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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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은 영화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였고 시나리오 작가였던 제임스 루퍼스 에이지의 자전적 소설이다. 제임스 루퍼스 에이지가 1955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데이비드 맥도웰이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았던 해당 원고를 발견하고 편집하여 출간하였다고 한다. 가족의 죽음은 출간이 되고 난 뒤 바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1960년대에는 '집으로 가는 길(All the Way Home)'이라는 제목으로 연극과 연화로 각색되어 무대극과 영화로 올려졌다고 한다. 구글에서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상영이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가족의 죽음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자전적 에세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어오는 책이었다.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6-8세 정도의 남자 아이 루퍼스의 이름은 제임스 루퍼스 에이지의 미들네임이다. 어렸을 적 갑작스레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가족의 상황과 자신의 느낌을 에세이 형식으로 쓰다가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고 그 내용이 편집된 것이니 해당 책에서 작가의 의도가 어디까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 장면, 아직 어린 두 아이에게 아버지에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슬펐던 부분은 루퍼스가 고모할머니 한나 린치에게 가지고 싶었던 챙이 있는 체크무늬 모자를 선물로 사주는 장면이었다. 루퍼스는 아버지처럼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싶어했다. 아마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함께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가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하고 전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 기대하며 그 모자를 골랐을 것인데, 그 이후로 아버지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니 정말 슬펐을 것 같았다.

우리는 꼭 죽음이 아닐지라도 언제나 예기치 못 한 순간에 가까운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게 되고 상처받는다. 충격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은 영원이다. 조금 나아지거나 익숙해 질 수 있겠지만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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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OWN XXX
Alfie Lee 지음 / Bit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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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면서 작가 자신이 많이 투영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이자 퀴어 당사자이고 페미니스트인 작가의 어떤 부분이 만화로 보여진 것 같았다. UR OWN XXX를 보면서 환절기(그래픽노블, 책관련 리뷰 https://blog.naver.com/sijifs/221354800285)도 생각났다. 환절기가 한국의 게이 남성의 이야기였다면 UR OWN XXX은 한국의 레즈비언 여성의 이야기였고 같은 LGBTQIA+ 바운더리 안에 포함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라서 대비가 되었다. 2개 이상의 소수성을 가진 사람은 ×(곱하기)가 아닌 제곱으로 차별을 받게 된다. UR OWN XXX에서 등장인물이 '여성'만 나오게 된 것은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앞으로 내세운 것이었지만 아마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단편집이라 하였지만 '어쩌다보니'는 한 커플의 이야기를 긴 시간을 가지고 9편으로 만들어 그렸다. 이런 내용이 이런 호흡으로 더 오랫동안 가면 힘들겠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가 하나 나왔다는 점은 좋았다. UR OWN XXX의 작가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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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 a paris 2
아라키 조 지음, 카지사 오사무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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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바텐더는 여러 의미에서 새로우며 다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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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는 미국 소설가 윌리엄 린지 그래셤의 원작 소설이 있으며 1946년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원작 소설의 배경이 1940년대 카니발 유랑극단인 만큼 영화에서도 세계 2차대전 직전의 어둡고 적막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스탠던 칼라일은 브래들리 쿠퍼가 맡았으며 심리학자는 케이트 블란쳇이 스탠던의 스승이었던 지나는 토니 콜렛, 스탠이 사랑했고 스탠을 사랑했던 몰리는 루니 마라가 맡았다.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 배우와 연기력이 나름 탄탄하고 주인공 역할에 잘 어울리는 브랜들리 쿠퍼의 합은 좋았으나 기괴함이 아쉬운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르의 영화는 기괴함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예상할 수 있으나 예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권리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인데,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그런 특성이 전작보다 덜 보인다고 생각되었다. 원작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기에 원작 소설의 한계인지 아니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매력이 빠져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이 심령술에 의지하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서인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매우 단편적으로 그려진 느낌도 있었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죄를 치유할 수 없기에 스탠에게 접근한 에즈라 캐릭터가 엄청나게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스탠 역시 비슷한 부류의 쓰레기라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고 공감되지 않았기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몰리라는 캐릭터가 생각보다 단편적이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던 심리학자의 역할이 보다 비중이었거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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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정치를 꿈꾸다 - 식민지, 전쟁, 분단시대의 극장예술
이상우 지음 / 테오리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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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책이 '재미가 있냐, 없냐' 아니면 '흥미롭고 집중이 잘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고만 따진다면 '재미가 없고, 그닥 잘 읽힐 정도로 집중이 잘 되는 책은 아니다.'라고 말 할수 있다. 그런데 '극장, 정치를 꿈꾸다'라는 책을 왜 읽었는냐 묻는다면 재미가 없고 집중이 잘 되지 않더라고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고 싶다.

'극장, 정치를 꿈꾸다.'는 현대의 연극 이전인 근대연극의 역사를 다른 일종의 무대극에 대한 역사 기술서이다. 그러다보니 연극이나 뮤지컬을 많이 보았던 나도 접하기 힘들었던 일제강점기와 그 직후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이나 그 주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 같은 희곡을 가지고 일본에서 무대극을 올릴 때와 한국에서 무대극을 올릴 때, 관객의 심리적 요인에 맞추거나 정치적인 접근으로 출연이나 연출을 조금 바꾸어서 올린다는 것도 새로운 관점이고 설정이었다.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하여 여성의 정치적 발언이 발현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의 여성의 연극참여에 대한 부분도 나왔는데, 두 나라의 역사적 궤가 뗄 수 없이 단단하게 엮어있듯이 한국과 일본의 페미니즘 운동도 의외의 부분에서 상당히 단단하게 엮어있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같은 희곡의 여성 주인공을 맡았던 한 · 일 여성 배우의 삶의 의미도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한국에서는 일본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이름이 세이토와 발음이 같은 여성주의 단체 '청탑회'가 만들어졌다. 그 당시 한국와 일본에서는 근대극의 선구자 헨리크 입센이 '노라이즘'을 탄생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인 '인형의 집'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급진적인 사고였으며, 그 주최가 되었던 주연 배우는 상당히 과격한 페미니즘 여성이었다.

모든 예술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나 모든 예술은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예술은 정치인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하지만 금기와 불온의 역사를 쓸 때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정치적으로 억압되기도 하지만 예술로서 추상적이면서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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