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헬멧

2017. 12. 19. - 2018. 3. 4.

2017. 12. 29. Cast 정원도 손지윤 양소민 이호영 김도빈

아트원씨어터 3관

 

 

피곤하고 긴 하루의 끝. 연극 더 헬멧.
Room. Seoul. Big.- Room. Aleppo. Big.

독재의 한국, 서울과 전쟁의 시리아, 알레포.
어차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독재정권이 생긴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살기 위해.

서울에서는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를 위해 화염병을 던졌고 어떤 사람은 강제로,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싶어서 백골단이 되었다.
알레포에서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 한복판에서 살고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잃어서인지 아니면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날이 서 있었고 모두 괜찮지 않아 보였다.
서울도 알레포도 모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서울의 사람은 거짓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어쩔 때는 그냥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투쟁을 하거나 백골단처럼 보이지 않았다. 학생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군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2017년 현재. 전두환도 노태우도 살아있고 백골단은 다른 형태로 남아있다. 정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이용했다. 2017년의 투쟁은 1987년과 1991년의 투쟁과 맞닿아있지만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투쟁의 이미지만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알레포는 힘겨웠다. 죽은 가족을 놓지 못하는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모두 힘겨워 보였다. 그 캐릭터가 화이트 헬멧이건 기자이건 군인이건 간에.

백골단, 화이트 헬멧, 시리아의 정부군. 이 셋 모두 옳지 않다. 틀렸다. 다른게 아니고 틀렸다.
어떤 종류의 화, 복수, 전쟁은 모두 틀렸다. 전쟁과 복수의 한복판에서 용서와 웃음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죽음과 고통이 익숙해서인지 이런 연극을 보아도 쉽게 눈물이 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질 뿐이다. 내 주변에 있는 관객이 많이 울었었다. 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왜 우는 걸까? 평소에 슬픈 일이 없는 걸까? 아니면 죽음과 고통이 드물었던 걸까? 누구 때문에 우는 건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른이 되고 싶은 게 꿈인 아이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죽은 아이 대신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화이트 헬멧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축구공이 아닌 곰인형을 좋아했던 아이를 사랑했고 그저 평범하게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정부군 때문에? 근데, 제일 힘들었던 건 아이를 잃었던 화이트 헬멧이 아니라 친구 옆에서 그를 지지하고 끝까지 희망을 주려도 했던 다른 사람 아니었을까?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웃고 있었던 사람.

죽음과 고통 속에서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을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웃고 있던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웃음으로 고통을 감추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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