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 2017 신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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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코로나 바이러스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들어가지도 한 채 울적한 마음에 과거에 읽었던

여러권을 다시 읽어보며 마음을 다 잡고 있다.

지난 2010년 해당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다시 접하다 보니 한마디로 말해 그 소감이 마치

과거에는 뒷동산에 올라 세상을 보는 듯했으나 지금은 약간은 높이가 있는 산에 올라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는 글로 작품을 읽은 소회를 대신하고자 한다.

과거에 읽을 때는 종교적 마음 가짐도 그다지 틀이 잡혀 있지를 않아 뭐가 뭔지, 의미도, 느낌도

없이 오로지 읽는데만 몰입했었지 않은가 생각된다.

아래의 글은 당시 내가 썼던 독후감으로서 그대로 옮기며 부분적인 수정을 가해 보았다.

해당 작품을 그냥 회심한 어느 인문학자의 종교관에 대한 이야기로 치부하지 말고 딸을 잃은

어느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의 고백론 정도로 이해했으면 한다.

작품을 읽으며 나의 기독교 입문 계기를 뒤돌아보게 만든 작품이다.

내가 기독교에 귀의 너무 거창하겠지만 그래도 귀의는 귀의다 - 입문하게 된 동기를 굳이

들라면 아마도 나의 '아내'와 시인이신 '윤동주 선생'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이유인 '아내'와 관련되어서는 거의 모태 신앙 수준의 종교 생활을 해 오던 나의 아내와

결혼하면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결혼 초 대개 종교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지닌 남녀가 만나 화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입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우리 부부도 그런 과정을 역시 겪었다.

 

WIFE의 소망은 나와 손잡고 교회에 다니는 게 최고의 소망이었으나 나는 절을 다니시는

어머님과 내가 평소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반 기독교적인 정서로 인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었다

한 여인과 같이 산다는 게 뭔지, 아내라는 여인이 뭔지, 간곡한 아내의 부탁으로 또 아내의

()를 살려주기 위해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고자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출석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윤동주 시인때문이라고 이유를 든 것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나름 심오한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세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길고도 긴 이야기로 개인적인 질문을 해 오면 답을 하고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교회나 개신교 지도자 분들이 나의 주장을 들으시면 분노하실 수 있겠으나 나는 종교인

- 개신교 - 으로서 중요한 것은 교회에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상의

소유자다

그것 보다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평소 삶 속에

예수적 삶의 요소를 녹여서 실천하고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며

믿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뭐 저래’, ‘목사가 뭐 저래’, ‘전도사가 어째 저래교회에

다니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또 사랑을 외치면서도 교회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듣고, 보며 살고 있는가

따라서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적 삶을 평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며 예수적 삶을 추구하다

보면 우선은 주변과의 소통도 원활해지면서 나아가서는 저절로 절대자와의 소통의 문도

열린다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다

교회에 다니며 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보아 왔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전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빨리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기도)먼저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데 이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의 절대자인 하나님이 무슨 큰 채무를 진 사람처럼 이거 해 달라, 저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등 끊임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런 기도의 행태는 진정한 교인이라면 시급히 고쳐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교수님은 자신의 딸을 낫게만 해 주면’, ‘손자의 병이 낫게만 해 준다면나머지 여생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인질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가를 바라는 식의

기원은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보고 있지만 나 역시고 인간인지라 간혹 그런 기도의

유혹에 빠져 종종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는 한다. 늘 반성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 어떤 글에서도 언급했던 사건이지만,

사원시절 회사에서 무주택 사원들에게 분양해 주는 사원 아파트만을 바라보고 임신으로 만삭이

된 아내와 희망에 찬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입주자 명단 발표 며칠 전 회사 규정이 갑자기

바뀌어 당연 입주자로 생각하고 있던 내가 등외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 입주자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속상함과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대낮부터 술을 먹고 드러누워 사글세 방 귀퉁이에서 신세

한탄하다 잠이 들었는데 어스름한 저녁에 인근 교회의 청년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예수 탄생을

찬미하는 찬송가를 부르고 다녔는데, 우리 집 차례가 되어 이들이 찬송가를 조용히 불렀다.

기쁨과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이다.  

그 찬송가를 듣자마자 잠이 확 달아나 문을 활짝 열고 청년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 집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다니며 기도를 했건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냐고,

  시끄러우니 다른 데 가서 찬송가를 부르라

 

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쫒아버린 적이 있었다참 골때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교회 청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지금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그런 행동이었다.

그 때 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위와 같은 사건을 비롯해 여러 소소한 사건이 내게 겹치고 또 겹쳐서 일어나 상당히 힘든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안 준 것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것을 한 번 세어 보세요

 아마 주님께서 안 주신 것보다 여러분께 주신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나는 그 말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더 이상 주님께 무엇을 구원하는 보챔을 하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해 예전보다는 덜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 나는 자신 있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하나님이 주신

  게 많은지, 안 주신 게 많은지를 세어 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

단연코 이야기하는 데 주신 게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먼저 간구하는 내용의 기도는 가급적 자제를 하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왜 복을 받고 싶지 않겠으며 왜 금전적, 육체적인 쾌적함을 싫어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절대자의 가르침 속에서 평소 생활을 잘하면 그게 바로 ''이고  '행복'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을 주실 분은 '아직 너의 차례가 아니다' 혹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데, 복을 달라고 나를 비롯한 대개의 인간들은 열심히 간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 기도 시간에 다른 내용을 기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교회에 다니며 아직까지도 신앙심이 신실하지를 못해 나는 신실한 신자의 증표처럼 여겨지는

'방언'이나 '영적 체험'도 뚜렷이 경험해 보지를 못해 신앙심의 깊이를 갖고 이야기할 소재가 별로

없다. 기도 시간이나 구역 모임이라는 데 나가서 다른 신도들이 기도를 하는 것을 보거나 들어

보면 거의 신이 강림한 수준으로 기도들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기도 시간이 길어야 대략 5분을

넘기지 못하는 나의 기도빨은 언제나 초라해 진다.

그러다 보니 구역 모임에 나가는 것 자체가 항시 곤욕이요 난처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의 기도빨이 발휘 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누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믿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지 않겠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증명할 수 없기에 나 혼자 생각만 한다.

아마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였을 것이다.

 

사고가 난 후 긴 시간 동안 생존자 소식이 없어 전 국민이 애를 태우던 어느 날 밤으로 기억

되는데, 나는 조용히 작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신실한 신앙심이 그리 크지 않은 나였기에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를 않는데 갑자기

'삼풍 백화점' 희생자와 매몰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폭포수처럼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도를 불같이 한 적이 있었다

- 나도 당시에 왜 그랬는지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 우리 가족이나 친척 중에 삼풍 백화점

사건과 관계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나의 그런 불같은 기도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생존자가 처음으로 한 명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 말고도 여러 건의 기도빨 사례가 있는데, 누가 증거를 대라고 하면 증거할 수

없으니 답답하지만 뭐 그리 억울하지도 않다. 이런 저런 체험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분명히

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저런 이유와 또 사례를 통한 신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교회의 둘도 없는 신자

- 그러나 열성 신도는 아니다. 교회나 일부 신도가 잘못하는 모습이나 판단을 할 경우 핏대를

세우며 지적을 하기 때문이다 -가 되었으며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주일과 십일조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우선은 집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이렇게 되었다.

유태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울리지 마라. 하나님께서 아내의 눈물방울 숫자를 세고 계신다"

 

나는 세상에서 이 말이 제일 무섭다. 그래서 더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저자께서 언급하신 말씀 중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살펴 보면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속에 얽매인 끈에서 벗어나 영혼을 해방

시키려는 욕망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차피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다니고 싶다.]

 

비유가 꼭 적절하다고 보여지지는 않으나 성직자의 비리나 부패를 무신론자들이 공격할 때마다

내가 답을 잘 찾지 못함에 단서를 주신 문구는 

 

[부패한 교회, 성직자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사람이

 죽었으니 병이 나도 병원 가지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나도 열심히 다니지만 오늘날 교회는 정말 많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나부터도 그런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목적에 맞게 쓰려고 하는 불경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한 명이 본인이다.]

 

정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읽으며 나는 저자께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최근 개신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고,

'헤르만 헤세'라는 석학도 교회의 '이기주의적 성향'에 대한 자기반성을 요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첨탑이 높아질수록 인간들의 죄상은 더욱 더 흉폭해지고 교회의 크기가 대형화되면

될수록 몰지각한 인간들은 더 늘어나고 있는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시대의 지도자로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종교와 종교인으로서의 방향에 대한 말씀을 끊임없이

던져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개신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적하고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환경적으로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고 또 쓴소리하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개신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착안하시어 살아 있는 종교, 하나님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개신교가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기바라며 작품에서 언급하셨던 내용 중

 

"부패한 교회, 성직자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가지 말라는 말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교회를

 부정하며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까지 모두 안고 갈 수 있도록 기독인이라면 모두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수님의 고견을 말씀해 주실 것을 진정으로 건의를 드려

 봅니다.

 

교수님의 작품을 통해 수 년 째 교회를 다니고는 있으나 항시 초심자와도 같은 어수룩한 마음

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와같은 미약한 영성의 소유자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 내가 꽤 오래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썼다는 느낌이 확 든다. 안 그렇습니까?

 

지성인으로서의 말의 향연

- ‘기도는 고공비행을 위한 비상(飛翔)입니다.(P 27)

 

- 죽음보다 강한 것이 창조의 욕망이다.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창조력이다.(P 33)

 

-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뜻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메멘토 모리'라는 부르짖음은 '죽음을 생각하라'로 이는 무신론자들이 외칠

  때 하는 말이다.(P 35)

 

- 죽음은 삶의 극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메멘토 모리라는 것을 알았다.(P 37)

 

- 절망의 언어가 적자라면, 희망의 언어는 흑자.(P 50)

 

- 나는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세속에 얽매인 끈에서 벗어나 영혼을 해방

  시키려는 욕망인 것만은 분명하다.(P 57)

 

- 상상력이란 사물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해부하고 쪼개는 행위이다. 존재의 그 딱딱한 껍질

  안에 잠재해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끄집어 내는 것.(P 61)

 

- 어차피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 다니자.(P 62)

 

- '사랑'은 말로, 몸짓으로, 나타나지만 ''은 조용히 지열처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맨 바닥에서

  타오릅니다.(P 73)

 

- 비만은 건강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P 75)

 

- 주기도문의 끝에는 원래 아멘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 기도가 거짓이 아닌 진실

  그대로라는 것을 다짐하고 확신하는 말로 후에 신도들이 그렇게 붙인 것(P 83)

 

- 낙타가 인간처럼 눈물을 흘립니까? 네 흘립니다. 프랑스에는 낙타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아주 이기주의자를 가리키는 욕이라고 합니다.(P 91)

 

-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 리더가 누군가를 이끌어 가려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영혼을 일깨워서 눈물이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 무지개가 생깁니(P 94)

 

- 문화(文化)라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준말로서 지도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글()의 힘으로 상대방을 다스리는 방법이 곧 문화란 말의

  원 뜻이었습니다.(P 96)

 

- 예술가가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물귀신처럼 남을 자기 대신 어둠의 심연 속으로 끌어

  들이는 힘은 있지만 그 곳에서 나와 구제의 높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없다.(P 99)

 

- 진정한 리더십은 앞에서도 아니고 뒤에서도 아니다. 그 한복판에서 양을 이끌어가는 양치기가

  진정한 리더이다.(P103)

  

-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라도 우연은 믿을 것이다.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많은

  의미와 행동들 그 우연이 필연이 될 때 하나님과 만난다.(P133)

 

-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쓰는 사람이다. 생각이 바뀌면 글도 바뀌고 글이 바뀌면 내 생각의

  세계도 업그레이드된다.(P136)

 

- 삶이란 여러 개의 재료가 혼합된 만두 같은 것이어서 통째로 씹어야 맛을 안다.(P142)

 

- 세례 자체가 영적 세계에서의 승리의 삶을 약속하지는 않는다.(P150)

 

- 기적은 목적이 아니다. 이 지상의 진짜 기적은 단 하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다.(P151)

 

-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한다.(P151,2)

 

-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 자기파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들다.(P153)

 

-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 넣어지는 것이다.(P153)

 

- 가족의 사랑과 공경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값어치 있는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하는 마지막 고개의 시험을 과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가족주의적 시각에서 본 

  예수님의 행적들이다.(P173)

 

- 혈육의 낡은 가정관을 사랑과 믿음,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장하고 승화한 것이 예수님의

  가정관이었고 기독교의 가족관이다.(P176)

 

- 땅에서 사는 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율법을 통해서 비로소 하늘의 아버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P181)

 

- 빛은 하나인데도 분광작용에 의해서 제가끔 달리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도 문화에 따라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P188)

  

- 회교문화권에서는 돼지고기만이 아니라 개도 금기의 대상이라고 한다.

  이는 마호메트가 동굴에 숨어 있을 때 개가 짖어 잡힌 적이 있어 악마의 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음치를 놀릴 때 "개처럼 노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P189)

 

-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과 같은 핏줄로 북쪽의 왕국에서 살고 있었지만 아시리라

  인의 공격으로 기원전 721년 포로가 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그곳

  으로 이주해온 아시리아 이민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 불렀다.(P192)

 

-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말보다, 이적을 보이는 것보다도 이 땅에서 최종적으로 보여준

  강력한 소통의 의지요 그 방식이었다.(P198)

 

- 모순과 대립을 결합하여 융합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이다.(P200)

 

- 죄에 대한 징벌과 사랑에 의한 구원이 모순하는 행위가 하나가 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이다.(P205)

 

- 오늘날의 지도자는 십지가와 같이 모순을 융합할 수 있는 톨레랑스(관용)’을 가져야 한다.

  토끼의 피를 혈관에 주사하는 것과 먹는 것의 차이점을 아는가. 즉 죽고,사느냐의 차이점이

  나타난다.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고 나의 피로 변한다.

  죄를 용서하고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관용에서 나오고 그 관용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P206)

 

- 모든 새들이 사람을 피해 먼 곳에 둥지를 틀비만 제비는 인간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만드는데

  그 이유는? 잡아먹힐 각오를 하고 제일 가까운 위치에 집을 짓는 제비를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겠는가? 하늘나라의 하나님 집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집을 지어 놓으며 해로운 것들이

  범할 수 없다.(P213)

 

-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P212)

 

- 부패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죽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 가지 말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P216)

 

-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질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P223)

 

- 믿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P225)

 

- 아버지 없는 사회의 비극은 남성의 소외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아이를 포함한

  인류 모두의 위기를 의미한다.(P229)

  아버지가 아버지 구실을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것(P230)

 

- 인간은 구하려고만 하는데 그 분은 계속 버리셨다.(P232)

 

- 맹목의 믿은 보다는 죄인의 회개가 더 중요하다.(P237)

 

- 인간이 풀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침묵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풀어야 한다.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P240)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하나님이 맞춰지지 않으면 하나님

  믿지 않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불평을 한다.(P251)

 

- 진정한 회개는 슬퍼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결심으로 하나님에게로 것.(P256)

 

-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약속의 말씀, 그 비전들을 가지고 내가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말씀 안에서 살 때 다른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

     (P281) 

-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P297, 로맹 롤랑)

 

- 성서의 말씀을 조각내면 하나도 믿을 게 없지만 전체로 읽고 느끼면 초월적인 영성이 다가온다.

  (P298)   

- 물이든 음식이든 저 밖에 있지만 그걸 먹고 마시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게 임파테이션이다.. 그건 나를 이해하라, 내 메시지를 이해하라 라는 뜻으로 무슨 메시지나

  언어, 음악, 그림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그 신격이 나한테로 들어오고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뜻이다.(P299)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5차 방정식이다. 그건 영성으로 해야

  한다. 바로 성경이다. 생명의 떡인 성경이다.(P303)

 

- 자신이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결코 열어주지 않는다.(P305)

 

 

[틀린 부분 찾기]

 

1) 91쪽 아래서 4번째 줄 이주 이기주의자” ---> “아주 이기주의자

2) 26613번째 줄 " ......집회를 시작하는 한 번 와 보십시오"

                  -----> "집회를 시작하는 데 한 번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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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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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아래와 같은 글 귀가 책을 덮은 지금 이 순간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또 지식과 인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보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작품은 생명을 가진 존재 중 인간만이 가진 능력인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이 태어나

어느 시기부터,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매개물을 접해야 효율적인 책 읽기가 의미있고

효율적인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한 작품으로 모두가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내용도 있었고, 저자와

저자의 지인들(?)을 통해 얻어진 연구 성과를 근거로 우리가 잘 알지 못 했거나 새로운 학설을

기반으로 여러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품을 읽는 내내 이런 류의 작품은 기성세대는 물론 결혼해

첫 아이를 마주하게 될 초보 부모들이 읽을 때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작품을 마주할 때 초반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 뇌 과학적, 이론적 내용을 갖고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칫 무료하거나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페이지를 차츰 넘기며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깨달음은 앞 쪽에서 가졌던 그런 우려를 말끔이 제거하기에 충분하였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고 그런 차원을 넘어 좋은 작품이라는 넘어 추천해 주고 싶다는 확신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해 어떤 학문적 가치나 내용적으로 높은 평판을 받기에는 상당히 역부족이라는 생각

을 갖게하는 작품이었지만 그런대로 해당 분야에서만큼은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코로나로 힘든 이런 시기에 대다수의 많은 분들이 집에서 질낮은 유료 TV에 정신 팔려 희희낙락

대지 마시고 이런 작품을 많이 읽어 지혜로운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우리는 한편

다른 측면으로는 어려운 중소 출판업계를 도와주는 데 한 축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에서

이런 글을 씁니다.

끝으로 나는 해당 출판사 및 번역자와 아무 상관이 없음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 좋은 독자가 되는 지름길은 없다. 하지만 좋은 독자가 되도록 이끌어주고 유지해주는 삶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회에는 세 가지 삶이 있다. 하나는 지식과 생산의 ’, 다른

  하나는 그리스인 특유의 이해 속에서 나오는 즐기는 삶’, 마지막은 관조의 삶이다.(P 36,7)

- 뇌에 새로운 회로가 필요한 이유는 읽기가 자연적인 젓도, 타고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P 42)

- 뇌는 새로운 뉴런망에 인지적으로나 지각적으로 연결된 기술을 얻기 위해 기존 뉴런망을

  재활용하고 심지어 본래 목적을 재조정하기도 한다.(P 44)

- 능력의 발달을 전담하는 유전자는 없다.

  모든 것은 문화적 발명이며 여기에 뇌 피질의 변화가 뒤따랐을 뿐이다.(P 44)

- 읽기 회로의 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해당 언어의 요건과 학습환경에 따라 읽기 회로도 상당히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P 45)

- 읽기의 고유한 본질이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에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저자의 지혜가 떠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느낀다.

  (P 69, 마르셀 프루스트)

- 뇌 회로의 형성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도 않는다(P 72)

- 읽기의 유형에 따라 다중의 복잡한 과정들이 읽는 뇌 회로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

  된다.(P 75)

- 책을 열면 어떤 목소리가 말을 한다. 얼마간 낮선 혹은 반가운 세계가 나타나, 삶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에 관해 독자가 품고 있던 가정을 풍요롭게 해 준다.(P 77)

 

* 영어의 문장의 뜻인 sentence는 생각의 방법을 의미하는 라틴어 sententia에서

유래하였다(P 76)

 

-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혜택이다.

  (P 79)

- 우리는 읽기를 통해 의식이 바뀌는 차원을 거치면서 좌절과 절망이 무엇인지 혹은 무언의

  느낌에 도취되고 사로잡히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P 82)

- ‘마키아벨리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하고싶다는 생각에 시대별로

  저자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갖춰 입곤 했다.(P 83)

- 책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은연 중에 품게 되는 공포와 선입견의 해독제로 작용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도록 돕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P 85)

- ‘공감은 타인을 동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훨씬 더 중요하게는 타인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관계한다.(P 89)

- ‘마음 이론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지각, 분석,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핵심적인 능력을 가리킨다.(P 89)

- 읽는 뇌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마음에 대한 공감 어린 이해를 통해 우리의 오만과 편견은

  해소될 수 있다.(P 93)

- 우리 내부의 배경 지식은 깊이 읽기를 안정화하는데 필수다.(P 96)

  또한 지식이 진화하려면 계속 배경 지식이 추가되어야 한다.(P 97)

- 새로운 정보를 파악한 후 추론과 비판적 분석을 곁들여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지식

  기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P 96)

- 주의 깊이 읽어야 무엇이 진실인지를 분별해내 지식에 더할 수 있다.(P 96)

- 개념 없이는 생각도 있을 수 없고, 유추 없이는 개념도 있을 수 없다. 유추는 생각의 연료이자

  불이다.(P 99,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에마뉘엘 상데)

- 유비적(類比的) 사고는 우리가 보는 것과 아는 것(배경 지식)사이에 멋진 다리를 놓아 주고,

  새로운 개념과 가설을 구성하게 한다. 이런 가설은 연역과 귀납같은 추론 능력을 응용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가 하면, 우리가 관찰하고 추론한 것에 대한 우리 생각을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P 99)

- 과학적 사고의 방법들 중에 어떤 것이 가동되는지를 대체로 읽기의 숙달정도와 읽는 내용에

  달렸다.(P100)

- 읽기, 적어도 모든 깊이 읽기에는 유비적 사고와 추론이 필요하다.(P100)

- 우리가 아는 것이 적을수록 유추를 끌어낼 가능성이나 추론과 분석 능력을 키울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우리의 일반적인 지식을 확장하고 적응할 가능성도 낮아진다.(P101)

- 비판적 사유를 세심하게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가 텍스트에서든 스크린에서든

  조작적이고 피상적인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는 최선의 방법(P104)

- 가장 깊은 형식의 비판적 분석이란 과거에 열심히 추구했던 사고와 느낌을 최선으로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P107)

-  ‘통찰이란 거대한 미지의 지식 저장고인 뇌를 흘깃 바라보는 것이다.

  피질이 자신의 비밀을 나눠주는 것이다.(P107, 조나레너)

- 깊이 읽기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인간 능력에 시간을 할애하려면 주의의 질을

  높여야 한다.(P116)

- 고독 속의 소통이 일어나려면 독자의 고요한 눈은 저자와의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정적을 유지해야 한다.(P122)

- 우리의 읽기 회로는 다양한 과정의 합산물로서, 주로 끊임없이 가해지는(혹은 부재하는)

  환경적 요구에 의해 형성된다.(P130) 

- 문자를 다른 사람들은 기억의 도구라 반겼지만

  소크라테스는 망각을 위한 처방이라고 주장하였다.(P131)

- 언어의 미래는 작가들이 어렵게 얻은 생각으로 우리를 이끄는 단어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과 함께, 독자들도 그에 맞춰 최선의 사고를 읽으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과 연결돼 있다.(P136)

- 다양성은 우리 종()의 발전은 물론, 우리가 사는 상호 연결된 지구상의 삶의 질, 나아가

  우리의 생존까지 증진합니다.(P137)

- ‘무료함이란 경험의 알을 부화하는 끔의 새.(P172, 발터 벤야민)

- 동일한 이야기를 인쇄물로 읽느냐, 스크린으로 읽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독해력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디지털 읽기를 선호하지만 자신이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인쇄물이 더 나았다.(P180)

- ‘비유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대단히 개념적인 연결이다.(P186)

- 영화 아폴로 13’이나 마션에서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자신의 지식

  있었기 때문이다.(P187)

- 청소년들이 외부의 지식원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지적 발달이 방해를 받는다.(P188)

-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건은 공동관심이다.(P199)

-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를 다중적인 표상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 표상들이 개념과 언어 발달의 소재가 된다.(P201)

- 두 살 이전에 아이가 경험하는 인간적인 상호접촉, 그리고 책과 인쇄물과의 물리적인 접촉은

  구어와 문어, 내면화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최선의 진입로이자 미래의 읽기 회로를 구축할

  벽돌이다.(P207)

-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살아가는 동안 비숫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전략을 세우도록 도와준다.(P209)

- 전문가인 저자는 낮에는 아이 스스로 주도하는 놀이와 인간적인 접촉에 시간을 내어주고

  밤에는 주로 이야기를 읽어주거나 종이책을 보게 하라고 권한다.(P217)

- 아이에게 책이나 이야기를 전부 읽어 줄 필요가 없고, 아이마다 각자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과 속도로만 읽어주는 것이 좋으며, 유아에게는 몇 단어만 들어가 있는 그림책도 효과가

  좋다.(P224)

- 4학년 시기는 미래의 학습력을 좌우한다.(P231)

- 미국의 모든 주에 있는 교정국들이 3~4학년생의 읽기 능력 통계를 토대로 장래에 필요한

  교도소 침상 수를 예측한다.(P231)

- 양손잡이 읽기(두 가지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뇌를 개발하는 것이 좋다.(P255)

  이유는 이중언어 학습자는 단일언어 학습자보다 언어적 유연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 5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들이면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계속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손을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토끼보다는 달팽이에

  가까운 속도로 자신의 생각을 탐구하도록 이끌 수 있다.(P260)

- 아이가 스크린으로 읽기를 시작하자마자 반대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읽기는 속도가 아니라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P264)

- 우리가 반성적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끊임없이 효율성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나오는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다.(P286)

-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법을 돌아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간다면, 우리를 지배하려는 자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능력 또한 잃게 될 것이다.(P296)

- 일부 사람들의 권력은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필요로 한다.(P297)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다양한 견해들의 표출이 아니다. 모든 시민이 지적 능력을 발휘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도록 교육하지 못하는 것이 진짜 위협이다.(P298)

- 21세기에 우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집단적 양심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깊이 읽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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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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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모르겠다.

나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단순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작품을 열면 하고

숨이 막혀옴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난 작품을 세 번씩 읽었는데 아직도 작품 전체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수치적

표현이 나를 아주 힘들게 하는 과정에서도 어떻게든 작품의 본질과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주제를

파악해 보려 노력에 노력을 기우리기 위해 집중하였으나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제반 생활

주변의 표현 내용은 작품을 덮는 그 순간까지 장벽아닌 장벽으로 존재하였고 나를 작품에

기가 질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쉽게 이야기해 머리 나쁜 놈인 나를 헷 갈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나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작품 해설을 접하는 순간 작품내내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은 이내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어느 의처증많은 치밀한 놈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모습을 아주 세밀히 표현한 단순한 묘사였다는 것을 알고는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짜증나는 순간이었다.

 

작품을 덮고 맥이 빠진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하다 우리 방송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질투

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작품 내용보다는 노래가사가 말이다.

 

넌 대체 누굴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웃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저 사랑의 눈빛이 필요할 뿐야

나의 마음 전하려 해도

너의 눈동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잖아

서로를 잘 안다고 느꼈었지

그래서 사랑이라 생각했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줘

언젠가 너는 내게 말할거야 사랑한다고

 

 

사람이 살면서 질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살아온 순간을 돌아보면 질투의 시간이 조금씩은 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작품처럼 같이 살고 있는 마누라한테 질투를 느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깊이 해 보는 시간이었다. 마누라에게 질투를 느끼는 그 순간 개인의 삶은

피폐해 질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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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7

 

작품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우리들의 국보급 가수 이승철의 노래

'사랑 참 어렵다'라는 노래 가사만도 못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런 작품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독자들이 열광을 했다고 하니......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심하게

들었다. 그 이유는 작가의 년보를 보니 그닥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주장하기엔 그리 많지 않은

연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 사람이 집필한 내용에 우리의 지성인들이 열광을 하였다고 하니 책을 읽고 열광한 우리의

독자들이 한 편으로는 딱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아니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 작품에 웬지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랑]이라는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을 저자의 짧은 지식과 얼치기같은 성찰에 근거한 분석으로

인해 가뜩이나 결혼보다는 자신의 삶에 집중하려는 젊은이들과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에게 또

다른 쓸데없는 관점을 던져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생길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적용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내용이 어떤 규범으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 본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작품 중간에 우리의 정서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마치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에서 주장하는 대목을 살펴 보면(176~177) 아주 아주 이상하다.

- 나는 이 대목을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하고 잘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혼에 실패하거나

사랑에 속은 여자들의 가장 큰 맹점을 너무도 리얼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애인 사이인 '앨리스''에릭'이 동문서답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 눈을 파는 에릭(남친)을 보면서, 앨리스(여친)는 머리에 더 수준 높은 일을 담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특권을 되새겼다. 그 남자는 한 눈을 팔았다. 그녀보다 더 중요하고 훌륭한 일을

다루는 남자라면 틀림없이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사랑의 직각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사랑의 직각은 다른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태도를

설명해 준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서로 이야기하다 갑자기 상대편이 자기의 질문과는 영 동 떨어진 답을

한다. 다시 말해 질문하는 여인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본 여자 친구는 자신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는 남자 친구를 바라보면서, 내 이야기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하느라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안위하는 내용이 맞는

해석이라 당신은 생각하는가?

 

우리의 청춘남녀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나도 한 참 났을 것이다.

전체적인 작품의 내용이 전부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명제를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자기가 살아오면서 주워들었음 직한 밑도 끝도 없는 이론적, 분석적

논리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둥에 관한 이론, 현수교 전선줄 이론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풀고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 작품을 읽지 말라는 권고를 하고자 한다.

자칫 제목만 읽고 나도 지금 나의 남친과 하고 있는 행동이 '우리는 사랑일까?'라고 느끼고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실천에 옮기거나 나중을 기약하는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후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랑은 작가보다 훨씬 더 많이 산 나도 아직 이렇다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명제가 아니

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작품의 말미를 보아도 그들은 헤어진다. 그러자 마자 또 다른 짝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작품 제목은 '우리는 사랑일까?'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펼치는 이야기는

'우리는 장난한다라고 밖에는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작품이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주인공 남자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현실의 남자에게서 보이면 가차없이

돌아서서 '안녕'을 고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득이 될 것이다.

주인공 '에릭'과 헤어진 뒤 바로 만나는 '필립'도 남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남자는 다 똑 같다. '절대로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찌되었던 읽어 볼만한 작품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작품에서 생각을 깊게 하려고 한 이야기들

- 다른 사람의 관심이 보통을 넘어선 정도여야 고독은 끝날 수 있다. 우정은 비겁의 한 형태일

  뿐이며, 사랑이라는 더 큰 책임과 도전을 회피하는 것(P 12, 푸루스트)

 

-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P 12)

 

- 예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다.(P 26, 플라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알아준다고 믿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한 권위적인 설명을 들으면

  녹아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P 60)

 

- 인생이란 불충분한 증거에 기인하기 쉽다.(P 67)

 

- 이 사람 마음에 들어/안 들어그러한 반응은 생물학적 욕구의 원초적 유산이다.(P 67)

 

- 침묵에 특권을 주는 것은 단순한 협잡이요, 제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그보다 못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P 76)

 

- 사랑의 첫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욕망은 사소한 실마리에서도 피어났고,

  공백을 메우고자 상상력이 발휘되었다.(P 80)

 

- 믿음이란 바람 빠지는 타이어와 같아서 늘 다시 채워 주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 든다.(P112)

 

- 사람들 사이의 불균형을 읽으려면 부수적인 세부 사항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성격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P115)

 

-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한다.(P132)

 

-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P140)

 

- 지성인들은 천재로 보이는 것이 멍청이들에게 광증이 되며, 이는 모든 게 가능해지고 정상적

  인 규칙이 기적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극단의 상태를 뜻한다.(P153)

 

-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P160)

 

- 배반을 당할 때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배반하는 존재이므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론이 굳건해졌다.(P162)

 

- ‘신뢰부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P164)

 

- 권력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사람이나 사물에게 작용을

  가하는 능력'인데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사랑의 권력은 아무 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P170)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P171)

 

-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P173)

 

- 중세가 끝날 무렵 신을 향한 헌신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미술과 문학의 주제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바뀌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P178)

 

- 신성한 사랑의 특징은 숭배를 강조한다.(P180)

 

- 신약성경에 나오는 ''은 불평하지 않고 고난 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신이 옳고

  자신이 그르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욥과 같은 인내심이 없다.(P185) 

 

- 신들은 자주 자리를 비우거나 있어도 잘하지 않는 특징이 있기에, 인간들은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터놓고 수다를 떨기보다는 기도나 꿈을 통해서 의사소통한다.(P186)

 

- 침묵과 마주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죄가 발각되었다고 느끼고, 아둔한 사람은 멍청한

  걸 들켰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위축된 사람은 못 생겨서 그러리라고 여긴다. (P186)

 

- 특정한 학문 영역에서는 명쾌한 설명에 편견을 갖고 난해한 글을 존중하는 오랜 경향이 있다.

  학구적인 자기 학대는 은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P188)

 

- 학구적인 자기학대는 은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P189)

 

- 내면적으로는 육체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을 파악하는 데 이런 생각

  을 적용하기한 어렵다. 우리 자신도 대개 육체적인 외모에 연연하여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정체성의 위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들의 내면보다는 외양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P201)

- 육체를 우연한 현상으로 보는 데 반해, 남자들은 육체를 여자의 확장된 형태로 받아 들인다.

   (P203)

 

- 불안감은 사회적인 압력과 기대에 직면해서 개인이 겪는 두려움이다.(P216)

 

- 유쾌증 환자들은 수많은 일에서 재미를 찾지만, 단 한 가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들이 관여하는 활동의 성공과 진지함에 매몰되어서 모순을 인식하는 폭이

  좁다. 그들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웃지만 자기비하는 꺼리며, 본인의

  성격이나 인간 본연의 깊은 결함과 때로 우스꽝스런 습관을 드러내는 걸 피한다.(P250)

 

- 진정하라(calm down)라는 개념에는 느긋해지라(relax)는 제안에는 없는 책임감이라는 요소가

  뒤따랐다.(P258)

 

- 생각이 모든 것을 위로한다.(샹포르) 생각은 심리적인 우울증의 한 형태이다.(P262)

 

- 자연주의는 인간과 이성의 개입 없이 일어난 일들이 문명의 참견을 받아 오염된 것들 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찬란하고 유구한 새월을 보냈다.(P262)

 

- 상식주의에서는 복잡성이 아니라 과도한 단순함과 순전한 명백함을 바탕으로, 사유 너머

  영역을 표시한다.(P264)

 

-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신을 경멸하는 것은 지상의 도시’, 신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것은 천상의 도시’(P265)

 

-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 외적인 여정은 내적

  으로 욕망하는 여정의 은유다.(P282)

 

-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P292)

 

- 개성은 차이와 다양성을 기반으로 나온다.(P297)

 

-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P312, 비트겐슈타인)

 

- 인간은 기계이며, 전 우주는 다양하게 변형되는 단 한 가지 재료로 되어 있다.(P322, 라메트리)  

 

- 낭만주의 시대에 영혼의 개념이 감정과 연결되었다면 감정은 곧 쾌감보다는 아픈 감정으로

  통했다는 것이 의미 심장하다.(P328)

 

- 아픔을 통해서만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P329, 조지산티아나)

 

-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 안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하는 일이다.(P330)

 

- 언어란 공유된 의사소통 체계(P355, 비트겐슈타인)

 

- 불평을 표시하는 행동 뒤에는 상대가 잘못을 빌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깔려 있을 것이다.

  불평은 대화에 대한 믿음을 암시한다.(P357)

 

- 보는 것은 항상 다른 요소에 의해 보강된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거나 바라는 것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P365)

 

- 망상은 오직 두 번째 정보에 과도하게 초점을 둘 때 시작된다.(P367)

 

-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다.(P368,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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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법정 스님 전집 9
법정 지음 / 샘터사 / 198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삼십 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이유는 없다.

불현듯 세상을 떠나신 법정 스님을 존경해서도, 그 분의 작품에 대한 느낌이 좋아서도 꼭 다시

읽어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에서이기 보다는 내 기억 한 편에 언젠가는 꼭 한 번 더 읽어 보겠

다는 마음이 남아 있어 자연스레 손이 간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아마도 법정 스님께서 바라보시던 당시(1980년대 초중반)사회와

당시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었던 현실적인 문제가 얼마나 오늘날까지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을까가 궁금하던 차에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 사족으로 한가지를 더 붙여 본다면 우리가 초등학교 국어책을 처음 잡던 그날의 떨리던 마음이

  반백이 되어 다시 펼쳐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

그런 저런 생각을 갖고 작품을 접하기 시작했으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부분보다는 오히려

생뚱맞게 작품을 덮는 순간 마주한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是現今 更無時節)’이라는 문구를 마주

하면서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느낌을 크게 받은 그런 시간이었다.

이와 함께 갑자기 든 또 하나의 생각은 바로 어느 누군가의 비문으로 쓰여 있다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라는 문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유는 없다.

사족을 단다면 해당 문구의 주인공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로 그는 95세의 나이에 임종을 앞두고 본인이 직접 남긴 말을 묘비에 새겨 달라

했는데 이 문구가 바로 그의 유언을 받아들여 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를 몇날 며칠을 생각해 보았는데 뚜렷한 이유는 찾지 못한 채 단순하게 또 다른 버나드 쇼와 같은 비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후회없이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었다.

     

- 귀는 좀 보수적이고 눈은 제보 진보적인다,

- 우리가 보는 법을 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보는 일은 어떤 철학도,

  선생도 필요하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그냥 당신이 보면 된다.(‘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인도 철학자)

- 자비(慈悲)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뜻이다.

- 진리를 찾아가는 사람은 티끌보다도 더 겸손해야 한다. 세상은 티끌을 그 발밑에 밟지만 진리를

  찾는 사람은 티끌한테조차도 짓밟힐 수 있을 만큼 겸손해야 한다.(마하트마 간디)

- 사바세계(娑婆世界)란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말한다.

- ‘보살사상이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관용(寬容)의 정신이다.

-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부처님이나 교리 같은 것에 의존함이 없이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본래적인 자기 자신을 발견,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멀리 떠나갔을 때 내게 축적되고 정제되어 떠오르는 모습이 그 사람의

  뒷모습이다. 사람은 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고 이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 우리들의 마음이 어떤 소유욕에 얽매여 있으면 마음의 창인 그 눈도 함께 멀어, 봄밤의 정취도

  저녁놀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차지할 향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볼 줄 아는

  길러야 한다.

- 인간의 목표는 남보다 많이 차지하는 데 있지 않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어야 한다.

- 구개신기산 설동시비생(口開神氣散 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

- 입에 맞는 떡은 없다. 떡에다 입을 맞추어라.

- 종파적인 것에 구애받음 없이 여러 종교가 지닌 좋은 특성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인다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종교의 영역이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 일반적으로 선승(禪僧)들의 표혐이 과격한 것은 산 체험을 죽은 문자와 언어로 나타내기 때문에

  파격적인 표현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가 가려내겠다는 태도롤

  들으라.

-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문제는 곧 삶의 밀도를 결정짓는다.

- 사랑의 실천이란 자기와 타인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경우,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합일

  (合一)하려는 노력이며 사랑의 구체적인 작용이 곧 ()’이다.

- 역사란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고, 먼 미래에까지도 이어질

  과거다.

-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케 하고 삶의 전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 빈곤과 차별은 자본주의가 낳은 2대 악()이다.

- 절대 고독의 한 가운데 우뚝 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무엇보다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열매를 가져온다.

- 두타행(頭陀行)이란 털어버린다는 뜻이다.

- 종교는, 불교는 그 요체가 말에 있지 않고 일상적인 행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가장 근원적인 번뇌로는 탐욕과 증오와 무지이다.

- 계율이란 창문과 같아서 닫아놓은 데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활짝 열리 수도

  있어야 한다.

- 부처님께서 입춘날 절에 가서 삼재풀이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그 어떤 경전을 통해서도 절대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 (, 원할 원)은 나만이 아니라 남에게까지도 덕을 입히는 이타적 소망이다.

- 선가(禪家)에 한고추(閑古錐)란 용어가 있는 데 이는 닳아져서 무딘 송곳을 의미한다.

-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지시고다 뛰어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

- 사람은 상대의 말에 팔릴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 우리가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건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是現今 更無時節) 바로 지금, 다시 시절은 없다.

 

책을 덮으면 드는 생각은 '사람은 유한하지만 책은 영원하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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