실패한 독일의 라이너 바르첼이라는 분이 1962자신이

속한 당의 전망 보고서에서 주장했다는 문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어 여기에 옮겨 보면

앞으로는 히틀러와 전쟁 그리고 궁핍을 경험하지 않았고 복지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신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다. 종교적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권위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으며, 원자력 시대와 자동화 시스템이 새로운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일보다는 자유가 더 중요

한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문구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섬뜩한 예지력에 놀랄 뿐이다.

 

작품에는 여러 유형의 실패 인물들이 나오고 있다.

비록 후세들이 접하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가 승자들의 자랑거리로 일관된 천박하고도 승리

지상주의적 편향된 비망록이고, 일부 패배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위가 승리자의 비망록 못지

않게 작금의 시대에 고귀한 이야기와 교훈처럼 전해지고 있는 이유는 억울하지만, 분하지만

그리고 애통하지만 패배깨끗이 승복하고 인정할 줄 아는 그런 아름다운 행동과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고, 승자를 승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소아병적 인물들에게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세들은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대 놓고 아주 크게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후세에 전할 것이다.

- 세계사적으로 보면 대표적인 게 일본이고,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사적으로 보면 하여간 엄청

  많다. -

아마도 이렇게 말이다.

역사 속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인물의 대부분은 자신의 팔뚝이 엄청 굵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자 자신의 팔뚝을 여러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해 이리저리 휘두르다

 팔뚝에 지가 맞아 쫄딱 망했    

 

그 밖에 언급되고 있는

- 요한 스트라우스(아들에게 가려진 영광)

- 렌츠(괴테에게 발길질당한 천재 작가)

- 라살(마르크스에 눌린 패배자 - 노동 운동의 메시아)

- 트로츠키(스탈린에게 쫓겨난 패배자)

- 오스카 와일드(시대의 방랑자)

- 크누트 함순(경솔한 말로 세계적인 명성에 먹칠한 작가)

- 리제 마이트너(노벨상을 빼앗긴 물리학자)

- 앨런 튜링(2차 세계대전을 도운 수학자, 그와 관련된 사항은 영화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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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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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가슴 속 추억은 추억일 뿐

 

작가께서 살아오신 지난하고 어려웠던 시대를 소재로 작품은 일기장처럼 무덤덤하게 전개하고

있는데 작가와 같이 대 작가분들이 더 이상 이런 주제를 축으로 하는 작품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나온 이문구의 관촌수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혹은 늘 푸른 소나무(10)’,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같은 작품으로 부모님들의 어려웠던

시기의 이야기는 충분하다고 여겨져서이다.

- 나도 어느 정도 작품 속 배경이 되고 있는 생활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

또 다른 측면은 어렵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가 신세대 독자들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게 다가 설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이런 작품으로는 그런 세월을 살아오신 일부 기성세대들

입맛을 맞추고 그런 독자들에게 과거의 삶을 회상하게 해 줄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신규 독서

인구를 새롭게 창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어렵고 가난했던 주제를 갖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 본들 어느 영화의 한 대목으로 이해할 뿐이지 그게 얼마 전 우리들이 살아왔던

세상 이야기라는 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서 인구의 저변을 넓히려면 이런 류의 작품보다는 좀 더 참신한 소재가 다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 실제적 역사 이야기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어진다. 우리 부모들이 겪은 가난과

  어려움을 역사의 한 범주로 넣어 판단한다면 할 이야기는 없겠으나 단순한 가난과 어려움만을

  극화시키는 이야기로는 취업문제, 내집 문제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대에게 공감을 못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그랬고 당신이 그랬듯이 내 앞의 현실이 지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부모세대의 고난 역시 해결책이 아닌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 

 

초등학교 시절 서울의 중심부에 살았었지만 정말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 대신 수돗가에서

허기를 채우던 친구들이 있었으며, 한 학급 학생수가 거의 90명이다 보니 휴식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게 데모 군중 속을 뚫고 다니는 듯 했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채변 봉투와 쥐꼬리를 의무적

으로 제출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엔 다른 동네로 이사해서 동네 또래 친구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정작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나와 이웃집 친구 외에는 없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하나 밖에 없는

외길로 거기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학생, 좌로 방향을 틀면 연탄 공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언제나 나와 친구만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동네의 또래 친구들은 전부 좌향좌하여 공장으로

출근하는 그런 동네였고 삼일이 멀다하고 동네 사람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움이 벌어지던 그런

동네였다.

고등학교 시절은 대학만이 살 길이라는 일념 속에 다른 것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추억이나 기억이 별로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동네에 아이들이 무지 많았던 기억과 함께 서울 변두리다 보니 집집마다 시골에서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해 뭔가 이뤄보겠다고 힘차게 살아가던 어느 작품의 주인공과도 같은 봉순이 언니들도 상당히 많이

보이던 시대이기도 했었다.

학교에서는 선배와 선생님들로부터 툭하면 얻어맞은 기억 밖에는 없다.

- 당시 학교에서의 구타는 일상화 된 행사와도 같은 시기였으며 학생들에게 행해지던 구타가

  당연시되던 시대로 기억되는데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었고 ROTC를 거쳐 대기업에 입사해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자식들도 두었다. 그리고 어언 30년이 흘러 정년퇴직하고 한 권의 책도 썼으며 경쟁력

있는 유망 중소기업에서 제2의 길을 걸었으나 그것도 잠시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고 나가라고 해서 지금은 집에서 책과 글 쓰기 그리고 잠깐잠깐 운동하며 소일 거리를 찾고 있는 이 시대의

평범함을 가장한 베부른 실직 가장이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 보니 작품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조용히 입가에 미소만 지어질 뿐이다.

하지만 작품 행간에 숨어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절절한 애환은 작가가 아니고는 또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니고서는 절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은 이를 긍정의 힘으로 승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어느 작가분께서 황 선생님을 황구라라고 칭하시면 그 분의 창작에 대한 열의를 잘 표현해

주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이 동료 작가들로부터 그렇게 불리웠던 이유는 아마도 이 땅에 살면서 누구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북으로, 남으로 다니시며 정말로 많이 체험하고, 들으시면서 집필

하셨던 손님’, ‘개밥바라기별’, ‘여울물 소리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를 극복하는 해법을 제시하려 노력하시다 얻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추억과 그 추억 속에 옹심이처럼 박혀있는 눈물겨운 고난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그 모든 것을 어렵고도 힘든 추억으로만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그리 바람직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음은 물론 남은 인생을 그런 과거에 얽매어 산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서두에 작가와 같은 대 작가님은 본 작품의 주제와 같은 내용의 작품을 앞으로 저술하지

말아달라고 주장한 이유는 더 이상 이런 작품을 통해 부모세대가 사셨던 어렵고 힘든 시대를

잊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가 겪으셨을 고통으로 인해 유, 무형으로 제약받을 수 밖에

없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이를 떨쳐 일어나자는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 부모 세대가 겪었을 그런 어려움이 이 땅에서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사는

우리가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또 우리 모두의 희망과 꿈을 그리고 모두가 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자는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이런 작품이 식상하다

던가 의미가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시 말해 좀 더 적극적인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런 책이고 작품이라면 한 사고 안 읽으면 되는데 뭔 외침인지 모르겠다.....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했으니 그렇게 살면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해 보지만 선생의 작품에 자꾸 손이가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항시 이런 작품을 접하면 느끼는 좀 생뚱맞은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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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해답은 반드시 있다 - 어떻게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신병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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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본 작품은 마케팅과 심리학이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으로 내가 여러 경험을 통해 겪으며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여러 마케팅적, 심리학적 소비자의 행동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

준 작품으로 나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마케팅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사용하면서도 번번이 썩은 사과에 매번

깨지고 마는 우리의 국민기업 두 곳의 안타까움이 깊게 묻어난 그런 작품이었는데 그 두 곳의

마케팅 경영진들이 읽고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게 든 그런 작품이었다.

- 그러면 그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혹은 내가 얼마나 공부를 했는데등등.....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본 작품과는 어울리는 이야기인지 여부는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판단할 문제로서 내가 볼 때

썩은 사과’ - 조만간 좁쌀일파에도 무릎을 꿇게 생겼다 - 에 판판이 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시장에 나오는 제품에 참신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참신성이 왜 없냐?

그것은 바로 요즘 세상의 뜨거운 화두인 창의성이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게 실무에서

뛰어 본 나의 경험이다. 그러면 창의성은 왜 없느냐?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의 조직문화 풍토 자체가 아직은 조직 구성원들이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구축되지 않아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 조직의 시스템적 여건이

뒤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입으로만 창의, 창의를 외치는 기업 문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은 부러워하면서도 그런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조직 구조나

분위기는 물론 시스템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행태를 따끔하게 꼬집는 컬럼이 있어 여기에 발췌해 소개해 보면

 

1. 소프트뱅크의 창업자 손정의씨는 300년이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가이다.

   그 해답은 버리는 능력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요즘 화두인 창조와 맥이 닿아 있다.

   페이스 북은 사용자의 익명성을 버렸으며, 유니클로는 상표, 애플은 소수의 매니아만 선택

   하고 대중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업들이 매출을 높여 덩치를 키우려는 마음은 이해

   되나, 우려되는 것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더해가는 방식선호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없는 가능을 자꾸 더해가는 플러스 차별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다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있는 기능을 우리는 계속 버려서 마이너스 차별화꾀하는

   것이다. 마이너스 차별화는 선택과 집중과는 다른 철학이다. 기업이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동종 업계나 관련 기술을 조감하면서 전체의 판세를 읽고 요약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기업의 핵심가치라고 생각하여 누구나 의심치 않던 것을 철저히

   버릴 줄 아는 사원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의 최종 제품은 사원이어야 한다.

   기업은 버릴 줄 아는 사원을 만들고 이런 사원은 장수하는 기업을 만들기 때문이다.

   (20130409, 동아일보 윤태성 kaist교수)

 

2. P. F. 드러커는 기업이 시기를 정해 폐기 학습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혁신에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온 관행과 신념에 문제제기를 해야 비로소

   새로운 지식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버리지 못하면 얻을 수 없다

                     (20120614, 동아일보, 한인재 미래전략연구소)  

 

3. 1963년 국내의 100대 기업이, 1991년까지 지속된 것은 16개사에 불과하였으며 2010년에는

   10개사 미만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성공의 요인이

   시간이 흐르며 경쟁력을 갉아 먹은 낡은 관념으로 또 쌓아 올린 업적이 집착 및 자만심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20110427, 동아일보 오늘과 내일컬럼 중)

 

내가 위에 언급한 내용의 출처를 밝힌 이유는 무지랭이 어느 독자가 이야기했다고 하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확실히 근거를 밝힌 것이다.

우리의 조직 문화는 주장하는 내용의 당위성과 진실성을 논하기 이전에 누가 말했느냐에

방점을 두고 바라 보는 현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국민기업 은 이것저것 다 집어넣어 정체성이 불명확한 제품을 만들려는 아집을

버리고 진정으로 소비자들이 무슨 제품, 어떤 기능이 들어간 제품을 원하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연구해야 할 것이고, ‘강한 쥐, 독한 쥐만 말로만 외치다 프로야구 순위처럼 하위에서

맴돌지 말고 쓸데없이 남 뒤따라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그림을 다시 짰으면 한다

누구를 통해?

말도 안 되는 비용을 요구하는 쓸데없는 광고 대행사에 기대지 말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중무장하고 오늘도 국내에서 활동 중인 대형 커뮤니티 회원들을 통해서

썩은 사과무찌르는 전략의 아이디어를 수집했으면 한다.

- 오늘도 국민 기업의 외국 경쟁사들이 국내의 대형 커뮤니티와 연대를 하기 위해 목을 매고

  덤벼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해답은 현장에 있다 그것도 현장에서의 소통에 답이 있다진리를 다시

한 번 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위의 3가지 이야기를 대변하는 문구가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고 있다.

 

결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결심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 대로 산다

참고로 작품을 읽다 보면 여러 학설과 이론이 나오는데 여기에 너무 집착을 하지 않고 작품을

읽거나 느끼면 더욱 좋을 것이다  

 

1. 머리를 끄덕이면 생각까지 달라진다.

   - 머리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특정 상대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 수 있다.

2. 작은 긍정을 유도하여 큰 긍정을 유도해 내라(일관성의 욕구)

   - 상대로부터 yes를 원한다면 사전에 작은 yes를 먼저 이끌어 내라

 

3. 2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라

   - 시간과 세월이 아닌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인간을 노화시키고 있다.

 

4. 프랭크린 효과

- 어떤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면, 결과적으로 내가 호의를 베푼 사람을 좀 더 좋아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즉, 작은 도움을 주면 마음은 일관성 유지를 위해 그 대상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동을 한다.

  따라서 누군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면, 나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게 하라.

  우리는 아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보다, 내가 도와준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다’    (톨스토이)

5. 리추얼 효과를 극대화시켜라

- 어떤 제품이건 상관없이 제품 사용 전에 일정하게 반복된 의식 행동을 하게하고 잠깐 기다리게

  하면, 기대감과 실제 만족도, 사용시간, 구매 의향 등이 높아진다.

  ---> 휴대폰 출시 시기 시 매니아들의 줄서기 행동

 

6. 작은 선물 효과

- 큰 선물은 머리를 움직이지만 작은 선물은 감정을 움직인다.

  ---> 나의 거래처 모든 여사원들은 방문할 때마다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여직원들을 위해

        여성잡지를 선물한 사실을 십 수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7. 먼 미래는 낙관하고 가까운 현실은 비판하라

- 미래를 낙관하되 현실적인 문제점을 비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계획 오류를 줄이고 성과를

  높이는 핵심이다.

8. 작은 성공을 자주 반복하라(자기 효능감 이론)

- 자신의 능력에 대한 성공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실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작은 성공 경험이 자주 반복되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 신념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진다.

 

9. 인센티브의 역설

- 사전에 인센티브를 제시하면 그것이 하나의 조건이 되어 일 자체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데 이것은 업무 자체 보다는 외적 보상에 대한 주의를 더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

 

10. 손실 회피 성향

- 인간은 동일한 양을 획득할 때보다 동일한 양을 손해 볼 때 훨씬 더 큰 고통을 받는다.

  , 미리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토해내라고 하면 이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성과도 높아지게 되는 데 인센티브 방식의 역발상으로 도입하면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

 

11. ‘칭찬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 노력을 칭찬하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동기가 발생하게 되어 아무리

  어려운 과제라 할지라도 다시 도전하려는 성향이 증가하지만 능력을 칭찬받는 사람은 어려운

  과제보다는 쉬운 과제를 선택해 자신의 능력을 유지해 보이려 하기 때문에 이것이 반복되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능력이 떨어진다.

 

12. 성과 압력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 성과 압력이 높아지면 성과를 잘 내는 것의 중요성보다 성과를 못 내면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두려움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반 상식을 탐색하려는 경향이 증가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는 수준에서 업무를 마무리하려는 성향이 증가한다.

 

13. 구글의 홈페이지가 심플한 이유

- 소비자의 기분을 좋게 하려면 많은 구색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지만, 구매를 하게 하려면 구색을

  줄이는 게 좋다. 그래야 소비자들의 제품 비교가 쉬워지고 최종 선택이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4. 기타의 방법

- 제품을 어필하지 말고 제품이 주는 경험을 어필하라

- 짧은 시간에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려면 라임(운율)에 맞추어 의견을 표현하라

- 젊은 세대는 사회적 외로움을 느낄 때 더 충동구매를 하게 되고, 고연령층 세대는 감정적

  외로움을 느낄 대 더 충동구매를 한다.

- 대부분의 비윤리적 행위는 조직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할 때 발생된다.

  따라서 돈을 생각하면 자기 이익적이 되고 시간을 생각하면 자기 반성적이 된다.

- 직원에 대한 교육은 구성원의 능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원활한 소통은 구성원의 동기 부여에 영향을 준다.

-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키는 물건에 반복 노출되면 사람은 그대로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게 되고,

  학교와 같은 커뮤니티 환경에 놓이게 되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커뮤니티 중심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모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특성이 있다.

- 자신의 약점을 대화의 초반에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로부터 호감을 더 얻는 방법이다.

- 대화의 상대가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탁을 들어주는 유연성이 커지고

  상대방을 용인하는 너그러움까지 늘어난다. 또한 작은 속성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요구에 기거이 응하는 비율은 증가한다.

- 경고문구가 소비자를 자극하는데, 경고 문구를 보는 시점과 구매 시점 사이에 시간 차이를 두면

  구매를 촉진하는 효과가 나온다.

- 정보가 많은 사람이 실수를 하는 이유는 익숙한 패턴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 좋은 내용을 많이 전달하는 것보다 기억하기 쉽게 집중해서 전달하는 것이 브랜드 선호도에

  훨씬 더 중요하다. 특정한 브랜드에 대한 기억을 유도할 때는 좋은 내용을 많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억하기 쉬운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결핍, 고통, 불안, 변화, 행동 다섯 가지만 관찰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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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작품을 접하면 든 생각은 사례로 든 내용이 외국 서적을 그냥 번역하다 보니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은 드나 너무도 한국적 현실이 감안되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활용해 협상에

임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작품을 평해 보았을 때 저자의 이론적 주장은 일상적인 비즈니스적 협상에선 활용할

수는 있겠으나 복잡다단한 여러 상황이 깔려 있는 협상에서는 저자의 방식대로 상대와 협상

했을 때 절반의 성공은 고사하고 그 반의 반도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편적인 예로 한국적인 현실이란 이렇다.

은행에 장기대출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대출 이자를 잘 내던 대출인이 어느날 은행을

찾아가 그간 이자를 잘 냈으니 싼 이자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면

은행이 바로 하고 바꿔줄까요?

그것이 안 된다고 하여 작품에서처럼 싸게 해 준 사례는 없나요?

혹은 그 담당자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제3자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어찌될까요?

또 그런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창구에 앉은 은행원이 고분고분 응해 줄까요?

아마도 그렇게 물어보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마치 외계인 쳐다보듯이 할 것입니다.

 

얼마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은행에 찾아가 마이너스 통장의 연장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월급장이가 아닌 퇴직자라서 은행에 별도의 거래 실적이 있어야 연장 혹은 신규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여 나는 십 수 년간 이 은행에 월급을 맡겨 왔고 거래 실적도 우수한데 퇴직을

이제 했는데 퇴직후의 무슨 거래 실적이 있겠냐구 반문했더니 상냥하던 은행 직원의 표정이

굳어지며 어떤 개그프로에서 나오는 유행어로 나는 그건 모르겠고, 거래 실적이나 퇴직 후

소득 신고한 근거를 내면 내가 원하는 마이너스 통장의 연장을 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갖고 오기 전에는 절대 불가하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들하고 무슨 협상을 하겠는가.

- 이래서 내가 은행들이 외국에 매각되고 직원들이 구조조정 왕창 당한다고 살려달라고

  읍소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팜플릿을 돌리면 나는 절대 안 받는다 -

 

한국적 현실에서의 협상은 뒷골목 재래시장이나 인간적인 정이 넘쳐나는 그런 곳에서나 가능

하지 큰 거래에서는 절대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로 굽실대고 아부하고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왜 그런가? 이유는 딱 한가지다.

헌법 위에 뗏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법이 아무리 원칙에 입각해 판결을 내려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로 몰려와 지랄들을 치는데 무슨 원칙과 기준이 소용이 있겠으며 협상의 원칙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조건 떼를 쓰고 억지를 부르는 데 당할 재간이 없어 그 어떤 원칙도 이론도

필요 없는 게 한국적 협상 현실이다.

 

그럼에도 저자께서 이론적으로 제시하신 기본적인 협상의 컨셉은 잘 잡아 놓은 듯하며 작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례는 참고만 할 뿐 우리의 현실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완전 쪼다로 불릴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하였으면 한다.

난 작품을 통해 작품의 핵심을 한 줄로 축약해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협상의 상대를 항상 진실

되게 대하라는 것이었다.

 

나도 직장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지상전, 공중전, 수중전, 동굴전, 화생방전, 세균전, 게릴라전,

등 안 해 본 비즈니스 전투가 없을 정도로 별의별 전투(협상)를 해 보았는데

- 현직에 다닐 때 나의 업무가 또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런 전투에서 살아남아 정년을 한 직장에서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상대와의 협상에서

내가 보여 주었던 진실성이 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진실성과 버금가게 정말 중요한 것은 협상의 상대에 따라 전개

되어야 하는 전략과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과 협상의 장소에서 상대가 전하는

말투와 표정을 읽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 개인 혹은 공인과의 협상 그리고 동료와의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각종

시민단체 혹은 이익단체는 물론 커뮤니티 운영자와 파워 블로거 등과의 협상에서 각각 어떠한

전략을 수립해 협상에 임하는 가에 따라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와 만나던 간에 잘난척 조금 보태서 내게 약간의 돈 뇌물성 돈이 아닌 내가 상대로

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 - 만 쥐어주면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만 빼고 뭐든 다 할 자신이 있다고 항시 이야기하는데 이런 영재적 협상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저자께서 주장하신 12가지 원칙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써라

    4. 모든 상황은 제작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 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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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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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저자께서 자신의 작품을 읽고 쓴 나의 서평을 읽으시면 불같이 화를 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문학을 위한다면 할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에 나의 의견을 싣는다.

아무튼 작품을 덮으며 든 생각은 뭐랄까 꼭 집어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2% 부족한 작품이었다

 

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라면 '이래서 그렇습니다'라고 할 이야기는 없으나 분명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내용이나 줄거리가 빈약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크게 든 그런

작품이었다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맴돈 것은 생뚱맞게도 내 초등학교 시절

'도자기'얽힌 에피소드였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는 부모님이 애지 중지하던 '유리 꽃병 도자기'가 있었다.

몇 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학급 미화 당번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얼마 있으면 있을

'학급 미화 점검'에 대비해 학급 간부들과 함께 학급을 꾸며 놓을 것을 지시 받았는데, 과거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학급 미화는 학급 학생들이 참여해 자신의 집에 있는 물품을

들고 오거나 선생님의 호주머니 혹은 간부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해 꾸미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준비 형태였는데,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현금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 중 교실

미화에 쓸만한 물건을 들고 가기로 결심을 하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애지 중지

하시던 '유리 꽃병 도자기'였던 것이다.

 

우리 집 '도자기 유리 꽃병'엔 꽃이 항상 꽂혀 있었다.

거칠디 거친 아들만 넷을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정서를 순화시키면서 화사하게

웃으시거나 콧노래를 부르시던 순간이 바로 그 꽃병 앞에서 꽃을 장식하실 때였기 때문에 나는

그 꽃병이 꽃병 이상의 마력을 우리 모친에게 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또 꽃병

앞에 서신 모친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항상 느꼈기

때문에 그 꽃병이 우리 집에서 또 모친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꽃병을 학급 미화 소품으로 가져 가기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그냥 들고 나올 수가 없어서 집 식구들이 전부 외출한 틈을 이용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꽃병을 들고 학교로 그 꽃병 도자기를 들고 가서 당당하게 담임 선생님 교탁을 장식해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도자기 꽃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신 모친께서 강력한 용의자인 나를 취조하자 나는

미화 점검이 끝나면 바로 가져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모님의 성화를 벗어 날 수 있었다.

 

환경 미화점검이 끝난 어느 일요일 오후 학교에 몰래 들어가 내가 갖다 놓은 꽃 병을 훔쳐오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받았던 칭찬이 그 꽃병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생님께 알리고 그냥 가져 오면 그 칭찬이 무효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방법을

택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교실에서 나는 도자기 꽃병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토요일 학교가 끝날 때 선생님 자리 위에 있던 꽃병을 확인하고 집으로 왔는데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꽃 병이 예뻐 보여서 아마 누군가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도자기를 찾아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해 버렸다.

"꽃병을 들고 나오다 학교 담장에서 떨어트려서 깨져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내 답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실망의 빛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또 그

꽃병이 나의 모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고 있었던 어린 나는 순간 온 몸이 굳었고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장난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었을 경우는 상당히 화를 내시던 모친께서는 꽃병을 다시는 찾아

올 수 없다는 소리에도 담담히 웃으시기만 하셨고 더 이상 내게 어떤 화도 내지 않으셨으나 다만

그 날 이후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잔잔하게 퍼지던 그 웃음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꽃병을 다시 집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져 버렸으며 꽃병에 대한 관심은 나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학급의 친구 모두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을 다 읽고 덮은지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나 기억 속에서 반추될 수 있을 만한 임팩트로 다가

온 소 작품은 미안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

마저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작품을 뒤적이다 해당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일부 문장인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된다. 내 고통이

 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당장 나를 압박하며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27)

 

라는 문구만을 여기에 올리게 되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이 작품을 읽었을 것이라는 증거로

자리 매김할 뿐이다.

 

'도자기'란 무엇인가 거칠게 다루면 쉽게 상처 받기 쉬운 물건 아니겠는가.

비록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세상을 살면서

쉽게 상처 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 인간들 모두는 결국 형태만 달리하고

있는 또 다른 [도자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온갖 개별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결국 작품집 [도자기 박물관]은 아주 아주 서민적인 어느 이름 모를 소시민의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였고, 상처받기 쉬운 이름 모를 인간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 선상에서 작품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도 좀 더 임팩트 있는 소재, 이야기 전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느낌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오히려 '현길언'님의 '나의 집을 떠나며'가 더 작품 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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