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2014년 이전, 송국현 아저씨

 

너무 오래 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여 수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다음 날인 4월 17일에 송국현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송국현 아저씨는 장애인이었다.

언어 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으로 총 장애 3급 이었다.

국현아저씨가 날 때부터 장애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은 아니었다.

국현아저씨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27년간 살다가 사고로 뇌경색이 와서 장애인이 되었다.

중증 장애인까지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후반의 장애인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부모임이 모두 돌아가신 국현아저씨의 형제자매가 몇 년동안 지원을 하였지만

국현아저씨는 1988~1990년 사이에 장애인거주시설인 음성꽃동네에 시설입소하였다.

 

국현아저씨는 시설 안에서 많이 답답하셨단다.

그래서 시설을 뛰쳐나가 서울로 올라와봤지만 장애를 가진 몸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다.

노숙인 신분으로 다시 음성꽃동네로 재입소하시고, 노숙인 시설에서 장애인 시설로 옮겨가셨다.

(음성꽃동네는 하나의 건물이 아닌 산 하나에 띄엄띄엄 여러 시설이 있다. 그 여러 시설에는 노숙인시설, 성인 장애인시설, 아동 시설이 나누어져 있고, 각 동은 다시 남녀시설로 나뉘어져 있다.)

 

 

이야기 둘.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탈시설-자립생활 운동

 

10년 전부터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탈시설-자립생활이 시작되었다.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분리 배제되어 시설에서 사는 것이 차별이라는 이념"으로 시작 된 운동이다.

이 이념으로 10여년 전부터 (흔히들)장애1급이라고 규정된

(자기 손으로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는)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한다.

중증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 수 있도록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 하고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자립을 할 때 국가에서 사회적 인프라을 지원 할 수 있도록 장애인 자립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을 만들었다.

 

10여년 전에 음성꽃동네에서 배덕민형님이 자립을 하였다.

덕민형님은 자립을 한 뒤, 노들야학에서 공부도 하고 장애인 시민단체 사람과 교류를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도 하고(만날 "우리 이쁜 아내"라며 자랑하신다)

작년에는 푸켓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셔서 밑도끝도 없이 자랑질이시다.

 

이 모습을 보고 음성꽃동네 장애인거주시설에 생활하시던 장애인이 자립을 꿈을 키우시고 지역으로 나오셨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비상근으로 활동하는 윤형님과 박형님

충남으로 자립을 하셨다고 서울로 이사오신 김1형님과 김2형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체험홈 평원재에서 자립을 시작한 이형님

 

시설에서 10년넘게 생활하다가 지역으로 나와 고생도 많았다.

활동보조는 24시간 하루종일 필요한데, 최대한 지원되는 것은 18시간이었다.

(2012년 가을 활동보조 24시간이 필요한 중증여성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 화재로 죽은 사건으로 인하여 서울시에서는 시범적으로 각 구에서 1~2명이 활동보조 24시간을 지원받고 있다.)

한 달에 69만원 받는 수급비로 생활을 하는데 서울에서 70만원이 채 안돼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삶, 대부분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관리하는 시설이 아닌 타 지역 시설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에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에 입주 할 수 없다.

경주나 전주 등 지방에 있는 시설에서 서울로 자립을 원한다면, 자비로 서울에 집을 얻어 생활을 해야 한다.

고단한 서울생활 1년을 버텨낸다면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이라는 곳에 입소할 수 있다.

 

 

 

이야기 셋. 국현아저씨가 자립했다. 돌아가셨다. 죽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13년 10월에 국현아저씨가 성동구에 있는 체험홈으로 자립을 하셨다.

이래저래 운이 좋다고 말 할수도 있으나 그게 아니었다.

 

국현아저씨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였기에

국현아저씨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하루에 20시간, 한 달에 600시간 정도의 활동보조비용을 부담하며 자립생활 적응을 지원하였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장애활동가는 시설에서 지역에 자립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지원에 힘썼다.

 

절대적인 활동보조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국현아저씨의 자립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국민건강공단에 장애등급재판정심사와 활동보조심사를 요청하였지만

국민건강공단 이 썅놈의시키는 국현아저씨의 장애등급을 1급으로 만들어놓지 않았다.

 

이 망할놈의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활동보조를 받으려면 장애1~2급이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서는

활동보조가 필요한 사람에게 장애3급을 이유로 지원도 해주지 않고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으니 1~2급을 주지 않는 나라.

긴급지원이라도 하라니까 3급이라 안 된다고 하고.

1급을 달라니까 안 된단다.

: 근데 국현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국회의원 XXX가 받아놓은 문건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국현아저씨는 1급인데 장애등급심사센터가 잘못 판정 한거란다.

  사람 한 명 죽여놓고 잘 하는 짓이다.

 

국민건강공단에서 장애등급에 관련된 집회를 하고 이틀 뒤에 국현아저씨 집에 불이 나서 돌아가셨다.

일요일이었는데 그 날 따라 같이 교회가시는 분이 장애인콜택시가 늦게 잡히셔서 1시간 정도 늦게 가셨단다.

그 사이 집에 불이 났는데 비장애인이라면 뛰쳐나오고 119에 신고했을 그 시간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언어장애때문에 전화도 할 수 없었던 국현아저씨는

타오르는 불길안에 그대로 계시다 변을 당하셨다.

활동보조 한 명만 옆에 있었어도 조금 다치시기는 했겠지만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을거다.

다음주면 국현아저씨 생일인데.. 그 날 맛있는 케이크도 드시고 선물도 받으셨을거다.

지역에 자립하신지 1년도 채 되지 않으셨는데..

 

이 사람이 장애인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개판이라 그런거다.

매일매일 예산을 핑계로 사회복지 지원을 하려고 하지 않는 놈들 때문이다.

 

 

이 일 때문에 한 달넘게 보건복지부와 싸우고 집회를 했다.

집회를 할 때마가 경찰과 도로 위에서 쌈박질을 했다.

 

이 또라이 경찰은 사람이 죽었다는데 장애인에게 양심도 없는 병신새끼라고 욕을 하더라.

 

아직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계속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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