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9 목성 주변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위험한 고에너지의 하전 입자들이 두껍게 둘러싸고 있다.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가까이에서 관측하고 토성과 그 너머로까지 항해하려면 우주선이 우선 목성의 이 위험한 복사 벨트의 외곽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고에너지의 하전 입자들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측 장비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전자 장비들을 완전히 태워 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고에너지 하전 입자는 보이저 호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그리고 또 넉 달 전에, 보이저 1호가 목성 주위에 고체 입자들로 이루어진 고리 구조를 발견해 알렸는데, 보이저 2호는 이 고리 구조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만약 보이저 2호가 목성 고리에 있는 돌멩이에라도 부딪쳐 우주선이 심하게 흔들린다면 안테나의 방향을 지구에 고정시킬 수 없게 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자칫하면 소중한 탐사 자료를 영원히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로 자칫하면 소중한 탐사 자료를 영원히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목성 통과 직전에 지상 통제실의 연구팀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상에 자리한 인간과 우주에 떠 있는 로봇이 서로의 지능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그동안 몇 차례 발생했던 비상사태를 모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 P278

279-81 보이저 2호는 1977년 8월 20일에 우주의 바다에 진수되었다. 보이저 2호는 화성 궤도를 커다란 호를 그리면서 통과하고 소행성대를 지난 후 목성권에 접근했다. 그리고 목성과 목성의 열네 개 남짓한 위성들을 한 줄로 꿰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보이저 2호가 목성 곁을 지날 때 목성은 보이저를 가속시켜서 토성을 근거리에서 통과할 수 있는 길목으로 보이저를 슬쩍 밀어 넣었다. 토성 중력의 도움으로 보이저는 다시 천왕성을 향해 힘차게 달리게 된다.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을 뒤로하면 보이저는 태양계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별들 사이의 광막한 바다를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할 새로운 운명이 보이저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탐험과 발견이야말로 인류사를 특징지은 인간의 가장 뚜렷한 속성이었으며, 인류사를 장식한 일련의 탐험 중에서 보이저 계획이야말로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15, 16세기에는 스페인에서 아조레스 제도까지 항해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지금은 이 시간에 지구와 달 사이에 놓인 우주의 해협을 훌쩍 건너뛸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이른바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하는 데 몇 개월씩이나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이 시간이면 태양계의 내해를 가로질러 화성이나 금성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화성과 금성이야말로 현대판 신대륙으로서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외로운 섬인 셈이다. 17, 18세기에는 네덜란드에서 중국까지 가는 데 1년 내지 2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오늘날 보이저는 이 시간에 지구에서 목성까지 갈 수 있다. 과거의 여행 비용이 오늘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더 비쌌다고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총생산 대비 1퍼센트에도 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현대 우주선들의 행성 탐사는 행성들의 유인 탐사를 알리는 선구자이며 선두주자이다. 인류의 탐사는 늘 이렇게 진척돼 왔다.
인류는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중요한 전환기를 맞으면서 지구의 모든 곳을 탐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유럽의 대여섯 국가들에서 대규모 함대를 세계 곳곳으로 용감하게 파견하기 시작했다. 물론 함대마다 그 모험의 동기는 다양했다. 분수에 넘치는 야망, 재화에 대한 탐욕, 국가적 자존심과 국가 간의 경쟁심, 종교의 맹목적 광신, 죄수의 대량 사면, 과학적 탐구심의 발동, 모험에 대한 심한 갈증,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의 고용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에서 우리는 탐험대를 유럽 밖으로 내밀었던 압력의 요인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항해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구를 하나로 묶고 지역주의의 문제를 일부 해소하여 인류를 하나의 종으로 통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도 행성 지구와 인류 자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이다. - P279

284-6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네덜란드의 전통에서 라이덴 대학교는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고문의 위협을 받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라고 강요받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에게 교수직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갈릴레오는 네덜란드 사람이 설계한 스파이글라스를 개조하여 그의 첫 번째 천체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망원경을 통해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변화, 달의 운석공 그리고 목성 주위의 네 위성 등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성들은 "갈릴레오의 위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천문학적 주장과 관련된 종교적 갈등을 1615년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털어놓고 있다.

대공비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몇 년 전에 소인은 천체 관측을 통하여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매우 색다른 것이었고 또 거기서 유도되는 결론이 학계의 공식 입장과 모순되었기 때문에 소인은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로부터 (그중에는 성직자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감내하기 어려운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제가 자연과학의 지식 체계를 뒤집으려는 모종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마치 제 손으로 그러한 것들을 하늘에 올려다 놓은 양, 많은 이들이 저를 극렬하게 매도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이 과학의 연구, 성과, 성장의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갈릴레오는 (그리고 케플러도) 지동설을 지지하며 이를 주창했다. 그러나 그런 용기를 그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교리를 따르는 데 있어 비교적 덜 광신적인 지역의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1643년 4월에 데카르트가 쓴 편지를 보자. 당시에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었다.

물론 당신도 최근에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받았고, 지구의 움직임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단으로 단죄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입장을 차제에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논문에서 제가 밝혀 설명한 모든 것들은 지구의 움직임에 관한 가설을 포함하여 너무도 상호 의존적입니다. 그러므로 그중 하나가 틀렸음을 알면, 나머지 것들도 모두 그 논리가 어긋남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저의 소견이 명확하고 확실한 준거에 의거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만, 교회의 권위에 맞서서 이를 고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저는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아니하며, "편히 살려면 남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라는 제 좌우명대로 지금껏 조용히 지내 왔습니다. 원컨대 앞으로도 조용히 살기를 바랍니다. - P284

359 데모크리토스는 어떻게 보자면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자, 아이들, 성性과 담을 쌓고 살았다. 자신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그러한 것들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우정을 소중하게 여겼고, 즐거움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며, 열정의 정체와 기원에 관한 철학적 고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아테네까지 갔지만 부끄러운 나머지 자기 소개도 하지 못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물질계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경외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독재 아래의 부유한 삶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난한 삶을 택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지배하던 종교들을 모두 악이라고 판단했으며, 불멸의 영혼이나 불멸의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원자와 빈 공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 P359

375 종교와 정치 분야는 그렇지 못하지만 과학 분야에서는 이오니아의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 뿌리를 둔 바람직한 면면을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가 미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인류 전체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몇몇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아직도 모호한 태도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대 사회가 안고 있었던 내재적 모순의 상당 부분을 아직도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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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문명을 통틀어, 어느 경우에서도 3세대 이상 연속하는 세대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런 관점에서 시간적 척도로 측정할 때 우리의 문명이 아직도 매우 젊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현재까지 절대 연령은 자매인 원시 사회의 연령에 비해 매우 젊다. 원시 사회는 인류 그 자체와 같은 나이이며 따라서 평균적인 어림을 잡아보면 대충 30만 년 동안 존속해 온 셈이 된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 ‘문명‘ 사회에서 인간의 역사인 이상 문명 속의 어떤 것이라도 ‘역사의 새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에 역사라는 말이 지구상에 인간이 살아온 기간을 뜻한다면 문명이 존재해 온 기간은 인간의 역사에 비해 인류 생애의 겨우 2퍼센트, 인류 생존 기간의 50분의 1을 차지하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의 문명은 우리의 목적에서 볼 때 두뇌 구조의 유사성과 인간 정신의 유사성 때문에 그 기간 동안 큰 차이 없이 그런대로 지금의 우리와 서로 동시대적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우리의 비판자들은 아마 이번에는 또 시간적인 격차를 논거로 내세우는 것을 그만두고 가치의 차이라는 점을 이유로 하여 문명의 비교 가능성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문명이라고 주장해 온 것의 대부분은 거의가 무가치한 것으로, 사실은 ‘미개‘하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과 ‘진짜‘ 문명(물론 우리 서유럽 문명과 같은)의 경험을 비교한다는 따위는 지적 에너지의 낭비임에 틀림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점에 관하여 독자는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우리가 독자에게 요구하려고 하는 지적 노력으로부터 대체 무엇이 나오는가 하는 것을 볼 때까지는 판단을 보류해 주기 바란다. 지금 여기서 가치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우리의 21개 사회를 모두 원시 사회를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상당한 정도로 발달한 것이지만, 이상적인 표준을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아직도 그 표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점에서는 오십보 백보여서 도저히 그 속의 하나가 다른 것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비판자ㅡ비록 여기까지 함께 따라오긴 했지만 여기서 작별하고 싶다ㅡ는 문명의 역사란 역사적 사실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역사적 사실은 어느 것이건 모두 본질적으로 독자적인 것인데 어떻게 역사에 시공간적 반복이 있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답은 이렇다. 당신 말대로 모든 역사적 사실은 개인 하나하나와 마찬가지로 어떤 점에서는 독자적이며, 따라서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관점을 달리 해보면 그 역사적 사실 자체가 그것이 소속되는 부류의 구성원이며, 따라서 그 부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한 시공간적으로 같은 종류의 다른 구성원과 비교될 수가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어느 생명체도 2개가 엄밀하게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리학·생물학·식물학·동물학·민족학 등의 과학이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한층 더 다양하여 종잡기 어렵지만 우리는 심리학의 존재와 그 활동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오늘날까지 심리학이 성취한 업적의 가치에 대하여 아무리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또한 인류학의 이름으로 불리는 원시 사회의 비교 연구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문명‘이라는 사회의 종류에 대하여, 인류학이 현재 원시 사회라고 하는 종류에 관하여 행하고 있는 것과 대체적으로 같은 분류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이 장의 마지막 절에서 한층 더 명백해질 것이다. - P66

67-8 우리의 사고 대상 중에서도 특히 인간 생활의 여러 현상을 바라보고, 드러내 보이는 방법에 세 가지의 상이한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이며, 둘째로는 확인된 사실의 비교 연구에 의해 일반적인 ‘법칙‘을 명백히 하는 일, 셋째로는 창작의 형태로 사실을 예술적으로 재생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바로는 사실의 확인과 기록은 역사의 기법이며, 이 기법의 관할에 들어가 보는 일은 문명 사회의 모든 현상이다. 일반적 법칙의 해명과 정식화는 과학의 기법이며, 인간 생활의 연구에서 과학은 인류학이며, 과학적 기법의 관할에 들어가는 현상은 원시 사회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리고 최후로 창작은 극과 소설의 기법으로 이 기법의 관할에 들어가는 현상은 인간 대 인간의 개인적 관계이다. 대체로 이상과 같은 견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속에 수록되어 있다(예를 들면 「시학」 속에서, 시인과 역사가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 P67

74 문명과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원시 사회(언젠가 이 단서가 중요하다는 것이 판명된다) 사이의 하나의 본질적인 차이는 미메시스(모방)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미메시스는 모든 사회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사회라는 종류 전체의 특징이다. 그 작용은 원시 사회나 문명 사회를 막론하고 영화 팬이 스타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 활동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사회에 있어서 미메시스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원시 사회에서 미메시스는 연장자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연장자의 배후에 서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살아 있는 연장자의 위엄을 강하게 하는, 말하자면 죽은 조상들에게로 향한다. 이와 같이 미메시스가 과거를 향해 뒤돌아서 있는 사회에서는 습관이 사회를 지배해서 사회는 정적 상태에 머문다. 이것과는 반대로 문명의 과정에 있는 사회에서의 미메시스는 개척자이므로 자연히 추종자들이 모여드는 창조적 인물에게로 향해진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월터 배저트(영국의 경제학자·문예비평가, 1826~77)가 「물리학과 정치학」에서 말한 ‘관습의 껍질‘은 벗겨지고 사회는 변화와 성장의 길을 따라 다이나믹하게 움직인다. - P74

76-7 우리는 우리의 탐구의 궁극적 목적이었던 원시사회와 문명 사이의 변함없이 오래된 근본적 차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단원의 궁극적 목적인 문명 발생의 성질에 관하여 다소의 실마리는 얻었다. 원시 사회가 문명 사회로 전환하게 된 원인을 찾던 무리는 그 변화가 정적인 상태로부터 동적인 활동으로의 이행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와 똑같은 설명이, 이전에 존재하던 문명의 내적 프롤레타리아가 창조력을 상실한 지배적 소수자로부터 떠나감으로써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는 경우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지배적 소수자는 공통적으로 정지해 있다. 성장기 문명의 창조적 소수자가 타락하거나 또는 퇴화하여 해체기 문명의 지배적 소수자가 된다는 것은 그 사회가 동적인 활동으로부터 정적인 상태로 빠져 들어갔다는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적인 상태에 대한 동적인 반동으로서 프롤레타리아는 새로운 환경을 향해 이동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지배적 소수자로부터 떠남으로써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것은, 원시 사회에서 고대 사회로 문명이 탄생하는 전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정적인 상태로부터 이를테면 기초체제에 대한 혁명처럼 동적인 활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문명의 발생은ㅡ친족 관계가 없는 것, 있는 것을 통틀어ㅡ스마츠 장군이 말한 ‘인류는 또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이렇게 운동ㅡ휴지ㅡ운동이라는 식으로 정과 동이 교대로 나타나는 리듬은 여러 시대의 많은 관찰자들에 의해 우주의 본질 속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함축성이 풍부한 비유적 표현에 뛰어난 중국 사회의 현인들은 이를 음과 양ㅡ음은 정에 해당하고 양은 동에 해당한다ㅡ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음을 나타내는 한자의 속뜻은 검은 소나기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듯하고, 한편 양을 나타내는 한자의 핵심은 구름이 깔려 있지 않아 태양이 팔방으로 광선을 발산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듯싶다.
한자의 표현으로는 음을 항상 먼저 말하는데, 우리가 지금 취급하고 있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인간이 30만 년 이전에 원시적 인간성의 ‘암반‘에 도달한 뒤 문명이라는 양의 활동을 개시하기까지 전체의 98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을 그 암반 위에서 휴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76

95-7 부분은 위험한 것이어서 비록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아니라도 부분적으로 빠져드는 위험과 변화는 아무래도 전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신화적으로 표현한다면, 신이 이미 창조해낸 것 중의 하나가 악마의 유혹을 받으면 그것 때문에 신 자신이 세계를 다시 창조해야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악마의 간섭은 특정한 쟁점을 놓고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ㅡ어느 쪽 결과도 가능성은 있다ㅡ신이 간절히 바라고 있던 음으로부터 양으로의 이행을 이룩한 셈이 된다.
극의 주역을 맡은 인간의 성격을 또 어떤가 하면,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예수이건 또는 욥이건 또는 파우스트, 아니면 아담과 이브이건 반드시 모두 고민하는 것이 기본 원칙으로 되어 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즉, 인류상의 단계)은 원시인이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에 대한 지배적 위치를 확립한 뒤 식물 채취 경제 단계에 도달한 음의 상태 즉, 정적인 상태의 회상이다. 지혜의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유혹에 대한 반응으로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일단 달성시킨 이 완전 상태를 저버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완전 상태가 생길지도 모르고, 또는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라는 도전을 승낙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낙원에서 냉혹한 세계로 추방되어, 거기서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받고, 남자는 평생동안 이마에 땀 흘리며 빵을 구해야 하지만 그것은 뱀의 도전을 수락함으로써 생긴 당연한 시련이다. 그 뒤 아담과 이브의 성교는 사회 창조의 행위로, 그 결과 2개의 신생 문명의 의인적 상징인 양을 치는 아벨과 땅을 가는 가인이 그들이다.
인간 생활의 자연 환경 연구자로서 가장 유명한, 또 가장 창조적인 현대 학자의 한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전문가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옛날 옛적에 벌거벗었고 집도 없고 불도 모르던 야만인들이 봄이 시작되면서부터 여름이 끝날 무렵에 걸쳐 열대의 따뜻한 고향에서 나와 차차 북쪽으로 이동해 갔다. 9월로 접어들어 밤의 추위가 몸에 스며들어옴을 느끼게 될 때까지 그들은 언제나 여름이었던 나라를 등지고 온 데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나날이 추위는 심해져갔다. 원인을 모르는 채 그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일부는 남으로 갔으나 이전의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다.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거기서 전과 같은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손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원시 야만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다른 방향으로 헤매고 있던 무리들은 극히 작은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고 말았다. 이 작은 집단에 낀 사람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인간의 재능 속에서도 가장 높은 의식적 발명의 능력을 사용했다. 어떤 자는 땅 속에 구멍을 파서 피난처를 찾으려 했고, 어떤 자는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모아 오두막과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었고, 어떤 자는 잡은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감쌌다. ······잠시 사이에 이들 야만인들은 문명으로의 커다란 전진을 실현한 것이다. 벌거벗고 있던 자가 옷을 입게 되었고, 집이 없던 자가 숨을 장소를 갖게 되었고, 하루살이 생활을 하던 자들이 고기를 말리고 나무 열매를 저장하여 겨울에 대비할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열을 얻기 위하여 불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렇게 그들은 처음에는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고 여겼던 곳에서 오래 살게 되었다. 그리고 가혹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거대한 진보를 이루었고 열대 지방 사람들을 훨씬 뒤처지게 했던 것이다."

고전학자의 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현대의 과학적 용어로 바꾸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버지는 고집이다. 적당히 단념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진보의 역설적 진리이다. 즉 네 번 되풀이되었던 빙하 시대의 혹독한 추위와 동식물의 이변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울창한 숲이 말라죽는 상태로 되었을 때 ‘달아난 원시인들‘은 자연의 지배를 가장 심하게 받았을 뿐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난관을 뚫고 나가 인간이 된 것은, 이미 앉을 나무조차도 없어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무리였고, 또한 나무 열매가 익지 않자 고기로 대신 먹은 무리들, 햇볕을 쫓아가는 대신 불과 의복을 만든 무리들, 거처의 방비를 구축하고 아이들을 훈련시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세계의 합리성을 입증한 무리들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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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3 그러나 때때로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는 한다. 탄소와 물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주로 이 두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탄소와 물을 기초 물질로 하는 생물인 것은 생명이 처음 태어날 즈음 지구에 탄소와 물이 가장 흔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구 이외의 행성에서는, 예를 들어 화성에서는 생명이 물과 탄소가 아닌 다른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나 칼 세이건은 물, 칼슘 그리고 각종 유기 분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거의 동일한 분자들로 구성된 집합체이면서, 단지 나와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이상하다. 분자가 나의 전부란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언짢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우주가 분자들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를 인간과 같이 복잡 미묘한 존재로 진화하게끔 허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고양된다. - P262

266-7 하지만 이 계획에는 역오염이라는 새로운 위험이 따른다. 미생물을 찾기 위해 화성의 토양 표본을 지구에 가져와 조사한다면 당연히 표본을 미리 살균시켜서는 안 된다. 그 탐사의 목표는 그것들을 산 채로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지구로 가져온 화성의 미생물들이 공중 보건에 위협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H. G. 웰스나 오선 웰스의 화성인들은 버른마우스와 저지 시의 점령에만 몰두하다가 그들의 면역 체계가 지구의 미생물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화성 미생물들은 없을지도 모른다. 존재한다 해도 그것들 1킬로그램을 섭취하고도 아무 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인 데다 엄청난 도박일 수 있다. 살균이 안 된 화성의 표본을 지구로 가져오고 싶다면 지독하게 엄격한 격리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세균 무기를 개발하고 비축하는 국가들이 있다. 간혹 그 나라들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듯싶지만 내가 아는 한 아직 전 세게적으로 전염병을 발생시키지는 않았다. 어쩌면 화성 표본들을 지구로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같으면 표본을 채집해서 회수해 오는 탐사를 고려해 보기 전에 먼저 확신할 수 있는 안전 대책부터 강구할 것이다. - P266

269-273 화성의 표면적은 지구의 육지 넓이와 거의 같다. 철저하게 답사하려면 분명히 몇 세기 동안 꼬박 이 일에만 매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화성 탐사가 완료되는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로봇 비행선으로 공중에서 지도를 다 작성하고 이동 차량으로 표면을 샅샅이 조사하고 표본을 지구로 안전하게 가져오고 인간이 화성의 모래 위를 걸어본 후에 말이다. 그런 다음엔 화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이 지구를 잘못 사용한 수많은 사례가 있다 보니 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만약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화성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경우라면 비록 화성 생물이 미생물에 불과할지라도 화성은 화성 생물에게 맡겨 둬야 한다. 이웃 행성에 존재하는 독립적 생물계는 가치 평가를 초월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그런 생명의 보존은, 내 생각이지만, 화성의 다른 용도에 우선돼야 한다. 그렇지만 화성에 생명이 없다면 어떨까? 화성은 원자재의 공급원으로는 적당치 않다. 앞으로도 수세기 동안은 화성에서 지구까지 화물을 운송해 오는 데 드는 비용이 비현실적으로 비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화성에 가서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인간이 거주할 수 있도록 화성을 변형시킬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아름다운 세계이기는 해도 화성은 편협한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구인에게는 주로 낮은 함량의 산소, 액체 상태에 있는 물의 결여 그리고 많은 양의 자외선 복사 등이 해결해야 할 큰 문제들이다.(저온이라는 악조건은 연중 내내 운영되는 지구의 남극 과학 기지가 입증하듯이 극복하기 힘든 장애는 아니다.) 이 모든 문제들은 공기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대기압이 높아지면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또 산소가 많아지면 지구인도 화성 대기를 직접 호흡할 수 있을지 모르고, 자연스럽게 오존이 형성되어 태양의 자외선 복사로부터 화성의 표면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한 운하들, 계단처럼 겹겹이 쌓인 극지 지형, 그 밖의 다른 증거들이 화성의 대기 밀도가 한때 높았음을 시사한다. 이 기체들이 화성에서 모조리 탈출했을 것 같지는 않다. 화성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지표면의 암석과 화학적으로 결합했고 또 일부는 지표면 아래 얼음 안에 갇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재 극관의 얼음 덩어리 속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극관을 증발시키려면 열을 가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극관에 검은색 가루를 뿌려서 태양 광선의 흡수를 조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지구에서 숲과 초지를 없애 버리는 경우와 반대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극관의 표면적이 엄청나게 넓어서 극관 전체를 검은색 가루로 뒤덮으려면 새턴 5호의 추진 로켓 1,200대 분의 먼지를 지구에서 화성까지 실어 날라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화성 표면에 자주 이는 강풍이 일껏 덮어 놓은 극관의 먼지를 흩어 버릴지도 모른다. 더 좋은 방법은 자기 복제가 가능한 어떤 종류의 검은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까무잡잡한 소형 기계를 화성에 보내서 극관 전역에 걸쳐 토착 물질로부터 자기와 같은 소형 기계들을 복제하도록 한다. 사실 그런 기계들이 있기는 하다. 우리는 그것을 식물이라고 부른다. 적응과 생존에 아주 능한 식물들이 있다. 적어도 지구 미생물들 중 몇몇은 화성에서 생존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훨씬 혹독한 화성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어두운 색깔의 식물ㅡ예를 들어 이끼ㅡ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서 유전공학의 기술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 식물이 번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현상을 기대해도 좋다. 먼저 화성의 광대한 얼음 극관에 그와 같은 이끼류의 씨를 뿌린다. 씨가 뿌리를 내려 번창하면서 극관을 어둡게 변색시킬 것이다. 그러면 태양 광선이 아주 효율적으로 흡수된다. 따라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장구한 세월 동안 갇혀 있던 태고의 화성 대기가 밖으로 방출되는 극적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화성판 조니 애플시드(미국의 과수 개척자. 후세 사람들을 위해 미국 각지를 다니면서 사과씨를 뿌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과씨와 묘목을 나눠 주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ㅡ옮긴이)를 상상할 수 있다. 화성의 애플시드는 인간이거나 로봇일 수 있다. 화성의 애플시드가 미래 인류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얼어붙은 극지의 황무지를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니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러한 작업을 일반적으로 지구화라고 부른다. 외계 행성의 환경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온실 효과와 반사도의 변화를 통해서 지구의 기온을 약 1도 정도 교란시켰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속도로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산림과 초지를 파괴한다면, 불과 한두 세기 안에 지구의 기온은 1도 이상 더 변할 것이다. 이런 지구의 환경 변화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할 때 화성이 적정 수준으로 지구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마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불과할 것이다. 훨씬 기술이 진보된 미래에는 화성의 대기압을 증가시키고 물을 액체 상태로 존재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극관에서 녹아 내리는 물을 따뜻한 적도 지대로 운송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운하망 건설이다.
운하들의 거대한 연결망을 통하여 지표면과 그 아래에서 녹은 얼음을 적도 지방으로 수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은 100년도 채 못 되는 가까운 과거에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서 실제로 진행 중이라고 착각했던 바로 그 생각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로웰과 월리스 모두 화성에서 인간이 거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물 부족을 들었다. 운하 연결망이 구성된다면 물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화성에서의 인간 거주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로웰은 극히 어려운 시상 조건에서 관측했다. 로웰이 화성과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스키아파렐리 같은 사람들도 운하 비슷한 것들을 관측한 적이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그것을 가냘픈 홈이라는 뜻으로 "카날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로웰은 그것을 행성을 대규모로 개조하고 있는 지적 생명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인간은 감정이 연루되면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웃 행성에 지성을 갖춘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보다 더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이 시점에서 나는 굳이 로웰의 생각에 큰 무게를 실어 주고 싶다. 그의 생각을 나는 하나의 훌륭한 예언으로 간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로웰의 운하망은 정녕 화성인이 건설한 것이 될 터이다. 화성인이 없으니 로웰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당신은 나무라겠지만, 이 틀린 생각마저 나는 하나의 정확한 예언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바로 우리가 로웰의 화성인인 것이다. - P269

275-6 처음에 섬사람들은 자기네가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다른 데 어디엔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라도, 망망대해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외부 세계와의 교역 따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들은 선박을 발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달로 갈 수 있는 어떤 방법이 발명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현재 우리 주위에 이런 탐험을 감행해 줄 드레이크 선장도 콜럼버스도 없고, 공중을 헤쳐 나갈 여행편을 발명해 줄 다이달로스도 없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은 우리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을 우리에게 밝혀 주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자 갈구하나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 후손에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 존 윌킨스, 『달세계의 발견』, 1638년 - P275

276-278 1979년 7월 9일 보이저 2호라는 이름의 로봇과 목성권의 회우가 이루어졌다. 행성 간 공간을 항해하기 시작한 지 거의 2년 만의 사건이었다. 조립에 들어간 개별 부품의 개수만 수백만 개에 이르는 대단히 복잡한 기능의 이 우주선이 그 먼 거리를 아무 탈 없이 무사히 항해해 낸 것이다. 하나의 부품에 이상이 발생한다면 다른 것이 그 부품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도록,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을 여러 개씩 중복 조립한 덕을 단단히 본 것이다. 보이저 2호는 총질량이 0.9톤이고 전체 크기가 큰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태양계의 외곽 지대를 탐험하는 것이 이 우주선의 임무였기 때문에 보이저 2호는 다른 우주선들과는 달리 태양의 빛 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직접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이저 2호는 추진력을 태양전지 대신 소형의 자체 핵 발전소에서 공급받도록 했다. 플루토늄 펠릿의 방사능 붕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이 핵 발전소는 수백 와트의 발전 용량을 자랑한다. 우주선 중심부에는 3대의 통합 컴퓨터와 함께 온도 제어 시스템과 같은 자체 유지용 설비들이 탑재돼 있다. 지구에서 보내는 명령을 수신하고 탐사 결과들을 지구로 송신하는 일은 지름 3.7미터의 접시형 안테나의 몫이다. 우주선이 고속으로 항해하는 동안 주사 플랫폼이 목성과 목성의 위성을 계속해서 추적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과학 장비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플랫폼 위에 설치돼 있다. 주요 과학 장비에는 자외선 분광 측정기, 적외선 분광 측정기, 하전 입자 검출기, 자기장 측정기, 목성 전파 수신기 등이 포함돼 있다. 보이저 계획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장비는 두 대의 텔레비전 카메라로서 이것들이 태양계 외곽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행성들의 생생한 모습을 수만 장의 화상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 준 장본인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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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흥미 있는 일로는, 775년 당시의 횡단면을 돌이켜보아도 세계 지도상에 나타나는 사회의 수가 오늘날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사회가 형성하는 문화 지도는 우리 서유럽 사회가 처음 출현한 이래 오늘날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 뒤의 생존 경쟁에서 서유럽 사회는 같은 시대의 다른 사회를 궁지로 몰아 그 경제적·정치적 세력의 그물 속에 넣어 버렸지만, 이들 사회의 고유문화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이들 사회는 거센 압박에서도 여전히 그 정신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 P22

27 사실 제국이 멸망했는데도 교회가 살아남은 것은, 교회가 민중을 지도하고 민중의 충성심을 얻은 데 비해, 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어느 쪽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은 교회는 마침내 거기에서 새로운 사회를 탄생시키는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 P27

29-30 헬라스 사회와 서유럽 사회를 ‘부자관계‘라고 인정함에 있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징조를, 다른 ‘어버이‘ 사회를 발견하기 전에 지적해 두자.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요람지 또는 발상지가 선행 사회의 발상지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낡은 사회가 마주한 최전선이 새로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다른 경우에도 비슷한 이동이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착수해야 한다. - P29

39 그리고 또한 이 중국에 있어서도 고대 그리스 사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몇 세기 동안의 동란기는 조금 앞서 일어난 해체 작용으로부터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죽은 뒤에 일어난 군국주의의 불길은 마침내는 스스로를 불태워 버렸는데, 공자가 인생철학을 펴기 이전에 이미 이 불길은 점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의 현세적인 처세 철학과 노자의 현세 초월적인 무위의 가르침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역사의 성장이 이미 멈췄음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 P39

64-5 1873년에 프리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명 생활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들의 대부분은, 서로 다른 나라들이 그 발명을 처음으로 필요에 의해 또한 일정한 사회적 진보의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시공간을 달리하여 몇 차례고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인쇄술은 중국과 중세 유럽에서 각기 독립해서 발명되었고, 또 고대 로마에서도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이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음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갖가지 간단한 목적에 손쉽게 사용되었던 그 과정을 누군가 나서서 그것을 서적의 복제에 응용하여 큰 진보를 이룩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쇄술의 경우와 같은 일이 문자의 경우에도 일어났다고 믿을 수 있으나, 또 한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기술에서도 예를 들 수가 있다. 이집트나 그리스·이탈리아·브리튼 제도의 초기 건축물 유적이나 중앙아메리카의 페허화한 도시에서 가장 낡은 건축의 유적을 비교해 보면, 아치와 돔의 위대한 발명이 인류의 기술사에 있어 한 번만이 아니라 전파 없이 몇 번이고 이루어졌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문명생활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중요한 기술의 대부분ㅡ맷돌의 사용, 활의 사용, 말 길들이기, 통나무배를 파는 법 등ㅡ이 멀리 떨어진 때와 장소에서 몇 번이고 반복 발견된 일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치 제도도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제도에 있어서도 시간과 장소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되풀이되어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 제도를 요구하는 상황이 서로 멀리 떨어진 때와 장소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 인류학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인간의 사상과 관습의 유사점은, 어디서나 인간의 두뇌 구조는 유사하기 때문에 인간정신의 성질도 유사하다는 데에 있다. 이 두뇌기관의 구조와 신경 작용이 인류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나 대체로 동일하듯이 정신도 일정한 보편적인 특성·능력·행동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 두뇌 작용의 유사성은, 예를 들면 19세기에 다윈과 러셀 월리스(영국의 박물학자·사회사상가. 1823~1913)가 같은 자료로 연구 활동을 해서 동시에 진화론에 도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같은 시대에 동일한 발명 또는 발견에 대해 우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고 나타나는 수많은 사례들이 설명된다. 인류의 공통된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유사한 정신 작용ㅡ그 자료는 단편적이며, 지력은 유치하고, 결과는 모호하지만ㅡ에 의해 토테미즘이나 족외혼인제(에크소가미), 수많은 정죄의식과 같은 신앙이나 제도가 가장 멀리 떨어진 민족이나 지역 곳곳에 출현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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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인생 100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1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20세기에도 아주 기이한 자연 현상이 몇 건 일어났다.
그중의 하나가 1908년 6월 30일 이른 아침 중앙시베리아의 한 오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날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이 목격됐다. 그것이 지평선에 닿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약 2,000제곱킬로미터의 숲이 모두 납작하게 밀렸고, 낙하 지점 가까이에 있던 수천 그루의 나무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그때 대기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지구를 두 바퀴나 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틀 동안은 미세한 고체 티끌 입자들이 대기 중에 하도 많이 떠돌아 다녀서 폭발 지점에서 무려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런던에서도 한밤중에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온 하늘이 산란광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의 제정 러시아 정부는 그런 사소한 일을 한가하게 조사할 여력이 없었다. 멀고 먼 시베리아의 오지, 미개한 퉁구스 족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현지의 상황을 조사하고 현장의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서 파견된 정부 조사단이 도착한 것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0년이 지난 후였다. 그들이 조사 현장에서 가져온 증언의 일부를 들어 보자.

이른 아침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이었다. 천막 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천막과 함께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랐다. 땅바닥에 떨어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 모두가 경미한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크리나와 이반은 정신을 잃은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들이 정신을 차릴 즈음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나무들이 온통 불에 타고 있었으며, 숲의 태반이 파괴돼 있었다.

나는 그때 바노바라의 무역 사무소 앞에 집을 갖고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짚 앞 베란다에 앉아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무로 만든 통에 테두리를 두르려고 막 도끼를 집어 들었을 때, ...... 갑자기 하늘이 둘로 쪼개지고, 숲 위로 높이 타오르는 불빛이 북쪽 하늘로 넓게 번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내 웃옷에 불이 붙은 듯한 열기를 느꼈다. ...... 상의를 벗어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아주 큰 무엇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베란다에서 약 6미터 정도 떨어진 땅 위로 튕겨 나가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내가 뛰어와서 나를 오두막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자 돌이 쏟아지는 듯한, 아니면 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땅이 흔들렸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땅에 엎드렸다. 머리가 돌에 맞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늘이 쪼개질 때, 대포에서 나올 법한 뜨거운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와 오두막을 쓸고 지나갔다. 땅바닥에는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쟁기 옆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대포 소리가 쿵 하고 들렸다. 내 말이 그 소리에 놀라서 땅에 펄썩 주저앉았다. 북쪽 숲 위로는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가문비나무 숲이 다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폭풍이 온다고 생각했고 쟁기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쟁기를 움켜쥐었다. 바람이 아주 강해서 땅 위의 흙을 휘몰아 갔으며, 폭풍은 앙가라의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만들었다. 내 땅이 언덕배기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요란한 소리에 말들이 어찌나 놀라던지, 어떤 놈은 쟁기를 질질 끌면서 이리저리 도망다녔고, 어떤 녀석은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굉음이 들렸을 때 넋이 나간 채 가슴에 성호를 긋는 목수들이 보였고, 세 번째 충격음이 터지자 목수들이 건물에서 나무토막이 쌓인 곳으로 떨어졌다. 너무 큰 충격으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시켜 주느라고 나는 그들을 달래야 했다. 우리는 결국 일거리를 내버려 둔 채 마을로 돌아왔다. 두려움에 떨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서성거리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느라고 모두들 자기가 겪은 상황을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밭에 있었다. 말 한 마리는 쟁기에 이미 붙들어 맸고, 나머지 한 마리마저 막 매려던 참이었는데, 오른쪽에서 총소리가 한 방 크게 들렸다. 내가 즉시 돌아서 보니, 하늘에 길쭉한 물체가 불길에 싸여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앞쪽의 머리 부분이 꼬리 부분보다 훨씬 넓었고 색깔은 대낮에 보는 불과 같았다. 크기는 태양보다 여러 배 컸지만 밝기는 태양보다 덜 밝아서 맨눈으로 쳐다볼 수 있었다. 불길 뒤로 먼지처럼 보이는 것이 따랐다.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먼지 구름이 작게 피었고 지나간 자리에 푸르스름한 연기가 감돌았다. ...... 불길이 사라지자마자 꽝꽝 하는 소리가 총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고 땅이 흔들렸으며 판잣집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나는 그때 칸 강변에서 양모를 빨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갑자기 놀란 새의 파닥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강물이 급작스럽게 불어 수위가 높아졌다. 그 뒤에 날카롭고 큰 소리가 한 번 들렸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일하던 사람 중 하나가 놀라서 물에 빠졌다.

이 놀라운 현상을 우리는 퉁구스카 사건Tunguska Event이라고 부른다. - P164

169-70 만일 이와 같은 규모의 충돌이 오늘 다시 발생한다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을 핵폭발로 오인할 소지가 다분하다. 혜성 충돌의 결과가 메가톤 급의 핵폭탄이 폭발할 때 볼 수 있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치솟는 불덩이의 규모며 버섯구름의 출현은 물론이고 그 모양까지 똑같다.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혜성의 경우 감마선의 방출과 방사능 낙진이 없다는 점이다. 큼직한 혜성 조각과 지구가 충돌할 확률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건이 전혀 안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자연에서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 현상이 핵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괴이한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한번 들어 보도록 하자. 과거 45억 년의 역사를 통해서 수백만 개의 혜성들이 지구와 충돌해 왔듯이, 작은 혜성 하나가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이 오늘 발생한다면, 현대 지구 문명은 그 사건에 즉각적으로 잘못 반응하여 핵전쟁을 일으키고는 자기 파멸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이 시나리오의 개연성은 혜성 충돌로 일어나는 현상이 핵폭발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 자체의 구조, 지구와 혜성 충돌 가능성 그리고 그 충돌이 가져올 자연 재해의 내역과 규모 등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게 연구해 둘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려할 만한 사건이 한 번 있었다. 1979년 9월 22일 미국의 벨라 인공 위성이 남대서양과 서인도양 근방을 날다가 강렬한 불빛이 두 번 번쩍거리는 것을 감지했다. 사람들은 이 섬광의 발생 원인으로 우선 핵실험을 꼽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이스라엘이 TNT 2,000톤 규모, 즉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핵폭탄의 6분의 1 수준의 소형 핵무기를 비밀리에 시험하는 중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국제 정치에 미칠 심각한 영향을 세계 도처에서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섬광의 원인이 애초부터 핵무기가 아니라 소행성이나 혜성 조각의 충돌로 밝혀졌더라면 그 사건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공군기가 섬광이 검출된 지역의 상공을 비행하면서 실제로 방사능을 측정해 본 결과, 그 어떤 방사능도 검출되지 않았다.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세계는 이 사건을 통해서 확실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즉 지구와 근접 천체의 충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현대 지구 문명이 엉뚱한 이유 때문에 핵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P169

170-1 혜성은 대부분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얼음‘이라는 표현은 순수하게 물로 된 얼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물, 메탄, 암모니아 등의 혼합물이 결빙된 것을 총체적으로 얼음이라고 지칭한다. - P170

181 태양계의 형성 초기에는 생성 중이던 행성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것들 중에서 긴 타원형 궤도를 그리며 서로 엇갈리는 궤도를 돌던 행성들은 충돌하여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원형 궤도를 돌던 원시 행성들은 살아남아 점점 크게 자랄 수 있었다. 현재의 행성들은 충돌이라는 자연 선택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초기의 파국적 충돌을 모두 이겨내고 이제 우리 태양계는 중년의 안정기에 들어선 것이다. - P181

183 지구와 작은 헤성 조각이 충돌하면 퉁구스카 사건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런 사건은 대략 1,0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그러나 핼리 혜성과 같이 지름이 대략 20킬로미터 수준에 이르는, 비교적 커다란 혜성과 충돌할 확률은 기껏해야 10억년에 한 번꼴이다. - P183

195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시한 것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벨리코프스키 건의 가장 서글픈 면은 그 가설이 틀렸다거나 그가 이미 입증된 사실을 간과해서가 아니라, 자칭 과학자라는 몇몇 이들이 벨리코프스키의 작업을 억압하려 했던 데에 있다.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 봐 주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이런 자세의 과학이라면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 P195

196-7 사이 사진 중) 여기에서는 DNA 나선을 볼 수 있는데, 나선 가닥 각각에 원자들이 대략 4,000개씩 늘어서 있다. DNA 분자 하나에서 나선 가닥은 대략 1억번 휘감아 돈다. 그러므로 DNA 분자 하나는 약 1000억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돼 있다.1000억은 전형적인 은하 하나에 속한 별들의 총수와 엇비슷한 수이다. - P196

198 자외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호박벌과 광전 소자는 자외선을 능히 감지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고 넓다. - P198

199-200 1844년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영원히 미지로 남겨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식의 예를 찾고 있었다. 그는 별과 행성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자신이 찾던 완벽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별에 직접 가 볼 수도 없고 시료를 채취할 수도 없으니 별의 구성 성분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콩트가 죽은 지 겨우 3년 후에 스펙트럼으로부터 화학 성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P199

236-7 하지만 지구상의 세균 중에는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종류가 상당수 있다. 그 밖에도 온도가 너무 떨어지면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종류, 자외선을 피해 자갈이나 얇은 모래층 밑으로 숨는 종류 등도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액체 상태의 물이 소량이라도 존재하면 세균들이 실제로 번식하기도 했다. 지구의 세균이 화성의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 화성에 세균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화성에서 훨씬 더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가 보기부터 해야 한다.
(구)소련은 무인 행성 탐사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했다.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 최소한의 에너지로 화성이나 금성으로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는 시기가 지구에 찾아온다. 행성들의 상대 위치와 케플러의 법칙과 뉴턴의 물리학만 알면 그 시기를 계산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이후 (구)소련은 그런 기회를 거의 놓치지 않고 그때마다 우주 탐사선을 발사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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