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3 나는 여기서 인간이 이제껏 이룩해 놓은 과학과 종교를 통틀어서 가장 멋진 아이디어를 하나 이야기하고 싶다. 그 아이디어는, 심장 박동에 박차를 가할 만큼 생소하고 등골이 오싹하게 우리를 떨게 하며 온몸에 묘한 전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고 어쩌면 영원히 검증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우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 구조hierarchy of universes‘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전자 같은 소립자도 그 나름의 닫힌 우주이다. 그 안에 그 나름의 은하들이 우글거리는가 하면 은하보다 작은 구조물들도 있고 또 그들의 세계에 맞는 소립자들이 존재한다. 어디 그뿐인가. 이 소립자들 하나하나도 역시 또 하나의 우주이다. 이 계층 구조는 한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우주들의 계층 구조‘가 이렇게 아래로만 연결되라는 법도 없다. 위로도 끊임없이 연결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하, 별, 행성, 사람으로 구성된 이 우주도, 바로 한 단계 위의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소립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러한 계층 구조는 무한히 계속된다. 아, 내 사고의 흐름을 절벽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힌두교에서 우주론은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주들의 계층 구조라는 아이디어야말로 힌두교의 우주관을 뛰어넘은 유일한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우주 외의 또 다른 우주들이 있다면 그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은 우리의 것과는 별도의 체계를 이룰까? 그 우주도 은하와 별과 사람과 사람들이 같이 하는 세상을 갖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우주의 그것들과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그 우주의 사람은 우리와 다른 구조와 형태의 생물일까, 아니면 비슷한 생물일까? 그들의 세계에 진입하려면 어떻든 4차원으로 ‘길‘을 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쉽게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이 우리를 그 길로 데려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계 근처에 작은 블랙홀들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 이제 영원의 벼랑 끝에 서서 정들었던 이 우주와 헤어져, 저 우주로 뛰어들 채비를 해 보자. - P531

537-41 앞에서 인류보다 고등한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세상이 은하수 은하에만도 100만 개에 이른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세상들 중에서 지구는 표면이 온통 물로 덮여 있는 아주 진귀한 존재이다. 물이 풍부한 지구에는 지능을 가진 생물이 몇 종 살고 있다. 개중에는 뭘 쥐는 데 필요한 팔다리가 여덟 개나 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자기 몸의 밝고 어두운 무늬를 변화시켜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놈도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육지에서 그러모은 나무나 금속으로 배를 만들어 바다로 타고 나가 약탈을 일삼는 덩치는 작지만 머리가 아주 영리한 인간이라는 생물도 있다. 그러나 지적 생물들 중에서 가장 우월하고 행성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깊은 바다의 우아한 주인으로서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존재는 고래이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몸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한 동물이다. 심지어 공룡보다 훨씬 더 크다. 다 자란 흰긴수염고래 중에는 길이가 30미터, 몸무게가 150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흰긴수염고래들은 바다 여기저기를 조용히 떠다니면서 방대한 양의 바닷물을 들여 삼켜 거기에 있는 미세한 생물을 걸러 먹고산다. 또 어떤 고래는 물고기와 크릴을 먹는다. 고래라는 거대한 동물이 바다에 출현한 것은 지구 역사에서 아주 최근의 사건이다. 고래의 조상은 70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육식성의 포유동물로서 지상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바다로 이주했다. 어미 고래는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고 정성껏 보살필 줄 안다. 긴 양육기를 통해서 어린 고래들은 어른 고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한다. 고래들끼리의 놀이가 그들의 전형적인 소일거리이다. 이것은 포유동물 모두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성이다. 학자들은 놀이가 포유동물의 지능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바다 속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침침하기 때문에 땅에 사는 포유동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각과 후각이 바다에서는 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시각과 후각에 의존하여 짝짓기의 상대, 자신의 새끼, 약탈자의 위치를 알아내던 고래들은 크게 번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래들은 진화를 통해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완벽하게 터득했다. 그것이 바로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이용한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청각은 고래들끼리의 의사소통에 중추적 기능을 담당한다. 고래들이 내는 소리 중에 노래라고 불리는 것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노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소리의 정체와 의미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래가 활용하는 소리의 주파수는 아주 넓은 대역에 걸쳐 분포한다. 낮은 주파수 대역은 사람의 청각이 감지할 수 있는 최소 주파수보다 훨씬 더 낮다. 고래의 노래는 보통 15분 정도 지속된다. 가장 긴 노래는 1시간 정도나 계속되기도 한다. 음, 박자, 리듬, 소절 등이 정확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래는 함께 노래를 부르던 고래들과 겨울이 되어 헤어졌다가 6개월 만에 만나도 똑같은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다. 그 사이에도 계속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같은 노래를 부른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래는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듯싶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발성법이 좀 변해서 돌아오게 마련이며, 그 경우 고래들의 관병식에서는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된다.
또 구성원 전체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모종의 협의를 하거나 공동으로 작곡한 것처럼 곡의 내용이 매달 조금씩 천천히 변해 간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고래의 발성법은 복잡하다. 혹등고래의 노래를 음성 언어로 간주한다면 거기에 담긴 정보량은 10^6비트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인간의 대서사시인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쓸 만한 분량이다. 고래나 고래의 사촌인 돌고래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래는 그렇다고 무엇을 조작할 수 있는 손과 같은 기관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공학적 구조물 따위를 만들 줄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가 사회적 존재라는 주장에는 틀림이 없다. 그들은 사냥을 즐기고 유유히 헤엄치며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여가를 즐기는가 하면 떠들썩하게 장난치며 짝짓기도 하고 친구와 어울려 놀다가 약탈자를 만나면 재빨리 도망칠 줄도 안다. 그렇다면 그들도 수많은 말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고래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아주 최근에 기계 기술 문명의 발달로 고래와 바다에서 경쟁하게 된,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동물이다. 고래의 전 역사에서 99.99퍼센트에 해당되는 기간 동안 고래들은 심해나 대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없었다. 이 긴 시간에 걸쳐서 고래는 소리를 이용한 아주 특별한 의사소통 방법을 개발해 왔다. 예를 들어 긴수염고래는 20헤르츠Hz의 소리를 아주 크게 낸다. 20헤르츠는 피아노가 내는 가장 낮은 옥타브의 소리에 해당한다. 바다에서 이렇게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미국 생물학자 로저 페인의 계산에 따르면 20헤르츠의 소리를 이용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 두 지점에 떨어져 있더라도 두 마리의 고래가 상대방의 소리를 알아듣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즉 남극해의 로스 빙붕에 있는 고래가 멀리 알류샨 열도에 있는 상대방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고래는 자신들의 역사의 거의 전 기간 동안 지구적 규모의 통신망을 구축하고 살아 왔던 것이다. 광대무변의 심해에서 1만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따고 하더라도 고래들은 사랑의 노래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육중한 체구에 영리한 머리를 갖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 특별한 생물은 바다에서 수천만 년 동안 천적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않고 편히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경이 되자 불길한 징조의 증기선이 바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증기선이야말로 고래들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려운 소음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상선과 군함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면서 대양의 소음 수준은 눈에 띌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20헤르츠 근방 대역의 잡음이 현격하게 많아졌을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이러한 소음이 대양을 가로질러 소리로 교신을 해야 하는 고래들에게 점점 더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고래들의 교신 가능 거리도 계속해서 단축됐다. 긴수염고래의 최대 교신 거리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쯤에는 대략 1만 킬로미터였다. 이렇게 멀던 거리가 오늘날에는 수백 킬로미터로 줄었다. 고래들이 서로 이름을 알고 있을까? 단지 소리만으로 서로를 구별할까? 정확한 답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문명이 고래들의 관계를 단절시켜 놓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천만 년 동안 서로 의사소통을 해 오던 고래들에게 바로 우리 인간이 잔인하게도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대조되는 성격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문명권 사이의 성간 통신은 주로 14억 2000만 헤르츠 근처의 전파로 이루어 질 가능성이 크다. 우주에 가장 흔한 원소인 수소가 이 주파수에서 전파선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계의 지적 생물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이 주파수 대역의 전파에 담아 우리에게 보내올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에서 우리도 이 대역의 전파 신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용 및 군사용 통신이 이 귀중한 주파수 대역을 부당하게 침범하고 있다. 침해의 주범은 강대국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통신 활동도 방해 전파를 송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인들의 활동이 성간 통신의 주파수 대역을 온통 먹통으로 만드는 중이라고 하겠다. 지구상 전파 통신 기술이 무제한으로 발달하게 돼도 외계 지적 생물과의 통신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넘치는 전파 공해로 인해 지구인들은 외계 지적 생물이 부른 연가를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그냥 흘려보내고 말 것이다. - P537

548-9 박테리아나 인간이나, 이 양극단의 중간에 있는 다양한 단계의 모든 생물들은 유전자 정보의 지시를 수없이 공유한다. 다시 말해서, 생물마다 서로 다른 도서관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소장된 책들에는 내용이 같은 쪽이 많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생물들이 공동의 조상에서 진화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여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대 기술 문명은 기기묘묘한 생화학 반응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만을 겨우 재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는 그 모든 화학 반응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척척 수행해 낸다. 생명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화학 반응에 대한 실습을 수없이 많이 해 왔지만 인간은 이제 겨우 그 화학 반응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DNA야말로 그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 P548

552 우리의 생각, 시지각, 심지어 환상까지도 따지고 보면 모두 물리적 실체를 동반한다. 생각한다는 행위 하나도 수백 개에 이르는 전기·화학적 신호 자극의 결합체라는 실체가 있다. 우리가 뉴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기기묘묘한 모습의 수많은 패턴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사라지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패턴들 중 어느 하나는 어릴 적 시골 길에서 맡아 봤던 라일락꽃 향기의 기억일 수 있다. 뉴런의 전광판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또 다른 패턴은 ‘내가 열쇠를 어디에 뒀던가?‘ 하는 애타는 마음일 수도 있다. - P552

552-5 정신 작용이라는 거대한 산에는 수많은 골짜기들이 있다. 골짜기란 다름 아닌 대뇌 피질의 울퉁불퉁한 구조를 뜻한다. 골짜기를 파서 제한된 부피 안에 되도록 넓은 표면이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음으로써, 대뇌 피질은 참으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뇌의 전기 회로는 인간이 고안한 그 어느 회로보다 훌륭한 구조이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세련되고 격조 높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자연이 한 일은 10^14개의 신경망을 연결해 놓은 것밖에 없다. 그 이상의 무엇 때문에 의식 작용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뉴런들을 연결해 놓음으로써 그렇게 멋들어진 기능을 발휘케 한다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자연의 조화이다. 생각의 세계는 크게 두 개의 반구로 나뉘어 있다. 대뇌 피질의 오른쪽 반구는 패턴의 인식, 직관과 감수성의 발동, 창조적 통찰 등을 주로 책임진다. 왼쪽 반구는 이성적, 분석적, 비판적 사고를 관장한다. 기본적으로 서로 상반된 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양쪽 반구가 상호 보완함으로써 인간의 의식 작용을 특징짓는다. 한쪽에서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아이디어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식이다. 두 개의 반구 사이에는 무수한 신경 다발이 있으며, 이것을 통해서 양측이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한다. 신경 다발이 창조와 분석을 연결짓는 교량인 셈이다. 독창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비트로 잰 인간 두뇌의 정보량은 뉴런 연결의 총수 정도이다. 즉 약 100조 비트의 정보가 우리 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모두 영어로 기술한다면 대략 2000만 권의 책 더미가 쌓일 것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량이 대략 이 수준에 이른다. 두뇌가 차지하는 공간은 협소하지만 뇌는 실제로 아주 거대한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두뇌 도서관에는 대부분의 책을 대뇌 피질에 보관한다. 뇌 도서관의 지하 공간에는 인류의 먼 조상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했던 근본적인 기능에 관한 책들이 소장돼 있다. 그 기능에는 공격성, 자식 양육의 욕망, 공포감, 짝짓기 같은 원초적 본능뿐 아니라,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성향이 포함되어 있다. 두뇌의 고차적 기능 중에서 읽기, 쓰기, 말하기 등은 대뇌 피질의 특정 부위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기억은 대뇌 피질의 여기저기에 중복 기록돼 있다. 소위 텔레파시라는 것이 실재한다면 상대방 대뇌 피질에 보관된 정보를 내가 멀리서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사랑하는 이가 대뇌 피질에 보관해 둔 장서를 읽을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텔레파시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대뇌 피질의 수준에서 정보를 읽어 내는 일은 아직 예술가와 작가 들의 몫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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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8 오스만 노예 세대의 일반적인 성격은, 어느 미국인 학자의 훌륭한 연구에서 인용한 다음의 구절이 잘 전해준다.

"이 오스만의 통치 제도 안에는 술탄(왕)과 그의 세대, 제국 왕실의 여러 관리, 정부 행정 관리, 기병과 보병으로 이루어지는 상비군, 군인·궁내관·정부 관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칼과 펜과 왕호를 휘둘렀던 것이다. 그들은 종교법의 관할에 속하는 사법권과 비 이슬람 교도인 피지배자, 외국인 집단의 손에 위임된 몇몇 제한된 직무를 제외한 모든 나라 정치를 집행했다. 이 제도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색 있는 점은, 우선 첫쨰로 그 주도적 집행 요원이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리스도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거나 또는 그러한 사람의 자식으로 성립되었던 일이고, 둘째로는 이 제도의 거의 모든 인원은 술탄의 노예로서 이 제도에 개입되어 어떠한 높은 재력과 권력, 위대함의 수준에 도달한다 해도 평생 술탄의 노예 신분으로 그쳤던 일이다. ······
왕족도······노예 세대 안에 넣어 무방하다. (왜냐하면) 술탄의 자녀를 낳은 여자들이 노예였고, 술탄 자신도 노예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술레이만 시대 훨씬 이전부터 술탄은, 왕족 신분의 신부를 맞아들이는 것이라든가 또한 자기 자식의 어머니에게 황후 칭호를 내리는 것도 중지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도는 계획적으로 노예를 데려다가 대신을 삼았다. 양을 몰거나 농지를 경작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소년을 데려다가 신하나 왕녀의 남편으로 삼았다.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도의 이름을 이어받은 집안의 젊은이를 데려다가 이슬람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삼았으며, 또한 십자가를 꺾고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을 높이 쳐드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사믄 무적 군대의 병사와 장군으로 만들었다. ······‘인간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기본적 관습의 조직과, 생활 그 자체와 거의 같은 정도로 뿌리 깊은 것으로 여겨지는 종교적·사회적 선입견을 당당하게 무시하고, 오스만 제도는 부모에게서 자식을 영구히 빼앗아, 그들이 한창 일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처자식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으며, 재산을 보유하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성공과 희생에 대해 나라에서 베푸는 혜택과 그들의 자녀에게도 주어진다는 명확한 약속을 해주지 않았고, 가문이나 이전의 공적과는 전혀 관계없이 지위를 높여주거나 낮추었으며, 색다른 법률과 윤리와 종교를 가르쳤고, 머리 위에 칼이 드리워져 있어서 언제 어느 때 이제까지의 순조롭기 비할 데 없었던 영달의 빛나는 경력이 일격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늘 그들에게 의식하게 했다." - P227

229-30 이 제도가 건재한 동안은 필요한 인원이 여러 이교도의 공급원에서, 이를테면 국외로부터 온 전쟁 포로 또는 노예 시장에서 사들여 오거나 지원한 자를 받아들여 보충되었고, 또한 국내에서는 정기적으로 행한 강제 징발에 의하여 젊은이들을 모아 보충되었다. 그리고 새로이 징집된 요원은 정성들인 교육을 받았다. 단계가 준엄했고 처벌은 극도로 냉혹했지만 한편으로 끊임없이 계획적으로 야심을 북돋아 주었다. 오스만 파디샤의 노예 세대에 편입된 모든 소년들은 그들 앞에 재상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으며, 그들의 장래가 훈련 기간 동안에 얼마나 용감성을 나타내느냐에 걸려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 교육 제도의 전성기에 대한 기록은, 플랑드르 태생의 학자이며 외교관으로서 장려왕 술레이만에게 파견된 합스부르크 궁정(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낭트 1세)의 사절이었던 오기에르 기셀린 데 부스베크가 직접 관찰하여 생생하고 상세한 기술을 남기고 있다. 그의 결론은 오스만왕국을 격찬하고 반대로 당시의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교육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투르크 인이 이 같은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부럽게 여겼다. 비범한 재능이 있는 인간을 손에 넣으면 마치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고 정신 차릴 줄 모르는 것이 투르크 인의 상례이다. 그리고 그 인간 속에 잠겨 있는 타고난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과 배려를 기울인다. 군사적 재능이 엿보일 때에는 특히 그렇다. 우리 서유럽의 방식은 얼마나 다른가? 서유럽에서 우리는 좋은 개나 매나 말을 입수하면 매우 기뻐하여 그 짐승을 그 종류가 달할 수 있는 최고도의 완전함에 도달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우연히 뛰어난 천분을 가진 인간이 발견되었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그 인간의 교육을 특히 우리의 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서유럽인은 잘 훈련된 말이나 개나 매에게서 갖가지 새로운 즐거움과 봉사를 얻지만, 투르크 인은 교육에 의하여 품성이 함양된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탁월하다는 것에 의하여 주어지는 훨씬 커다란 보수를 얻는다.
결국 이 제도도 멸망했지만, 그것은 모든 인간이 그 특권을 부여받으려고 물밀듯이 쇄도하였기 때문이다. 16세기 끝 무렵에는, 흑인을 제외한 모든 이슬람 교도 자유민에게 예니체리 군단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결과 민원은 늘어났고, 규율과 능률은 저하되어갔다. 17세기 중간 무렵 이들 인간 번견(番犬)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파수꾼으로서 파디샤의 인간 가축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대신 그것을 괴롭히는 늑대로 되돌아가 버렸다. - P229

232-5 스파르타의 제도에 있어서도 오스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매우 유능한 제도인 동시에 치명적으로 지나친 경직성 때문에 결국 와해되고 말았는데, 그 현저한 특징은 인간성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에 있었다. 스파르타 인의 ‘아고게(교육 제도)‘는 오스만의 노예 세대만큼 극단적으로 태생과 문벌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스파르타의 자유시민 지주는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교도민 지주 귀족과는 정반대 입장에 있었다. 속령 메세니아에 대한 스파르타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임무의 거의 전부를 그들에게 부과했다.
그와 동시에 스파르타의 시민 단체 그 자체 내부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엄중히 실시되었다. 스파르타 인은 모두 국가로부터 같은 크기나 또는 같은 생산력을 지닌 토지를 할당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할당받은 땅은 각각 메세니아 인 농노(헬로트)가 위임받아 경작했는데, 그럼으로써 소유자인 스파르타 인과 그 세대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공급해 주었으며, 동시에 스파르타 인은 그 남는 정력의 전부를 전쟁 기술에다 바칠 수가 있었다. 스파르타의 자녀는 허약하다는 이유로 병역을 유예 받고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는 자를 빼놓고는 누구나가 7살 이후부터 스파르타식 군사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예외는 있을 수 없어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똑같이 체육 훈련을 받았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벌거벗은 채 경기를 했다. 스파르타 인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현대의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성적 자제, 또는 무관심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 같다.
스파르타에서는 우생학적 입장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산아 통제를 실시했고 만일 남편이 허약하면 자기보다 튼튼한 남자를 데려다 그 집의 아이를 낳게 하는 종마 역할을 장려했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스파르타 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파르타 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암캐와 암말에게는 타인에게서 빌려 오거나 또는 돈을 주고 사오거나 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우수한 수컷을 붙여 주도록 애쓰면서도, 자기 여자는 집안에 가두어 두고 끊임없이 감시하며 설령 남편이 저능하거나 늙었거나 병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남편의 신성한 권리이기나 한 듯 남편 이외의 인간의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성적 관슴을 속악하고도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파르타의 제도의 주요한 특색은 오스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독·도태·전문화·경쟁심 등이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이런 특색은 단순히 교육의 단계만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스파르타 인은 53년 동안 군무에 복종했다. 어떤 점에서는 스파르타 인에게 부과되는 요구가 예니체리 병사에게 부과되는 요구보다 가혹했다.
예니체리 병사는 결혼을 시키지 않는 방침이었지만, 그래도 결혼하면 부부 숙사에서 살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그런데 스파르타 인은 결혼을 강요당하면서 가정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병영에서 식사를 하고 자야만 했다. 그 결과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확실히 압도적인 공공 정신이 양성되었다.
그것은 영국인으로서는 비록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군율에 복종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며 지극히 싫은 일인데, 하물며 평상시 같으면 절대로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어서, 그 후 지금까지 이와 같이 개인을 완전히 희생하며 공적인 일에 봉사하는 극단적인 애국심을 ‘스파르타 정신‘이라고 이름 붙여놓게 됐을 정도이다. 이 정신의 일면이 「테르모필라이의 3백 명의 용사」이야기나 「소년과 여우」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그 반면, 스파르타 소년 교육의 마지막 2년간이 통례적으로 ‘비밀 과업‘에 소요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공인된 살인단으로, 그들은 밤에 지방을 순회하다가 어떤 농노든 반항의 징조가 보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무례한 일을 저지르거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듯한 징조가 보이면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스파르타의 ‘단선적‘ 성격은 오늘날의 스파르타 박물관을 찾아가 보면 곧 눈에 띈다. 스파르타 박물관은 다른 박물관의 예술 소장품과 전혀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수집 유물에 있어서 구경꾼의 눈은 대체로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해당되는 고전 시대의 걸작을 찾게 되고, 또 그것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버리고 만다. 그러나 스파르타 박물관에는 고전 시대의 미술품이 전혀 없다는 점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고전 시대 이전의 진열품을 보면 그 이후 장래성이 드러나 보이는데 그 뒤에 계속되는 것은 찾으려 해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연속성에 완전히 틈새가 생겨 있으며, 그 뒤에 오는 것은 소위 헬라스 시대와 로마 시대의 표준화되고 아름다운 광택을 잃은 작품들 뿐이다.
초기 스파르타 예술이 중단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킬론이 장관직을 맡고 있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 때문에 가끔 이 정치가가 스파르타 제도의 창시자의 한 사람이었다고 추측되는 것이다. 퇴폐기로 접어든 뒤 중단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갑자기 예술 제작이 다시 시작되는데, 그것은 스파르타 제도가 외래의 정복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폐지된 기원전 189~188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 제도가 그 ‘존재 이유‘가 소멸된 뒤에도, 즉 메세니아가 영원히 없어지고 난 뒤에도 2세기 동안에 걸쳐 존속했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얼마나 견고했는가를 나타내는 기묘한 증거이다. 이 연대에 앞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일반적 명제 형식으로 스파르타의 묘비명을 썼다.

"국민은 복종시켜야 할 까닭이 없는 이웃 ‘즉 그리스 인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태생이 천한 무법자‘들이 아닌 그리스 인‘을 복종시킬 것을 목적으로 전쟁 기술 훈련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사회 조직이건 군사 제도도 다른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군인이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평상시의 상태를 목표로 구성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해야 한다." - P232

236 이와 같이 에스키모·유목민·오스만 및 스파르타 인은 인간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될 수 있는 대로 버리고 그 대신 융통성이 없는 동물성을 취하여 그들의 사업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퇴보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생물학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지극히 특수한 환경에 지나치게 잘 적응한 동물의 종은 진화의 과정에서 막다른 곳에 이르렀으며 장래성이 없다고 했는데, 발육 정지 문명의 운명이 바로 그것이다.
그와 비슷한 운명의 하나는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불리는 공상적 인간 사회가 보여주며, 또 하나는 사회적 곤충에 의하여 조작되는 현실 사회가 보여준다. 비교해 보면 플라톤의 「국가」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개미탑이나 벌집에서도 우리가 모든 발육 정지 문명에 있어서 본 바와 같은 현저한 특징 즉 카스트와 전문화라는 특징을 발견한다. - P236

236-7 사회적 곤충이 현재의 사회적 발전의 단계에 도달하여 그 단계에서 영원히 정지하게 된 것은 ‘호모 사피엔스‘ 인종이 보통 일반의 척추동물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 몇백만 년 이전의 일이었다. 유토피아의 경우는 애당초 가설에서부터 형이상학적으로 정지되어 있다. 유토피아의 경우는 애당초의 가설에서부터 형이상학적으로 정지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예외 없이 행동 공상 사회의 묘사라는 형태를 빌어 위장한 행동 강령이며, 인간에게 환기시키려는 행동은 거의 늘 이미 쇠퇴기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탈출구로서 하향 운동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해 버릴 현실 사회를 어느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고정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회에 있어서도 유토피아가 쓰여지는 것은 대개 그 사회의 성원들이 그 이상의 진보의 기대를 상실한 뒤의 일이므로, 하향 운동을 저지하는 것이 대다수의 유토피아가 염원하는 최대한의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학의 장르 전체를 부르는 기원이 된 영국의 천재의 주목할 만한 작품(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유토피아가 뜻하는 절대 부동의 이상적 안정 평형 상태라는 것은 다른 일체의 사회적 목적이 이르지 못할 이상적 상태로서 언제나 상위에 있어, 필요하다면 모든 현실적 사회적 목적은 희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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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1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새해인사 왔습니다.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베텔게우스 2023-01-01 00: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렸습니다! 서니데이님도 늘 건강하시고 2023년 검은 토끼 해, 하시는 일 모두 다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517 세상의 나이가 겨우 수천 년이라는 성서적 사고의 오류를 유럽 문명이 겨우 인식하기 시작한 게 인류사의 아주 최근의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 1,000년 전에 마야 문명은 이미 100만 년의 세월을 생각할 줄 알았고, 인도인들은 수십억 년을 상상할 수 있었다. - P517

519-20 과학자들은 팽창이 수축으로 바뀌는 순간 진동 우주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한다. 자연의 법칙들이 그 순간 무작위적으로 마구 뒤섞인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 현상들을 지배한다고 알려진 물리학과 화학의 제반 법칙들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매우 제한된 범위의 법칙들만이 현생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은하, 별, 행성, 생명 그리고 지능 등의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우주의 팽창과 수축이 역전되는 순간에 법칙들이 멋대로 뒤섞인다면 그때 얻어지는 법칙이 현생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들과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실질적으로 0이다. 그러니까 전생 우주와 현생 우주 사이에 어떤 공통성도 기대할 수 없다. - P519

520 자연 법칙의 뒤섞임이 팽창과 수축의 변환점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주가 이미 여러 차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으며 그때마다 다른 중력 법칙들이 선택됐다고 하자. 중력 법칙의 후보들 대부분이 실제로는 매우 미약한 중력을 동반한다. 이렇게 미약한 세기의 중력만으로는 우주를 한데 묶어 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가 선택한 대부분의 중력에서는 우주가 흩어질 것이고,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팽창과 수축의 반복은 기대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중력 법칙의 새로운 후보가 채택될 가능성이 자동적으로 배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주가 유한한 기간 동안만 존속하든가, 팽창.수축의 매 주기마다 자연은 제한된 극히 일부의 법칙들만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팽창이 수축으로 반전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자연법칙의 뒤섞임이 완전히 제멋대로일 수는 없다. 후보 법칙들에서 선택이 이루어질 때 모종의 규칙이 준수돼야 할 것이다. 어떤 법칙은 선택되고 어떤 것들은 선택해서는 안 되고 하는 식의 제한 조건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법칙 선택의 법칙‘은 기존의 물리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물리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인간의 언어는 빛을 잃는다. 새로운 물리학에 붙일 적당한 이름을 찾기 어렵다. ‘파라물리paraphysics‘ 이니 ‘메타물리metaphysics‘니 하는 이름들은 여기서 요구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초월물리transphysics‘라는 표현은 어떨까? - P520

527 정말로 4차원적 생물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4차원에서의 실체인 그는, 우리 3차원 세계에 마음대로 나타나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다가, 또 자신의 모습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주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밀폐된 방에서 잡아 밖으로 끌어내기도 하고, 또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다시 불러들여 실체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안팎이 뒤집혀질 수도 있다. 하나만 예를 들자. 창자와 온갖 장기가 외부로 나와 전 우주에 흩어지고, 그 대신 벌겋게 빛을 발하는 은하 간 물질, 은하, 행성, 그 외의 온갖 천체들이 내부에 들어앉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차원 간 여행을 간절히 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이라면 정중히 사양하겠다. - P527

529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우주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 경계 바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차원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비록 2차원 우주가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어도 그 공의 표면에 해당하는 2차원 우주에서는 중심을 정할 수 없다. 그런 우주의 중심은 그 우주에 있지 않다. 중심이 있다면 그것은 그 우주의 주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3차원에 있다. 납작이나라의 영토는 구의 표면일 뿐이다. 그러므로 2차원 우주는 유한하다. 그렇지만 경계는 찾아볼 수 없다. 경계 바깥의 정체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질문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납작이나라에 사는 남작이들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2차원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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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는 종속적이다. 훈고 訓詁에 갇힌 삶을 창의創意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다. 종속성을 벗어나서 독립적인 삶을 함께 누리다 가고 싶다. 남들이 벌여놓은 판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물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일은 이제 지겹다. 우리는 정말 우리 나름대로의 판을 벌여보는 전략적인 시도를 할 수 없을까? 선도력을 가져볼 수 없을까? - P7

언제 다시 돌아가도 되겠느냐는 판단을 의식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시점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하나 조건이 있다면, 제 경험에서 얻은 건데 좌우지간 자신한테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해석되지 않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입니다. 절차나 순서나 내용을 정확히 인식하려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 자신을 직접 내던지는 일입니다. 진실하게 자신을 대면하는 일입니다. - P297

300-305 문 깨달음은 혼자의 문제지만 결국 가족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가족한테 나의 사유를 어떻게 드러내고 또 어떻게 설득해서 같이 끌고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답_가족이라는 틀이 식구들의 개성을 크게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식구들 각자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지해야만 더욱 튼튼하고 발전하는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가족이 특별한 하나의 이념이나 목표에 갇히면, 그 구성원들의 개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부모가 자식들에게 반드시 의사가 되라고 요구하는 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의 꿈을 부모가 정해놓고 거기에 자식이 따르도록 하면 안 되지요.
우리는 모두 가족과의 조화보다는 나의 욕망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펼치기도 전에 왜 가족이나 사회와의 조화를 그렇게 먼저 생각해야 하죠? 우선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가족보다는 자신의 꿈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가족과의 조화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일을 시작한 인물이 있던가요? 그분들은 그분들의 지성의 높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려부터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논의의 완결성을 추구한다든지 합리성을 추구한다든지 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자기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지나친 고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울퉁불퉁한 삶, 새로운 삶, 고유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자기를 발휘하고 표출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을 너무 자주, 너무 깊게 고려하는 것은 매우 점잖아 보이지만 실은 별로 필요 없는 일들로 보입니다. 큰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문 개인의 성숙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나요?

답_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변화를 꿈꾸는 그 사람이 우선 성숙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이 그냥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주장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게 펼침으로써 변화를 시도하는 일이 많은데, 그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그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성숙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성숙된 개인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성숙의 높이와 깊이는 이미 그 개인을 넘어서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상당한 성숙에 이른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

성숙된 개인은 반드시 그 성숙도에 따라 동조자를 갖게 됩니다. 즉 사회적 확산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입니다. 아테네라는 도시를 지키는 신이지요. 그런데 이 미네르바는 왜 황혼녘이 되어서야 날기 위해 날개를 펴는 것일까요?
대낮에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지적인 활동에 익숙한사람들은 사건이 잠잠해지는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숙고熟考에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낮에 벌어지는 사건은 생소한 것, 처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적 체계로 바로 대응하기에는 어색하기 마련이죠. 그러니 사건이 발생하는 대낮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 사건이 잠잠해지고 나면 그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그것을 황혼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지적 체계로 남긴 것, 이것을 이론이라고도 하고 지식이라고도 합니다. 대낮에 A라는 사건이 벌어지면, 지식인들은 황혼녘에나 나타나서 A라는 사건을 분석하고 따져서 A‘라는 이론이나 지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은 한번 발생하고 나면 똑같은 사건으로는 다시 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A라는 사건은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사건인 것입니다. A라는 사건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B라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의사건을 만납니다. 그러니우리의 사명은 B라는 사건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당연히 B라는 사건을 만나서는 B‘라는 체계적 방법이 예측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A‘ 라는 지식을 갖고 또 그것을 신뢰하게 됨으로써, B라는 사건을 만나서도 A‘라는 지식을 가지고 B를 관리하려고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그렇게 안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A라는 사건과 A라는 이론(지식)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이해한 후, B라는 사건을 만나면 A라는 사건과 A‘라는 지식 간의 유기적 연관성을 기초로 해서 B‘라는 이론(지식)을 건립하여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본 나라는 새롭게 마주하는 세계를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할 줄 알기 때문에 계속 전진할 수 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보지 않은 나라는 계속해서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지식을 변화하는 세계에다 억지로(본인은 자연스럽다고 착각하지만...) 적용하니까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전진이 더디거나 아예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생산국이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생산은 곧 사유의 생산력에 의존합니다. 사유의 생산력은 독립적 주체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우리가 자아를 성숙시킨다, 자아를 독립시킨다는 말은 사건 B를 마주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이론) A‘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에서 이탈해서 B를 A로 보지 않고 B‘를 생산하려는 용기를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개인의 성숙, 지적 성장, 독립, 이런 것들은 그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진보와 관련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립적 주체가 발휘하는 인문적 용기는 문명이나 국가나 사회나 인간이나 인류의 방향과 관련되는 일이므로 이미 사회적입니다. 성숙한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성숙을 통해서 이미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까요? 우리는 지식과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지식과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정말 더 창의적이 되었고 더 여유로워졌는가? 더 행복해졌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과 경험이 주는 무게보다 나의 무게감이 작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지식과 경험의 무게보다 나의 무게를 더 크게 하는 것, 더 커진 자신의 내면을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밟고 서서 지배하는 것, 이것이 결국은 주체의 독립이자 성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에서 가질 수 있는시선이 탁월한 시선인데, 그 탁월한 시선이 B를 마주하면 바로 우리에게 B‘를 말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철학가나 예술가가 혁명가이고 더 나아가 문명의 깃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개인의 성숙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P300

결국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포착된 자기만의 문제가 자기에게서 먼저 진리로 드러나는 것이 관건이지, 경전에 있는 진리를 묵수墨守하는 것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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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자연적인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의 손에 의해 가해지는 형벌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가장 보편적인, 그리고 또 가장 가혹한 것이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 P167

167-8 고대 그리스 격언에 ‘노예가 되는 날 인간은 인간성의 절반은 박탈당한다‘(「오디세이아」17권 속에서 소지기 에우마이오스가 한 말)는 말이 있는데, 그때 이 격언이 그대로 무서운 형태로 실현되었다. 노예의 자손인 로마의 도시 프롤레타리아들이 부패하였다. 그들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빵과 구경거리‘로 소일했고, 이것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마음껏 사치를 누린 생활 끝에 마침내 파탄을 가져왔으며, 그들이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는 날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장기간에 걸친 죽음과 같은 생활은 노예화의 도전에 대해 응전하지 않은 벌인데, 헬라스 사회 역사의 최악의 시대에 모조리 노예로 되고 말았던 이들 온갖 잡다한 출신과 내력을 가진 인간의 대다수가 그와 같은 멸망으로의 넓은 길을 다같이 걸어갔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도전에 대항하여 무슨 방법으로서든 ‘교묘하게 뚫고 나가‘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자는 하인의 신분으로 차차 입신하여 큰 소유지의 관리 책임자가 되었다. 카이사르의 소유지는 헬라스 사회가 세계 국가로 발전한 뒤에도 계속 카이사르의 해방 노예의 손에 관리되었던 것이다. 어떤 자는 주인으로부터 소규모로 장사할 것을 허락받아서 모은 돈으로 자유를 되찾아 마침내 로마의 실업계에서 부유와 명성을 떨치는 신분으로 출세했다. 그런가하면 어떤 자는 내세에서 철인왕 또는 교회의 사제가 되기 위해, 현세에서는 그대로 노예로 지낸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르시스와 같은 자아도취에 빠진 난리 중의 부당한 권세나, 트리말키오처럼 영화를 누리는 젊은 부자의 화려한 생활을 거리낌 없이 경멸한 정통적인 로마 사람조차도, 절름발이 노예 에픽테토스(스토아파 철학자, 해방 자유민으로 많은 로마 인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의 조용하고도 맑은 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존경했다. 또한 이름도 없는 수많은 노예나 해방 노예의 산이라도 움직일 듣한 열렬한 신앙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니발 전쟁으로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까지 5세기 동안 로마의 위정자들은 힘으로 제지하려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앞에서 이 노예들의 신앙이 기적을 행하고 또한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자신이 여기에 굴복하고 말았다. - P167

181-3 오늘날, 서유럽의 해방 유대인 중에는 굳이 그들의 사회에다 근대 서유럽식의 민족 국가를 세움으로써 해방을 완성하려고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땅에 쫓겨났던 유대인을 복귀시키자고 하는 독자적 시온주의자(유대민족주의자)의 궁극적 목적은 몇 세기에 걸친 박해 때문에 생긴 특수한 심리적 컴플렉스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었다. 이 궁극의 목적에 있어서는 시온주의자들도 그에 반대 의견을 가진 해방 유대인 사상의 일파와 일치한다. 시온주의자나 동화주의자나 모두 ‘특수 민족‘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염원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온주의자가 동화주의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유는 후자가 내세우는 방침이 불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화주의자의 이상은 네덜란드나 잉글랜드, 또는 아메리카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대로 ‘유대교를 신봉하되 단순히‘ 네덜란드 인·잉글랜드 인·아메리카 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문명국에 사는 유대인 시민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대신 토요일에 유대교회당(시나고그)에 간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동화한 그 나라에서 만족할 만한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하여 시온주의자들은 두 가지 대답을 한다. 첫째로, 가령 동화주의자의 방침이 그 지지자의 주장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해도 그것은 문명국에서만 해당될 뿐이지 실제로 문명국의 시민이 되는 행운을 가진 유대인의 수 중 온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둘째로, 가장 좋은 환경 밑에 있다 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단지 ‘유대교를 신봉하는‘ 인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뜻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온주의자의 눈으로 볼 때, 네덜란드 인·잉글랜드 인·아메리카 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유대인은 다만 공연히 그 유대인적 성격을 손상시킬 뿐 그들이 선택한 국적이 네덜란드이건 다른 어떤 이방의 나라이건 그 나라 사람의 성격을 완전히 몸에 지닐 가망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유대인이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무엘기> 85) 되는 데 성공하려면 동화의 과정은 개인적 기초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기초 위에 서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ㅡ시온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개개의 유대인이 개개의 잉글랜드 인 또는 네덜란드 인으로 동화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는 대신 유대 민족은 잉글랜드 인이 잉글랜드에서 그러하듯이 유대인이 내 집의 주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민족의 향토를 획득하거나 또는 회복함으로써 잉글랜드 국민이나 네덜란드 국민과 동화해야 한다.
시온주의 운동이 실제적인 활동을 실천 단계에 옮긴 지 불과 반 세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회 철학이 옳다는 것은 실제의 결과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팔레스티나의 유대인 농민 식민지에서 지난날의 ‘유대인 거리‘의 자손들이 완전히 면목을 일신하고 ‘이방인‘의 식민지 개척자 타입의 특성을 다분히 나타내는 개척적 농민이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실험의 비극적 불행은 이 지방에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아랍 사람과 화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그 역사를 통해 한 번도 자극을 받지 않았고 별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은 유대인 집단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들 집단은 모두가 변방의 땅에서 ‘성채‘ 안에 틀어박혀 살며 그 곳에서 완강한 농부, 또는 양성적인 고지 주민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는 서남단의 야만(예멘)의 유대인이나 아비시니아의 팔라샤 인, 카프카스(영어로 코카서스)의 유대계 고지 주민, 크리미아의 투르크 말을 쓰는 유대계 크림차크 인이 바로 그들이다. - P181

223-4 초원에서는 유목민과 사람 아닌 가축 무리와 함께 구성되어 있는 혼합 사회가 그러한 자연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목민은 엄밀하게 말해 그의 ‘인간 외의 협력자‘에게 의존하는 기생충은 아니다. 그들 둘은 서로 적절하게 도우며 살아간다. 가축은 자기의 우유뿐만 아니라 고기까지 유목민에게 주어야 하지만, 그 대신 무엇보다도 먼저 유목민이 가축을 위하여 생활 수단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초원 지대에서는 이들이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이와 반대로 농지나 도시에서 이루는 환경에서는 이주해 온 유목민과 토착민 즉 ‘인간 가축‘과의 혼성 사회는 경제적으로 불건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목자‘는 경제적으로는ㅡ정치적으로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ㅡ늘 남아도는 여분이며, 따라서 기생적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견지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아니라 일벌을 착취하는 수펄이 되었던 것이다. 생산적인 주민의 노동이 부양해야 되는 비생산적인 지배 계급이 없다면 주민은 경제적으로 더욱 유복해질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유목민 정복자에 의하여 수립된 제국은 급속히 쇠퇴하여 멸망해 버리는 운명을 겪었다. 마그리브(북아프리카)의 위대한 역사가 이본 할둔(유목민과 농경민 관계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역사철학을 세움. 1332~1406)은 제국의 평균 수명은 4대 즉 120년을 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역사가는 유목민 제국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정복이 이루어지면 정복자인 유목민은 이제까지 살던 영토에서 나와 떠돌아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이 되기 때문에 타락하게 마련이지만, 그들의 ‘인간 가축‘인 쪽은 자기 토지에 머무르며 여전히 경제면에서 생산적이기 때문에 차차 세력을 되찾는다. ‘인간 가축‘은 다시 자기의 인간성을 주장하고, 그들의 주인인 목자 즉 지배자를 나라 밖으로 추방하거나 동화시킨다. - P223

225-6 초원 지대 사회는 단순히 가축을 사육하는 인간, 그리고 가축 무리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초원 지역의 땅에 나오는 생산물에 의존하여 살아가기 위해 기르는 동물 외에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다른 동물ㅡ개, 낙타, 말ㅡ도 기르고 있었다. 이들 보조 역할을 하는 동물은 유목 문명의 걸작품인 동시에, 또한 그들의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양이나 소는 인간에게 쓸모있게 하려면, 다만 기르기만 하면 된다(하긴 이것만도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개와 낙타와 말은 단지 기를 뿐만 아니라, 훈련까지 시키지 않으면 한층 어려운 그들의 임무를 해낼 수가 없다. 인간이 아닌 보조자를 훈련시키는 일이야말로, 유목민이 해낸 가장 훌륭한 업적이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아바르 제국과 달리 훨씬 오래 계속되었던 까닭은, 이렇게 뛰어난 유목민의 기술을 정착 사회의 조건에 알맞게 적응시킨 점에 있다. 오스만의 파디샤들은 노예를 훈련항여, 그들의 ‘인간 가축‘ 사이에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도와주는 인간 보조자가 되게 함으로써 그들의 제국을 지탱해 나갔던 것이다.
노예를 군인이나 행정 관리로 삼는, 이러한 주목할 만한 제도ㅡ유목민 천재에게는 그럴 듯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선ㅡ를 오스만이 발명해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정착 민족을 지배했던 다른 몇 개인가의 유목민 제국ㅡ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제국ㅡ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시리아 왕국으로부터 독립한 파르티아 제국에 노예 군대가 존재했던 흔적이 있다. 그것은 기원전 4세기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맞서려는 듯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야망을 때려 부순 군대 중 하나는, 모두 5만 명의 병력 가운데 자유인이 불과 400명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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