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인의 딸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1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 5


누구나 다 똑같이 부여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을 살아간다
대개의 인간들은 바쁘면서도 열정적으로 또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간에 주어진 자신의 
삶을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열하고도 열심히만 살았지 자신의 삶이 정말 참 된 삶인지 아니면 
어떤 방향으로 가고는 있지 않은지 대해 어떤 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 뒤돌아 보거나 
스스로를 평가해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인간들의 행태라 생각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사고'를 한다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진중한 검토나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만이 자신이 죽어서 관 뚜껑이 닫히고 죽어서 어떤 특정한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작품은 바로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는 되돌아보지 않게 "재 점검"하라는 의미에서 만든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작품을 접해 본 사람들이라면 나의 이런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각 단원들마다 소 주제를 갖고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관해 사고하고 언급하면서 진정한   

'참 삶'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성찰 끝에 얻은 자기의 

주관을 구체화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깊게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나름대로 주제 문장을 찾아 본다면

[삶은 늘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뿐이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는 우리가 삶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본인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하며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달아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가장 슬픈 것은 삶의 주체자인 본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 슬픔'이라 말하고 있다. 삶의 자세와 종교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은


[차츰 우리는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고 생존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여행의 목적을 잊어 버리고 여행지에 집착한다면 그 집착이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다시 그 장소에 태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구에는 

 (종교)]라는 제도가 태어 났다. 종교란 결국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겠는가?]


[종교(religion)라는 말의 어원은 '조각나고 흩어진 것들을 한 데로 모으는 일' "명상"잃어

버린 종교는 맹신에 빠진다. 애시당초 종교는 명상을 통해 생겨난 것인데 명상을 하지 않고 

종교를 접한다는 것은 근본을 잊어 버리고 가지를 붙드는 것이리라.]


나는 이 두 대목이 해당 작품에서 가장 통찰력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게 만든 내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남의 기준에 맞도록 끝없이 가지치기를 당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에 시달리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이 대목은 오늘날 황금만능주의, 학벌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고 있는 동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시사점을 던져 준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런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비 애벌레'의 예를 들면서


[시간은 필요하다. 우리들 자신 속의 애벌레를 고요히 지켜보라. 그것이 거쳐 가야할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한숨짓긴 해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자연이 일깨워 주는 가장 큰 것은 바로 

기다림의 필요성이다. ]


이라고 주장하면서 참을성 없고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참다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는데.

[사랑에는 묘한 속성이 있다. 그것은 마치 불사조가 자신을 불로 태워서 죽어 버리고 그 재에서 

다시 소생하듯이 사랑은 죽음을 거칠수록 더욱 큰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 하지 않듯이 사랑의 죽음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은 나에게 가르쳤다.] 


라는 이야기로 사랑의 참 의미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또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잠시잠깐 잊고 있던 화두를

던져서 내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일깨워 주려 한 작품이었다.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자

 

- 명상이란 결국 내가 사라져서 자연과 존재와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기도 역시 어떤 

  의미에선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가 사라져서 신이 내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보인다. (성철 스님)

 

- 신은 내가 신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 먼 나라를 여행하고 온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 (, 가스통 바슐라르)

 

- 마지막 날을 것처럼 오늘을 맞이하자. (크리슈나무르타)

 

-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은 없다. 다만 위대한 일과 하찮은 일이 있을 뿐. 위대한 사람은 

  하찮은 일까지도 위대한 일로 만든다. 그가 하는 모든 하찮은 행동, 모든 하찮은 몸짓에서 

  그의 위대함이 흘러 나온다. (오쇼 라즈니쉬, [장자. 도를 말하다])

 

- 부처도 가장 큰 고통을 애별린(愛別隣)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그만큼 

  큰 고통이다.

 

- 누가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예술인가, 혁명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 모르게 죽어간다. (알베를 까뮈)

 

- 운명의 펜은 절대로 철자법이 틀리지 않는다. (13세기 회교 신비가)

 

- 불교에서는 우주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욕계]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말한다

  [색계]란 각자의 꿈에 나타나는 빛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말한다

  [무색계]란 모든 사람의 이념 속에 있는 절대 정신의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

 

- 사람들은 스스로 나누어 놓고서는 그 분별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단죄한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 우리를 삶에서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은 고독이나 가난이 아니라 남 모르게 간직한 비밀


-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삶 역시도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삶은 곧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기 때문.

 

-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종교는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소멸될 

  수 밖에 없는 육체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는 것이다.

 

- 영혼이 먼저 있고, 종교는 그 영혼의 비밀을 알기 위한 창문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종교란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 삶을 비관하는 사람이 지난 행복했던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듯 이제 비가 며칠째 내린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뜨거웠던 태양을 기억하지 못한다

   저 비의 구름 위로 올라가면 태양이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속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그 곳에는 다시 우리가 들어갈 또 다른 세계가 있음에도 우리는 곧잘 그 사실을 잊는다

   그리고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 생각한다.

 

-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천국으로 향하는 바로 그것이다. (갈매기의 꿈, 리차드 바크)


- 아무리 작은 미련이 남더라도, 그 미련은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씨앗이 된다.(부처)


-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한다

 

- 삶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방황이고, 하나는 여행이다. 내면의 방황이 끝날 때 

  삶의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뱀 발]

  ‘참...작품 제목 잘 지었다’는 느낌 밖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전혀 작품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그런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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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청목정선세계문학 80
아더 밀러 지음, 유희명 옮김 / 청목(청목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럼가의 마녀들’ 그리고 ‘꿀맛’이라는 단편 세 개를 모아놓은 작품집으로 

지난 98년 처음 읽은 후 그 줄거리라든지 내용이 머리 속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어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는데, 세 작품 모두 다시 읽었음에도 후회가 없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작품이었던 ‘꿀 맛’은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당시의 문제점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으로 – 세일럼가의 마녀들도 마찬가지 -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으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세일즈맨의 죽음]

30년 가까이 근무하던 직장을 퇴직하고 순수한 마음만 갖고 ‘새 출발’ 해 보려 여러 회사를 기웃거려 보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퇴직자들 중 한 사람’ 혹은 큰 회사에 다녔던 사람으로서 뭔지 모르게 내가 

다니려고 하는 회사의 구성원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 같은 사람으로만 여길 뿐 차고 넘치는 퇴직자 속에 있는

한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시각 외에는 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쌓은 지식이나 기술(?)은 그냥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퇴직 전 나만이 특화되어 있다는 능력은 사회가 인정해 주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기업에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 저런 사정을 모른채 자신만만던 나는 한 번 두 번 면접에서 좌절을 맛보고 나니 이제는 길가에서 나를 

보고 어쩌다 놀래서 짖는 개들을 보게 되면 ‘저 녀석조차도 나를 무시하나 같은 자조섞인 한 숨이 나오기도

하여 씁쓸한 기분이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일에 쉽게 무너져 버릴 나였다면 회사 다니면서 벌써 무슨 사단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 점에 있어서 나의 멘탈은 강해서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내처럼 격려와 응원을 해 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아내는 무너져가는 남편을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 주고 격려하며 힘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려 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자신의 부인이 보내는 응원과 

격려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행동에 옮겼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품 주인공은 힘들었을 것이다. - 거기다 아들 녀석들이 영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인공의 그런 심정에 공감은 가지만 작품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죽었는지 묘사되어 있지 않았지만 

중간 과정을 보면 그의 죽음이 일상적인 죽임이 아닌 그 어떤 죽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누구든지 ‘그런 죽음을 생각했다면 그런 정신 자세로 죽기 살기로 뭔가를 해 보면 살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쉽게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그것은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나는 아내라는 응원군 말고 또 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신앙’이다.

나는 오늘도 내 책상 앞에 적혀 있는 성경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나의 마음을 다지고 있다. 분명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것도 차고 넘치게 말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1)

2.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3.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

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3~14)

5.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이런 문구를 항시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새벽이 열릴 때까지 말이다.


퇴직!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회사가 아닌 이상 아니 자신의 회사라 할지라도 한 번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이다. 작품 속 주인공 ‘윌리 로먼’에게 쓸쓸한 애도를 보내지만 그렇다고 죽긴 왜 죽나!!!

 

상기의 글은 퇴직 직후 써 놓았던 글인데,

시간이 흘러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다가 개인적, 회사적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대기업에서30, 중소기업 두 곳에서 5년 이렇게 지냈지만 대기업 30년 동안 경험한 내용

보다 중소기업 5년 동안 마주한 경험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중소기업에서의 시간을 나의 귀중한 소득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소기업이 정체 혹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중소기업의 자수성가형 CEO들은 펄펄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자신이 

삶아 죽을 때까지 절대 타인의 이야기나 충고를 듣지 않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모든 중소기업이 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100% 그렇다

비근한 예로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자수성가해 대기업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가 있는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 것이다

내가 이 정도 자수성가했는데’, ‘너 같은 인간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회사를 이렇게 일구었는데’, ‘니가 

알면 얼마나 알아? 어디서 개 풀 뜯어먹는 이야기야라는 식의 아집과 독선으로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CEO주변 측근들은 이런 CEO를 더욱 부채질하며 중국 희대의 간신 역아와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CEO자신이 삼고초려해 영입한 사람이라도 절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기분에 역행하는 발언을 하면 완전 개 무시하거나 그 길로 내 보내고는 한다

더욱 웃긴 것은 부하나 핵심 측근들의 이야기는 뒷전이고 정확한 자료 혹은 근거에 의한 이야기 보다는 

어디서 좀 세상 돌아가는 방귀를 좀 뀌는 인간들 이야기나 무속인 이야기는 철썩같이 믿는다는 것이며 

조금 기업이 잘 된다 싶으면 영업과 인맥관리를 이유로 필들로 나가 회사는 완전 뒷전이고 엉뚱한 사업

확장을 이유로 헛튼 짓거리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웃겨도 한 참 웃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CEO들 옆에 아첨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CEO들은 모른다

자신의 목에 그들의 빨대가 꽂혀 있는 것을, 아주 심각한 것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최 측근과 일가족에 의해 저질러지는 각종 비행 및 부조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으며 그들 주위에 있는 주변인들만 탓한다

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모순된 CEO의 모습에 대해 직언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사업이 실력에 의한 것인지 운에 의한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셔야 하고, 목에 빨대를 꽂고 있는 

 사람들과 멀리하셔라

그러면 니가 알면 얼마나 아냐?’는 식이다. 듣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보따리를 쌀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상 그 기업들은 분명히 빠른 시간 안에 수명을 

다 할 것이다. 그게 올바른 세상 아니겠는가?


지금도 회사를 다니지만 회사를 다닐만큼 다녔고 사람도 누구 못지 않게 만나고 대해 보았기 때문에 회사 및 

사회에서 기업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각종 산전, 수전, 공중전, 화학전, 세균전, 동굴전을 비롯해 지하전 등을 

숱하게 겪어봐 어느 기업이고 회사 손잡이만 봐도 회사 사정을 금방 파악하는데 다시 말해 척 보면 비데오요 

안 들어도 오디오라는 것이다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우리의 중소기업 CEO들 대다수가 거의 망상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절재적으로 자신들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는다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가, 정권이, 아무개 지도자가 문제이고 박 모 정권과 이 모 정권 때문이라고 외친다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중소기업체 사장들은 오늘도 멋진 옷 걸치고 골프장에서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코로나의 여파를 논하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쏙 빼놓은 채 남 눈찔러 피눈물 받아먹을 궁리와 어떻게 하면  국가의 눈먼 돈

받아 먹을 궁리에 잔머리 쓰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나와보니 세상이, 자신이 어찌 보이겠으며 이꼴저꼴 보기 싫어 할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게 아니겠는가?

당연히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데 원인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세일럼가의 마녀들]

미국 역사에 있어 가장 오점으로 남아 있는 여러 사건 중 1692년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실제 있었던

‘마녀재판’을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 작품 말미에 있는 해설에서 ‘집단적인 공포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조작해 낼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의 횡포와 거기에 희생되는 개인의 양심, 인격과 존엄성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고 아주 어려운 이야기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굳이 이런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옛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벌어졌던 마녀 판이 작금을 사는 

우리 사회에도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너무도 그 사례는 많기 때문에 나의 눈과 손을 바쁘게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우리 사회의 ‘마녀재판식’ 여론 몰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조 모씨일가족 사건과 

정대협사건은 그런 사건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는 지금은 상대를 향한 예리한 칼날일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 반드시! ! 틀림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 올 비수 혹은 형언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철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꿀 맛]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녀의 이야기는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00년 초반의 당시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인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성 관념과 결혼관이 바뀐 요즘 세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경박한 

삶의 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어떤 관점에서 본 작품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무너져 버린 우리의 

‘공교육’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좋은 학교를 나와 공직에 나왔으니 실제 학교에서 대다수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육 정책과 아이들의 관심도는 항시 엇 박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닌 참 교육자를 

자처하시는 우리의 일부 멋진 선생님들은 ‘교육자 이전에 우리도 노동자’라는 의식 속에서 머리 싸매고 

광장으로, 길거리로 뛰쳐나가 아이들이야 학교에 관심이 있든, 과목에 관심이 없든간에 우선 나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하고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할 학교의 최고 어른이 되시는 분들은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해 보려고 그런 교육자님들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라고 침묵 모드로 일관하셨던 게 바로 어제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스승이시라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학생들이 집에 머물며 공부할 때 학교에 나오셔서 깊은 반성과 

함께 백년지대계를 확실히 세우시는 계획을 잘 다듬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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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세상에 태어나 작품을 읽다 울기는 처음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이 직접 책을 사서 읽었으면 합니다.

내가 눈물지으며 책장을 넘기던 순간의 느낌을 나만 간직하고 있고 싶어 해당 내용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겠습니.

 

작품을 읽고 고심하면서 며칠을 보내다 어떤 방식으로 정리를 해야 작품이 던져주는 의미를 나름 잘 전달 

전달의 대상은 먼 훗날의 '내 스스로'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자식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대상은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모 신문의 신앙칼럼을 읽으면서 여기서

부터 얻은 깨달음이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여기에 옮겨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보면 삼촌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인간을 비웃으며 하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단다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지

한적한 저녁 시간을 보내길 고대했는데 뜻하지 않는 사람이 불쑥 찾아오거나 하면 인간은 화를 쉽게 내지

?

자기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 것인데 억울하게 도둑맞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인간이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 생각하도록 하려무나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시간은 그들의 것이 아니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인데, 그들은 그걸 몰라

세상에. 만약 시간이 인간들 것이라면 해나 달도 저희 소지품이게. 인간이 시간을 자기를 만든 이의 뜻에 

따라 써야 할 처지라는 걸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악마들이 할 일이지.


그렇습니다. 시간이 얼핏 내 것으로 보였지만 시간은 내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착각입니다. 시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허락하신 시간을 받아 그분이 맡기신 일에 쓸 뿐입니다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우리 것이 아니듯, 시간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두로에서 갈릴리로 직진하게 하지 않으시고 한참을 돌아가게 하셨을까요.

그 아까운 시간을 말입니다. 그것은 ‘에바다’(열리라)라는 기적의 시간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길을 우회하는 것에 어떤 불평도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늘 하나님의 타이밍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추시곤 했습니다. 하늘 아버지가 시간의 주인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과거를 저축할 수도 없고, 현재를 붙잡을 수도 없고, 미래를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 내가 전유할 수 있는 시간이란 것은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다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비록 내 인생에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 것 같은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돌아가게 하셨던 길이 나중에 

알고 보면 제일 좋은 길, 가장 지름길인 것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 직로는 하나님의 눈에는 미로이고, 인간의 눈에 미로처럼 보이는 것이 그분의 눈에는 직로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해서 우리를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분이 정하신 시간에 사명을 만나게 하시려는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는 자는 

에바다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송용원 은혜와 선물교회 목사, 국민일보 20200516)


내가 왜 이 글을 작품을 읽은 결론으로 선정했는지 내가 무엇이라 이야기를 해도 이를 듣거나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마다 작품을 읽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포인트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것이 맞고, 네 방식이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종교관과 다른 이들은 또 달리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할 따름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인생의 주체자라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 역전을 꿈꾸며 아둥바둥 

살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종국에는 절대자께서 예비하고 계신 그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혹자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절대자께서 인간들의 모든 길을 다 예비하셨다면 뭐하러 아둥바둥 사느냐? 가만 있으면 좋던 싫던 간에 

그 분이 만들어 놓은 길로 가는 데?” 라고 말입니다.

나의 견지에서 보면 그런 분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밥은 뭐하러 먹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똥이 되어 몸 밖으로 나오는데

어찌되었던 나는 작품을 통해 얻은 나만의 깨달음을 위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위와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마주한 에 대한 문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문구는 내가 위에서 작품의 결론으로 이야기한 하나님의 시간표와 함께 엮어서 나름 깊이있게

생각을 하다 보면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꿈은 단순한 명사를 지칭하는 '부자'가 아닌 '남을 도울 줄 아는 부자'가 되어야 하듯 

 형용사가 되어야 합니다.(P51)”

 

[생 업]

- 밥은 진저리 나고, 밥 먹기는 넌더리라고, 그런데 그 밥을 위해 질려도 밥을 지어야 하고, 지겨워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서러운 사이클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훈님이 답합니다. 대책이 없다고(P 17)

- 모든 꽃 길은 그 밑에 흙 길을 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흙 길이 곧 꽃 길이다.(P 28)


[노 동]

- 건강한 직장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워라밸', 곧 일(work)과 삶(life)균형(balance)의 균형에

  있습니다(P37) 오늘날 일어나는 워라밸 요구의 본질은 우리 삶에 쾌락을 허하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P 39)

- 먹고 살려고 내 몸 속의 피와 땀과 눈물을 내줍니다. 귀한 소금을 내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귀한 소금을 받아 그걸로 몸을 만듭니다.(P 44)

- 정직한 노동의 본질은 창조의 기쁨과 상통합니다.(P 48)

-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어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P 59)

 

[돌 봄]

- 아이를 키우며 자란 건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늙어버렸네요 인생은 그렇게 돌봄을 죽주고 돌봄을 받은 것이 아닐지요(P61)

- 평생 부모에게 줄 행복을 자녀는 어린 시절에 이미 다 준 셈이고, 부모다 남은 생애 그 빚을 갚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P 68)

- 아이는 취급 설명서와 오지 않는다.(p 75)

- 발효는 기다림의 결과이듯, 사랑도 기다림의 미학이다.(p 77) 사랑하기 때문에, 차라리 소금을 내 가슴팍 

  상처에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굳게 미믿고 기다려야 합니다.(p 78)

-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다.(p 78)

 

[부 모]

-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P105)

 

[마 음]

-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었고, 살아갈 나에 관한 긍정이었다.(P135)

- 우리 웬만한 건 너무 세게 결심하지 맙시다. 반성은 하되 필요 이상으로 가혹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 우리 마음의 지하실에 가끔은 신성한 공기를 불어넣어줘야 한다.(P141)

-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을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좀 더 객관적인 시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P152)

-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면서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라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P154)

 

[교 육]

- '세렌디피피(serendipity)라는 말은 의도하지 않았는데고 뜻밖에 혹은 운 좋게 뭔가를 발견하게 됐을 때 

   쓰는 말(P162)

- 관찰을 잘하면 우연히 얻은 정보들 사이에서 진실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P163)

- 관찰이란 세계의 숨겨진 질서,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이다.(P170)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P181)

- 관찰은 창의를 낳고 창의는 다시 더 큰 사랑을 낳게 된다.(P181)

 

[공 부]

-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吾生也有涯 而知也无涯) 우리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P185)

- 중년의 뇌는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통제력이 증가되어 

  훨씬 침착하고 낙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다.(P196)

-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P198)

 

[열 애]

- 사랑은 남이 만들어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내가 공을 들여 길들고 길들여지는 인내의 과정이다.(P216)

- 사랑은 속도전이 아닙니다.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입니다.(P217)

- 타이밍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화의 목적과 성격이다.(,P218)

- 구속될 것을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책임을 동반합니다.(P220)

-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P221)

- 마음은, 영혼은 채우는 겁니다. 채우는데 뭘로 채울까가 중요한 겁니다. 얼마나 선한 것, 얼마나  귀한 것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으로 채울까. 그런 것들로 채워진 삶은,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P222)

 

[동 행]

- 사랑은 자유이지만, 자기가 지닌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비애가 성립되고 만다.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P233)

-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은 대장장이처럼 장인의 책무처럼, 정성을 다하며 몰입하는 일을 거듭할 때만이 

  얻을 수 있는 비급(秘芨)인 것이다.(P241)

 

[인사이더]

- 선행은 의무와 강요에서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에서 오고, 공감과 소통은 경험의 공유에서 온다.(P253)

- 리플리 증후군이란 가짜를 만들어 놓고 자기 스스로 그것이 진짜라 믿는 것 (P262)

   , 자신의 뜻대로 꾸며낸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뜻하는 용어다,(P262)

- 성찰은 자기 변혁의 필요조건이다.(P268)

- 진짜 정직한 것은 현재의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나까지, 나의 수많은 분신, 나의 수많은 페르소나까지 

  나 자신이라고 믿으며 사랑하는 것이다.(P273)

- 세상의 인사이더들을 닮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거면 내가 왜 존재해야 합니까? 그럴 양이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요

  삶의 기준은 나 자신입니다.(P275)

[아웃사이더]

- 원심력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 구심력도 없어 버티지 못하고 사정없이 밀려난 이들에 대해서는 배려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아웃사이더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 힘도 없이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되돌아보니 인생이 아름다웠다 말하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인생의 굴곡을 견딜 수 있는 배후를 만들어 줘야지요

  뒤를 돌아봤을 때 흐뭇하기 이를 데 없는 저 든든한 배후들, 쇼트트랙 선수들이 훈련할 때 허리에 거는 

  고무벨트 같은 그 배후 말입니다.(P290)

-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말합니다.(P292)

 

[가진 것]

- 소유나 사용의 관점이 아니라 상실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는 달라진다.(P301)

 

[잃은 것]

-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롱랑바르트, P340)

- 애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멜랑콜리라고 부른다. 이는 상실한 대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서 그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상실감 혹은 복수심을 자기 자신에게 투영하는 겁니다.(P341)


작품을 읽다 보면 곳곳에 금과옥조 같은 저자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 적시 적소에 인용되고 있는 

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 모두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의 무게가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구 하나만이라도 부여잡고 힘차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곳곳에 금과옥조 같은 저자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 적시 적소에 인용되고 있는 

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 모두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의 무게가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구 하나만이라도 부여잡고 힘차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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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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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요, 부모에 대한 효를 되짚어 보는 그런 달이지만 매년 5월이 되면 어버이 날에 과거 

내가 나의 모친에게 고리오 영감의 딸보다 나은 행동을 했었던가를 돌아보고는 한다


내가 작품을 읽는 이유는 혹시라도 나의 자식이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되어 나의 노년 생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보인 행동일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어 본다면 모친의 병은 당시 의학의 한계로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오로지 를 가장한 립 서비스 수준으로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친은 자식들의 곁을 홀연히 떠나셨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자식들 곁을 떠나시는 모습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느 불효자가

스스로 저질렀던 불효에 대한 반성의 탈을 쓰고 작품을 접하는 것이지 진정한 반성의 의미와 후회의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모친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반성으로 

나는 최선을 다 했고,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 아닌 변명과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면책성 근거 

타인들의 비난이 두려워 - 를 마련하기 위해 보여 주기식 이중적인 행동을 보인 치졸한 행동이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작품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내리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작품이 만들어진 그 시대와 상당한 시간적 

격차가 있는 작품이었음에도 현재를 사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작품으로 우리 문학과 비교를 해 본다면 아마도 유럽판 '김 약국의 딸들'(박경리)같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년 가장들의 슬픈 이야기인 '아버지'(김정현)같은 작품이었다고 생각되었으며 또 다른 측면으로는 애절한

아버지의 정을 이야기한 '시고기'(조창현)와 같은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주인공 '장 조아솅 고리오(제면 직공)'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두 딸

(‘레스토 부인뉘싱겐 부인’)이 있다.

그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딸들의 요구가 있을 때 자신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든 말든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 

없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다 해 주는 그런 평범한 아버지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노년에 홀로 사시는 아버지의 건강과 생활비에 대한 

걱정과 근심보다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사소한 문제 - 애정 및 금전 - 로 아버지를 끊임 없이 흔들어 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리오 영감의 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경제적 무능력 상태에 빠져 어려워할 때는 

물론이고 외로움에 고통 받을 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남 대하듯 하다 쓸쓸히 돌아가시게 한다.

 

자식이 뭐길래,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부모, 자식간의 연을 맺어 부모는 항시 자식에 대해 '채무자'가 

되어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 대해 언제까지나 영원한 '채권자'로 군림하며 살아야 하는지..... 책을 덮으며 

살아 생전 모친께서 내게 항시 들려 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부모는 열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잘 모실 수 없다]

 

라는 이야기였다.

모친께서 이런 소리를 하실 때마다 '에이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하고 외쳐 보았지만 세월이 흘러 

나도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나이가 된 지금, 나의 어머님이 지청구 비슷하게 외치던 그 말씀이 

구구절절 옳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현재의 나의 자식들이 고리오 영감네 딸들처럼 내게 못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나는 그 변화의 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의 효 방식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연일 언론에 나오는 기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노인은 스스로 벌어서 살아야지 자식에게 의존해 노년을 의탁해서는 안 된다라는 요지의 기사가

그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남들 자식은 몰라도 절대 내 자식은 안 그럴걸요?”

글쎄세상일 누가 알 수 있겠나. 어린 자식이 태어나 자라면서 나는 커서 부모에게 불효할 것을 다짐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작품 속 고리오의 딸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생활이, 환경과 처한 여건이 그리고 그녀들에게 직면한 경제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배은망덕의 표본처럼 그려지고 있는 고리오의 딸들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고리오 영감도

그 딸들도 동일한 선상에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자식을 고리오 영감의 딸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또 스스로가 경제적 무능력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주인공 고리오 영감은 무엇을 준비했고,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나의 자식들은 한 때 둥지 속의 새끼들처럼 입만 벌린 채 나의 손길과 눈길에 의존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런 자식들은 어느새 자신의 길을 찾고자 둥지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한 녀석은 벌써 나의 둥지를 떠났으며 또 한 녀석을 채비를 마쳤고, 나머지 한 녀석 역시 조만간 자신의 

생활을 위해,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들은 내가 그러했듯이 삶의 지친 어깨를 스스로 다독이며 또 내가 그랬듯이 자신의 새끼를 위해 힘찬 

날개짓을 하며 그렇게 부모가 되어갈 것이고, 나는 또 이 자리를 어느 순간 조용히 비우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활 양식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고리오 영감이 걸었던 길을, 삶을 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고리오 영감,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며 따랐던 자식같은 하숙생이 그의 곁을 지키는 

가운데 자식들의 외면 속에 임종을 맞는다.

나는 고리오 영감이 죽던 날의 집안 분위기와 딸들이 남에게 하듯 내뱉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다. 정말 이들이 고리오 영감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으로 키워 온 딸년들이었을까 하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마구 일어났지만 요양원 침상에서 쓸쓸히 돌아가셨던 나의 모친 생각과 오버랩되면서 나도 

그런 자식의 한 부류였다는 점에 더 이상의 비난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부모들은 자신만은 효녀와 효자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고리오 영감의 자식들과 같은 인간 말종들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고리오 영감도 젊은 시절, 아이들의 심성을 위해 끊임없는 가정 교육을 시켰을 것이며 착하게, 인간답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던져 가르치고 또 가르쳤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작품을 덮으며 자식과의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에 대해 가정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리오 영감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 모든 행동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아마도 또다시

그녀들의 부모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여도 부모라면 의당 동일한 길을 갈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성과 단어가 존재하는 한 이 땅에 고리오 영감은 영원히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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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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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을 읽고 나는 모든 내용을 내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뭐랄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하였던가? 당초에 작품에 대해 가졌던 유전자에 기대

만큼의 내용이 담기지 않아 그랬는지 모르겠다.

- 나는 내가 읽는 작품마다 이런 투의 비평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하나는 과학적 이론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평가를 과학과 전혀 관련도 

없는 인력이 이러쿵 저러쿵 잘못 이야기하게 되면 나의 일천한 지식 수준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고르는 작품마다 이리 헛발질을 해 대는지 나의 

한심스런 안목과 판단이 나를 자학하게 만든 듯하다

작품을 덮고 장시간 해당 작품에 대한 숨 고르기를 했다. 읽었으니 정리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선뜻 정리할 엄두가 나지를 않아서이다.

그러다 인터넷을 뒤져 나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정리를 마치신 분의 일부를 발췌하여 

나만의 정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구태여 큰 돈을 들여 해당 작품을 통하지 않더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속 과학 이야기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작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과학적 기본 상식과 주요 핵심 

내용의 대부분은 반복적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랬다 이었지만 해당 작품을 

읽고 작품평을 한 어느 곳을 읽어보아도 이를 지적하는 독자는 한 분도 없이 그냥 

좋다고만 평가하는 게 고작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 작품을 읽고 어떤 다른 내용적 측면에서 해당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한 사람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작품을 섭렵한 여러 분의 독후감을 뒤져봤는데 

출판사가 써 놓은 수준의 내용 외에는 그리 눈에 띄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해당 

작품을 극찬(?)했다고 하는 외부의 찬사와는 달리 대중적인 독자들에게 크게 호응 받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그저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과학적 이론이 강한 성향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 

구비되지 않고 독서에 임할 경우 오히려 독서의 시간은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 지면을 통해 거듭 강조하며 본 작품을 원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년

전 출판되었던 칼 세이건코스모스라는 작품을 먼저 숙독하고 접하게 되면 더욱 

알찬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을 해 본다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 ‘진화론적으로 인간에 대해 이기주의이타주의’, ‘집단 선택설로 나누어 설명

     하고 있는데,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고 집단 전체의 붕괴를 막는 것이 종국에는 

     최대 이익이 됨을 강조

- 사람은 모든 동물의 유전자가 만들어낸 기계이며 유전자를 보전하고 전달하는 도구다

  -à 작품 읽는 내내 강조되고 강조되는 문구이며 정의다.

- 유전자의 대표적 특징은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 백 만 년 동안 존재할 수 

  있었다.

- 가끔 개체수준에 한정된 이타주의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특별한 유전자들도 있는데, 여기서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정의가 주관이 

  아닌 행동근거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집단선택설

   : 집단의 유지, 이익을 위해 회생할 수 있는 개체들로 구성된 종이나 종내 개체군은 

     각 개체가 자기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경쟁자 집단보다 

    절멸의 위험이 적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세상은 자기 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가득하다.


* 개체선택설(유전자 선택설)

   : 다른 이타주의를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반역자가 한 개체라도 있으면 그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손은 그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을 것이다.

     여러 세대의 자연선택을 거치고 나면 이기적인 집단이 될 것이다.

 

2. 자기 복제자

  진화가 시작되기 이전 시대부터 진행해 오던 중 어느 시점에 특히 주목할 만한 

      분자들이 원시수프에서 발생하는 데 이를 자기 복제자라고 정의했고, 생존 

      기계는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더 커지고 정교해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경쟁상대는 이기적인 개체인 반역자다.

 

    * 해당 파트는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는 파트로 작품의 기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 세이건코스모스’(사이언스 북스)라는 작품을 먼저 읽고 

     본 작품을 접하면 더욱 쉽게 작품의 도입부 이해가 쉽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어느 시점에 주목할 만한 분자(원시수프)가 우연히 생겨났는데 이들은 스스로 

  복제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들을 자기복제자로 칭한다

   하지만 이 복제자는 어떤 특이한 이유로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확대되면서 이 오류는 사본의 개체군이 아닌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몇 

   가지 변종 복제자의 개체군으로 채워진다.

- 자기 복제의 오류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으로 이어지며 생명 진화가 진행되는데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생물학자가 말하는 생물의 진화이며 그 매커니즘

   도 바로 자연선택이다.

- ‘원시수프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안정한 분자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보호할 그릇인 운반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살아남기 위해 더욱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기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누적되고 진행되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기계다.

 

3장 불멸의 코일

  뉴클레오티드의 나선형 사슬은 이중나선으로 되어있으며 구성하는 단위는 네 

      종류로 DNA는 자연선택을 거쳐 만들어진다

 

- DNA분자는 뉴클레오티드’(A,T,G,C로 구성)라고 하는 작은 단위분자로 구성된 긴 

  사슬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한 세포 각각에는 그 신체에 대한 완전한 DNA사본들이 

  있다. DNA분자는 복제와 단백질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단백질은 몸을 구성하는 물리적 재료일 뿐만 아니라 세포 내의 화학적 과정 전반을 

  섬세하게 제어하여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화학적 과정의 스위치를 선택적

  으로 조절한다. 이 과정이 유아의 발육으로 이어진다.

- 기타의 내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의 나열이다

-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로 가장 적합한 것은 종도 개체군도 아닌, 유전물질의 작은 

  단위(유전자)이다.

 

4장 유전자 기계

 유전자는 대응이 느리고 예측할 수 없으며 자기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진화해 왔다

 

- 유전자는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는 미리 생존 기계의 체계를 만들고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행동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

-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서 생존 기술의 각론이 아니라 일반 전략이나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 환경에 대한 일반적인 예측을 통해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뇌에 미리 프로그램을 짜 놓는다. 예측 불허인 환경에서 

  예측을 하기 위해 유전자는 학습 능력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을 한다

- 이타적이든 이기적인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제어 하에 있으며, 그 제어가 간접적

  이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매우 강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을 지시함으로써 유전자는 생존 기계의 행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순간순간 결정하는 것은 신경계다

  유전자는 일차적 정책 수립자며 뇌는 집행자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결정권 행사에서 학습과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 되었다.


5장 공격 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매파 비둘기파 보복자의 상관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 동물들은 살아남아 유전자를 가장 많이 퍼뜨릴 수 있는 전략, 바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 ESS)를 취한다. 이 전략은 미리 프로그램

  된 행동방침이다. 이러한 전략은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유전자의 전략이다

-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들이 세트가 될 것이며, 이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도 침입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돌연변이나 재조합, 또는 이입으로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선택의 벌을 받아 즉시 제거되고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해 유전자 풀 내에 퍼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진화적으로 안정한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진다.

- 혈연자 끼리는 상당히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기적 유전자를 위해

  다른 여러 개의 몸이 충성을 다한다


6장 유전자의 행동방식

- 이기적 유전자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특정 DNA조각의 모든 복사본들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유전자는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다

- 두 사람의 혈연자가 1개의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을 근연도라는 지표로 표시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근연도는 1/2, 형제간 1/2, 사촌간 1/8로 나타낼 수 있다

  근연도가 높은 혈연자일수록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어떤 규칙을 통해 

  혈연자임을 안다.

  자기 종의 구성원이라든가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면 혈연자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타적 행동을 통해 자신과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의 존속을 돕는다.

- 생명체의 몸은 지금까지 생존해 온 유전자가 프로그램한 기계다

  지금까지 생존해 온 유전자는 그 종이 살아왔던 환경의 평균적 특징이 되는 조건들 

  속에서 생존해 왔던 것이다. 이 때의 경험은 과거에 유전자가 살아남은 조건을 말하는

  데 조건이 터무니없이 달라지지 않는 한 그 추산은 쓸만한 것이고 생존 기계는 평균적

  으로 올바른 결단을 내리게 된다.

  만약 조건이 급변하면 생존 기계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유전자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 부모 자식 간의 유전적 관계는 대칭적으로 근연도도 어느 쪽으로나 똑같이 확실함

  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진히 자식을 돌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쪽이 나이도 많고 매사에 더 능숙해서 자식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젊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자식의 기대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수명은 동물이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때 가급적 

  계산에 넣어야만 할 중요한 변수다. 자식이 부모보다 기대수명이 긴 종에서 자식의 

  이타주의 유전자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7장 가족 계획

- 가족 계획에서 다다익선의 단순한 논리가 옳을 리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있다. 개개의 부모 동물은 가족계획을 실행하는데,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자기 새끼들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끼의 수가 많아도 안 되고 지나치게 적어도 안 된다. 개체에서 너무

  많은 수의 새끼를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계속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 기근이 예측되는 환경에서 동물들이 스스로 출생률을 감소시키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서다. 부모는 일정량의 양육투자는 가능하고 그것을 각각 균등

  하게 분배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공평한 투자 정책은 의미가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자식에 대한 불공평한 투자가 어미에게 득이 되는가에 있다

  양육 또한 유전자를 많이 남기기 위한 일종의 투쟁인 것이다


8장 세대 간의 전쟁

- 부모는 자식에게 공평한 분배를 하려고 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더 많이 얻어내려고 

  한다. 모든 자식의 근연도는 1/2이므로 유전적으로 어미가 자식을 편애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가 실제로 편애한다면 그것은 연령 등에 따라 결정되는 

  기대 수명의 차이 때문이다.

  어미의 최적 전략은 자손이 번식할 때가지 양육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수의 새끼에게 

  공평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근연도가 형제

  자매에 대한 근연도의 두 배이므로, 제반 조건이 동일하다면 어미가 다른 형제자매

  보다 자기 자신에게 만이 투자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따라서 실제 이상으로 배고픈 척하는 것처럼 부모를 속일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 ‘자식은 속이는 행위를 할 것이다라는 표현의 진의는 자식에게 사기 행위를 하게 

  하는 경향을 가진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 인간의 윤리에 대한 교훈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9장 암수의 전쟁

- 암수 누구나 자신의 생애 동안 총 번식 성적이 최대화되기를 바란다

  정자와 난자의 크기 및 수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수컷들은 일반적으로 아무 

  암컷하고 짝을 짓고 자식 부양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항하는 대책으로 암컷은 두 가지 대표 전략을 갖고 있는데

  그 하나는 남성다운 수컷을 뽑는 전략이고, 또 하나는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뽑는 전략이다

  한편 수컷은 남성다운 수컷을 뽑는 전략에 대응하여 새의 화려한 깃털과 같이 매력을 

  과시하고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뽑는 전략에 대응하여 암컷에게 공을

  들여 구애를 한다.

  암컷이 이 두 대항책 중 어느 것을 취하는지 또 수컷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모두 그 종의 생태적 환경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10장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 개체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것은 집단 생활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포식자는 가까운 개체를 사냥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피식자 개체들은 위험 면적을 

  줄이기 위해 중앙으로 밀집하여 무리를 이룬다.

  새는 포식자가 나타나면 경계음을 내어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무리에게 경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리 전체가 이동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의 위험

  을 줄인다.

- 다른 종의 개체와 상호 이익을 주고 받는 관계를 상리공생이라 한다

  서로 다른 기능을 제공하고 서로 큰 이익을 주고 받아 진화적으로 안정한 상호 전략이

  얻어질 수 있다. 개미와 진딧물은 대표적인 상리공생 관계이다.

- 호혜적 이타주의는 서로 이익을 주고 받는 것이다, 이익의 제공과 이에 대한 보답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발생할 때 사기꾼(이익을 얻고 보답하지 않음)이 발생한다

  다수의 원한자 (보답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이익을 주지 않음)와 소수의 사기꾼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전하다.

- 성공한 유전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비정한 이기주의이다

  그러나 개체 수준에 한정된 이타주의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특별 유전자들도 있다. 협력도 이기적인 유전자의 전략이다.

 

11장 새로운 복제자

- 인간의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지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는 것이다. 언어는 유전자가 아닌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게다가 그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 (미멤 mimeme + gene)은 문화 전달 또는 모방의 단위인데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으며 뇌에서 저 뇌로 

  퍼져가면서 그 수가 늘어난다.

- 우리가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지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이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 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

  시킨 이기적 밈이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

  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유전자의 집합은 세대가 지나면서 희석되지만 밈 복합체는 온전히 유지되어 전해진다

 

12장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

- 인간의 생활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생활까지도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투성

  이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도 어떤 전략들이 전략들의 집단 내에서 이미 

  다수를 점하고 있을 때 계속 좋은 성적을 얻게 되는 ESS가 존재한다. 이때 마음씨 

  좋고 관대한 전략이 ESS 가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전략이 배신의 사슬을 빠르게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장 유전자의 긴 팔

- 자연 선택이 어떤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그 결과

  즉 그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유전자는 자신이 들어앉아 있는 

  생물체 바깥의 세계에 까지 확장된 표현형에 영향을 미친다

-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 우리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로의 출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과 같은 한 생물체에 들어 있는 어떤 유전자가 만일 정자 또는 난자라고 

  하는 종전의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을 퍼뜨리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그 유전자

  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여 비협조적이 될 것이다.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정한다. 그 대상 중 어떤 것은 무생물체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찬 셈이다.

-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 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대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

  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느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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