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온택트 주일학교 - 비대면 시대에도 우리 아이들이 예배를 잊지 않게
유지혜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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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온택트 주일학교 사역일지


꽤나 유익한 책이 나왔다. 유지혜의 전도사가 그동안 달려오고 달려가고 있는 현재형의 사역 보고서이다. 특히나 유익한 것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몸으로 부닥치며 일구어낸 사역의 열매라는 점이다. 책을 보는 순간 ‘올 것이 왔다’는 감이 왔다. 마치 차가운 겨울의 맹추위 속에서 살짝 스쳐 지나간 봄바람 같이 좋은 느낌이랄까. 급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 읽었다. 역시 기대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사역 현장을 어떨까? 구글링을 하고 네이버 검색, 그리고 유튜브까지 찾아 검색했다. 과역 실력자가 틀림없다. 일단 책을 살펴보자.


1부는 뉴노멀 시대 속에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이해하기다. 새로운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짚어 본다. 2부는 작년 그러니까 코로나 이후 주일학교 사역을 좌충우돌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부는 참으로 실용적이다. 4부 역시 3부의 연장이자 교회 전반의 사역 방향을 소개한다. 한성교회 청소년부 사역자로, 차세대팀장으로 맹활약중인 유지혜 전도사는 상큼발랄 그 자체다. 한성교회 담임목사인 도원욱 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서문에서 강조한다. 과연 그렇지 않는가.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를 기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놀부심보가 아니런가. 바울도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힘주어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책을 빨리 읽고 무엇이든 해보자.


‘주일학교만 새 신자 100명 등록’(25쪽) 코로나가 전국을 뒤덮고 있던 2020년 11월 ‘랜선 가을 행축’ 때의 일이다.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일반교회는 코로나로 인해 안절부절 못할 뿐아니라 전에 잘 나오던 학생들까지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발길을 끊었다. 이젠 아예 전화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님이 전화를 받을라치면 단호하게 ‘이제는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새 신자 등록 100명이라니.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ㅇ가능할까?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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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todayn 2021-04-1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온택트 주일학교의 저자 유지혜 전도사의 온라인 강의가 CTS와 함께 4/22(목) 1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https://todayn.net/50128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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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신학의 불모지에서 또 한 권의 교부 문헌이 출간되었습니다. 교부 문헌들이 하나둘씩 번역되어 출간되면 설렘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교부 문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부 문헌은 의외로 쉽고 간단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읽었을 어거스틴의 <고백록>도 중요한 교부 문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부 신학을 알지 못하면 역사신학도 교리신학도 반쪽 밖에 알지 못한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교부 문헌은 사도들 이후 교회의 변천 과정과 교리 등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교부 문헌이 거의 출간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가톨릭출판사인 분도출판사에서만 출판되고 있습니다.


최근들은 여러 출판사에서 한두 권씩 교부 문헌을 출간하고 있어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새물결플러스에서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의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의 실천학>(2015년)을 출간한 이후 3년 만인 2018년 4월에 오리게네스의 <오리게네스 기도론>을 출간한 것입니다. 이번에 죠이북스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출간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책은 아타나시우스의 <De Incarnatione Verbi Dei>를 잉글랜드 성공회 마리아회의 피넬로피 로슨 수녀가 영역한 것을 오현미가 다시 한역한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한글로 번역된 아타나시우스의 저작은 은성과 카이츠, 분도출판사 등에서 출간한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와 이 책이 전부입니다. 초대교회 교리사를 공부한 분들이라면 ‘아리우스’와 ‘유사본질’ 논쟁을 익히 알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한 본질이 아니라 ‘동일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는 ‘동일본질’의 선언문과 같은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면서 왜 육신을 입으셔야 했는가를 주장합니다.


367년 아타나시우스는 신약성경 정경 범위와 목록을 제안했고, 397년 카르타고 공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을 확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약성경의 확립은 이후에 일어날 수많은 교리 논쟁과 정통교회의 수호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마치게 됩니다. 후대 교회는 아타나시우스의 노고를 기려 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스토무스와 더불어 동방의 4대 교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1장은 이전 책을 통해 소개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창조와 타락의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2-3장은 성육신의 의미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다음 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6장에서는 부활을 논증합니다. 6-8장까지는 성육신에 대해 부정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성육신의 필요성과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차례로 논박해 나갑니다. 9장에서는 간략하게 마무리합니다.


필자가 읽기에 아나타시우스는 창조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존재하게 된다’(20쪽)고 강조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결국 죽음이 인간들을 지배하게 했고, 인간들의 ‘비참한 상황 때문에 말씀이 이 땅에 오셔야 했’(27쪽)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구속을 ‘재창조’(34쪽)로 해석하며, 창조는 말씀의 육신 됨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을 죽음에게 넘김으로 ‘그분의 죽음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고, 그럼으로써 사망의 법이 폐지될 수 있게 하셨’(36쪽)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짧은 글에 다 담어 내기는 역부족입니다. 아리우스파와의 논쟁과 그로 인해 황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추방당하고 회복되는 일이 반복하여 일어났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잘못된 교리에 빠진 세상에 대항하여(Contra mundum) 순수한 복음을 지킨 위대한 교부였습니다. 다사다난했던 그의 생애로 인해 완성도 높은 신학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지만 삼위일체론의 완성과 신약성경의 완결은 그의 중요한 업적입니다. 책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귀한 책을 번역 출간한 죠이북스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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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책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내가 책을 주문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인터넷을 검색하니 '정서적으로 건강한' 시리즈였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정서적으로 건강한 여성>

<정서적으로 건강한 리더>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여성을 제외한 세 권을 먼저 주문했다.


이 책은 일단 디자인이 맘에 든다. 대형 출판사답게 디자인이 좋다. 디자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묘한 차이는 느낀다. 소형 출판사와 대형 출판사는 눈에 띄지 않지만 미묘한 곳에서 차이가 난다.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모르는 색감, 폰트, 사이즈 등등의 뭔가가 있겠지... 


두 번째 이유는 내용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좋다. 즉 돈을 줘도 아깝지 않을 내용이다. 한꺼번에 네 권은 읽을 수 없고 리더는 중간중간 읽었다. 번역도 깔끔하고 내용도 좋다. 모든 면에서 90점 이상 주고 싶은 내용들이다. 물론 편집도 잘 됐다. 






























며칠 전에 서점에 가서 하워드 가드너의 지능 관련 서적을 한참 들여다보고 왔다. 사회평론에서 재편집에 살려낸 것이다. 네 권모두 출간되어 있어서 사고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꾸욱 눌러 참았다. 그런데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책이 나에게는 왜 닮아 보일까? 왜 비슷한 맥란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가이드 책도 올 해 안에 네 권 모두 완독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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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음성, 땅의 고백 모두를 위한 신학 시리즈 3
홍성훈 지음 / 세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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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유로 놀랐습니다. 하나는 두께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격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마가복음을 마음에 두고 몇 번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신약은 마태복음이고, 그다음은 히브리서입니다. 세 번째를 들라고 하면 요한복음일 겁니다. 마가복음은 가깝지만 먼 금서와 같았습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고, 가장 먼저 쓰인(마가복음 우선설에 의하면)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성경 중의 하나입니다. 존경하는 박윤만 교수의 마가복음 주해서인 <마가복음- 길 위의 예수, 그가 전한 복음>을 통해 다시 도전을 받고 꼭 강해해 보고 싶은 성경이었습니다. 아직도 요원한 꿈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이 책이 마가복음 강해집이란 사실에 세 번째 놀랐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저자를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서평을 쓸 때는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 저자 소개란입니다. 책에 충분히 소개되어 있지 않으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자료를 모아 저자의 성향이나 학문적 특징들을 찾아 정리합니다. 하지만 책 내용이 궁금할 때는 책 자체 내용만을 먼저 살펴본 다음 저자를 봅니다. 곧장 책 내용으로 들어갔고, 몇 장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책의 분량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본문에 대한 설교는 읽었습니다.


첫 장에서 책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뿐 아니라 마가의 생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저자의 성경 신학적 소양과 4,000자 정도의 분량은 저자가 얼마나 설교 준비에 매진했는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식상하지 않는 성경 주해와 설교의 흐름입니다. 직접 육성으로 설교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본문을 읽어가면 텍스트에 묻어 있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목소리로 설교하는 것이 들립니다.


세 번째 특징은 본문에 대한 집요함입니다. 설교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른 주해와 해석입니다. 자칫하면 본문을 왜곡하여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잘못된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까지 본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네 번째는 본문과 적용의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설교는 곧 적용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충분히 근거한 적용이어야 합니다. 본문과 현장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성경을 해석하되 목회적으로 적용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과 현장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저자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마가복음 강해집은 흔치 않습니다. 주석은 그런대로 있는 것 같은데 왜 강해집은 없을까요? 자료를 찾으면서 저도 놀랐습니다. 어쩌면 마가복음을 설교하기가 탐탁지만은 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 주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가복음을 사랑하는 교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꽤 유용하고 은혜로운 말씀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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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1-05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가복음 주해서! 흥미가 생기네요 ㅎㅎ
 
왜 교회일까?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교회에게 해야 할 질문
김기승 지음 / 샘솟는기쁨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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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다. 특히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갈팡질팡하고 있다. 버티는 것도 힘들다.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나무들은 몸의 일부를 땅으로 떨군다. 코로나는 교회의 덜 중요해 보이는 부교역자들을 잘라냈다. 열악한 환경과 미미한 사례를 받던 부교역자들은 교회에서 추방되어 길바닥에 주저앉을 판이다. 뜨거웠던 온라인 교회 논쟁도, 온라인 성찬도 생존 앞에서는 무의미해졌다. 그러한 논쟁은 어쩌면 처음부터 배부른 사역자들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가 뭔지 잘 모르겠다.



또 한 분의 교회 이야기를 듣는다. 책 제목이 꽤나 마음에 와 닿는다. ‘왜 교회일까?’ 이전부터 물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깊어진 나의 물음이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너머, 왜 교회 이어야만 하는가를 묻는다. 이 책은 교회에 대한 신학적 변증이나 논쟁이 아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고민한 내용들을 소박하게 적어 내려간 경험의 고백이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부터 가슴 졸였다. 냄새 풀풀 나는 노숙자가 교회를 찾아와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 냄새....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 냄새를 맡으면 한 시간 동안 자리에 동석한다는 것은 모험이자 극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수년 전에 외진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주민들에게 식사를 마련해 대접했다. 말이 주민인지 절반이 노숙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 중의 몇 분은 냄새가 지독해 함께 참석한 사람들도 조차 코를 막을 정도였다. 앞에서 어르신들에게 재미나 이야기도 해주고 식사도 대접했지만 뛰쳐나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런데 하필 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코로나 시대, 교회는 혐오(嫌惡)의 대상의 되었다. 코로나가 교회에서 집단감염되어 뉴스에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기사 댓글을 보니 ‘교회 차만 지나가도 꼴 보기 싫다’고 적었다. 과연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귀인의 종들과 같다. 귀인은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은 열 므나를 주며 장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 귀인을 싫어했다. 맞습니다. 교회의 지금이 딱 그렇다.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한다. 그래도 장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묻는다.

“굳이 교회에 소속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으며 돼지 왜 굳이 꼴 보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하나님만 믿으면 됐지 왜 교회까지 다녀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굳이 답을 할 필요도 없죠. 저자는 그저 왜 교회 이어야 하는 가를 삶으로 답한다.


몸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일상은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감격스럽고, 때로는 두렵다. 개척교회의 형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필자가 잘 아는 목사님도 결국 수년 동안 지속한 개척교회를 닫았다. 더 이상 공간에서 모일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교회 해체될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는 여기 다시 ‘교회가 무엇인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일구어간 여정은 눈물겹다. 아내와 함께 8,000장의 전도지는 나눈 이야기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딱 한 마디 ‘전도지를 붙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62쪽)로 충분하다.


멈추지 않았다.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맘카페 활동을 통해 모임을 만들었던 경험, 도서관을 통해 지역주민의 어려움을 공유했던 시간들이 쌓여갔다. 저자는 전도가 좀더 명민(明敏)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할 지역이 어떤 곳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 고민 없이 복음을 전하러 나가면 커피콩만 가지고 거리로 나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91쪽)


경험을 통한 저자의 답은 ‘상황화’(35쪽)이다. 이 상황화는 복음의 변질이 아니라 지역에 맞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교회와 고린도교회에 다르게 복음을 전하듯. 어쩌면 교회는 지금까지 획일적인 방법으로 전도하고,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지도해 왔다. 어느 지역을 가도 예배 시간도 같고, 설교 방식, 심지어 찬양도 거의 비슷하다. 교회가 프렌차이즈도 아닌데 말이다. 


몸으로 쓰고 삶으로 적었다. 사연 없는 인생 없듯, 아프지 않는 개척교회 없다. 말미에서 ‘혈관종’ 제거 수술을 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디 건강하시길. 다시 ‘왜 교회인가’를 물었다. 저자는 명료한 답을 주거나 교조적(敎條的) 해석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살아간다. 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알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지금은 글을 써야 하는 시간’(211쪽)이란 표현이 아름다운 동시에 아픈 이유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며 예레미야는 글을 썼다. 우리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붙였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다. 아픈 고백이다. 문장과 행간 사이에 적신 눈물 자국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다.


밑줄 친 문장


교회도 온도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 그곳은 진동하였고, 뜨거웠다. 24


우리가 느끼는 교회의 온도를 예수님도 느끼고, 마음 아파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회피하지 않고 뼈를 깎는 고통이 있더라도 온도를 느껴야 한다. 예수님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36


불신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일까? 거룩은 불신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81


우리는 교회보다 예수를 먼저 전해야 한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따라가면 그들이 모여 건강한 교회를 이룬다. 예수 없이 모인 교회는 시기의 차이일 뿐 형편없이 무너진다. 119


한국도 쇼핑몰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 복음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관광지로 추락한다. 왜 우리는 신실한 농부처럼 살아가기보다 육체의 모양, 진열품처럼 외관에만 집착하고 있을까? 128


교회는 성령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공동체이다.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무너졌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회복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공동체이다. 151


한국도 쇼핑몰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 복음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관광지로 추락한다. 왜 우리는 신실한 농부처럼 살아가기보다 육체의 모양, 진열품처럼 외관에만 집착하고 있을까? - P128

교회는 성령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공동체이다.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무너졌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회복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공동체이다.-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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