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왕녀 신일숙 환상전집
신일숙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도대체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일숙의 단편 "라이언의 왕녀"가 오빠의 방 책장에 끼워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렸을 때부터 순정만화는 내 취향이 아닌지라 순정만화를 읽고자란 기억이 전혀 없지만 "만화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집의 자식답게, "만화책"이라면 일단 읽는다.

 

"신일숙"이 누구고, "라이언의 왕녀"가 애초에 어떤 내용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이것은 만화책이었고 만화책이면 응당 내가 읽어야하는 것이기에, 책을 들고 바로 읽었다.

 

유럽, 아마도 중세시대인 것으로 예상이 되는 시대상황.

 

그 당시의 왕족이라면 겪어야 하는 비련의 사랑을 그린 라이언의 왕녀.

 

우와. 이거 정말 내 취향이 아닌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집중해서 읽었다. 이것은 만화책이니까.

 

그 때 당시의 왕족의 결합과 귀족의 결합에 있어 사랑이 어디있고 믿음이 어디있었겠느냐.

- 권력을 위하여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계였을텐데.

 

도대체 왕이 누가 되건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 왕이 어떤 사람이건간에 그 땅에 살고 있는 왕족과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힘든 나날이었을텐데.

 

옛날 순정만화의 그림체가 매우 정감갔고, 오랜만에 만화책을 누워서 읽었다는 만족감.

-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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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문명텍스트 20
리처드 어도스 외 엮음, 김주관 옮김 / 한길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시대의 세계화는 유럽과 미국의 아래 모든 문화가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작고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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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문명텍스트 20
리처드 어도스 외 엮음, 김주관 옮김 / 한길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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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래동화를 모아둔 트릭스터 이야기.

 

사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우화인데다, U.S.A.의 헐리웃이나 유럽의 동화처럼 한국에 자주 소개되지 않는 내용이다보니 엄청 낯설다.

 

내가 아무리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500페이지에 달하는 낯선 동화를 끊지않고 읽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특유의 은유와 비유도 많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신경쓰지 않으면 없어질 문화이기에, 누구 하나라도 알고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뿐만 아니라, 유럽인이 점령하여 아직도 다스리고 있는 지역(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하여 호주, 뉴질랜드 등)의 원주민은 언제나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유럽인의 지배 아래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원주민의 삶과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작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이런 작은 흔적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엮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는 우리가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알아야 하기에 꼭 읽어야 한다.

 

유럽의 문화 지배 아래에 모든 문화가 통일 되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라, 작고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 세계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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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줄 소년 지만지 희곡선집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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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다는 것과 쓰다는 것은 언제나 같은 사실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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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줄 소년 지만지 희곡선집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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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 '맨 끝줄 소년'을 본게 언제였지?

- 내가 인터파크에 예매한 날짜, 공연 후기를 쓴 날자를 확인해본다.

 

아. 11월 22일. 후기는 공연을 보고 이틀 뒤에 썼구나.

 

그 동안 서울연극센터 자료실에 책이 없어서 못 읽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다음날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대학로에 나갔다가 책을 확인하고 냉큼 빌려 읽었다.

- 사실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The Crucible'을 읽고싶어 서울연극센터에 책을 찾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시련The Crucible'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귓가에 예술의 전당의 자유소극장에서 보았던 연극​ '맨 끝줄 소년' 출연 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르만? 후아나? 클라우디오? 라파? 에스테르?

 

귓가에서 출연 배우가 너무나 선명하고 자세하게 희곡집을 읊어주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나타난 것은 무대위의 연극 장면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브, 씨네큐브에서 보았던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였다.

 

희곡 '맨 끝 줄 소년'의 주인공은 클라우디오지만 서술자는 헤르만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기에 클라우디오가 쓴 글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상상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 세가지가 합쳐진 결과인지 알 수 없었다.

- 초반에는 분명히 사실을 그대로 쓴 글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실과 거짓, 그리고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고 감정의 변화도 낯설게 변질되어 있었다.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희곡 '맨 끝 줄 소년'과 매우 다르면서,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작가 지망생 혹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어떤 대상을 보고 영감을 느껴 글을 쓰며,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그 글의 주인공은 글을 싫어한다는 것.

 

단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은 글쓰는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이 되어서, 좀 더 편한 구석이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의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니, 애매한 '맨 끝 줄 소년'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을 주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그 글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와 '맨 끝 줄 소년'의 주인공은 모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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