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사순절기와 부활절기를 위한 기도노트 비아 기도
비아 편집부 지음 / 비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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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서 성령강림주일까지

 

2022년 사순절은 202232일 수요일부터 시작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전례 중심의 예배가 설교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교회의 전통이 가진 장점을 상실하게 했고 심지어 전통 예배에 대한 왜곡된 편견도 심어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순절에 대한 불필요한 경각심과 주의입니다. 아마도 종교개혁사를 공부했다면 츠빙글리의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은 사건을 들었을 것입니다. 일명 소시지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사순절 기간 동안 육식을 금하는 교회의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소시지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엄밀하게 개혁이기 전에 논쟁이었습니다. 츠빙글리는 성경이 사순절 동안 육식을 금하라고 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성경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모든 기준은 성경이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이 금하지 않는 것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파괴하는 일이 종교개혁 내내 일어났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디아포라(adiaphora)로 불려진 이 논쟁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많은 화제가 되었고, 현재도 중요한 화제 중의 하나입니다. 타락한 중세 교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교회, 개혁된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심이 그릇된 극단으로 치달았던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극단의 오류는 한국의 신학교들이 교회사를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으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필자도 교회사를 좋아하고 관련 책들을 즐겨 보는 편이지만 대부분 종교개혁 시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좀 더 확장해도 자신의 교단에 편중된 몇 권에 책과 관점으로 해석된 책을 읽게 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정통을 개혁교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동방정교회와 관련된 책의 손에 꼽을 정도로 없습니다. 1453529, 정교회가 이슬람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멸망당한 후 러시아로 옮겨 가면서 이어지는 러시아 정교회사를 다룬 책은 1991년에 출간된 <러시아 정교회사>가 있을 뿐입니다. 사순절 이야기를 하려다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사순절은 중세 교회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순절은 교회의 가장 큰 절기인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초대교회로부터 지켜온 전통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은 분명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순절 기간과 부활 주일은 예수님께서 명령에 대한 교회의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이 완전히 정착하기까지는 3세기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전 초대교회는 파스카 논쟁을 통해 부활 주일을 언제 지켜야 할 것인가를 논했습니다. 파스카는 유월절을 말하며, 예수님의 고난을 유월절의 사건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결국 니케아 공의회는 춘분이 지난 후 보름 후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합의하기에 이릅니다. 부활절이 정해지면 그날을 기점으로 앞으로 40일 동안 사순절로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순절은 타락한 중세 교회가 만들거나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든 절기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의해 교회가 응답한 교회의 절기입니다.

 

이 책은 사순절에서 오순절까지 이어지는 기도 노트입니다. 32일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사순절이 시작되고, 411일부터 16일까지 고난주간, 65일 성경강림 주일까지 이어집니다. 비아의 뛰어난 편집 능력과 간결한 디자인은 읽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친숙함을 선물합니다. 성공회 성서정과를 따라 본문을 제시하고, 묵사의 글로 인도합니다. 묵상의 글은 본문을 가장 잘 표현한 기도문과 묵상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사순 기간, 탐욕을 섬기던 우리의 습관을 벗고 야위고, 가난해지며, 잠잠한 가운데 당신을 알게 하소서. 평화의 왕이여, 당신의 불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교회 안에서 형제를 존중하지 않는 이는 그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행동하고, 고난과 궁핍에 빠진 동료를 생각하지 않는 이는 바로 그 사람 안에서 멸시당하시고 계신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을 빚으실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흘러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고난과 신앙으로 곰삭힌 언어는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깊은 신앙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더듬지 않으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혼자 읽고 묵상해도 좋고, 함께 나누어도 좋습니다. 사순절을 함께할 믿음의 동역자가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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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더디 온다 -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 사자와어린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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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는 영혼의 샘물이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유토피아를 형성하려던 인류의 계획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하지만 과학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문화를 만들어 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을 불가피하게 요구했다. 한때 피곤한 도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사찰에 들어가 심신을 가꾸는 템플스테이가 유행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수년 전부터 특이한 한국만의 명상이 시작되었는데 멍 때리기라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과도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면도 적지 않다. 방법은 간단하다.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몇 분에서 몇 시간을 있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과 장소에 따라서 불멍’ ‘숲멍’ ‘물멍으로 불려진다. 멍 때리기는 특정한 형식이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적자생존의 환경이 요구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생각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도피 또는 회피 일 수 있지만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하기에 회복을 위한 잠깐의 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회사를 가르쳐왔던 이덕주 교수는 은퇴 후 칩거(蟄居)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초대교회 교부들에게 주목한다. 교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도심에서 활동하면서 말씀을 강해하고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통을 세워나가 일반 교부(Church Father)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가 홀로 살아가는 사막 교부(Desert Father)들이 있다. 터툴리아누스나 크리소스토무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도심의 교부들이다. 사막 교부들은 안토니우스와 압바스 아르세니우스, 압바스 포에멘, 압바스 마카리우스 등이 있다. 여기서 압바스는 아빠를 뜻하는 존칭어이다. 사막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이들은 영적인 아버지를 압바, 어머니를 암마로 불렀다. 남성을 교부로 부르며 여성을 교모로 부른다.

 

그런데 사막 교부들은 왜 생겨난 것일까? 3세기부터 5세기까지를 사막 교부들이 활동한 시기로 본다. 이 시기는 교회가 내외적으로 파란만장한 시기이다. 내부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들끓으면서 올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치열한 교리 전쟁이 일어났고, 외부적으론 로마의 핍박이 몰려 있는 시기다. 콘스탄티노스 1세기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박해를 벗어나 주류 종교로 인정받는 과정이 이 시기이다.

 

하지만 사막 교부는 단순히 핍박을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그들의 시기가 5세기까지 이어진 것을 볼 때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에 자리하고 박해받는 자리에 있을 때도 사막 교부들은 사회로 돌아오지 않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 교부들을 찾아갔다. 이러한 상황들은 사막교부들이 기존의 신앙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 때문임을 보여준다. 분주하고 어지러운 삶을 떠나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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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화해 - 급진적 종교 개혁파의 관점에서 본
낸시 머피 지음, 김기현.반성수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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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과학은 신학을 더 이상 주인으로 모시지도 않고, 신학도 과학을 노예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은 신학을 무시하고, 신학은 과학을 적대시한다. 21세기 안에서 신학과 과학은 철로처럼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는듯하다. 서로 멀리하면서도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애증(愛憎)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해디엔딩이 될 것인지 막장이 될 것인지를 두고 볼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신학과 과학의 화해를 화두로 삼았다. 하지만 이 주제는 굳이 낸시 머피가 아니더라도 과학자 출신의 신학자들이 몇이 있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알래스터 맥그라스가 있으며, 국내에서도 김기석 교수의 <신학자의 과학 산책>이나 장회익 교수의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 등은 각자의 관점으로 신학과 과학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저술된 책들이다. 수년 전부터 왕성한 활동한 우종학 교수는 신앙을 가진 과학자로서 신학과 과학을 화해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다. 2014년에 저술한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비롯해 <과학시대의 도전과 응답> 등은 이러한 시도들의 유용한 저술들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최근 서적은 비아에서 출간된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이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로서 활동했던 존 폴킹혼이 신학을 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관점에서 신학과 과학을 접목시킨 것이다.

 

저자는 어떤 관점으로 과학을 바라보며, 화해시키고자 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장은 1장으로, 이곳에서 앞으로 전개될 신학과 과학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제시된다. 학문의 방법론만 보자면 과학과 신학은 서로 닮아 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여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방식이다. 신학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1장에서 이것을 계층 모델(hierarchical model)로 제시한다.

 

가장 아래에는 물리학이 존재한다. 그 위는 화학이, 그 위는 생물학이, 그다음은 심리학이 자리한다. 가장 상층부는 사회학이 차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어느 정도 이해에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최근 학자들은 이러한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거나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피력한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으로 보게 되면 결국 인간은 화학반응으로 밖에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이해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인간 행위를 전적으로 화학적으로 환원할 수 있고 화학은 물리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물리학의 모든 법칙이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되고, 인간의 자유 의지는 한탄 환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31)

 

이러한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창발적 실재론등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것을 비환원적 물리주의부른다. 계층 간의 분명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최소 물질 단위인 원자(최근은 쿼크로 본다)만을 실재로 보는 것과 다양한 분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책상이나 나무 등도 고려야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동일한 원자와 분자를 가진 물질이 왜 전혀 다른 종이 되기도 하는 걸까? 오직 실재를 원자로만 이해하려는 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생화학자들은 유기체 안에서의 화학 반응은 항상 동일하지 않으며, ‘생태학은 환경이 다르면 유기체들이 다르게 작동’(33)하여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저자는 과학 계층의 최상에 신학을 자리 시킨다. 심지어 우주론보다 더 위에 둔다. 신학을 종교 또는 신앙으로 바꾸었다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여튼 결국 모든 과학 이론은 종교의 문제, 즉 실재하는 것들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2장인 과학으로서의 신학으로 끌고 간다. 이후 전개되는 주장들은 신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과학과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끌고 간다. 저자는 메노나이트답게 4장 영혼의 문제를 다루면서 한 형태의 교리로 제한시키지 않고 내버려 두는 동시에 몸의 부활을 견지한다

 

마지막 6장인 급진적 종교 신학과 사회 과학은 저자의 신학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짧은 글 안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으나 칭의론적으로 접근하는 개혁신학과 다르게 메노나이트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에 무게 중심을 둔다. 결론이 약간 모호하지만 저자는 결국 과학은 신학과 서로 공조하여 사회의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공역자인 김기현 목사의 역자 후기는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으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책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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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365 - 쉬지 않는 기도로 이어가는 말씀 묵상 김석년 쉬지 않는 기도 시리즈
김석년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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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365

김석년 / 샘솟는기쁨

 

곧 임인년(壬寅年)이 밝아온다. 특히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하라 한다. 임인년은 육십 간지의 서른 아홉 번째 해이다.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역사관을 믿는 필자로서는 검은 호랑이의 해라는 특별함을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는 드려야 한다. 좀처럼 새해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필자지만 내년은 약간의 변화를 주고 계획을 세울 생각이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독서를 다시 회복할 생각이다. 또 하나는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할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매일 기도 노트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에 기도할 생각이다.

 

오늘 김석년 목사의 신간 <동행 365>를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다. 김석년 목사는 탄탄한 신학적 바탕과 깊은 영성을 겸비한 목사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영성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목회 현장 속에서 살아낸 치열함이 묻어있다. 짧은 묵상 글은 어떨까? 묵상 자의 입장에서 묵상 글을 읽어 나갔다. 매일 읽어야 할 분량은 4~500자에 불과하지만 울림이 크다.

 

하나님과의 사귐에 기도보다 더 좋은 통로는 없다. 기도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쌓일수록 친밀감이 깊어지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먼저 원리부터 배워야 한다. 원리를 알면 쉽고 재미있다.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분주한 일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하나님의 시선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시 기도에 항시 기도를 더해야 한다.”

 

김석년 목사의 묵상은 한 올 한 올 엮은 천과 같다. 하루의 읽을 분량은 2분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글이 필사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필사의 충동은 입으로 새기고 손으로 한 더 새기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물론 때때로 선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자백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긍휼을 구해야 한다.”

 

마음을 만지는 글이다. 저자는 단죄하지 않지만 용납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젊은 장수는 피를 흘려 승리를 쟁취한다. 하지만 노련한 장수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한다. 김석년 목사의 글은 노련한 장수를 닮았다.

 

책은 전체적으로 기도라는 주제로 관통한다. 그런 점에서 다른 묵상 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일까? 부드러우나 날카롭고, 감동적이나 묵직하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p.25 - P25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의 무지, 허무, 빈곤,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 나를 알아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보게 된다. - P27

값진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값진 인생을 살아야 한다. 값진 인생이란,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 농부처럼 기뻐하며 주님께 투신하는 것이다 - P33

깨어있는 사람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사건에서, 사물에서, 계절에서, 시대에서 세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분별한다. - P77

먼저 의도적인 묵상, 정시에 하는 꾸준한 묵상이 훈련되어야 비로소 어떤 것 앞에서도 즉흥적으로 묵상할 수 있게 된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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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김영웅 지음 / 선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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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풀어 나가는 큰 기둥은 센트럴 도그마이다. 센트럴 도그마는 유전정보의 방향이 DNA에서 RNA, RNA에서 단백질로 진행된다는 원리이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면 수정란이 된다. 수정란은 줄기세포로 이후 모든 분열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세포의 시작 세포이다. 이후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분화되는 체세포가 된다. 수정을 이루어지는 생색 세포는 증식이 목적인 체세포와 다르게 유전정보 전달’(28)이 목적이다. 체세포가 한 번의 분열로 두 개의 세포가 만들어지는 반면 생식 세포의 분열은 하나의 세포가 두 번의 분열을 거쳐 네 개의 세포를 만들어 낸다.’(29)


저자는 세포 분열의 특징을 통해 표도르의 네 아들의 성향을 비교한다. 표도르의 성향은 어떤 아들에게 가장 많이 전달되었을까? 물론 답은 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소설 안에서 나타난 아들들의 특징을 면밀하게 훑어 나간다. 흥미롭게도 표도르를 DNA’와 더불어 광대 DNA’ ‘호색 DNA’ ‘무정’ ‘DNA’로 분류한다. 이러한 DNA가 모든 아이들에게 전달될까? 하지만 DNA 복제 오류가 발생한다. 하지만 오류는 절대 크지 않다. 세포들은 가공할 만큼의 정화도’(65)를 유지한다. 잘 전달된 정보는 아버지와 아들이 닮게 한다. 난해한 생물학 용어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을 잘 안다. 외모뿐 아니라 심지어 성격까지도.


250쪽 분량의 작은 책인데도 읽고 나면 한라산 백록담 앞에 서 있는 듯한 웅장함을 갖게 한다. 생물학의 세계에 잠시 머물다 온 느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 읽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든다. 내년에는 중단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다시 읽어야겠다. 생물학자의 관점으로 읽은 뜻밖의 선물을 앞으로 필자의 성경 읽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행복한 느낌이 든다. 올해가 가기 전 이 책을 읽는다면 새해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는지도 모르겠다. 막판에 코로나 이야기가 한 부분만 들어가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필자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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