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빛 안갯길

 

2016. 1. 23. - 2. 6.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시대는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영친왕의 약혼녀였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 파혼된 민갑완이 일본의 감시를 피해 상해로 가기 전 부석사에 머물던 약 나흘, 길어야 5일정도의 이야기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서 '조선사 편수회'를 만들고,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한 조선인 이선규와 일본인 역사학자 쓰다 소기치가 부석사에 온다.

시놉시스의 중심에는 민갑완이 있었지만, 내가 본 극의 주제와 민갑완의 개연성은 매우 적어보였다.

오히려 민갑완의 외삼촌인 이기현과 이선규이 초반에 보여주었던 대립과 극의 후반 이선규와 쓰다 소기치가 보여주었던 대립이 더 돋보였다.

과거의 역사의 진실과 거짓 유무보다는 더 커다란 목표를 위하여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는 쓰다 소기치.
명백한 사료와 증거로만 역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극 초반의 이선규.
신화와 설화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찾아야 한다는 이기현.

쓰다 소기치는 일본인으로서 신화와 설화에 서려있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우려 했고, 극 초반의 이선규는 과학적인 사실만을 믿으려고 했다.
- 쓰다 소기치의 대사를 듣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만드려는 국정화 교과서에 대한 우려가 크게 든다.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왈가왈부하는 남성의 대사와는 달리 여성 캐릭터인 민갑완, 석룡, 구미호는 너무 신화적이다.

천년동안 잠이 들어 있다가 일본의 부석사 대탐험으로 인해 잠에서 깬 석룡, 석룡을 기다리며 천년동안 인간이 되는 수행을 했던 구미호
(석룡과 구미호의 추측대로라면) 의상대사의 영혼이 환생한 민갑완은 환생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게 남성 캐릭터가 설전을 벌이며 이야기했던 조선의 정체성과 역사서를 편찬할 때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는 주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억지로 붙여놓은 느낌이었다.

여성 캐릭터와 남성캐릭터가 하였던 이야기가 너무 달라서 조금은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역사서에 대한 생각을 깊게 고민하였던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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