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치명적 매력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


우스꽝 스러운 이야기지만, 얼마 동안 알라딘을 떠났었다. 마음이 말이다. 글을 성의없이 몇 개 올리기는 하지만 마음을 콩밭이다. 예스24에 집중적으로 글을 올렸고, 수년 동안 방치한 네이버 블로그에도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나 두어달 가까이 노력한 것에 비해 보람이 없다. 수고한 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할 뿐더러 그들만의 묘한 텃세를 느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세계는 낯설기가 그지 없다. 알라딘도 그럴까? 


뭐든 새로 시작하면 대가를 지불해야하고,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도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단기간에 뭔가를 얻으려는 욕망 때문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론, 글쓰기의 불편함이 극도 이르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알라딘의 경우는 원하는 책은 불러들여 삽입하기도하고, 이미지도 수월하게 넣을 수 있다. 이것또한 익숙한 탓이리라. 이러한 알라딘의 매력 앞에서 다른 블로그는 불편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결국 오늘 결론 내리기를 '알라딘에 다시 착륙하자'다. 



하구잡이는 바쁘기만 하고 성과는 없다. 내가 그렇지 않는가. 좀더 깊이 있고 성의 있는 글로 채워야겠다. 숨겨든 나만의 끼도 내보이고 싶다. 알라딘이 좋다. 봄이 오니 더 좋다.



지금 읽고 있는 세 권의 책이다. 봄에 어울리는 책은 아니지만 삶을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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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3-1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알라딘을 떠나기가 저도 어렵더라구요

낭만인생 2015-03-11 13:53   좋아요 1 | URL
알리디너들의 특징일까요? 댓글 감사합닌다.

[그장소] 2015-03-1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램프요정에 훅~당하지않도록!^^
ㅎㅎㅎ밀당을 잘하는 고수거든요~(응?)

낭만인생 2015-03-12 20:3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요술램프가 문제네요.

클라라비 2015-03-12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헤어날 수가 없어요

낭만인생 2015-03-12 20:3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글맛에 제법이죠.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53회 너무도 쓸쓸한 당신


오랫만은 아니다. 불과 20일 전에 들렀으니 말이다. 책을 사지 않는다 않는다 하지만 결국 또 저지르고 말았다. 책 중독이 분명해. 난 그걸 알아. 그치만 어떡해 이게 내 운명인데. 책은 내 운명이야. 


며칠 전, 아들이 '알라딘에 가고 싶어요!'한다. 아들의 입에서 책을 사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떤 부모가 '안돼!'라고 딱 잘라 말할까?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못한다. 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아들의 말이 귀전에 맴돌즈음. 아내에게 알라딘에 가자고 꼬득인다. 그리고 이말, 아들이 알라딘에 가고 싶데.는 말도 빼지 않고. 아내 경고가 엄숙하게 이어진다. '아들 책만 사고, 당신 책은 안 돼요!' 딱 잘라 말한다. 너무~~~하시네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응 알았어'가 나온다. 일단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내를 건드려 좋은 일이 뭐 있겠는가. 또한 몰래 사려는 속내도 감출겸 나는 그렇게 순한 양이 되었다. 늑대인데 말이다.


그렇게 우린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아들이 도착하자 곧바로 서면으로 출~~발. 날씨가 풀려서인지 거리에 차가 많다. 알라딘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입구에 [만차]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이런... 멀지만 언제나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5분 정도 걷는 것은 몸에도 좋지 않는가. 그렇게 우린 함께 걸었다. 


서면 시내를 걷기 참 오랫만이다. 곧바로 알라딘으로 직행한다. 대현 지하상가에 들어서니 뭇 여성들의 웃차람이 심상치 않다. 봄이 가까운 것이다. 열의 아홉은 여자다. 여자는 도시를 좋아한다. 여자는 수다를 좋아한다. 여자는 가까이 있어야 행복한다. 천상 도시는 여자의 것이다. 남자는 고독을 씹으며 홀로 거해야 하니. 이것이 남자의 운명이다. 시골을 내려가자는 가족치고 남자가 서두르지 않은 집이 몇이나 될까. 하여튼 봄은 여자에게 먼저 온다. 


알라딘에 들어서니 오늘 들어노 책의 권수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1561권. 와우 누가 저 많은 책을 팔고 갔단 말인가? 입구에 세워진 책, <메이드 인 공장>이 보인다. 가격을 보니 중고인데도 무려 9,100원이다. 다시 내려 놓았다. 아내와 아들은 순신간에 사라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알라딘에서 우리는 이산가족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찟어진다. 이건 운명이다. 내가 가장 즐기는 곳은 바로 '오늘 새로운 들어온 책'이다. 그곳으로 직행해 책을 고른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집어든다. 다시 <설득의 심리학>을 집어 들었다. 설득의 심리학은 저번에 잘못 고른 적이 있어 저자를 확인했다. 로버트 차아디니 맞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책,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와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다. 둘 중의 한 권을 골라야 했다. 몇 초의 갈등을 하고나서 박완서를 선택한다. 박완서의 책은 오래된 것이라 절판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박완서의 책은 수집하려는 속셈도 있다. 그렇게 나는 세 권을 구입했다. 아들이 살아남기 시리즈를 잔뜩 들고 온다. 이게 아니었는데, 아내는 사 준다고 한다. 이런... 글밥이 많은 책을 사야지. 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오랫만인데 하며 사준다. 하는 수 없이 계산대고 간다. 


계산을하니 오만원에서 3천원정도가 모자란다. 직원 가라사대

"오만원이 되면 2000마일리지 추가 적립됩니다."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럼 사야지. 꼭 사야지. 그게 얼만데 하며 들어올 때 봐 두었던 <메이드 인 공장>을 들고온다. 이런. 비싸잖아. 아내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모르는체 하고 계산한다. 이게 인생이지 않는가. 이게 책 사는 재미이고. 이렇게 네 권의 책을 구입했다.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절대공감바로 그 이유로. 서문부터 남다르다.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내가 상을 탈 때라던가 남의 수상식에 갈 때마다 느기는 건데, 상금만 있고 수상식은 없었으면 상도 탈 만하련만, 하고 느끼곤 한다. 수상식엔 으레 음식이 나오니까 수상식까지는 참아준다 해도 빤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수상소감이라도 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비슷한 생각을 책을 낼 때도 하게 된다. 왜 꼭 빤한 작가 서문이라는 걸 써야 되는지. 그 부담감이 소설 한편 만들기보다 훨씬 괴롭다.”

 

서문쓰기 싫어하는 내색까지 하는 작가라. 참 기이하다. 그런데 밉지 않다. 바로 이점의 박완서의 매력이다. 사십대 중반의 나에게도 할머니뻘인데도 묘한 매력이 있다. 어쨌든 책의 제목인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곧장 나아갔다. 1997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은 것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은 교장선생님의 사모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헤어지려고 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집을 나선다. 교육이란 명분으로. 이혼은 아니지만 서로 무관심한 별거상태다. 아들 딸 모두 제 길을 갔는데도 귀가(歸家)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남편은 퇴직하고 시골집에 머문다. 그런데도 미운 감정에 절대 내려가지 않다가 아들 결혼 때문에 결국 만나게 된다. 재력이 되는 안사돈과의 관계 때문에 부하기 치밀지만 참는다. 사돈이 자식들에게 주라고 건네준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일부러 주지 않는다. 골탕 먹이고 싶었지만 이것도 실패한다. 결국 남편과 함께 작은 모텔에 들어간다. 아들은 사돈집에 빼앗겼다는 것도 억울하고, 남편이란 작자도 체면만 차리고 다부짐도 없어 더 허하다. 마지막 남은 것이란 고작 남편의 정강이다.

 

오늘 하루 쓰잘데 없이 애만 썼다는 사소한 허전함이, 일생을 헛간 것 같은 거대한 허전함이 되어 그녀를 한없이 미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뭔가로 메우려고 너무 허둥댔음일까? 검부러기라도 움켜잡듯이 마지막으로 움켜잡은 게 펴보니 고작 남편의 정간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남편을 보며 헛한 생각이 찹찹하다. 자식들을 위해 벌지는 못해도 과하게 아껴 쓰며 살아온 남편을 생각하니 갑자기 불쌍해진다.

 

도대체 어떡하고 살기에 제 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때가 낀 손톱과 함께 그의 지나치게 초라하고 고달픈 살림살이가 눈에 선했다. 그렇게 안 살아도 될 만한 연금을 받고 있는 남편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발견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재인식일까? 불쑥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기억으로 침공한다. 빨리 시골에 내려가야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좀 더 건강하실 때 돌봐 드려야겠다.

 























바늘 귀를 통과한 여자도 있다. 시집.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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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프라인 중고서점도 5만원 이상 구입하면 적립금을 주는군요. 저도 중고서점에 생각날 때마다 방문하는데 5만원 이상 사본 적이 없어요. 많이 사면 3만원 넘어갑니다.

낭만인생 2015-03-11 11:3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중고서점은 가격이 싸서 5만원이상 구입하는게 쉽지 않죠.
 

'신간'이 아닌 '들'을 붙인 이유는 그만큼 많은 책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이다. 김요한 사장의 집요함에 놀랄뿐이다. 가장 최근의 책으로 <하버드 천재들, 하나님을 만나다>이고, 2월에 출간된 <칭의논쟁>과 <슬로처지>가 있다. 모두 묵직하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라 탐나는게 사실이다. 















1월에도 3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성경,오해에 답하다>와 <예수 신경> <7인의 십자가 사상>이다. 세 권 모두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신학을 전공한분 답게 책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새물결플러스의 책들은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학적인 범주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하게 책을 선별하는 것도 모양새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광범위하게 나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래의 글은 김요한 대표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허락없이 퍼온 글과 사진이다.



흔히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일종의 '무뇌아' 취급을 받는 시대에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교회 안에서도 믿음을 앞세워 지성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교회 밖에서는 광신자들의 반이성적 행태에 질려 버린 현실에서, 기독교가 지성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제목에 '천재'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데,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단순히 하버드 출신들이어서가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이런 자극적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인생의 방향과 목적과 신념이 새롭게 변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독실한 이슬람교도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현재 예일대학교 교수로 있는 라민 사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또 외아들 에릭을 등반사고로 잃었던 전미철학협회 회장을 역임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이야기, 하버드 천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학문적 공적을 인정받아 소행성 2658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지는 명예를 얻었던 오언 깅그리치의 이야기 등등이 나옵니다.

# 이 책은 이전에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지성의 회심>의 전면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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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노란 집


봄이 오니 서재실 스킨도 바꾸었다. 계절별로 서재실 옷도 바꾸니 한결 나아 보인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니 향긋한 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에 보니 봄 이야기가 나와서 밑줄을 그어 놓았다. 혹여나 찾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사랑하니 사소한 것에 관심이 간다. 마음을 울린 이 문장을 가슴에 담는다.

 

"앞산 골짜기엔 아직 희끗희끗 잔설이 보이건만 양지쪽엔 봄이 질펀하다. 폭신한 햇살을 등에 이고 쑥잎도 뜯고 냉이도 캐면서 마나님은 살아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다."

 

"봄을 또다시 맞아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캘 수 있다는 것,

캐어 가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천지신명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어제 처제와 장례식장에 오면서 차 안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다툼이 있다고 한다. 다툼도 젊었을 때 말이지 지금은 말도 하기 싫단다. 나이가 든 것이다.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처제는 나의 생각 속에 이십대 초반이다. 그런데 벌써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간다. 내가 늙은 것인지, 처제가 묵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으나 아직 젊다고만 말하기엔 버거운 나이다. 어쩔 때는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젊음이란 생각에서 온다는 말을 그렇게 실감나게 느낀 적이 없다. 처제 네는 아직도 봄을 모른다.

 

설렘이 없다면 봄이 아직 않은 것이다. 봄이 오면 으레 설렘과 행복이 스멀스멀 가슴을 점령해 오지 않던가. 문득 '어머 벌써 봄이야!'라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 봄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저의 생각이 어떤가요? 봄은 몰래 오지만, 언제나 들키고 마는 것 아닌가요. 동서는 남자인 내가 봐도 답답하고 막막하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맥 빠진 채로 들어 들어와도 설거지 한 번 한 적 없고, 쓰레기를 버려준 적도 거의 없다. 마냥 아기처럼 아내에게 사랑 받고 싶어 어린양만 부린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라고 노래하지 않던가. 처제는 그런 남편이 언제나 미운 것이다.

 

사랑이 별건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박완서 선생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딸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님의 인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글을 다소곳하게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도 집 색깔에 맞추어<노란 집>으로 잡았다. 이미 할머니가 된 딸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를 이렇게 추억하네요.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딸의 눈에 비친 엄마의 풍경이다. 나또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삶의 낭만을 느낀다. 범인들은 슬픔 너머 기쁨을 보지 못하고, 기쁨 너머 애환을 읽지 못한다. 고수는 기쁨 속에서 눈물을 읽고, 슬픔 속에서 사랑을 그릴 줄 안다. 박완서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가>를 읽으면서 놀랬던 것. 이렇게 침울하고 암담한 이야기를 어떻게 즐겁게 풀어낼 수 있을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궁극적 낙관주의자! 나는 박완서 선생님을 그렇게 말한다. 처제와의 내밀한 부부관계를 이야기하며 한 시간 남짓 달리다보니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 아내와 나는 처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제,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거야. 아마 더 나이가 들면 지금 남편과 싸운 것.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었던 것. 다 행복했다고 추억하게 될 거야. 지금 행복을 놓치지 말고 잡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벗어나고 싶은 것들. 지나고 나면 행복이라는 걸 나는 안다.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좋은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내와 나도 그렇게 15년 넘는 결혼 생활을 해 왔으니 말이다. 신혼 초. 우린 얼마나 다투고 언쟁이 많았던가. 30년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경 속에서 홀로 살다가 함께 살아야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다툼은 당연한 것이고, 오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어떻게 풀어 나가고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한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나도 한 때, 외롭다는 생각 많이 했다. 지금도 종종 고독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오면 어쩔 줄 모른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내 안에 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이 된다. 봄이다. 봄이 오면 마음이 달뜬다. 새롭게 시작해 보자. 이젠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사랑해보자. 먼저 인사하고, 먼저 문자 보내고, 먼저 편지도 보내보자. 이렇게 내 자신을 다독거리고 나니 마음이 벌써 울렁인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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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선택하라 - 크로스미디어 저널리스트 민본의 리더십
민경중 지음 / 샘솟는기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다르게 선택하라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일까그렇다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다그러나 반만 옳다진실은 기록한 자만이 승자이다즉 기록하여 이기고이기고 다시 기록하는 것우리가 아는 승자와는 사뭇 다르다나도 기록한다그럼 승자가 될 것인가어쨌든 나는 오늘을 기록하고 승자는 내일 결정될 운명에 맡기리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오늘까지 민경중의 <다르게 선택하라>를 모두 읽었다. 253쪽이란 적은 분량이지만 바쁜 일정으로 인해 이틀을 넘기고 말았다다른 책이었다면 족히 일주일은 걸렸을지도 모른다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책이 도착했을 때아내가 먼저 읽고 싶다고 이틀을 미루었다아내도 재미있었다고 말한다아내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다아내는 천성적으로 빨리 읽지 못한다이틀만 기다리면 되니 나에게 달라고 해서 읽었지만 결국 삼일이 걸렸다숨쉬기 힘들만큼의 팽팽한 긴장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그런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책이 분명하다왜 일까생각해보니 문장력이다기자 출신인데다 평소 글을 쓰는 훈련이 된 탓인지 독자로서 읽기가 편하고 쉬었다독자가 읽기 쉬운 책은 짧은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간소한 문장이다이런 문장은 호흡이 빠르고눈의 흐름이 수월하여 쉽게 읽힌다책의 후반부에 갔을 때야 겨우 알아 차렸다.

 

저자의 글 실력을 알아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틈틈이 박아놓은 탁월한 문장을 보면 안다몇 개의 문장을 옮겨오면 이렇다.

 

-중국 특파원 시절을 회상하며

"앞서 걷는 자는 그만한 고단함이나 외로움을 각오해야 해서 더 많은 용기와 신념이 필요했다하지만 이를 극복할 때 그 자리가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23)

 

-제주뮤직아일페스티벌을 성사 시킬 때

"때로는 용기 있는 도전이 필요하다도전은 자신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94)

 

-보도국장이 될 때

"작업 환경은 생산성과 효율성에 변화를 가져다준다감흥이 없는 사무실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리 없다더욱이 언론사는 혁신으로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무한한 상상이나 창의적인 발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140)

 

-부모님의 식당일을 도우면서

"식당 일을 도우면서 우리 삼형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그중에 하나가 주인의식이다식당에서 일을 하다보면 주인의식을 가진 종업원과 그렇지 않은 종업원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주인의식을 가진 종업원은 소님의 상에 뭐가 부족한지를 먼저 알아차리고 채워 주지만 주인의식이 없는 종업원은 손님이 요구해야 빈 그릇을 채워준다."(167)

 

삶이 녹아내린 문장들이다뻔해 보이는 문장이 저자의 삶의 맥락과 잇대는 순간 통찰이 되고도전으로 전환된다책을 통해 한 사람을 읽는 것이 이리도 재미있단 말인가문장력삶의 맥락 속에 담긴 통찰과 도전정신그것만으로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것 어불성설이다.

 

그는 도전과 혁신의 사람이다첫 장, '첫 중국 특파원길을 만들다'에서부터 그의 행보는 만만치 않다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야했던 그는 안 된다라고 쉽게 말하지 않았다북측 강석주 부부장과의 인터뷰 에피소드에서는 추리소설보다 더한 긴장이 느껴졌다저자도 이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기자라지만 허락 없이 북측 관계자를 만났으니 국가보안법상 비빌 회합통신고무 찬양 등으로 엮어 범법자 취급해도 어쩔 수 없었다."(28)

 

<노컷뉴스>를 시작할 때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라디오 뉴스 기자가 텍스트 기사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돼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그러나 저자는 라디오 시대를 넘어 TV시대로, TV시대를 넘어 인터넷 시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간파한 저자는 무모하지만 밀어 붙였다결국 노컷뉴스는 '대박'이 났고유수한 포털사이트가 애걸할 정도로 성공했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가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71)

 

얼리어댑터혁신적 사무실 재배치새로운 미디어 뉴스의 시작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저자는 도전하고 혁신시켰다촌지를 거절하고 불의이웃을 돕겠다는 제의는 용기를 넘어 담대함이 읽어 진다나도 저런 용기가 있을까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저자의 삶이 아직 젊은 나에게 '더 열심히 뛰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선택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모험하기로. 이것이 나의 운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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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03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분과 함께 독서하시는 모습 참부럽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수도 있고 말이죠

기자출신이신 분들의 책을보면 딱딱 꼬집어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은공감을 할때가 많은거 같아요 간단명료한 문장도 끌리구요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낭만인생 2015-03-03 09: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해피북님 서재에 들어가 종종 글도 읽는데 참 잘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