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독서모임의 지정도서라서 읽게 된 책이다. 독서모임 지정도서 모임 후기 겸 책에 대한 리뷰를 한줄 평으로 써보자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기준이 다르기에 각자의 윤리과 도덕도 모두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한다는 것이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뮐러 목사의 '처음 그들이 왔을 때(First They Came)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때문에 출근이 늦어지고 이로 인해 회사에 지각을 하여 불이익을 받거나 누군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하여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옳지않다고 말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피해를 입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전장연의 시위로 인하여 혜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전장연이 이런 조직과 행동을 전혀하지 않았다면 한국 내에 있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는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가 없고, 저상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 당사자는 집에서 나올 수 없으며, 아직 걸을 수 없거나 걸을 수 있더라도 그 방법이 서툰 아동과 영유아와 함께 이동하는 사람과 노화로 인하여 걷는 것이 불편하거나 느려진 사람 또한 이동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다보면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층은 만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Zoom으로 진행된 독서모임에서 가장 대화가 많이 되었던 것은 유전자 조작이었다. 유전자 조작은 하는 것이 비인권적이고 반인류적인 행위일까? 현재 지구를 뒤덮고 있는 현생 인류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지금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나 베이징인의 유전자를 섞어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는 것은 유전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하여 옳은 일인가? 태아가 태어나기 전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장애나 질병이 없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 수나우라 테일러는 아주 싼 값에 자신의 장애를 없애고 비장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알약기 개발되면 먹겠냐는 피터 싱어의 질문에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애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장애인도 많다고 생각한다.'는 답변과 함께 장애인 당사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며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현재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미국 여성 축구 대표팀에 들어간 카슨 피켓(Carson Pickett) 또한 '불완전함은 아름답다'는 문구를 한 팔에 새기고 뛰며, A매치 데뷔전 직후 “한 팔이 없는 것은 개성일 뿐, 장애가 아니다. 축구는 발로 하는 스포츠다. 불완전한 상태지만 내 열정은 완전한 사람들 이상이다”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장애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장애인차별을 하는 것인 아닌가?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위한다며 말을 하지만 사실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 일수도 있다.

절대적인 윤리나 절대적인 도덕은 없다. 윤리와 도덕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나의 생각이 절대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불편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보다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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