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석가모니가 붙은 고민 내용은 '자기 희생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민 내용 자체가 예수가 석가모니가 맞붙을만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사연자의 고민은 직장 내 야근을 하는 자기희생이 누군가에게는 손해로 다가온다는 내용이었는데, 과연 직장에서 야근을 하는 것이 '자기희생이 맞느냐?'라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일본의 직장 문화가 상당히 권위적이로 상명하복식으로 전달이 된다고 알고있지만, 다른 나라의 기업에서 '일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희생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자신의 일이 많아서 일 처리를 위해 야근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다른 사람의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야근이라면 대신 승진이 빠르다던가 아니면 능력이 있는 팀으로 전환배치 될 수 있으며 야근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야근=자기희생'의 관점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이 옳은 것인가?'라는 관점에서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느껴졌다. 예수는 '사랑의 형태를 지닌 자기희생'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석가모니는 '자기희생은 불행이며, 어떤 존재의 불행으로 다른 존재가 행복해 질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나는 이 두 개의 관점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자기희생'이 사랑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알 수 없다. 자기희생을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으로 희생을 한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위하여 자시희생을 할 수 있으나 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타적인 마음과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 뒤섞인 것이다. 어떤 청년이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행동을 하고 사고로 사망을 하였다면 이는 인류애라는 상당히 이타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일 수 있다. 사연처럼 직장 내에서 일처리를 위하여 야근을 하는 행동이라면 자신의 일자리 보존과 승진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 '자기희생'을 무조건 이타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에 대해 다시 정의하고 토론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