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새벽 2시가 찾아오면, 언제나 닫혀있던 귀가 열린다.
모두가 잠든 사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이에,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내 방 창가를 서성이다, 나에게 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 울지 않았던 전화벨처럼,
빈방 천장을 걸어다니는 시계의 초침 소리같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소리.

낡은 스피커의 낮은 음조가 가지는 미세한 운율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새벽 2시의 시간에는
그렇게 내 주변을 말없이 서성이던 소리가
그때서야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녀가 다정히 묻던,편안한 목소리와 같이,
너무나 따뜻하고 온화한 기색을 지녔던 소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그녀의 이야기들로만 세상을
꿈꾸던 시절의 내가 가진 유일한 주파수.
그녀를 만나기 위해 1시간이나 일찍 카페에 나가,
기다리며 느끼던 심장의 박동수.

그 모든 음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 귀기울이고 있는 소리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음악은 ,
그 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이였는지도.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 소리의 존재의 알게된 것은.
내가, 그 존재의 미세한 그림자를 들추게 된것은.
아마,
내가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할때부터 였던 것같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면,
사람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혼자 남겨진 카페의 문이 열리는 찰나
전화벨이 울리고, 그것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전의 찰나.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기전의 찰나.

사진이 찍히는 찰나같은 ,  짦은 순간의 기다림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림이라는 것이 그려내는 간절함
그 간절함이 모든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기다림의  이유가 되는 사람만이 모른다.

기다림의 간절함은, 섹소폰의 관에 공기를 불어넣듯
우리들의 텅 빈자리에, 바람을 넣고
결국 그 바람은 소리가 된다. 소리가 되서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그 소리가 불어오는 곳은, 결국 내 밖의 먼곳.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 , 시간, 순간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내 우물같이 깊은 내 안의 계단아래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새벽 2시가되면
내 아래에서 , 나의 깊은 밑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부름에, 끌려, 시계초침의 소리에 맞춰, 계단 하나 하나를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아침이오면 ,
나는 황급히.
계단을 오르고
내 문을 닫을 것이다.

빛에 들어난 , 그림자가 내 몸으로 달아나듯,
내 곁의 그 소리는 흔적도 없이 내곁을 떠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다는 듯이.
아무것도 들을수 없다는 듯이.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듯이.















나는 또 그렇게 기다림의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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