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넘어갈뻔했다. 근데 내가 알라딘에 담아둔 책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토대로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예매를 하였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라는 제목보다는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라는 원제를 사용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클로이 모레츠가 맡은 역할인 카메론은 청소년 레즈비언이다. 같이 파티에 갔던 남성이 있어서 그냥 '남자사람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은 '공식적인 남성 애인'이었다. 카메론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 애인과 카섹스를 하다가 걸려서 '성소수자 교화 기독교 학교'에 가게 되는데, 이 부분부터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전부터 사회통념 자체가 캐머런에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캐머런은 남성 애인과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어색해하였다. 남성 애인과 있을 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는데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카섹스 이후에 캐머런과 함께 있던 여성은 그냥 그 학교에 남아있는데, 캐머런 만 '성소수자 교화 기독교 학교'에 보내진 것도 짜증이 났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을 것 같지만 영화만 보았을 때는 매우 불쾌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성소수자 교화 기독교 학교'에서 LGBT 청소년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여 성 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미국은 아동/청소년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가 강해서 그런지 체벌 같은 폭력은 없었다. 체벌보다는 원칙, 여성성/남성성을 더 중시하는 태도, 교리에 입각한 논리로 '정서적 학대'(이 단어는 영화에서 캐머런이 사용하는 단어이다.)를 사용한다. LGBT 적인 행동은 내면의 문제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며 LGBT라는 보이는 빙산(문제행동)의 원인을 적어보라고 시킨다. 이런 것을 적으라고 할 때마다 (내 관점에서는) 청소년이 스스로 자기혐오를 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동성에 대해 사랑을 느끼는 것이 청소년기의 호기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LGBT 자체를 문제라고 보고 너는 지금 문제행동을 하고 있으니 고쳐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폭력 아닌가? 심지어 카메론 보고는 이름 자체가 매우 남성적이라고 했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니 도대체가 왜 유럽식 이름은 '남성적인 이름'과 '여성적인 이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도 a로 끝나면 무조건 여성의 이름이고 o로 끝나면 무조건 남성의 이름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곳에 온 청소년의 제일 큰 문제는 성 정체성이 아니라 청소년의 가정에서 이 사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이크는 내셔널 아메리칸(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이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 후 정치에 입문하면서 그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샤샤 레인의 캐릭터 또한 그녀의 어머니가 기독교인과 재혼을 한 뒤에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재혼 남성'은 그녀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아 집에 그녀가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면도칼로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자해를 한 마이크의 룸메이트는 '연약하다.'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거부당했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우리 집에 약한 사람은 필요 없다.'라는 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이슈의 영화나 책을 읽을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자신이 LGBT가 아닌가 혼란스러운 청소년은 그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는 청소년보다 자살률이 3배가 더 높다는 통계를 여러 번 읽었다. LGBT는 문제가 아니다. LGBT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꾸 고치려고 드는 사람 때문에 청소년이 자살시도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어떤 사람이건 죽지 않고 살아남길 바란다. 카메론과 그의 친구들이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살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은 것처럼 LGBT 청소년이 죽지 않고,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
원작 소설은 조만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