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스러운 탐정들 2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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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읽은 책이 너무 훌륭해서 이 훌륭함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읽게 될 미래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함. 그러나 내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기 시작하면 도저히 그 간절함이 퇴색되고 왜곡되고 결여되는 바람에 도저히 전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만족에 결국 아무런 글도 쓰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회귀하고 마는 소심함. 그 사이를 오가면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쾌락과 불쾌의 핑퐁 게임. 바로 그런 핑퐁 게임의 경험 말이다. 지금 내가 딱 그렇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옮긴이가 후기를 통해 잘 정리해 놓았기에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17세의 작가 지망생 가르시아 마데로가 1975년 11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쓴 일기로, 시와 성(sex)과 현실에 눈을 뜨고 몸을 내맡기는 일종의 통과 의례,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가 주도하는 내장 사실주의라는 해괴한 이름의 전위주의 그룹 가입과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사건들, 문단 권력에 대한 저항, 성매매 여성 루페와 그녀의 기둥서방의 갈등에 얽혀 들어 벨라노와 리마와 함께 내장 사실주의의 선구자인 1920년대의 여성 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멕시코 북부로 떠나는 과정 등을 그리고 있다. 가장 긴 제2부는 벨라노와 리마가 소노라로 떠난 직후인 1976년 1월부터 두 사람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청자에게 자신들이 보고 겪은 바를 증언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멕시코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틀라텔롤코 학살이 일어난 해이자 볼라뇨가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이민 온 해인 1968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근 30년의 세월 동안 벨라노와 리마의 행적, 즉 멕시코, 칠레, 니카라과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물론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아프리카 등에서 남긴 행적이 갖가지 증언을 통해 퍼즐 조각처럼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제3부는 또다시 가르시아 마데로의 일기로 1976년 1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의 일이 적혀 있는데, 대체로 벨라노와 리마가 멕시코 북부에서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터운 분량에 속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뒤 내게는 수많은 말들과 몇 가지의 심상들과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울고 싶은 심정 따위에 사로잡혀 오히려 얼마 간 멍하다고 해도 좋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결국에는 역시나 무슨 말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저 몇 마디 이런 형편없는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건져내 옮겨 놓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에토스와 파토스와 로고스가 환상적으로 버무려진, 지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섹시한, 그야말로 재능의 폭발과 폭발과 폭발의 연속인 이 소설을 혹시나 아직 읽지 않은 당신이 나는 좀 부러울 것 같다고.
나는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을 온전히(하기야 대개의 소설이 그렇기도 하지만 이 경우엔 특히나 더라는 뜻에서) 이해할 수 없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누군가는(실제로 거의 대다수가) 삶을 그저 살아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여 속삭이며 걷지만, 누군가는(실제로 극히 소수만이) 삶을 오로지 존재하기 위해 주어진 비상의 기회로 받아들인다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비가로 전해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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