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2016.10.13 ~ 2016.10.30


출연

홍성춘, 강진휘, 남동진, 이종윤, 유성진, 신용진, 한상훈, 현은영, 김애진, 박시유, 반인환, 홍현택, 서유덕


미마지 아트센터 물빛극장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



연극이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나는 2가지 의문이 있었다.

1. 2명의 증인이 했던 정확한 증언을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2. 왜 유죄와 무죄, 죽음과 삶.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연극은 3일 간의 재판 직후, 12명의 배심원이 범인의 유죄와 무죄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건 내용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아들"은 무죄인가? 아니면 유죄인가?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명제 하나만 보았을 때는 유죄였다.

12명의 배심원이 재판에서 "들었다."고 이야기한 "증언"에서는 분명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문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명제가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냐였다.


11명은 사실이라고 생각했고, 1명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11명은 소년이 범인이며, 유죄라고 했다.

1명은 무죄라고 이야기했다. 좀 더 정확하게 따지자면 소년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보았다.

- 그 이유는 법정에서 나왔던 증언과 증거자료에 대한 변호사의 변호가 너무 허술했다는 것이었고,

- 오히려 증언과 증거자료를 토대로 "아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된다.


1명이서 11명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좀 더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재판과는 다른 추론이 생겼고, 증인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이 생겼다.

그리고 "아들"은 무죄가 된다.


나의 의문. 1. 2명의 증인이 했던 정확한 증언을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2. 왜 유죄와 무죄, 죽음과 삶.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일단 1번.

재판에서는 2명의 증인이 나왔다고 한다.

중풍에 걸려서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든 할아버지 한 명과 살인장소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성.

이 2명의 사람은 정말 정확하게 진술하고 증언한다.

"12시", "12시 10분", "15초"라는 정확한 시간 표현, "6칸의 기차가 지나가고, 마지막 2칸이 지나갈 때" 살인장면을 목격했다.라는 증언.

->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아마 12시쯤이라거나 잠이들 때쯤이라는 표현이었으면 더 신뢰가 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정확한 표현에 오히려 두 명의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근데 경찰, 검찰, 배심원 모두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번. 도대체 왜! 유죄면 무조건 사형인가? 

"아들"은 이제 겨우 16살이다. 진범일 경우, 살인이라는 큰 죄를 저질렀지만 도대체 왜 무조건 사형이냐는 거다.

-> 아무리 심한 범죄를 저질러도 일정 나이가 지나지 않은 청소년의 경우, 보통 사형까지는 안 가는데.

-> 1957년은 2016년과 조금 달랐나보다.


극이 진행되면서 12명의 배심원이 퍼부는 말과 행동에서 각종 혐오와 차별에 화가 나기도 했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더 한 사람도 많으니까.

- 극에서는 사실 "아들"의 유무죄 판결보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 많은 대화가 있었고 많은 말이 있었다.


그 수많은 대화와 말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노인이 한 말이었다. "나는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소. 존중하오"

단순히 "아들"이 유/무죄를 따지기 전에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무겁고 힘들지만 기억에 남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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