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 지음, 김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사르트르. 아니, 실은 문득이 아니지만 문득이어도 상관 없는 사르트르. 철학서를 읽다가 힘에 부쳐 소설집을 집어들었다. 소설집에는 1937년에서 1939년 사이에 쓰인 다섯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읽혀도 무방할 테지만 사르트르는 ˝실존 앞에서의 다섯 개의 비극적인 혹은 희극적인 패배˝라는 공통적 주제로 작품들이 묶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도 중편 분량의 《어느 지도자의 유년 시절》이 가장 빼어나다. `어느 반유대주의자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붙여봄직한 이 소설은 뤼시엥이라는 소년의 뒤틀린 성장담을 다루고 있다. 엘리트 교육 과정을 밟아나가던 프티 부르주아 가문의 상속자 뤼시엥은 자아의 불안과 직면하고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실을 경험한다. 데카당적 투신에서 안전지대를 발견하지 못한 이 소년이 결국 순진하지만 실력 행사자로서의 권력의 편(여기서는 반유대주의적 민족주의자)의 길에서 자신의 견고한 대지를 발견한다는 내용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자신의 권위를 확신한 소년 뤼시엥의 고양감과 위엄 앞에서 우리는 비웃기를 그쳐야할 것만 같은 오싹함을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회의주의의 형제로서의 전체주의, 타자의 동의로서 실체를 갖는 권력, 순진하고 따듯한 우애를 밑바탕으로 하는 민족적 배타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이 모두 세트로 묶여서 작동하는 것과 같이 보이도록 뤼시엥은 우리 앞에 서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학창 시절 사르트르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은 이 소설의 어설픈 모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비평사 (근대 / 현대편) 김현 문학전집 8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판본은 이 책과는 다르다. 1981년도에 출간되었고, `현대편`만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페이지는 훨씬 많다. 알라딘에 앞서 언급한 판본의 책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이 책도 품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만스러운 탐정들 2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읽은 책이 너무 훌륭해서 이 훌륭함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읽게 될 미래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함. 그러나 내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기 시작하면 도저히 그 간절함이 퇴색되고 왜곡되고 결여되는 바람에 도저히 전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만족에 결국 아무런 글도 쓰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회귀하고 마는 소심함. 그 사이를 오가면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쾌락과 불쾌의 핑퐁 게임. 바로 그런 핑퐁 게임의 경험 말이다. 지금 내가 딱 그렇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옮긴이가 후기를 통해 잘 정리해 놓았기에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17세의 작가 지망생 가르시아 마데로가 1975년 11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쓴 일기로, 시와 성(sex)과 현실에 눈을 뜨고 몸을 내맡기는 일종의 통과 의례,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가 주도하는 내장 사실주의라는 해괴한 이름의 전위주의 그룹 가입과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사건들, 문단 권력에 대한 저항, 성매매 여성 루페와 그녀의 기둥서방의 갈등에 얽혀 들어 벨라노와 리마와 함께 내장 사실주의의 선구자인 1920년대의 여성 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멕시코 북부로 떠나는 과정 등을 그리고 있다. 가장 긴 제2부는 벨라노와 리마가 소노라로 떠난 직후인 1976년 1월부터 두 사람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청자에게 자신들이 보고 겪은 바를 증언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멕시코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틀라텔롤코 학살이 일어난 해이자 볼라뇨가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이민 온 해인 1968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근 30년의 세월 동안 벨라노와 리마의 행적, 즉 멕시코, 칠레, 니카라과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물론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아프리카 등에서 남긴 행적이 갖가지 증언을 통해 퍼즐 조각처럼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제3부는 또다시 가르시아 마데로의 일기로 1976년 1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의 일이 적혀 있는데, 대체로 벨라노와 리마가 멕시코 북부에서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터운 분량에 속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뒤 내게는 수많은 말들과 몇 가지의 심상들과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울고 싶은 심정 따위에 사로잡혀 오히려 얼마 간 멍하다고 해도 좋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결국에는 역시나 무슨 말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저 몇 마디 이런 형편없는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건져내 옮겨 놓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에토스와 파토스와 로고스가 환상적으로 버무려진, 지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섹시한, 그야말로 재능의 폭발과 폭발과 폭발의 연속인 이 소설을 혹시나 아직 읽지 않은 당신이 나는 좀 부러울 것 같다고.
나는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을 온전히(하기야 대개의 소설이 그렇기도 하지만 이 경우엔 특히나 더라는 뜻에서) 이해할 수 없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누군가는(실제로 거의 대다수가) 삶을 그저 살아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여 속삭이며 걷지만, 누군가는(실제로 극히 소수만이) 삶을 오로지 존재하기 위해 주어진 비상의 기회로 받아들인다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비가로 전해지리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문 26쪽에서 28쪽 사이의 내용을 편집-발췌.
소설을 위해서라도 대가들의 일갈이 필요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해 왔다. (......) 그렇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는 수백 수천 종의 소설이 쇄를 거듭하여 간행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더 이상 존재의 정복을 추구해 가지 않는다. 실존의 어떤 새로운 면모도 찾아내지 않는다. 단지 이미 이야기되어 있는 것들만을 확인해 줄 따름이다. 이미 한 이야기(해야 하는 이야기)를 확인해 주는 것이 그 소설들이 처한 사회에서의 존재 이유, 영광, 용도인 것이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발견해 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소설의 역사라고 부른 발견의 계승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소설의 죽음이란 허황된 생각이 아니다. 이미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소설이 어떻게 죽게 되는가를 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역사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죽음은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게 이루어지며 어느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2권(787쪽~789쪽)에서 발췌했다.

희극이라는데 웃기지 않다. 촌스럽게.

옛날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위반하고 개혁하고 태우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공론의 장에 들어갔다.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보통 부유하거나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집안 출신이고, 이들이 펜을 잡을 때는 그 지위를 거부하거나 이에 저항한다. 창작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고, 거절하는 일이고, 가끔은 자살하는 일이다. 그것은 가문에 반대하는 길이었다. 오늘날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하층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와 룸펜 프롤레타리아 집안 출신인 경우가 놀랄 만큼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계급 피라미드에서 상승하기 위한 글쓰기를, 즉 아무것도 위반하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하면서 자리를 굳히는 글쓰기를 한다. 그들이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 문인들처럼 아니 거의 예전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교양이 있다.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예전 문인들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훨씬 천박한 사람들이다. 기업가나 조직 폭력배처럼 행동한다.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만 거부한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거나 제일 힘없는 사람 중에서 적을 선택한다. 광기나 격노 때문이라면 모를까 신념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결국 문학판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