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9

가정이 있는 중년 여성에게 있어서의 사랑이란 여성의 삶에 있어서 어떤 궤적을 그리고 어떤

의미로 남을까?

 

사회 통념상 남자인 남편들의 외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쩌다 한 번 있을 수 있는 실수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는 변명 아닌 변론으로 간단히 넘길 수 있으나, 여자의 그런 실수는 그

실수가 벌어지던 주변 상황과 여건에 대한 어떤 변명도 실수가 아닌 속물적 인간의 원죄로 취급

되어지는 현실적 모순을, 작가 이전에 한 명의 여성으로 꿰뚫고 있으며 이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누구나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을 대변한 작품이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낮선 여인으로부터 듣는 생경한 남편의 외도는 그녀를 끝간데 없는 나락의

길로 인도한다.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끝없는 남편의 자기변명이 그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자기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문득 다가온

낮선 남자와의 짧은 만남이 그녀에게는 남편에 대한 보복 이전에 현실적 무력감을, 남편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게 해 주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새롭게 다가서는 상대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하나, 사회적 가치관은 주인공의 이러한 몸부림을 천박한 몸부림으로 치부해

버린다.

 

주인공은 새롭게 나타난 남자와의 만남을 하나의 의미 있는 의식으로 인식하면서 또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게 해주는 만남이기를 바라며 자신의 빈 자리에 상대방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내줌과 동시에 그 만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것은 육체적 탐닉을 목적으로 한 만남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상대에게 육체를 내던진

것은, 주인공과 남편이 그간 사랑해 왔던 모든 행동이 가식이었고, 그 가식의 허물을 애벌레가

탈피하듯 벗어나고픈 심리적 발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정화하려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모든 가식을 버리려 했던 장면은 곳곳에서 보인다.

남편 몰래 썼던 편지와 상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전화, 언니의 제사일에 만나 남자의 차안에서

구두를 벗어 던지는 행동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이라는 벽은 현실이었고 결과는 온몸에 난 멍투성 뿐이었다. 여자이기에 보호할 수

밖에 없었던 멍에인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한 남자의 아내이며 엄마라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나, 부계 혈통을 따르는 우리의 현실적 상황은 그마저도 그녀를 외면한다.

그녀가 자신의 행실이 밝혀진 싯점에 그 어떤 회한과 두려움 그리고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녀의 그런 행동은 실수가 아니었고 후회 있는 행동이 아니었음을 나타내

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휴게소 집 여자가 남편의 술주정과 의처증으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할 때 돈을 주는

대목은 존재가치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적극적 의사표시였다. 주인공 역시 집을 팔기 위해 들어온 계약금을 갖고 떠난다. 남편은 부인을

찾아낸 후,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단순한 여행의 의미가 아닌 두 사람만의 시간으로 장식하려 하나, 두 사람의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선 것을 확인한 남편은 주인공을 놓아준다. 아니 부인을 떠나보낸다.

여자는 회한도 후회도 없는 독백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준비로 작품은 마감되고 있다.

 

나는 작품 후반부에 나오고 있는 주인공 집 울타리에 몸이 감겨 죽어가는 염소에 얽힌 사건

- 염소가 목이 감겨 죽어가는 비명 소리를 지르나 주인공은 그냥 어느집 짐승이 죽어가는 소리

겠지, 저렇게 비명을 지를 때에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는 것이겠지 하고 주인공이 독백하는 모습 -

은 주인공 자신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모순의 벽을 못 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하였다.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를 감안해서라도 부부를 결합시켰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고 작가 역시 여성으로서 인식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그대로 나타낸

안타까운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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