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는 '통곡하고 싶었지만'의 책소개에 차별과 혐오와 싸운 삶과 생활의 기록이라고 적었다. 나는 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가족의 삶이 차별과 혐오로 점철되지 않기를 바랬다. 하나의 삶이 왜 차별받아야하고 혐오받아야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왜 책소개에 차별, 혐오, 싸운 삶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안다. 아주 잘 안다. 1970-80년대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장애를 바라보는 차별과 혐오라는 시선에 대해 맞서 싸우고 있는 한국의 현실 때문이다. '통곡하고 싶었지만'에서는 그런 부분이 유난스레 표현되지는 않았다. 장애가 있는 둘째가 걱정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둘째때문에 챙기지 못한 첫째가 신경쓰이는 어머니의 마음만 표현이 되어 있었다. 아마 글로 차마 적지 못한 냉대와 시선이 깊은 상처로 남아 기록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 아팠다'로 표현되신게 아니었을까?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며 짧은 서평을 마무리 짓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차별금지법이 성별과 성적지향에 대한 이슈로만 한정지어 생각하고 성적 지향 및 성소수자의 권리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별금지법 채용과정 및 성희롱 등의 측면에 한정되는 좁은 영역의 법안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의 논리가 법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적용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입법 및 제정을 찬성하며,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삶이 한층이라도 덜 고통스럽기를 바란다. 장애 차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연대하고, 손을 맞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