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기 시작한 이후로, 내 손엔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가 내 볼을 어루만질때마다,그의 손가락 마디 마디에서 풍기는,
쓰고도 진한 냄새를 아버지 만의 진한 향기로 알았다. 아버지의 손에 풍기는  그 향은,
그의 온기를 닮았었고. 그것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나에게 남아있었다.
그 흔적들은 매번 그를 볼때마다  남는 아버지의 기억이였고
나는 어린시절 그 기억과 함께  자랐다.



그 이후로 오랜시간이 지났고.

이제 나는 그의 손길에서 조금은 멀어져있다. 그의 손가락 가디가디 냄새가 스며들수있는
주름들이 늘어날때마다,내가 그에게 다가설수있는 거리또한 길어지고.
나는 그의 향을 쉽게 맡아볼수 없다.  
그의 손이 내 볼을 어루만지며, 그 향과 온기를 느껴지던 그때가 쉽사리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새 그 냄새는 내 손가락에서 풍겨오기 시작했고.
나는 내 손가락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아버지가 남긴 향이 아닌지를 생각하게된다.


그의 손가락에서 태웠던 담배들은, 그가 지어야만 했던
무거운 책임과 싸워야하는 질병과 이겨내야 하는 운명의
지리멸렬함이 애타게 녹아내린 흔적들이고 ,
내가 내 삶의 몫을 지어감에 따라. 그 흔적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게 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의 담배의 향이 남아있는 곳은
손가락 뿐만이 아니라, 내 몸 곳곳에,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의
마디 마디마다 숨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향을 오랫동안 떨쳐내지 못할것만 같다.
먼 시간이 지난뒤에도 난 몸 어디에선가 풍기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기속에서 씁쓸하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던 그 모습과
조용히 나를 감싸던 그의 손을.



나는

오늘도 나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난뒤 내 손으로 볼을 어루만져본다.
그리고 풍겨오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아버지를 되새겨보고 다시 아버지를 생각했다.
지금은쉽사리 볼수없는 그의 뒷모습을, 그의 손길을, 그의 지난날의아픔을 생각하며,
나또한 그 뒷모습과 아픔을 닮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내 옆에 있음을 되새기며.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내 볼을 어루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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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벽 2시가 찾아오면, 언제나 닫혀있던 귀가 열린다.
모두가 잠든 사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이에,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내 방 창가를 서성이다, 나에게 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 울지 않았던 전화벨처럼,
빈방 천장을 걸어다니는 시계의 초침 소리같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소리.

낡은 스피커의 낮은 음조가 가지는 미세한 운율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새벽 2시의 시간에는
그렇게 내 주변을 말없이 서성이던 소리가
그때서야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녀가 다정히 묻던,편안한 목소리와 같이,
너무나 따뜻하고 온화한 기색을 지녔던 소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그녀의 이야기들로만 세상을
꿈꾸던 시절의 내가 가진 유일한 주파수.
그녀를 만나기 위해 1시간이나 일찍 카페에 나가,
기다리며 느끼던 심장의 박동수.

그 모든 음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 귀기울이고 있는 소리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음악은 ,
그 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이였는지도.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 소리의 존재의 알게된 것은.
내가, 그 존재의 미세한 그림자를 들추게 된것은.
아마,
내가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할때부터 였던 것같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면,
사람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혼자 남겨진 카페의 문이 열리는 찰나
전화벨이 울리고, 그것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전의 찰나.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기전의 찰나.

사진이 찍히는 찰나같은 ,  짦은 순간의 기다림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림이라는 것이 그려내는 간절함
그 간절함이 모든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기다림의  이유가 되는 사람만이 모른다.

기다림의 간절함은, 섹소폰의 관에 공기를 불어넣듯
우리들의 텅 빈자리에, 바람을 넣고
결국 그 바람은 소리가 된다. 소리가 되서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그 소리가 불어오는 곳은, 결국 내 밖의 먼곳.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 , 시간, 순간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내 우물같이 깊은 내 안의 계단아래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새벽 2시가되면
내 아래에서 , 나의 깊은 밑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부름에, 끌려, 시계초침의 소리에 맞춰, 계단 하나 하나를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아침이오면 ,
나는 황급히.
계단을 오르고
내 문을 닫을 것이다.

빛에 들어난 , 그림자가 내 몸으로 달아나듯,
내 곁의 그 소리는 흔적도 없이 내곁을 떠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다는 듯이.
아무것도 들을수 없다는 듯이.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듯이.















나는 또 그렇게 기다림의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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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을 사랑할수 없는 밤이 있다.
 


골드문트
 


그런 날이면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쓸쓸히 술잔을 비우거나, 담배를 태우며
자신의 사랑할수없음을 \"있음\"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긴 밤을 지샌다.

그러나 그 한글자 차이의 단명함은 어쩌면 특정한 밤이 찾아올때만
지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우리들의 긴긴 생애는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기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자식을 먹여살리고, 자신을 먹여살리며,
이 길고도 고된 삶을 오늘도 내일도 버텨내는 것은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사랑하기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자신을 사랑할수 없는 밤이 오고,
잔뜩 안개속을 허우적거리는 기분으로,
문득 어디선가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그 애태움은 쉽사리 답을 얻지 못한다.



........



나는 언제나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골고타언덕위에 죽어간 이스라엘의 청년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찾아 평생을 해매던 소설속 주인공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나는 구원의 의미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과 시간이 내 곁을 지나치고나서야
나는 그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했음을 알았다.
그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랑들이 나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는 기도의 다른 방식일뿐.
구원은 천국에 있는것도,술과 마약에 취하는 밤에 있는것도 아니라,
바로 우리가 누군가의 절실한 눈에 담겨있을 때
그때가 구원의 순간임을 알았다.

천국은 너에게 있었다.




우리는 결국
타인의 눈밖으로 내몰리고,또다시 혼자 남겨진 방으로
되돌아오지만, 오늘같은 밤처럼 기나긴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눈을 감으면 보이는 사람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눈속에 있던 나자신때문일까.



나에게도, 나를 사랑할수 있는 밤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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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무려 4년 전 고3때. 

문학이라는, 그리고 '시'라는 장르를 위대한 것으로 경험하게 했던 스승을 만났다.

오프라인에서. 실명도 모르는 그는 오르비에서 '골드문트'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젠 거의 오르비에 들어가지 않는데, 사이트는 계속 개편되고 있다. 

왠지 그의 글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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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거지, 시발.

마지막 한 마디로 

당신은 평화의 종결자, 등극.  

 

오늘은 헤어지지 말자 

어쩔 수 없어도 그렇게 살아왔잖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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