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 장학생으로 영국 유학길에 오른 소세키가 신경쇠약과 서구 반감증을 안고 돌아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두견새`라는 뜻인데 유래는 모르겠다)에 게재되었다. 애초에는 연재할 의향이 없었으나 반응이 좋아 이듬해까지 연재하게 되어 현재의 꼴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후 《도련님》과 《풀베개》등의 작품도 연재하게 되지만 소세키가 제국대학의 강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이 고양이의 공이 혁혁하지 않은가 싶다.소설의 진행은 스스로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재밌는 고양이가 진노 구샤미(`재채기로 찌그러진 얼굴`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라는 선생 집에 기거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오늘에는 가벼운 풍자와 해학 문학으로, 또 소세키의 처녀작이라는 맥락 안에서 읽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시에는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가 진단하는 세태 비판의 성격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아무려나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낄낄거리게 되는 점이 이 소설의 생명력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문우인 마사오카 시키, 타카하마 쿄시와 함께 사생문 운동에 관여했던 소세키이다보니 이 소설 역시 그 일환의 하나라는 자각 속에서 집필된 것이 분명하다. 사생문이란 당시 일본 문단이 서구의 리얼리즘 문학을 체화하는 방식 중 하나였는데 소세키의 태도는 조금 독특하다. 소세키는 1907년(`고양이` 집필은 1905년부터 이듬해까지 이루어졌다) 요미우리 신문에 사생문에 관한 글을 게재했는데 사생문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문장으로 나타난 것이라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요컨대 사생문 작가가 세상을 보는 태도는 어른이 어린아이를 보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의 태도이기도 하다.˝본래 한문학에 매력을 느껴 그 연장으로써 영문학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던 소세키는 그 영문학에 `속았다`고 할 정도로 서구 정신의 무분별한 수용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한 줄거리나 사건이랄 것도 없어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후대의 명성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 소설의 `안`근대적인 면모는 앞선 연유를 참고하면 음미할 점이 있다.영양가 없는 글이 더 길어져 고양이 선생께 누를 끼치지 않을까 문득 염려스럽다. 마무리로 이 책을 읽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고양이 선생께서 직접 권고한 바 있어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겠다.˝내가 서술한 모든 일이 고양이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적당히 꾸며낸 얘기라 여기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경솔한 고양이가 아니다. 한 글자 한 구절 속에 우주의 크나큰 철학과 진리를 담았음은 물론이요, 자질구레한 얘기라 여기며 읽었던 글이 한 글자 한 구절이 겹치고 쌓여 수미가 상관하고 앞뒤가 연결되면서 홀연 변모하여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법어가 되니, 절대 누워 뒹굴며 읽거나 다리를 쭉 뻗고 한꺼번에 다섯 줄씩 읽는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유종원은 한퇴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미수로 손을 씻었다고 할 정도이니, 나의 글에 대해서도 제 돈으로 잡지를 사다 읽을 일이지 친구가 읽다 내던진 것을 빌려 와 대충 읽는 푸대접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