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엄마 맞아? (반양장) - 웃기는 연극 움직씨 만화방 1
앨리슨 벡델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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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당신 엄마 맞아?'는 '펀홈' 이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간 된 앨리슨 벡델의 작품이다. 2018년 한국에서 출간되고 2020년 한국에서 뮤지컬까지 올라갔던 펀홈은 상당히 많은 레즈비언과 페미니즘 활동가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뮤지컬 '펀홈'은 코로나와 여러 이유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무대 위에서 내려가야 했던 것은 아쉽다.

'펀홈'이 아버지와 앨리슨 벡델의 관계와 기억이었다면 '당신 엄마 맞아?'는 어머니와 앨리슨 벡델의 관계의 기억이다. 게이였던 아버지의 자살로 인하여 앨리슨 벡델은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더 이상 할 수 없었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어머니와 앨리슨 벡델의 관계는 아직까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함께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서로 선택한 적은 없지만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는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이 있다. 우리 자신도 그렇다. 웃기는 연극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사실 전혀 웃기지 않다. 이 작품이 웃길 수 있다면 실제로 코믹해서라기보다는 실제로 나 자신과 가족과의 관계가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노블에 묘사되는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에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앨리슨 벡델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와 닮았기에 상처받았던 부분이 '펀홈'에서 그려졌다면 '당신 엄마 맞아?'에서는 성별은 어머니와 같지만 그 외 많은 부분이 아버지와 닮았던 딸과 어머니와의 관계성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서로가 있기에 더 외롭고 상처받지만 서로가 존재하기에 위로받는 관계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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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가는 곳 -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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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래를 경외하면서 두려워하고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돌고래는 고래보다 더 친근하고 귀여운 존재라고 인식하지만 정작 우리가 돌고래를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은 아쿠아리움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동물학대적인 돌고래 쇼이다. 한국에서 향유고래나 대왕고래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없으며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흰고래인 벨루가를 볼 수 있다. 나는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벨루가를 가둬두는 것을 동물학대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그 어떤 동물이건간에 자유를 박탈하고 특정 공간 내에서만 살게 하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이다.

'고래가 가는 곳'을 많은 시간에 걸쳐서 읽었다. 다른 책을 읽어야만 할 때도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하여 책에 집중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인간은 단순히 포경 그 하나만으로 고래를 괴롭힌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전자파동으로 아직까지 바다에서 살고 있는 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인간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인간의 행동으로 인하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의 과거가 현재의 지구를 공격하고 있으며 인간의 현재가 지구의 미래를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만 같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나 그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입장은 비슷하다. 현재 인간 하나가 지구를 위한답시고 재활용품을 사용하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당장 지구 환경을 깨끗하게 만든하고 보지 않는다는 관점은 옳다. 근데 그 노력이 인간 하나의 노력이 아닌 전인류에 해당하는 78억 7,496만 5,732명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지금당장 육식을 멈춘다면, 지구의 환경은 지금 당장 변화할 수 있다. 해양오염과 관련된 다큐 '씨스피라시'에도 나왔듯이 해양을 오염시키는 것은 일회용 빨대보다 상업적 어업활동으로 인한 산업폐기물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근데 해양동물에게 그리고 지구환경 입장에서 보면 개인이 사용하는 일회용 빨대나 상업적 어업으로 생상되는 산업폐기물이나 똑같은 쓰레기이다. '어치피 바다로 버려지는 일회용 빨대의 수가 산업/상업 폐기물보다 적으니 맘편히 써도 된다.'는 주장은 상당히 비논리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고래가 가는 곳' 후반에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빨대도 결국 플라스틱이다.

'고래가 가는 곳'에 인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고래가 인간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동물을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인지 아니면 '동물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행동을 하고 싶다.'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동물을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으로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스토킹 범죄'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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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 CAST

민준-김도빈, 윤하-한수림, 정우-유태웅, 멀티-장민철


연극 <디어 런드리> 를 마지막 공연 날인 12월 31일에 보게 되었다. Covid-19라는 악재 속에서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하는 일 사이에서 언제나 고민한다. 민준과 윤하는 하고 싶은 일을 쫓아서 서울로 왔지만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때문에 정작 하고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해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줄 위로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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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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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가 쓴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글을 참 부드럽게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V 브라운관에서는 예의바르지만 정확하고 바른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사한 노래의 가사를 곰씹어보면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의 쓰임새를 정확하게 알고 문맥에 맞춰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작사를 만드는 사람 김이나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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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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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기욤 뮈소의 작품이 호감이었던 것은 아니다. 기욤 뮈소는 거의 매년 소설을 한 권씩 출간을 하고 페이지터너(책장 넘기기가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라는 호칭이 있지만 몇몇 작품은 자기 소설의 복제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풀룻이 비슷한 소설이 연속적으로 출간될 때도 있었고, 캐릭터 돌려막기를 한 작품도 꽤 있다. 경찰, 형사, 작가, 의사 같이 특정 직업을 가진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탓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은 활자보다 드라마, 영화와 같은 영상작품과 연극과 뮤지컬 같은 무대작품이 더 어울린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데 최근 조선일보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https://url.kr/eqyvls)를 보면 연극 보는 것을 즐기며 공연장에 자주가는 기욤 뮈소의 개인적인 특징이 글에도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욤 뮈소의 2021년작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2022년 1월이 되어서야 한국어 번역출간이 되엇는데 프랑스어 출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로 바로 번역출간 된 것을 보면 한국 내에서 기욤 뮈소는 역시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이다.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읽으면서도 역시나 영상화 하기에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을 읽을 때와는 달리 프랑스 파리에서 2주간 일상여행자처럼 살고 매일 걸어다녔던 탓에 센 강 주변의 풍경과 지명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터라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글로 묘사된 장면을 독자의 머릿 속에 영상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은 기욤 뮈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센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젊은 여인의 사체를 시체공시소 직원이 데스마스크(죽은 자의 안명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현대로 끌고와 하나의 스릴러 소설로 만든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복합적인 슬픔이 담겨 있다. 사건 자체가 하나의 광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어떤 종교가 한 집단을 광기로 몰아넣는다면 미친 범죄가 되는 사건은 꽤 많은데 소설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가 종교의 광기를 보여주는 요소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광기를 보여주는 신흥 종교는 너무나 차고 넘쳤기에 꼭 특정 종교를 겨냥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 종교단체의 광기서린 집회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기욤 뮈소는 확실하게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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