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자연적인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의 손에 의해 가해지는 형벌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가장 보편적인, 그리고 또 가장 가혹한 것이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 P167

167-8 고대 그리스 격언에 ‘노예가 되는 날 인간은 인간성의 절반은 박탈당한다‘(「오디세이아」17권 속에서 소지기 에우마이오스가 한 말)는 말이 있는데, 그때 이 격언이 그대로 무서운 형태로 실현되었다. 노예의 자손인 로마의 도시 프롤레타리아들이 부패하였다. 그들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빵과 구경거리‘로 소일했고, 이것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마음껏 사치를 누린 생활 끝에 마침내 파탄을 가져왔으며, 그들이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는 날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장기간에 걸친 죽음과 같은 생활은 노예화의 도전에 대해 응전하지 않은 벌인데, 헬라스 사회 역사의 최악의 시대에 모조리 노예로 되고 말았던 이들 온갖 잡다한 출신과 내력을 가진 인간의 대다수가 그와 같은 멸망으로의 넓은 길을 다같이 걸어갔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도전에 대항하여 무슨 방법으로서든 ‘교묘하게 뚫고 나가‘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자는 하인의 신분으로 차차 입신하여 큰 소유지의 관리 책임자가 되었다. 카이사르의 소유지는 헬라스 사회가 세계 국가로 발전한 뒤에도 계속 카이사르의 해방 노예의 손에 관리되었던 것이다. 어떤 자는 주인으로부터 소규모로 장사할 것을 허락받아서 모은 돈으로 자유를 되찾아 마침내 로마의 실업계에서 부유와 명성을 떨치는 신분으로 출세했다. 그런가하면 어떤 자는 내세에서 철인왕 또는 교회의 사제가 되기 위해, 현세에서는 그대로 노예로 지낸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르시스와 같은 자아도취에 빠진 난리 중의 부당한 권세나, 트리말키오처럼 영화를 누리는 젊은 부자의 화려한 생활을 거리낌 없이 경멸한 정통적인 로마 사람조차도, 절름발이 노예 에픽테토스(스토아파 철학자, 해방 자유민으로 많은 로마 인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의 조용하고도 맑은 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존경했다. 또한 이름도 없는 수많은 노예나 해방 노예의 산이라도 움직일 듣한 열렬한 신앙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니발 전쟁으로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까지 5세기 동안 로마의 위정자들은 힘으로 제지하려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앞에서 이 노예들의 신앙이 기적을 행하고 또한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자신이 여기에 굴복하고 말았다. - P167

181-3 오늘날, 서유럽의 해방 유대인 중에는 굳이 그들의 사회에다 근대 서유럽식의 민족 국가를 세움으로써 해방을 완성하려고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땅에 쫓겨났던 유대인을 복귀시키자고 하는 독자적 시온주의자(유대민족주의자)의 궁극적 목적은 몇 세기에 걸친 박해 때문에 생긴 특수한 심리적 컴플렉스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었다. 이 궁극의 목적에 있어서는 시온주의자들도 그에 반대 의견을 가진 해방 유대인 사상의 일파와 일치한다. 시온주의자나 동화주의자나 모두 ‘특수 민족‘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염원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온주의자가 동화주의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유는 후자가 내세우는 방침이 불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화주의자의 이상은 네덜란드나 잉글랜드, 또는 아메리카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대로 ‘유대교를 신봉하되 단순히‘ 네덜란드 인·잉글랜드 인·아메리카 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문명국에 사는 유대인 시민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대신 토요일에 유대교회당(시나고그)에 간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동화한 그 나라에서 만족할 만한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하여 시온주의자들은 두 가지 대답을 한다. 첫째로, 가령 동화주의자의 방침이 그 지지자의 주장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해도 그것은 문명국에서만 해당될 뿐이지 실제로 문명국의 시민이 되는 행운을 가진 유대인의 수 중 온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둘째로, 가장 좋은 환경 밑에 있다 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단지 ‘유대교를 신봉하는‘ 인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뜻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온주의자의 눈으로 볼 때, 네덜란드 인·잉글랜드 인·아메리카 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유대인은 다만 공연히 그 유대인적 성격을 손상시킬 뿐 그들이 선택한 국적이 네덜란드이건 다른 어떤 이방의 나라이건 그 나라 사람의 성격을 완전히 몸에 지닐 가망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유대인이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무엘기> 85) 되는 데 성공하려면 동화의 과정은 개인적 기초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기초 위에 서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ㅡ시온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개개의 유대인이 개개의 잉글랜드 인 또는 네덜란드 인으로 동화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는 대신 유대 민족은 잉글랜드 인이 잉글랜드에서 그러하듯이 유대인이 내 집의 주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민족의 향토를 획득하거나 또는 회복함으로써 잉글랜드 국민이나 네덜란드 국민과 동화해야 한다.
시온주의 운동이 실제적인 활동을 실천 단계에 옮긴 지 불과 반 세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회 철학이 옳다는 것은 실제의 결과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팔레스티나의 유대인 농민 식민지에서 지난날의 ‘유대인 거리‘의 자손들이 완전히 면목을 일신하고 ‘이방인‘의 식민지 개척자 타입의 특성을 다분히 나타내는 개척적 농민이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실험의 비극적 불행은 이 지방에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아랍 사람과 화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그 역사를 통해 한 번도 자극을 받지 않았고 별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은 유대인 집단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들 집단은 모두가 변방의 땅에서 ‘성채‘ 안에 틀어박혀 살며 그 곳에서 완강한 농부, 또는 양성적인 고지 주민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는 서남단의 야만(예멘)의 유대인이나 아비시니아의 팔라샤 인, 카프카스(영어로 코카서스)의 유대계 고지 주민, 크리미아의 투르크 말을 쓰는 유대계 크림차크 인이 바로 그들이다. - P181

223-4 초원에서는 유목민과 사람 아닌 가축 무리와 함께 구성되어 있는 혼합 사회가 그러한 자연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목민은 엄밀하게 말해 그의 ‘인간 외의 협력자‘에게 의존하는 기생충은 아니다. 그들 둘은 서로 적절하게 도우며 살아간다. 가축은 자기의 우유뿐만 아니라 고기까지 유목민에게 주어야 하지만, 그 대신 무엇보다도 먼저 유목민이 가축을 위하여 생활 수단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초원 지대에서는 이들이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이와 반대로 농지나 도시에서 이루는 환경에서는 이주해 온 유목민과 토착민 즉 ‘인간 가축‘과의 혼성 사회는 경제적으로 불건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목자‘는 경제적으로는ㅡ정치적으로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ㅡ늘 남아도는 여분이며, 따라서 기생적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견지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아니라 일벌을 착취하는 수펄이 되었던 것이다. 생산적인 주민의 노동이 부양해야 되는 비생산적인 지배 계급이 없다면 주민은 경제적으로 더욱 유복해질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유목민 정복자에 의하여 수립된 제국은 급속히 쇠퇴하여 멸망해 버리는 운명을 겪었다. 마그리브(북아프리카)의 위대한 역사가 이본 할둔(유목민과 농경민 관계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역사철학을 세움. 1332~1406)은 제국의 평균 수명은 4대 즉 120년을 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역사가는 유목민 제국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정복이 이루어지면 정복자인 유목민은 이제까지 살던 영토에서 나와 떠돌아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이 되기 때문에 타락하게 마련이지만, 그들의 ‘인간 가축‘인 쪽은 자기 토지에 머무르며 여전히 경제면에서 생산적이기 때문에 차차 세력을 되찾는다. ‘인간 가축‘은 다시 자기의 인간성을 주장하고, 그들의 주인인 목자 즉 지배자를 나라 밖으로 추방하거나 동화시킨다. - P223

225-6 초원 지대 사회는 단순히 가축을 사육하는 인간, 그리고 가축 무리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초원 지역의 땅에 나오는 생산물에 의존하여 살아가기 위해 기르는 동물 외에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다른 동물ㅡ개, 낙타, 말ㅡ도 기르고 있었다. 이들 보조 역할을 하는 동물은 유목 문명의 걸작품인 동시에, 또한 그들의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양이나 소는 인간에게 쓸모있게 하려면, 다만 기르기만 하면 된다(하긴 이것만도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개와 낙타와 말은 단지 기를 뿐만 아니라, 훈련까지 시키지 않으면 한층 어려운 그들의 임무를 해낼 수가 없다. 인간이 아닌 보조자를 훈련시키는 일이야말로, 유목민이 해낸 가장 훌륭한 업적이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아바르 제국과 달리 훨씬 오래 계속되었던 까닭은, 이렇게 뛰어난 유목민의 기술을 정착 사회의 조건에 알맞게 적응시킨 점에 있다. 오스만의 파디샤들은 노예를 훈련항여, 그들의 ‘인간 가축‘ 사이에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도와주는 인간 보조자가 되게 함으로써 그들의 제국을 지탱해 나갔던 것이다.
노예를 군인이나 행정 관리로 삼는, 이러한 주목할 만한 제도ㅡ유목민 천재에게는 그럴 듯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선ㅡ를 오스만이 발명해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정착 민족을 지배했던 다른 몇 개인가의 유목민 제국ㅡ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제국ㅡ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시리아 왕국으로부터 독립한 파르티아 제국에 노예 군대가 존재했던 흔적이 있다. 그것은 기원전 4세기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맞서려는 듯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야망을 때려 부순 군대 중 하나는, 모두 5만 명의 병력 가운데 자유인이 불과 400명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10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의 실패에 낙담했지만 실패는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해야 했던 실패의 아픔은 15세기 인류가 안고 있었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던 것이다. - P410

420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탐험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러한 곳을 찾아가 보아야만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이제 역사도 경험 과학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플라톤, 사도 바울, 표토르 대제와 같은 세계사의 주요 인물들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대 이오니아 그리스 인들의 과학 전통이 살아남아 발전했더라면 또 어떻게 됐을까? 역사를 바꾸는 데에는, 예를 들어 노예 제도를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여론을 압도할 만한, 어떤 강력한 시대적 요구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2,500년 전 동지중해를 밝힌 등불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산업 혁명이 있기 2,000년 전에 이미 과학적 방법론 및 기술과 공학에 대한 선구적인 개념이 있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더 나아가 이렇게 진보된 생각들을 그 시대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또 어땠을까? 그런 경우라면 아마 인류 역사는 1,000년 내지 2,000년은 앞당겨서 진보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지의 발명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 또한 1,000년 내지 500년 가까이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형성된 또 하나의 ‘지구‘에서는 레오나르도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남성이 한 번 사정할 때 수억 개의 정자가 나오는데, 이중에서 오직 하나의 정자만이 다음 세대의 생식을 위해 선택된다. 그런데 바로 이 선택을 통해서 그 다음 세대의 육체적, 정신적인 특징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500년 전의 아주 사소한 상황들이 조금만 다르게 전개됐더라면 우리는 현재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또 다른 다중 세계들이 무수히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P420

458-60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 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됐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우리의 태양은 제2세대, 또는 제3세대의 별일지 모른다. 태양에 들어있는 모든 물질, 아니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질은 두세 차례에 거친 항성 연금술의 결과물이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어찌 이것을 우연의 결과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초신성에서 유래한 충격파가 성간 기체와 성간 티끌로 구성된 성간운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중력 수축이 유발됐을 것이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리 태양계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됐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들의 화학 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이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이다. 농사가 무엇인가? 태양 광선을 조직적으로 추수하는 방법에 다름이 아니다. 마지못해 응하는 식물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긁어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이다. 따라서 인류는 전적으로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끝으로 유전의 관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명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찾아내는데 고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하기도 한다. 우주선은 초신성에서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 거의 광속으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들을 뜻한다.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진화도 이렇게 그 근원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질량이 큰 별들의 극적인 최후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P458

473-6 스와힐리 어로 ‘자유‘를 뜻하는 우후루라는 이름의 이 위성은 최초의 엑스선 위성 천문대였다. 이 위성은 1971년에 백조자리에서 초당 1,000번씩 깜빡거리는 밝은 엑스선원을 하나 발견했다. 이 엑스선 원은 그 후에 ‘백조자리 X-1‘이라고 명명됐다. 이 천체의 엑스선 밝기가 변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언제 빛을 밝히고 언제 빛을 끄느냐 하는 정보가 백조자리 X-1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속도는 결코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 킬로미터를 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백조자리 X-1의 크기도 기껏 커 봐야 300킬로미터를 넘을 수가 없음은 뻔한 사실이다.(300,000km/s * 1/1,000s = 300km) 크기로만 보면 겨우 소행성 규모의 천체가, 성간 공간을 통과한 다음에도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세기의 엑스선을 방출한다니, 도대체 이 천체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조자리 X-1의 위치는 가시광선으로 관측했을 때 고온의 청색 초거성이 보이는 자리였다. 직접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청색 초거성에 근접 동반성이 있음을 스펙트럼 선의 주기적 이동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즉 이 별은 혼자가 아니라 동반성과 함께 쌍성계를 이루는 별이었다. 쌍성계에서는 두 별이 서로 맞물려 돈다. 그러므로 궤도 운동의 관측자에 대한 상대 속도가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변화가 도플러 효과 때문에 흡수 스펙트럼선의 주기적 위치 변화로 나타난다. 천문학자들은 여기에서부터 쌍성계 구성원들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는데, 백조자리 X-1의 동반성은 태양의 약 10배 정도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 판명됐다. 초거성은 여러모로 보아 결코 엑스선의 방출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숨겨진 동반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질량은 태양의 10배인데 크기는 겨우 소행성 정도라니 블랙홀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엑스선의 원천은? 초거성에서 블랙홀로 빨려가면서 소용돌이치는 회전 원반에서 기체와 티끌들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마찰열이 발생한다. 이 열이 회전 원반의 물질을 엑스선이 방출될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한다. 전갈자리 V 861과 GX 339-4, SS 433, 컴퍼스자리 X-2 등도 블랙홀의 후보 천체들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 A는 초신성의 잔해로 알려진 전파 방출원이다. 이 초신성에서 나온 빛이 17세기경에 지구에 도착했을 터인데, 당시 유럽에 상당수의 천문학자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초신성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슈클로프스키는 숨어 있는 블랙홀이 폭발하는 핵을 먹어치우고 초신성의 불길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유럽 천문학자들이 초신성 폭발을 눈치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제안했다. 현존 자료의 편린들만으로 블랙홀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망원경이 이런 자료의 편린들을 통해 전설적인 블랙홀의 행각을 추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카시오페이아 A의 정체 규명에도 우주 망원경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블랙홀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 있다. 공간의 곡률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모눈이 그려진 신축성 좋은 얇은 고무막이 있다고 하자. 그 위에 질량이 작은 물체를 올려놓으면, 고무막의 표면이 움푹 패여 보조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변형된 고무막 위에 구슬을 살그머니 놓으면 그 구슬은 특정 궤도를 그리면서 보조개로 굴러 들어간다.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특정 궤도에 따라 돌고 있듯이 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인슈타인에서 비롯됐다. - P473

476-7 공간을 신축성 있는 천으로 비유했을 때 질량의 영향으로 변형된 공간이 중력으로 기능한다. 고무막의 예를 들면, 고무막이라는 2차원 공간의 특정 지역이 질량 때문에 국부적으로 3차원으로 구부러진 것이다. 이제 2차원의 고무막 공간을 3차원의 우주 공간으로 확장해 놓고 생각해 보자. 3차원 공간 역시 질량 때문에 국부적으로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4차원으로 변형된다. 특정 부위에 있는 질량이 크면 클수록 그 주변 공간도 더 심하게 변형될 것이다. 보조개가 더 깊이 파인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더 밀고 나가면, ‘블랙홀은 공간에 패인 바닥 없는 보조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당신이 그 보조개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자. 밖에서 봤을 때 당신이 다 빠져 들어가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강력한 중력장에서는 기게적, 생물학적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빠져 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세계에서는 모든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중력에 따른 막강한 조석력과 강력한 복사를 당신이 ‘신의 특별 배려로‘ 어떻게든 견뎌 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자전하는 블랙홀이라면,(자전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당신은 시공간의 또 다른 점으로 출현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적으로 모처와 모시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벌레가 사과에 침입하여 과육을 갉아먹고 나방이 돼서 빠져나가면 사과에 벌레의 입구와 출구를 연결하는 터널이 뚫린다. 벌레구멍, 즉 웜홀은 사과에 뚫려 있는 입구와 출구에 해당한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벌레 구멍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룬다. 성간 공간이나 은하 간 공간에 중력이 파 놓은 벌레 구멍들이 있다면 그 구멍들을 연결하는 ‘우주 지하철‘을 타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우주의 구석구석을 보통 방법으로는 구현될 수 없는 쾌속으로 여행할 수는 없을까? 블랙홀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 또는 먼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는 타임 머신의 역할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농담 비슷하게라도 이러한 생각들이 논의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주가 얼마나 ‘초현실적‘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4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1-2 안일로 지내는 사람들
우리가 지금 든 몇 개의 예는 너무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비평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어려운 생활 상태에서 쉬운 생활 상태로 옮겨진 사람들은 물론 한꺼번에 잔뜩 먹는 굶주린 인간처럼 ‘망쳐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훨씬 용이한 조건에 혜택을 입어온 사람들은 이 이점을 잘 이용하는 일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서 구별한 두 경우 중 후자 즉, 용이한 환경 속에만 있었으며, 우리가 아는 한 아직 그 밖의 환경에 몸을 내맡긴 일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상이한 환경으로 옮아간다는 교란 요소가 배제되어 우리는 용이한 환경 조건이 나타낸 효과를 순수한 상태로 연구할 수 있다. 다음에 예시한 사례는 약 50년 전에 서양 관찰자의 눈에 비친 니아살핸드(말라위)에서의 용이한 조건의 효과에 대한 실견기이다.

"이 끝없는 삼림 속에 마치 숲 속의 새둥지처럼 서로 두려워하고, 또 공통의 적인 노예 상인을 두려워하는 작은 토인촌이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는 옷도 없고, 문명도 없고, 학문도 없고, 종교도 없는 원시인, 그리고 생각하는 일이 없으며, 걱정이 없는 만족된 자연아가 천진난만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외모로 보기에는 참으로 행복스러워 보이고 거의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는다. ······아프리카 인은 종종 게으르다고 비난당하나 그것은 말의 오용이다. 그는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처럼 풍요한 자연 속에 있으면서 더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의 나태는 그의 납작한 코처럼 그 자신의 한 부분으로, 거북의 느린 동작이 비난 대상이 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비난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빅토리아조 시대의, 남서풍보다도 북동풍을 좋아하는ㅡ영국에선 남서풍이 부는 계절이 가장 좋은 계절, 북동풍이 부는 때는 그 반대ㅡ노력과 역행 생활의 전형이었떤 찰스 킹즐리(영국의 성직자, 그리스도교 사회주의를 주장했다)는 하루 종일 비파적을 불고 놀고 싶었으므로 ‘근면‘한 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위대하고 유명한 「나라의 역사」라는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 태평한 자들은 고릴라로 퇴화하는 벌을 받았다.
로토스를 먹으며 안락하게 지내는 인종에 대해 그리스의 시인과 근대 서유럽의 도덕가가 나타내는 태도에 차이가 분명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로토스를 먹는 인종과 그들이 살고 있떤 로토스국이 가장 놀라운 유혹적 매력을 지닌 것이며, 문명화해가는 그리스 인의 앞길에 놓인 악마의 함성이었다. 이에 반해 킹슬리는 만사자유인을 모멸과 비난의 눈으로 바라보고, 일체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치 근대 영국인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안락한 생활을 찾아 이동하는 이들 유민을, 물론 서유럽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이익을 위해 영국에 병합하여, 그들에게 바지를 입히고 성서를 주는 일이 절대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시인도, 부인도 아닌 이해하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창세기> 처음 몇 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로토스국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뒤 비로소 그들의 자손들이 농경과 도금술과 악기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 P121

130 시리아 사회의 전설에 보면 이스라엘 인의 신 야훼가 인간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엄중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왕을 시험한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께서 밤의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솔로몬이 대답했다. "······지혜를 종에게 내려주소서" 솔로몬의 청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 일을 구하되 자신을 위한 장수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을 위해 부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의 적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을 위해 불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의 적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오직 송사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나는 너의 말대로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을 주노라······ 너와 같은 자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네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주겠노라.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열왕기 상> 3:11~13)
이 솔로몬 왕의 선택에 대한 전설은 ‘선민‘의 역사를 비유한 이야기이다. 정신적 이해력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 인의 군사적 용감함과 페니키아 인의 해양적 용감함을 능가했다. 그들은 이교도들 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먼저 신의 나라를 구했다. 그러자 구하지 않은 모든 것도 그들에게 저절로 주어졌다. (<마태> 6:31~33, <누가> 12:29~31). 적의 생명에 대해 말하면, 필리스티아 인은 이스라엘의 수중에 들어갔다. 부에 대해 말하면, 유대인은 티로스와 카르타고의 유산을 이어받았고, 페니키아 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대륙에서 페니키아 인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대규모 상거래를 하게 되었다. 장수에 대해 말하자면, 페니키아 인이나 필리스티아 인이 모습을 감춘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도 아직 그들을 몰아낸 유대인은 그때와 똑같이 여전히 특수한 민족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고대의 시리아에 있어서 그들의 이웃사람은 세상의 도가니 속에 끌려들어가, 새로운 모습과 이름을 새긴 화폐로 다시 주조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이교도들을 거의 다 굴복시킨 이 연금술ㅡ세계 국가와 세계 교회와 민족의 이동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역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ㅡ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다. - P130

158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손실이 도나우 합스부르크 왕국의 이익이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나우 왕국의 영웅시대도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종말을 고했기 때문이다. 오스만 세력이 붕괴됨으로써 동남 유럽에 다른 세력이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공지가 마련되었으나, 그와 동시에 도나우 왕국에 그때까지 자극을 주고 있던 압박에서 해방시켰다. 도나우 왕국은 왕국이 성립되도록 끊임없는 도적으로 자극을 준 세력의 뒤를 따라 쇠퇴하여 결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운명을 함께 했다. - P158

159-60 끝으로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의 중간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와 투르크의 대조적인 태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1914~18년의 대전 후 그들은 함께 공화국으로서 새로 탄생했으며, 한때 서로를 적으로 여겨왔던 제국의 모습을 탈피했다. 그러나 유사한 점은 그것만으로 끝났다. 오스트리아 인은 패전 5개국 국민 중에서 가장 심한 고통을 입었으며 가장 순종적이었다. 그들은 새 질서를 극도의 단념과 극도의 회한으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에 반해, 투르크 인은 패전 5개국 중 유일하게 휴전 뒤 1년도 되기 전에 재차 무기를 들고 승전국과 싸움을 일으켜, 승전국이 그들에게 강요하려던 강화 조약의 근본적 개정을 요구하고 그 목적을 이룬 유일한 국민이었다. 그와 동시에 투르크 인은 그 젊음을 되찾고 그 운명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이미 퇴폐한 오스만 왕조 밑에서 망쳐진 채 버림받은 제국의 어느 한 지방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왕조로부터 버림을 받자 그들은 다시 한번 국경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술탄의 오스만처럼 실력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그들의 조국을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1919~22년의 그리스·투르크 전쟁의 결전장이 되었던 인 에뉘(아나톨리아 고원의 서북단에 있는 거리)는 600년 전에 셀주크족의 마지막 왕이 오스만 왕조의 첫 왕에게 할당해준 본래의 세습 영토, 바로 그 ‘술탄의 새로운 시작의 땅 안‘에 있다. 수레바퀴는 완전히 일회전 한 셈이다. 첫 막이 올려질 때 나타났던 그 수레가 무대 뒤켠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 P159

165-6 살아 있는 유기체의 어떤 특정한 기관 또는 기능이 사용 불가능하게 되어 같은 종류에 속하는 다른 유기체에 비해 불리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 도전에 대하여 다른 기관 또는 기능을 특별히 많이 사용하게 되므로, 결국 제2의 활동 분야에서 그 능력이 동료를 능가하게 되어 제1의 활동 분야상의 핸디캡을 메워주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장님은 눈이 보이는 정상적인 사람이 보통으로 가지고 있는 촉각보다도 그 촉각을 예민하게 발달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것과 거의 비슷한 현상이 사회 전체에서 발견된다. 우연에 의해서이건 자기의 행위에 의해서이건, 어쨌든 사회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집단 또는 계급은 어떤 종류의 활동 분야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여지거나 그 분야에서 완전히 축출당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그런 도전에 대하여, 그 활동력을 다른 분야에 집중시킴으로써 다른 것을 능가하는 식으로 웅전하는 수가 많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86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 P386

390 모래를 한 줌 움켜쥐면 그 속에서 약 1만 개의 모래알들을 헤아릴 수 있다니,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의 개수보다 더 많은 수의 알갱이들이 내 손에 들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볼 수 있는 별은 실재하는 별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맑은 날 밤하늘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은 가장 가까운 것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주에는 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많다. 지구상의 해변이란 해변 모두에 깔려 있는 모래알들보다 우주에 있는 별들이 훨씬 더 많다. - P390

394-5 오리온자리는 황도 12궁에 속하지 않는 별자리이다. 오리온자리는 사냥꾼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밝은 별과, 별자리 전체를 사선을 그리며 둘로 나누는 사냥꾼의 벨트 같은 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이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듯한 약간 흐릿한 세 계의 별이 실은, 천문학적 전통에 따르면, 오리온의 칼이다. 하지만 세 별들 중에서 가운데에 있는 것은 별이 아니라 오리온성운이라 불리는,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거대한 가스 구름이다. 오리온자리에 있는 많은 별들은 표면 온도가 높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매우 젊고 무거운 별이다. 이들은 빠르게 진화하여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폭발 현상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렇게 무거운 별들이 태어나고 죽는 주기는 몇 천만 년 정도이다. 만일 컴퓨터에서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진행시킨다면, 많은 수의 별들이 태어나고 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오리온자리의 별들이 마치 밤의 반딧불과 같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 P394

396 금년이 1980년이고 특수 상대성 이론이 태어난 해가 1905년이니, 지금 막 우리에게 도착한 광자가 안드로메다자리 베타별을 떠났을 때쯤, 지구에서는 스위스 특허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당시로는 지극히 획기적인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있었을 것이다. - P396

405 빛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는 주장을 우리는 종종 듣게 된다. 예를 들면, ‘생각의 속도‘ 같은 것인데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주장이다. 왜냐하면 우리 뇌의 신경 전달 신호는 당나귀가 수레를 끄는 것과 같은 느린 속도로 뉴런 사이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상대성 이론을 궁리해 낼 정도로 영리하기는 하지만 그리 빠르게 사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대 컴퓨터의 전기 회로 속에서는 전기 신호가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 P4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2 "여기서 인간은 위대한 혁명의 일보 직전에 있으며 마침내 얼마 안 있어 가축을 소유하고 곡식을 경작함으로써 식량 공급을 스스로 관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혁명은 북쪽의 빙하가 녹고, 그 결과 유럽을 뒤덮고 있던 북극성 고기압이 후퇴하고 대서양 저기압의 진로가 남지중해 연관으로부터 현재의 중부 유럽을 통과하는 진로로 바뀜으로써 생긴 위기와 관련이 있따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확실히 지난날의 초원 지대의 주민들에게도 그 창의성을 극도로 발휘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유럽의 빙하 지대가 작아짐에 따라 대서양 온대성 저기압대가 또다시 북쪽으로 퍼졌기 때문에 서서히 진행되는 건조화에 직면하여 그때까지 수렵 생활을 해 오던 주민들에게는 3개의 길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익숙하던 기후대를 따라 먹이가 되는 짐승과 함께 북쪽 또는 남쪽으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살던 땅에 머물러 건조에도 살아남는 새나 짐승을 잡으며 그럭저럭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가든지, 아니면ㅡ역시 고국을 떠나지 않고ㅡ동물을 사육하고 농사를 지음으로써 변덕스러운 환경에 의존하는 상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야 했다."

결국 거주지도 생활 양식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은 건조화의 도전에 응하지 않은 셈이어서 그 때문에 절멸이라는 벌을 받았다. 생활 양식을 변경하여 수렵자로부터 양치기로 전업함으로써 거주지를 옮기지 않은 사람들은 아프라시아 대초원 지대의 유목민이 되었다. 이들의 업적과 운명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에서 논한다.
생활 양식을 바꾸지 않고 거주지를 변경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 중에 북쪽으로 이동하는 저기압대를 따라감으로써 건조를 피한 집단들은 뜻밖에도 북쪽의 계절적 차가운 공기라는 새로운 도전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도전에 굴복하지 않는 자 사이에 새로운 창조적 응전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남쪽의 몬순(계절풍) 지대로 후퇴함으로써 건조를 피한 집단들은 열대의 변화 없는 기후가 발산하는 최면적 영향을 받아 게으르게 잠자는 일로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다섯 번째, 즉 마지막으로 건조화의 도전에 응하여 거주지와 생활 양식 양쪽을 다 바꾼 집단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보기 드문 이중의 반응이야말로 소멸해 가는 아프라시아 초원지대에 자리한 몇 개의 원시 사회로부터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창조한 사람들의 동적인 활동이었던 것이다.
이들 창조적인 사회 집단의 생활 양식에 일어난 변화는 식물 채취자나 수렵자의 생활로부터 경작자의 생활로 완전히 전환한 일이었다. 변화가 일어났던 거주지는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내버리고 온 초원과 이주해 온 새로운 자연 환경과의 성격의 차이를 재어 본다면 매우 큰 것이었다.
나일 강 하류 유역을 내려다보고 있던 초원이 리비아 사막으로 변화했고, 유프라테스·티그리스 두 강의 하류 유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초원이 룹알할리 사막(아라비아 동남부의 사막)과 루트 사막(이란 고원 중앙부의 사막)으로 변화했을 때, 이들 영웅적인 개척자들은 용감성인지 자포자기인지 아니면 이 지역에도 수분이 줄어드는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측때문인지 모르지만 일찍이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골짜기 밑바닥의 늪지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동적인 행동은, 버려진 그곳을 이집트 땅과 시나이 땅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다른 길을 택한 그들의 이웃들이 볼 때 그들의 모험은 뻔히 알면서도 사지로 뛰어드는 무모한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아프라시아 대초원 지대로 변화하기 시작한 지역이 아직도 지상 낙원이었던 그 옛날, 나일강과 메소포타미아의 정글 늪지대는 사람이 가까이 가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얼핏 보아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의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모험은 개척자들이 품었던 어떤 낙관적 기대보다도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변덕스러운 자연은 인간의 힘으로 정복되었다.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던 정글 늪지대는 모습을 갖추었고 정연하게 배치된 수로와 제방과 논밭으로 나타났다. 개간된 황무지는 이집트와 시나이의 국토가 되었고, 이집트와 수메르 사회가 그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 P100

103-4 나일 강 유역, 한 지방의 옛날 모습과 다른 지방의 오늘날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데 착안하여 잠시 가정을 해보자. 나일 강 유역의 현재 적도 강우권 밖에 있는 지방의 주민들에게 건조화라는 도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삼각주와 나일강 하류 유역은 본디의 자연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을까. 그래도 이집트 문명이 결국엔 출현했을까? 이 지역의 주민이 현재 실루크족과 딩카족이 바르알 자발 강변에 웅크리고 있듯이 야성인 채로 지금까지 나일 강 하류 유역 주변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또 한 가지, 이번에는 과거가 아니고 미래에 관한 가정적 문제를 생각해 본다. 우주의 시간적 척도는 말할 것도 없이 지구·생명·인류의 시간 척도로 재어본다 해도 6000년이라는 세월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로 어제에 해당하는 빙하기의 끝 무렵에, 나일 강 하류 유역의 주민 앞에 나타난 도적과 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내일 6000년 아니 그 보다 몇천 년이 더 지난 뒤에 나일 강 상류 유역의 현재 ‘살아 있는 박물관 부족‘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그들이 그 도적에 대하여도 역시 창조적 결과가 생기는 동적인 행위로 응전할 능력이 없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이 실루크족과 딩카족 앞에 나타나는 가정의 도전이 이집트 문명의 창시자 앞에 나타난 도전과 같은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고 조건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 도전이 자연 환경에서 일어난 것, 즉 기후의 변화가 아니고 다른 문명의 침입에 의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현재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서유럽 문명의 침입ㅡ이것이 현대에 있어서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모든 문명과 모든 원시 사회에 대하여 신화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을 담당하는 인간적 요인이다ㅡ에 의해 아프리카의 원시인에게 나타나고 있는 도전이 아닐까?
이 도전은 극히 최근에 시작된 것이어서, 도전을 받고 있는 나일 상류 지대의 어느 사회인가가 결국 행하고야 말 응전이 어떤 것인지 아직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선조가 하나의 도전에 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자손도 그들의 차례가 왔을 때 다른 도전에 응할 수 없다고는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P103

109-10 원시 사회의 어둠 상태에서 출현하여 ‘어버이‘ 문명을 갖지 않는 문명을 잠시 접어두고, 그 뒤에 출현한 선행 문명과 다양한 형태, 또는 다양한 정도로 관계를 갖는 문명에 눈을 돌려보면, 이들 ‘자식‘ 문명은 자연환경의 도전이 또한 어느 정도 자극을 주었겠지만 중요하고 본질적인 도전은 ‘어버이‘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생긴 인간 환경의 도전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도전은 ‘어버이‘ 사회와의 관계 자체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분화로부터 시작되어 분리에서 정점을 이룬다. 분화는 선행 문명이 일찍이 그 성장기에 있어서 하층의 사람들이나 외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창조력을 잃기 시작하자 그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 창조력은 문화가 성장기에 있을 때는 하층 사람이나 국경 밖의 사람들에게 자발적 충성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창조력을 잃은 병에 걸린 문명은 체력 감퇴라는 휴우증으로 이미 민중을 지도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차차 폭압의 도수를 높여 지배하는 소수 지배자와 이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서 자기 영혼의 존재를 자각하고 그 영혼을 잃지 않으려고 결의하는 프롤레타리아(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로 분열된다. - P109

115 그런데 실론에 인도 문명을 전파한 사람들은 원래 계절풍이 몰아치는 고지의 메마르고 황폐한 자연상태에 있던 평지에 물과 생명과 부를 강제로 부여한다는 기발한 행위를 이행헀다.
"골짜기의 물이 모아져 산기슭의 거대한 저수지ㅡ개중에는 크기가 16평방킬로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다ㅡ로 모아졌다. 거기서부터 수로가 연장되어 구릉지대에서 좀 떨어진 더 큰 저수지까지 이르고, 거기서 또 더 먼 다른 저수지로 갈려 나가고 있다. 대저수지와 대수로의 아래쪽에는 수백 개나 되는 소저수지가 있어 그 하나하나가 마을의 중핵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저수지 모두가 결국은 비가 많은 산악지대로부터 공급을 받고 있던 것이다. 고대 실론 인은 이렇게 하여 서서히 현재에는 인적이 드문 평야 지대의 전부 또는 거의 전부를 정복했었다."

본디 불모지였던 이 평지를 인간이 만든 문명을 위해 유지하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야 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은 오늘날 실론 섬의 경관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 현저한 특색이다. 그 하나로서 예전에는 관개 사업이 잘 이루어지고 다수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던 지역이 원시 그대로의 불모지로 되돌아가버린 사실이며, 또 하나는 현대의 차·커피·고무 재배자들이 불모지를 피해 비 오는 이 섬의 절반에 이르는 다른 부분에 집중해 있다는 사실이다. - P115

119-20 카푸아의 배신
지금까지 우리는 실제로 문명의 발생 또는 기타 눈부신 인간 업적의 무대가 된 몇 개 환경들의 특성을 고찰하고, 그 환경이 인간에게 제공한 조건은 결코 다루기 쉬운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 반대였음을 발견했으므로 이번에는 보충적인 연구를 하기로 하자. 즉 쉬운 조건을 제공한 다른 몇 개의 환경들을 보고, 이들 환경이 인간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초래했나 하는 것을 조사해 보자. 이 연구를 시도함에 있어, 두 가지 경우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한 뒤에 용이한 환경으로 인도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만 살아왔으며, 우리가 아는 한 그 인간 이전의 선조가 인간이 된 이래 한번도 어려운 환경에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다시 말해 용이한 환경이 문명화 과정에 있는 인간에게 끼친 영향과 원시인에 끼친 영향을 구별해 보자는 것이다.
고전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와 대조되는 곳이 카푸아(이탈리아 남부 캄파냐 자치주에 있는 도시)이다. 카푸아 평원은 로마 평원이 사람에게 꽤 까다로웠던 만큼 인간에 대해 인정이 많았다. 그리고 로마 인은 그 살기 어려운 고국 땅을 벗어나 차례차례 이웃 나라를 정복한 데 비해, 카푸아 인은 그들의 향토에 주저앉은 채 이웃 나라에 차례차례 정복당하고 있었다. 최후의 정복자인 삼니움 인(이탈리아 중부에 있었던 고대의 나라 삼니움의 주민)으로부터 카푸아가 해방된 것은 카푸아 자신이 간청한 로마의 간섭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그 뒤 로마 역사상 가장 중대한 전쟁의 가장 중대한 순간, 즉 칸나에 전투(기원전 216년에 로마 군이 한니발 군에게 패한 곳) 다음 날에 카푸아는 한니발에게 성문을 열어 줌으로 해서 로마의 은혜에 배반했다. 로마도 한니발도 카푸아의 거취가 대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결과이며, 또 전쟁 그 자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는 점에선 일치하고 있었다. 한니발은 카푸아에 입성하여 그곳을 동계 영지로 정했다. 그러자 참으로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한겨울을 카푸아에서 보낸 한니발 군은 완전히 사기가 해이해져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그전처럼 승리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아르템바레스의 진언
12월 헤로도토스의 「역사」 속에 이 점과 관련된 참으로 적절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템바레스라는 사람이 친구와 함께 키로스(키로스 2세, 재위 기원전 559~30, 페르시아의 아카이메네스 조의 왕)를 찾아가 다음과 같은 진언을 했다.
"이제야말로 제우스신께서 아스티아게스(메디아 왕 키로스의 옛왕에 해당됨. 키로스는 옛 왕을 체포하고, 메디아 왕국을 멸망시킴)를 왕좌에서 쫓아내고 그 영토를 페르시아 국민과 폐하 한 분께 주셨는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좁다란 바위투성이의 국토에서 떠나 더 좋은 토지로 이주하면 안 된다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바로 가까운 곳에도, 또 조금 먼 곳에도, 알맞은 토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좋은 곳을 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현재 이상으로 세계에 우리 국위를 빛낼 수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우리 제국 국민이 당연히 취해야 할 방책이며, 더구나 우리 제국이 많은 국민을 지배하고 아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일체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이 진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키로스 왕은 청원자들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의 피정복자들과 자리를 바꿀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유순한 땅은 반드시 유순한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