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의 실패에 낙담했지만 실패는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해야 했던 실패의 아픔은 15세기 인류가 안고 있었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던 것이다. - P410
420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탐험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러한 곳을 찾아가 보아야만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이제 역사도 경험 과학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플라톤, 사도 바울, 표토르 대제와 같은 세계사의 주요 인물들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대 이오니아 그리스 인들의 과학 전통이 살아남아 발전했더라면 또 어떻게 됐을까? 역사를 바꾸는 데에는, 예를 들어 노예 제도를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여론을 압도할 만한, 어떤 강력한 시대적 요구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2,500년 전 동지중해를 밝힌 등불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산업 혁명이 있기 2,000년 전에 이미 과학적 방법론 및 기술과 공학에 대한 선구적인 개념이 있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더 나아가 이렇게 진보된 생각들을 그 시대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또 어땠을까? 그런 경우라면 아마 인류 역사는 1,000년 내지 2,000년은 앞당겨서 진보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지의 발명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 또한 1,000년 내지 500년 가까이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형성된 또 하나의 ‘지구‘에서는 레오나르도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남성이 한 번 사정할 때 수억 개의 정자가 나오는데, 이중에서 오직 하나의 정자만이 다음 세대의 생식을 위해 선택된다. 그런데 바로 이 선택을 통해서 그 다음 세대의 육체적, 정신적인 특징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500년 전의 아주 사소한 상황들이 조금만 다르게 전개됐더라면 우리는 현재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또 다른 다중 세계들이 무수히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P420
458-60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 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됐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우리의 태양은 제2세대, 또는 제3세대의 별일지 모른다. 태양에 들어있는 모든 물질, 아니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질은 두세 차례에 거친 항성 연금술의 결과물이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어찌 이것을 우연의 결과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초신성에서 유래한 충격파가 성간 기체와 성간 티끌로 구성된 성간운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중력 수축이 유발됐을 것이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리 태양계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됐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들의 화학 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이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이다. 농사가 무엇인가? 태양 광선을 조직적으로 추수하는 방법에 다름이 아니다. 마지못해 응하는 식물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긁어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이다. 따라서 인류는 전적으로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끝으로 유전의 관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명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찾아내는데 고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하기도 한다. 우주선은 초신성에서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 거의 광속으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들을 뜻한다.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진화도 이렇게 그 근원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질량이 큰 별들의 극적인 최후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P458
473-6 스와힐리 어로 ‘자유‘를 뜻하는 우후루라는 이름의 이 위성은 최초의 엑스선 위성 천문대였다. 이 위성은 1971년에 백조자리에서 초당 1,000번씩 깜빡거리는 밝은 엑스선원을 하나 발견했다. 이 엑스선 원은 그 후에 ‘백조자리 X-1‘이라고 명명됐다. 이 천체의 엑스선 밝기가 변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언제 빛을 밝히고 언제 빛을 끄느냐 하는 정보가 백조자리 X-1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속도는 결코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 킬로미터를 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백조자리 X-1의 크기도 기껏 커 봐야 300킬로미터를 넘을 수가 없음은 뻔한 사실이다.(300,000km/s * 1/1,000s = 300km) 크기로만 보면 겨우 소행성 규모의 천체가, 성간 공간을 통과한 다음에도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세기의 엑스선을 방출한다니, 도대체 이 천체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조자리 X-1의 위치는 가시광선으로 관측했을 때 고온의 청색 초거성이 보이는 자리였다. 직접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청색 초거성에 근접 동반성이 있음을 스펙트럼 선의 주기적 이동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즉 이 별은 혼자가 아니라 동반성과 함께 쌍성계를 이루는 별이었다. 쌍성계에서는 두 별이 서로 맞물려 돈다. 그러므로 궤도 운동의 관측자에 대한 상대 속도가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변화가 도플러 효과 때문에 흡수 스펙트럼선의 주기적 위치 변화로 나타난다. 천문학자들은 여기에서부터 쌍성계 구성원들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는데, 백조자리 X-1의 동반성은 태양의 약 10배 정도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 판명됐다. 초거성은 여러모로 보아 결코 엑스선의 방출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숨겨진 동반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질량은 태양의 10배인데 크기는 겨우 소행성 정도라니 블랙홀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엑스선의 원천은? 초거성에서 블랙홀로 빨려가면서 소용돌이치는 회전 원반에서 기체와 티끌들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마찰열이 발생한다. 이 열이 회전 원반의 물질을 엑스선이 방출될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한다. 전갈자리 V 861과 GX 339-4, SS 433, 컴퍼스자리 X-2 등도 블랙홀의 후보 천체들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 A는 초신성의 잔해로 알려진 전파 방출원이다. 이 초신성에서 나온 빛이 17세기경에 지구에 도착했을 터인데, 당시 유럽에 상당수의 천문학자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초신성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슈클로프스키는 숨어 있는 블랙홀이 폭발하는 핵을 먹어치우고 초신성의 불길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유럽 천문학자들이 초신성 폭발을 눈치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제안했다. 현존 자료의 편린들만으로 블랙홀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망원경이 이런 자료의 편린들을 통해 전설적인 블랙홀의 행각을 추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카시오페이아 A의 정체 규명에도 우주 망원경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블랙홀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 있다. 공간의 곡률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모눈이 그려진 신축성 좋은 얇은 고무막이 있다고 하자. 그 위에 질량이 작은 물체를 올려놓으면, 고무막의 표면이 움푹 패여 보조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변형된 고무막 위에 구슬을 살그머니 놓으면 그 구슬은 특정 궤도를 그리면서 보조개로 굴러 들어간다.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특정 궤도에 따라 돌고 있듯이 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인슈타인에서 비롯됐다. - P473
476-7 공간을 신축성 있는 천으로 비유했을 때 질량의 영향으로 변형된 공간이 중력으로 기능한다. 고무막의 예를 들면, 고무막이라는 2차원 공간의 특정 지역이 질량 때문에 국부적으로 3차원으로 구부러진 것이다. 이제 2차원의 고무막 공간을 3차원의 우주 공간으로 확장해 놓고 생각해 보자. 3차원 공간 역시 질량 때문에 국부적으로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4차원으로 변형된다. 특정 부위에 있는 질량이 크면 클수록 그 주변 공간도 더 심하게 변형될 것이다. 보조개가 더 깊이 파인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더 밀고 나가면, ‘블랙홀은 공간에 패인 바닥 없는 보조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당신이 그 보조개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자. 밖에서 봤을 때 당신이 다 빠져 들어가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강력한 중력장에서는 기게적, 생물학적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빠져 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세계에서는 모든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중력에 따른 막강한 조석력과 강력한 복사를 당신이 ‘신의 특별 배려로‘ 어떻게든 견뎌 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자전하는 블랙홀이라면,(자전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당신은 시공간의 또 다른 점으로 출현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적으로 모처와 모시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벌레가 사과에 침입하여 과육을 갉아먹고 나방이 돼서 빠져나가면 사과에 벌레의 입구와 출구를 연결하는 터널이 뚫린다. 벌레구멍, 즉 웜홀은 사과에 뚫려 있는 입구와 출구에 해당한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벌레 구멍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룬다. 성간 공간이나 은하 간 공간에 중력이 파 놓은 벌레 구멍들이 있다면 그 구멍들을 연결하는 ‘우주 지하철‘을 타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우주의 구석구석을 보통 방법으로는 구현될 수 없는 쾌속으로 여행할 수는 없을까? 블랙홀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 또는 먼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는 타임 머신의 역할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농담 비슷하게라도 이러한 생각들이 논의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주가 얼마나 ‘초현실적‘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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