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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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한국은 2030년이 되기 훨씬 전에 통일이 될 것이다.] (215)

라는 신문 광고에 언급된 문구에 ''해서 약간은 의심스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혹시나 해서 작품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참 의미있는 작품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우리나라는 100년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일 합방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매고 있었지.......그 당시 중국은, 미국은 또....그 백 년 전

(지금부터 200백 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당시의 국력 상황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가가 있을까?

아마도 더 강해진 나라가 있는 반면 더욱 약해진 나라도 있을 것이고 반면 모르긴 몰라도

그 때나 지금이나 국력 상황이 답보 상태로 헤매고 있는 국가도 있을 것이다

특정 국가의 '위상'이나 '파워'를 가늠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해당 국가가 지닌 '경쟁력

이라는 것을 평가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지난 100년 여 년에 걸쳐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해'위상''파워'를 지닌 국가를 꼽으라

한다면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꼽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은 이런 사고의 연장선 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졌던 국가간의 힘의 구도와 분화 과정을 정밀 분석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국가별 파워 전개 방향을 예측한 작품으로, 그 중심에 [미국]

있음을 확신하며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작가가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외형적

크기와 힘으로만 평가한 것이 아닌 역사 속에 강대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여러 국가들의

공통적 경쟁 우위 요소를 추출하여 나름대로 분석해 얻은 결과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작가는 초강대국의 필수 조건으로 과거나 현재의 공통적인 요소로 '해양 군사력' 보유를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런 전제 조건을 놓고 현재의 [미국]

분석해 보면,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원하는 위치와 장소, '태평양' , '대서양' '인도양'

어디로 든지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해양 군사력'을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일한 국가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해양 군사력' 하나만 보아도 세계의

중심에는 분명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서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해하려면 [미국]이라는 나라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저자는 역설

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미국]이 강력해서가 아니라 [미국문화]가 세계에 스며들어 세계를 규정하고 있고, 그들의 

인구는 세계 전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26%를 생산하고

있는 막강한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미국]을 분석하면서, '국가의 대전략'은 그 나라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는데,

해당 국가의 대전략이 언제나 전쟁과 관련된 것은 아니나 그것이 국가의 힘을 구성하는

모든 과정과 관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미국]은 지정학적 유전인자로 인해 불안정한

국가이며 그의 전략적 목표와 대전략은 두려움 속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장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생태적으로 자기와 맞서는 나라의

탄생을 원치 않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지역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미국]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 작품은 미국의 강성 확대, 이에 맞설 수 있는 초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분열과 멸망

(?, 너무 심한 개인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그리고 대체 세력인 일본, 터키 및 멕시코에

대한 이야기, 지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독일과 폴란드를 지정학적 논리에 의해 분석하고

있는데 상당히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리의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존하는 지구촌의 가장 큰 골치 거리인 '이슬람 국가'에 대한 분석도 상당히 현실감

있게 분석해 놓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견해도 작가의 생각과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음에

약간은 놀랐다는 점과 내가 평소에 일본을 생각해 왔던 점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 정확히 맞을지 안 맞을지는 모르나 - 이 놈의 국가는 진짜 종족적, 유전자적으로

정말 문제가 있는 국가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우선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각 국가별 미래 전개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범 지구적

세력 구도에 관한 진단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G2로서의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으나 미국에 강력히 맞서지 못하고 있는 '중국'

거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연합'을 건설했지만 유럽이 미국에 강력한 도전을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있는 대목을 살펴보면,

우선 '중국'에 대해서는

1)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남쪽으로는 히말라야와 정글이 있어 고립되어 있고

2) 막강한 해군력이 있어야 하나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전함도 없을 뿐더러 이를 건조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3) 중국 본래가 갖고 있는 불안정성으로 인해

중국이 미국에 직접적으로 도전을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고 '유럽 연합' 은 과거

세계 도처에 자신의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였으나

1) 유럽 국가들은 세계 대부분을 침략하고 정복하는 동시에 서로 끊임없이 싸우면서

    자신들의 힘을 고갈시켰고 

2) 유럽의 어느 국가도 역사적으로 유럽 대륙과 동떨어져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실질적

    으로 정복하고 통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강력한 미국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하고 있다.

 

더욱 저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 주는 내용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해양 군사력'관한

사항이었다

,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힘이 동등할 경우 [바다]를 장악한 국가들이 바다를 장악

하지 못한 이웃 국가에 비해 훨씬 부유했고 강력했음을 강조한 대목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있는데, 앞으로의 세계는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우주]를 선점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관측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글로벌 무역을 지배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대양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 부족'을 초래해 범 지구적인 재앙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 평가를 받던 '인구 증가' 문제는 점점 늘어나는 자녀들의 '교육기간'

'교육 비용의 증가'로 부모들은 자녀 출산을 꺼려한다.

, 과거에는 남, 여를 구분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신의 앞가림만이라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산으로, 들로 나가 자신이 속한 공동 운명체에 도움이 되는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녀 수가 경제력의 규모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 중에 하나였으나,

이제는 그런 자녀들과 사회가 문명화 되면서 배움의 기간이 늘어나고 이에 비례해 교육

비용이 증가하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부모들은 자연적으로 출산을 꺼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인구감소'로 연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현재 진행형

으로 이런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인구감소 = 국력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2030년이 되면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자국

내로 들어오는 '이주자 확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웃지 못하는 기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현재 우리 나라에서도 '저 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 놓고 있으나 실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모든 것은 세계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각 여성이 평균적으로

2.1명의 자녀를 낳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출산을 자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인구 문제에 있어 글로벌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 작품을 읽어 본 나의 결론은 '()', '()', '()'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더욱

더 확고히 하게 된 시간이었다.

다시 이야기해서 모든 세상살이는 '()', '()', '()'의 끝없는 반복적 연속이라는

생각을 이주 오래 전부터 해 오고 있었는데 작품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경제 발전적인 측면을 설명하면서 작가는 2040년대가 되면 범 지구적으로 획기적인 경제

발전이 1950년이나 1990년대와 비슷하게 이루어 질 것으로 예측되나, 이런 경제발전 결과가

작금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적인 금융위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듯이 2040년대의

발전의 결과는 2080년대에 초래될 위기의 발판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이해하고 각 국가별로 저자가 예측한 사항에 대한 주장을 정리하

 

   [미 국]

- 미국은 가장 우호적일 때도 위험하지만 어떤 문제에 집중할 때는 더욱 위험한 국가이다.

- 미 해군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해군력을 합한 것보다 강하다

  이것은 곧 미국이 세상의 모든 재해권을 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미국은 끊임없이 일련의 동맹 체계를 가동해 잠재적인 지역 패권국이 생기지 않게 했다

  따라서 미국은 일련의 지속적인 이해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어떤 국가도 국가의 자원을 

  해군력 양성에 돌릴 만큼 충분히 안정적인 국가가 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모든 위협을 시들게 하고 잠재적인 적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문제에 휘 말리도록 하는 것이다.

- 미국은 이슬람 국가든 유럽국가든 강력한 지역 패권을 지닌 국가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 미국이 다음 100년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어

  드는 인구를 충원할 기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미국 문화의 중심에는 컴퓨터와 기업이 있고 미국이 태평양을 통제한다는 것은 곧

  에너지 수송에 필요한 바닷길을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 미국은 대체로 50년마다 결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왔다.

  문제가 드러나고 20년 후가 되면 위기는 분명해 진다.

- 2040년 경의 몇 년간 미국은 1950, 1990, 1890대를 방불케하는 전성기를 누릴 것이다

 

   [일 본]

-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 이유는 미국이 원자재 수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 미국에 도전할 만한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 뿐이다.

- 일본이 1980년대 내내 경제적 초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구 경제가 높은 이율을

   적용해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도태시키는 동안, 일본의 은행들은 인위적으로 형성한

   저금리로 친한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시스템 때문이다.

- 일본이 2020년대에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1세기 중반에 경제적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

- 2040년 경 일본은 자국의 경제적 이권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강대국을

   방해하면서 아시아 본토에서 점차 공격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이때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져서 일본의 신경을 많이 거스르게 된다.

- 일본이 여러 가지 사정상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가족과 함께 미국

   전역으로 흩어질 추수 감사절이 될 공산이 크다.

-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를 장악하는 동안 시간을 벌려는 시도였다.

   [중 국]

- 2010년대의 중국의 분열이 있을 것이다.

- 중국은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근본적으로 사회 및 정치적인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세계 주요 강대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고립된 지정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 북쪽은 시베리아와 몽골 초원이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이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경계를 이루는 남쪽, 동쪽은 바다로 둘러 싸여 있다. 유일하게 서쪽 지역이

   남아있지만 역사적으로 그 지역으로의 이동이 합법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

- 시장이 자본 할당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국은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 국가는

   아니다

- 경기 순환은 어느 시점에서 경기 둔화의 틈을 타 반드시 추한 얼굴을 들게 마련인데

   성장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으며 중국은 한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 중국에는 원래 3개의 기둥 위에 서 있었는데 한 개는 방대한 관료 조직둘째는 군대 체계

   이나 나머지는 공산주의의 이념적인 원칙이었으나 이것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 중국은 해군력이 약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과 대치할 확률이 높지만 군사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나아가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도 적다

- 중국이 외세를 상대하게 된다면 자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러시아]

- 2020년쯤에는 러시아 주된 관심이 분명 러시아 연방을 재건하고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될 것이며 중국과 함께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 서방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하게 될 경우 러시아는 유럽쪽의 방어력을 상실하게 된다.

- 미국의 전략은 언제나 유라시아의 분열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냉전은 오로지 러시아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침공했던 유럽국가들은 모두 파국에 이르렀다.

- 20세기 후반, 유럽 국가들은 너무 약했고 분리되어 있었으며 중국은 고립되어 내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의 전쟁으로 신경을 쓰느라 러시아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더 이상 분열되지 않았으나 이것은 지정학적 문제가

   다시 부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2020년 이후의 시기에 나타난다

- 앞으로 10년 후 러시아는 엄청나게 부유한 국가로 부상할 것이다. 지리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경제적 부를 일부 빼내 자국 이익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창출

   할 것이다.

- 러시아가 코카서스에서 누리던 모든 지위를 상실하고 북쪽의 저지대로 밀려 난다면  

   러시아의 위치는 크게 위축되고 말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사이의

   몇 백 마일 사이에서 전략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러시아가 체첸과

   협상하지 않는 이유이다.

-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는 절대 절명의 문제이다.

- 러시아의 기본 전략은 NATO를 깨트려 동유럽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 내부 갈등이 러시아의 주의를 서방으로부터 분산시키면서 러시아는 전쟁없이 쪼개지고

   말 것이다. 결국 러시아의 군사력은 2020년이 지난 직후 다시 한 번 몰락하게 되는데

   이 경우 태평양에서 카르파티아 산맥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공백이 생기게 된다

- 중국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면 이득을 볼 국가는 일본, 터키, 폴란드이다.

   [폴란드]

- 미국은 러시아의 동진을 방어하기 위해 폴란드에 막대한 경제력, 기술적 지원을 제공해 

   우호를 다질 것이다.

- 폴란드는 미국의 기술적 강점을 이용해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에서 터키와 대치하기

   위해 필요한 해군력 및 우주 능력을 발빠르게 통합하고 개발한다.

 

   [이슬람국가]

- 알카에다의 목표는 단순히 미국을 공격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은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의 약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알카에다의 힘을 과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 넓은 의미에서 9.11은 냉전종식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시작인 미국과 이슬람 과격 단체

   와의 전쟁 사이에 있던 공백 기간을 끝내는 신호탄이었다.

- 이슬람 세계가 혼돈 속에서 결합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전략적 목표를 이뤘다는 것임.

- 이슬람 세계의 위기는 불안정하지만 억제되어 있는데, 불안정성과 다른 국가들에게

   내재된 연약함을 이용해 지역 패권을 주장할 가능성있다

   그 중 인도네시아는 그러할 입장이 아니며 핵무장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내적 분열이

   심해 패권 국가로 진화하기는 어려우며 이란 역시 지역적인 위치로 어렵다

- 아랍세계는 2020년대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분열될 것이다.

- 2010년대 후반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동안 중동은 미국을 겨냥해 터키 남쪽에서

   문제를 일으키려 하는 러시아 때문에 더욱 불안정해 질 수 있다.

   [터 키]

- 터키가 발칸반도에 개입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지역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이다.

- 21세기 중반이 되면 터키의 영향력은 러시아와 발칸반도 깊숙한 곳까지 확장 되고,

   터키는 발칸반도에서 폴란드와 동부 유럽 동맹의 나머지 나라와 충돌. 또한 터키는

   중요한 지중해 세력이 되어 수에즈 운하를 지배하며 그 힘을 페르시아만까지 뻗친다.

   한마디로 미국을 두렵게 만드는 국가가 된다.

   [멕시코]

- 멕시코는 21세기 상반기에 걸쳐 급속하게 발전하며 최초 멕시코의 도전은 2020년대의

   경제 위기에 뿌리를 두게 되며 2040년대 후반이 되면 강력한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 200년 후에 멕시코는 미국의 영토 통합과 북아메리카의 전체적인 힘의 균형에 도전할 

   위치에 서게 된다

- 미국과 멕시코 간의 정치적 국경선은 그대로지만 멕시코의 문화적 국경은 북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 멕시코가 경제적으로 유리한 이유

   1) 석유 : 멕시코는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결코 석유 수출에 의존하지 않는다

   2) 미국과 인접한 국가이다

   3)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멕시코로 보내는 엄청난 현금 흐름 때문이다.

    이것은 자국의 투자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즉, 멕시코 성장의 밑거름은 조직범죄와 마약 거래이다.

- 멕시코는 브라질과 동맹을 맺고 미국의 북아메리카 지배에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 멕시코의 경제력이 상승하면 필연적으로 멕시코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게 될 것이며

   민족주의는 자긍심뿐 아니라 반미 정서로 발현될 것이다.

 

   [인 구]

- 결혼은 더 이상 경제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지 않을 것이며 자녀를 교육시키는 과정이

   길고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 한 출산율은 결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세계의인들의 삶과 사회적 패턴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 인간들이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줄어드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전략적 결행은 오히려 증가한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국익의 문제로써 로봇군인의 지원이 필요하다.

- 로봇 공학의 발달은 이민자들의 필요성을 송두리째 뿌리 뽑고 만다.

   결과적으로 2060년부터 실업률이 상승하고 이후 20년에 걸쳐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2030년의 문제는 인구 부족이지만 2060년대와 2080년대는 과도한 이주와 구조적인  실업

   으로 인한 잉여 인구가 문제가 될 것이다.

- 세계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여성이 평균적으로 2.1명을 낳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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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 - 16가지 유형을 통해 분석한 리더십의 성공과 실패
게리 윌스 지음, 곽동훈 옮김 / 작가정신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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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7

 

이 책 서문 타이틀로 있는 '나팔만 분다고 병사가 모이는 건 아니다' 라는 화두를 접해 보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 및 리더십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은

오늘날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경영 환경과 기술 발전의 흐름이 빠른 시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리더중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는 '리더'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인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 중 9번째 인물로 꼽고 있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조지 워싱턴'을 그런 인물로 평가하는데 그리 주저하지 않는다.

이유는 몇 해 전 읽었던 조지 워싱턴의 숨겨진 비화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그는 리더로서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기보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그를 건국 당시 최고의 자리로 오르게 한

것이지 그가 인격적으로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내가 아무리 이것이 사실이라고 떠들어도 미국의 공공기관 건물에 건국의 아버지로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

또 정직한 어린이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도 실재하는 이야기가 아닌 한 이야기꾼 흑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밝혀지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책에서 그가 훌륭한 리더로 평가되고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많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역시, 리더란 본인의 역량

못지않게 시대적, 조직적 환경이 해당 리더와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먼저, 개인적인 역량을 근거로 판단하는 자신이 처한 조직의 위치와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발휘할 때 소위 말하는 리더 혹은 영웅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 보여 진다.

 

간혹 역사책이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위 준비된 리더와 영웅으로 자란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세월이

흘러 리더가 된 자, 영웅이 된 자의 활동을 역추적하며 미화한 것이지 절대 그런 그릇으로

자랐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예로서 우리의 임진왜란의 영웅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보더라도 시험보는

도중 낙마하여 다리를 다치자 나무 가지를 묶어서 말 타기에서 우승했다고 우리들은 듣고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이 장군으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으로 후세들은 미화하고 있는데, 솔직히 당시

말에서 떨어진 것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가 궁금하며 설혹 그 내용이 어느 야사에

쓰여진 것을 근거로 기록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워 그런

행동이 훗날의 영광을 위한 준비된 행동처럼 여겨지게 한 것이지 만약 이순신 장군이 임진

왜란 시 아무 전공도 세우지 못했다면 또 장군이 안 되었다면 젊은 시절 낙마후 한 행동과

남보다 늦은 나이에 무관에 합격한 사실 이외에는 어느 것 하나 후세가 평가해 줄 만한

것이 없고 우리가 어느 집안의 족보 위에 오른 개인 이순신으로만 기억할 뿐이지 영웅으로

까지는 기억할 이유도 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결론적으로 리더영웅이란 준비된 자는 없고 시대가, 환경이, 리더와 영웅을 만드는

것이고 누구라도 그 대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다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의 역량으로서 리더가 되고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살아가려고 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사는 사람만이 시대를 리드하였으며 시대의 리더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부여된 사명에 혼신의 힘을

기우리는 사람만이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조직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내세운 16인의 유명한 리더들을 읽으며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 위해 책을 펼쳐 본다.

 

이 땅에 살다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및 현재의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 그 분들 자체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권력의 정점

부근에서 배회하며 호시탐탐 호가호위했던 이들은 우리 역사가 무어라 평가하고 기록할

것인지가 나는 자못 궁금하다.

질문 던진 기자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독기어린 눈빛을 발산하던 우 모시깽이....지금도

그런 눈 빛을 보여줄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을까?

레이저를 발산하기 전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검찰이 없는 것을 만들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었다고 남을 비난하기 전에 우선

자기가 먼저 깨끗하게 살았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었겠는가를 돌아보려는 노력부터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역사를 무서워하고, 국민을 무서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굳이 레이저 눈빛으로 중무장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손주들 재롱속에서 경로당에서 장기나 바둑이나 두실 분이 유와 무를 운운하며 감옥에서 세상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위정자들 모두 작금의 이런 모습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거듭났으면 한다.

내 고교동창이 모 구치소에 고참 간수인데 술마시며 TV에 고위직들이 많이 나와 헛소리

하는 것을 보며 농담처럼 항상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회사에 아직 빈방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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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
리차드 휠러 / 홍익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6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 혹은 타인들과 수많은 약속을 하고 또 이를 지키며

살아간다.

약속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약속의 상대자가 누구이던 간에 '약속'이라는 단어는, 약속의

주체자들에게 중압감과 함께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책임감을 함께 던져주는

매월 말 받는 일종의 납부 고지서와도 같은 의미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약속이 갖는 의미

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 각종 언론 매체를 장식했던 십 수 년 전 사춘기적 제자들과 교단에서

선생님의 약속, TV프로에서 방영되고 있는 '20년 전의 약속' 등과 같은 공공의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약속과 개인적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작은 약속들, 공공의 약속이라고

해서 가치나 의미가 높은 것이고 나 개인적으로 한 약속이라 하여 의미가 반감되거나 낮은

차원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약속만이 갖는 고유의 특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약속이 약속의 주체자와 상대자에게 던져주는 책임감과 의무감은 공평하다.

부자와 빈자를, 똑똑하거나 못난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도시인과 비도시인 이 모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지속된다. 또 약속은 약속의 주체자들의 내면적 성향과

인간적 특질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라는 점에서 그 어느 것보다 의미있는 공공의 계약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누구하나 지켜보거나 알아주지 않는 절해고도의 고립된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죽어간 이들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의지는 약속이 던져주는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하였다.

누가 시켜서도 누가 알아줘서도 아니다. 단지 주인공은 편지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일으켜 세웠던 것이고 사랑하는 약혼녀와의 또 다른

약속이 그를 최종 목적지에 이르게 하였다.

 

인디언에게 끌려가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에도 그는 당당했다.

진실은 하늘과 통한다는 생각 속에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당당히 맞선다. 비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의 약혼녀 역시 그랬다.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떠난 남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어려운 항해를 적극 따라 나선

것이며 또 남자가 약속한 강줄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얼마전 - 기억도 가물거리긴 하지만 - 이산가족의 방문으로 한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또 다시 약속이 지켜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산가족들은 남편이 자전거 사 온다고, 자식이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부인이 친정에 다녀

온다고 나간 후 50년 만에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을 본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약속을 하던

시기의 나이나 외모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극적인 상봉을 통해 나름대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할 것이며 또 다른 지상에서의 가장 슬픈 약속이라 생각되었다.

팽팽하던 얼굴이, 곱상하던 손등이 이제는 50년 전 사진속의 멈춰버린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로 인해 그네들 가슴에 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약속!

어떤 약속은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또 지켜줄 상대가 없어 슬프디 슬픈 약속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약속의 상대자는 약속한 상대를 기다릴 수도 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회한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의 약속이 되었든 지키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자세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잔잔한 감동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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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2
정길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7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날 문득 옛사랑의 주인공을 만나 이루지 못했던

옛 사랑의 추억을 메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외도를 미화할 수 있는

것이며 배우자에게 그런 자신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자신의 이런 행동을 상대자인 남편 혹은 아내가 이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부끄러운 그런 범주의 한 인간이다 -

 

우리 모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우자의 신비로움이 식상함으로 바뀌면서 한번쯤은

화려한 외도를 꿈꾸어 본 적이 있다. - 나만 그런가??? -

그러나 작품에서와 같은 비이성적 행동의 극단으로 치닫지는 아니하는 것이 일반적

가치관의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의 평범한 행동이리라. 작품은 그 모든 것의 상식을 뛰어

넘는 행동으로 우리 모두의 애간장을 쓰리게 한다.

주인공은 너무도 아주 너무도 남성 우월적 위치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엄연한

동등한 인격체인 여성을 마치 자기 소유인양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작품이었다.

작품과 같은 남자들의 화려한 외도(?)가 진행되는 동안 받게 되는 상대의 상처는 누가,

누구에 의해 치유되어야 하는가,

작가의 말처럼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하는 문제 이전에

왜 때리는 문제가 생겼는지를 또 왜 맞는 문제가 생겼는지를 우리는 정확히 짚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혼]이란 분명, 가치관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른 두 남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운명이다.

공동체란 보이는 질서와 예의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또 상호간의 존경심, 이 모든

긍정적인 단어가 적용되어야 하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비록 공동체의 출발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그 공동체가 깨지는 순간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함이 구성원의

책무라 생각된다.

특히, 이 공동체가 지구상 마지막 낙원이라는 '가정'일 경우는 위의 모든 사항이 더욱

중요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작품 속의 남자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한 아주 치졸한 남자의 전형이었다.

자신의 본분도 자신의 위치도 망각한 아주 전 근대적 남성 우월적 위치에 선 냉혈한

그 자체였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을 아내에게, 여자로서 가장 숭고하게 지켜주어야 할 자존심마저

그는 철저히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짓밟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외치고 있다,

'자신만의 사랑을 위해 떠난다고'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작품으로부터 받은 그 뭔가를 써야 하는데 나의 정신과 마음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부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마디의 항의다운 항의도, 싸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정녕 이 여인이 자기의 남편과 사랑을 매개로하여 만난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하는

여러 장면이 나온다.

겉으로는 여자로서 치정에 얽힌 치졸함의 극치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망설이고 있으나 이는 치졸함과 고상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권리 찾기의 문제이다.

 

결국 이 부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보이지 않는 부부간의 벽과 금이 있었던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으며, 여자는 남자의 외도를 통해 이를 현실화시키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어떻게 자신의 위치가 걸린 문제에 치졸함을 내세워 수수방관으로 일관할 수 있는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작품 속의 부부가 실존한다면 - 작가의 남편을 모델로 썼다고는 하나 - 나보다 아래인

것으로 보이는데 한마디 충고를 해 주고 싶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아내가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를 생각하고, 아내의 모습에

촌스러움이 묻어져 나오면 화려한 복장으로 가꾸고 데이트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그래도

부인이 못마땅하면 잠자는 아내의 얼굴에 늘어난 주름살의 숫자를 헤아려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변명의 작가나 병상에 있을 화려한 사랑을 꿈꾸었던 남편이 기회가 되어 나의 이 글을

읽는다면 뭔가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서 은묘 당신은 제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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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9

가정이 있는 중년 여성에게 있어서의 사랑이란 여성의 삶에 있어서 어떤 궤적을 그리고 어떤

의미로 남을까?

 

사회 통념상 남자인 남편들의 외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쩌다 한 번 있을 수 있는 실수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는 변명 아닌 변론으로 간단히 넘길 수 있으나, 여자의 그런 실수는 그

실수가 벌어지던 주변 상황과 여건에 대한 어떤 변명도 실수가 아닌 속물적 인간의 원죄로 취급

되어지는 현실적 모순을, 작가 이전에 한 명의 여성으로 꿰뚫고 있으며 이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누구나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을 대변한 작품이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낮선 여인으로부터 듣는 생경한 남편의 외도는 그녀를 끝간데 없는 나락의

길로 인도한다.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끝없는 남편의 자기변명이 그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자기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문득 다가온

낮선 남자와의 짧은 만남이 그녀에게는 남편에 대한 보복 이전에 현실적 무력감을, 남편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게 해 주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새롭게 다가서는 상대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하나, 사회적 가치관은 주인공의 이러한 몸부림을 천박한 몸부림으로 치부해

버린다.

 

주인공은 새롭게 나타난 남자와의 만남을 하나의 의미 있는 의식으로 인식하면서 또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게 해주는 만남이기를 바라며 자신의 빈 자리에 상대방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내줌과 동시에 그 만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것은 육체적 탐닉을 목적으로 한 만남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상대에게 육체를 내던진

것은, 주인공과 남편이 그간 사랑해 왔던 모든 행동이 가식이었고, 그 가식의 허물을 애벌레가

탈피하듯 벗어나고픈 심리적 발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정화하려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모든 가식을 버리려 했던 장면은 곳곳에서 보인다.

남편 몰래 썼던 편지와 상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전화, 언니의 제사일에 만나 남자의 차안에서

구두를 벗어 던지는 행동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이라는 벽은 현실이었고 결과는 온몸에 난 멍투성 뿐이었다. 여자이기에 보호할 수

밖에 없었던 멍에인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한 남자의 아내이며 엄마라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나, 부계 혈통을 따르는 우리의 현실적 상황은 그마저도 그녀를 외면한다.

그녀가 자신의 행실이 밝혀진 싯점에 그 어떤 회한과 두려움 그리고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녀의 그런 행동은 실수가 아니었고 후회 있는 행동이 아니었음을 나타내

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휴게소 집 여자가 남편의 술주정과 의처증으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할 때 돈을 주는

대목은 존재가치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적극적 의사표시였다. 주인공 역시 집을 팔기 위해 들어온 계약금을 갖고 떠난다. 남편은 부인을

찾아낸 후,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단순한 여행의 의미가 아닌 두 사람만의 시간으로 장식하려 하나, 두 사람의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선 것을 확인한 남편은 주인공을 놓아준다. 아니 부인을 떠나보낸다.

여자는 회한도 후회도 없는 독백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준비로 작품은 마감되고 있다.

 

나는 작품 후반부에 나오고 있는 주인공 집 울타리에 몸이 감겨 죽어가는 염소에 얽힌 사건

- 염소가 목이 감겨 죽어가는 비명 소리를 지르나 주인공은 그냥 어느집 짐승이 죽어가는 소리

겠지, 저렇게 비명을 지를 때에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는 것이겠지 하고 주인공이 독백하는 모습 -

은 주인공 자신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모순의 벽을 못 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하였다.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를 감안해서라도 부부를 결합시켰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고 작가 역시 여성으로서 인식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그대로 나타낸

안타까운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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