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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
리처드 루트위치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20년 5월
평점 :
연암서가에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곤충 포함)의 생태와 문화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있다. 나는 현재 '돼지' 하나만을 읽었는데 현재 벌, 고양이, 개까지 출시되었다. 희망사항은 현재까지 출간된 책을 모두 다 읽고, 연암서가에서 다양한 종에 대해서 책을 출간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에 대한 책은 출간이 꽤 많이 되는 편이지만 그 2개의 종을 제외하고는 학술적인 책이 많이 출간되지는 않는다. 물론 말, 돌고래, 침팬지에 대한 학술서나 동물 연구로 밝혀진 책이 출간되고 있는 편이기는 하나 나에게는 아직 모자르다고 생각된다.
돼지의 생태, 그리고 돼지가 인간역사에서 어떠한 문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은 거의 이게 처음인 것 같았다. 보통 돼지에 관련된 책은 '돼지를 사용한 요리법'에 대한 것이거나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처럼 동물권관련 서적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전히 돼지에 대한 책이 나와서 고맙다.
동물권에 대한 책도 읽지만 동물의 생태나 인간 역사에 동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책도 최대한 읽으려고 하는 이유는 '문화적으로 동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라는 문제가 그 동물에 대한 권리에 대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의 경우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반려동물이라는 자리를 쉽게 획득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이 동물권에 대하여 처음 접할 때, 개의 영역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식용으로 많이 접하는 돼지나 소, 실험동물로 이용되는 쥐나 토끼의 입장에서 동물권을 접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돼지, 소, 쥐, 토끼 등의 동물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보다 많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돼지의 경우 인간과 아예 종이 다름에도 유전적으로 92%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식료품을 제외하고라도 의약품 제공도 타동물에 비하여 많은 편이다. 부신, 창자, 난소 등은 호르몬제로 많이 사용되며 돼지의 피부는 제약이나 화상 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며 돼지의 심장판막으로 심장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돼지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부산물은 식료품으로도 사용되지만 의약품으로도 사용되는 실정이기에 인간은 돼지에게 진 빛이 매우 많다. 그저 모르고 있을 뿐.
이 책은 저자가 유럽인이기에 유럽인의 입장에서 인간 문화에서의 돼지의 역할에 대해 저술하였으므로 아시아 지역에서 돼지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새롭다고 느껴졌던 것은 아시아에서는 소를 매우 친근한 동물로 여기며 가끔은 가축 중에서 개를 제외하고 제2의 반려동물 같은 이미지가 있다면 유럽에서는 돼지가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문화권의 차이 같은데 아시아지역에서는 논농사를 지을 때 소를 훨씬 많이 사용했기에 그 가치가 더 높았던 것에 비하여 유럽에서는 소는 귀족/부농이 키우는 동물이었으며 오히려 돼지가 빈농에게는 더 친숙한 동물이었다. 돼지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으며 돼지를 키움으로써 농사와 겨울철 먹거리 해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를 개처럼 훈련시켜 사냥을 할 때 이용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니 확실히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적 차이를 돼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동물권으로서 돼지를 바라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돼지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이 생겼기에 동물권 활동가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돼지는 먹는 식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비동물권 인간에게 설명할꺼리가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