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는 종속적이다. 훈고 訓詁에 갇힌 삶을 창의創意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다. 종속성을 벗어나서 독립적인 삶을 함께 누리다 가고 싶다. 남들이 벌여놓은 판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물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일은 이제 지겹다. 우리는 정말 우리 나름대로의 판을 벌여보는 전략적인 시도를 할 수 없을까? 선도력을 가져볼 수 없을까? - P7

언제 다시 돌아가도 되겠느냐는 판단을 의식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시점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하나 조건이 있다면, 제 경험에서 얻은 건데 좌우지간 자신한테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길이 될지는 모르지만 해석되지 않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입니다. 절차나 순서나 내용을 정확히 인식하려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 자신을 직접 내던지는 일입니다. 진실하게 자신을 대면하는 일입니다. - P297

300-305 문 깨달음은 혼자의 문제지만 결국 가족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가족한테 나의 사유를 어떻게 드러내고 또 어떻게 설득해서 같이 끌고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답_가족이라는 틀이 식구들의 개성을 크게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식구들 각자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지해야만 더욱 튼튼하고 발전하는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가족이 특별한 하나의 이념이나 목표에 갇히면, 그 구성원들의 개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부모가 자식들에게 반드시 의사가 되라고 요구하는 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의 꿈을 부모가 정해놓고 거기에 자식이 따르도록 하면 안 되지요.
우리는 모두 가족과의 조화보다는 나의 욕망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펼치기도 전에 왜 가족이나 사회와의 조화를 그렇게 먼저 생각해야 하죠? 우선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가족보다는 자신의 꿈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가족과의 조화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일을 시작한 인물이 있던가요? 그분들은 그분들의 지성의 높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려부터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논의의 완결성을 추구한다든지 합리성을 추구한다든지 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자기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지나친 고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울퉁불퉁한 삶, 새로운 삶, 고유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자기를 발휘하고 표출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을 너무 자주, 너무 깊게 고려하는 것은 매우 점잖아 보이지만 실은 별로 필요 없는 일들로 보입니다. 큰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문 개인의 성숙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나요?

답_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변화를 꿈꾸는 그 사람이 우선 성숙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이 그냥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주장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게 펼침으로써 변화를 시도하는 일이 많은데, 그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그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성숙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성숙된 개인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성숙의 높이와 깊이는 이미 그 개인을 넘어서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상당한 성숙에 이른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

성숙된 개인은 반드시 그 성숙도에 따라 동조자를 갖게 됩니다. 즉 사회적 확산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입니다. 아테네라는 도시를 지키는 신이지요. 그런데 이 미네르바는 왜 황혼녘이 되어서야 날기 위해 날개를 펴는 것일까요?
대낮에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지적인 활동에 익숙한사람들은 사건이 잠잠해지는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숙고熟考에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낮에 벌어지는 사건은 생소한 것, 처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적 체계로 바로 대응하기에는 어색하기 마련이죠. 그러니 사건이 발생하는 대낮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 사건이 잠잠해지고 나면 그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그것을 황혼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지적 체계로 남긴 것, 이것을 이론이라고도 하고 지식이라고도 합니다. 대낮에 A라는 사건이 벌어지면, 지식인들은 황혼녘에나 나타나서 A라는 사건을 분석하고 따져서 A‘라는 이론이나 지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은 한번 발생하고 나면 똑같은 사건으로는 다시 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A라는 사건은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사건인 것입니다. A라는 사건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B라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의사건을 만납니다. 그러니우리의 사명은 B라는 사건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당연히 B라는 사건을 만나서는 B‘라는 체계적 방법이 예측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A‘ 라는 지식을 갖고 또 그것을 신뢰하게 됨으로써, B라는 사건을 만나서도 A‘라는 지식을 가지고 B를 관리하려고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그렇게 안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A라는 사건과 A라는 이론(지식)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이해한 후, B라는 사건을 만나면 A라는 사건과 A‘라는 지식 간의 유기적 연관성을 기초로 해서 B‘라는 이론(지식)을 건립하여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본 나라는 새롭게 마주하는 세계를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할 줄 알기 때문에 계속 전진할 수 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보지 않은 나라는 계속해서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지식을 변화하는 세계에다 억지로(본인은 자연스럽다고 착각하지만...) 적용하니까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전진이 더디거나 아예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생산국이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생산은 곧 사유의 생산력에 의존합니다. 사유의 생산력은 독립적 주체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우리가 자아를 성숙시킨다, 자아를 독립시킨다는 말은 사건 B를 마주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이론) A‘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에서 이탈해서 B를 A로 보지 않고 B‘를 생산하려는 용기를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개인의 성숙, 지적 성장, 독립, 이런 것들은 그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진보와 관련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립적 주체가 발휘하는 인문적 용기는 문명이나 국가나 사회나 인간이나 인류의 방향과 관련되는 일이므로 이미 사회적입니다. 성숙한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성숙을 통해서 이미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까요? 우리는 지식과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지식과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정말 더 창의적이 되었고 더 여유로워졌는가? 더 행복해졌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과 경험이 주는 무게보다 나의 무게감이 작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지식과 경험의 무게보다 나의 무게를 더 크게 하는 것, 더 커진 자신의 내면을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밟고 서서 지배하는 것, 이것이 결국은 주체의 독립이자 성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에서 가질 수 있는시선이 탁월한 시선인데, 그 탁월한 시선이 B를 마주하면 바로 우리에게 B‘를 말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철학가나 예술가가 혁명가이고 더 나아가 문명의 깃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개인의 성숙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P300

결국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포착된 자기만의 문제가 자기에게서 먼저 진리로 드러나는 것이 관건이지, 경전에 있는 진리를 묵수墨守하는 것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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