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화두 의심에 제대로 걸리기 위해서는 수행자를 이끌어줄 스승,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수행자가 의심을 갖고 본래의 마음자리로 나아가고 있는지, 허망한 경계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그것을 감별해줄 스승이 있어야 하지요. 또 수행자가 화두타파하여 견성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방해로부터 수행자의 마음을 지켜줄 스승의 법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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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단지 가지 않았기에 아름답다. 내가 밟지 않은 낙엽이 소복이 쌓인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숙명적인 동경과 아쉬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덧붙여, 그러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에 너무 빠지지 말고, 그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라는 뜻도 있을지 모르겠다. - P49

 일라이자는 ‘야수’의 내면을 알기 전부터 그의 외모에도 끌렸다. 물론 자신처럼 물을 좋아하는 고독하고 별난 존재라는 점에서, 또 영화 중에 말하는 것처럼 "그가 나를 바라볼 떄 내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의식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정신적 교감을 느껴서도 그렇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일라이자는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어색하다고 지적하는 일라이자의 ‘야수’에 대한 급작스러운 사랑이 설명된다. 성애 장면도 마찬가지다. 미(美)라는 것은 육체의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미묘한 육체적 욕망이 배제될 수 없으니까. - P108

반면에 스트릭랜드는 어류남을 흉측한 괴물이라고 부르며, 러시아 과학자를 보고는 "과학자는 예술가와 비슷해서 자기가 다루는 존재와 사랑에 빠진다."고 빈정거린다. 그런데 스트릭랜드의 이 말에 한 줄기 진실이 있다. 예술가와 과학자는 상통하는 데가 있다는 것, 둘 다 평범한 통념을 넘어선 넓은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P110

 돈키호테와 산초가 방랑하다 어느 양치기 청년의 장례와 맞닥뜨린다. 그는 아름답고 부유한 독신주의 여성 마르셀라 때문에 상사병을 앓다 숨을 거둔 청년이었다. 그 말고도 많은 남자들이 마르셀라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이때 마르셀라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앞서 『메타모르포세이스』와 『데카메론』의 논리대로라면 마르셀라는 저주를 받아 돌이 되거나 죽어서 양치기 청년의 귀신에게 영원히 쫓겨 다녀야 마땅할 터. 그러나 마르셀라는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항변한다.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럴진대, 왜 오로지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 말했다는 이유로 내 뜻을 억지로 굽혀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까? (…)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 나는 그것을 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욕망이 희망으로 지탱된다고 한다면, 나는 그리소스토모(상사병으로 죽은 청년)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으므로, 나의 잔인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집착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 P130

 그러자 돈키호테는 엄숙한 목소리로 "마르셀라는 명확하고 충분한 논거를 들어 자신이 그리소스토모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그리고 어떤 구애자의 소망에도 굴복할 뜻이 없음을 보여주었소. 이 여성을 따라다니고 귀찮게 굴기보다 경의를 품고 찬탄해야 마땅하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원치 않는 구애로 마르셀라를 괴롭히는 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돈키호테』는 놀라운 ‘현대성’을 갖춘 소설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현대성에는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0년 전 세르반테스의 생각보다도 더 케케묵은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 P131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건, 타인의 판단이 거기에 들어간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저 말을 보면 ‘남 눈치 보기, 남과 비교하기, 인정과 관심 구걸’이 유난히 많은 우리 사회는 과연 ‘헬’로 등극할 만하다. 저 연극에서 세 남녀가 평범한 방처럼 생긴 저승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고민하고 싸우다가 그곳이 지옥임을 깨닫는 것처럼, 스스로 지옥을 엮어 갇혀 있는 셈이다. - P158

 앞서의 강연에서 사르트르는 "평판에 대해 걱정하면서, 또 스스로 바꿀 의지도 없는 행동에 대해 걱정하면서 사는 건, 죽은 채로 사는 것"이라고, 살아 있다면 "바꾸라."고, "우리는 지옥을 깨고 나올 자유가 있다."고 했다. 한번 그렇게 살아봐야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타인이 주는 상처를 원망하는 대신, 사르트르의 의도대로 스스로 타인의 시선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 P159

어쩌면 ‘나대는 것,’ ‘잘난 척’에 대한 미움은, 본래 스스로 가질 필요도 없는 열등감을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열등감은 개인의 성향 때문도 있겠지만, 획일화된 기준과 정답을 강요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기존 우리 문화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열등감에서 비롯된 ‘잘난 척’에 대한 미움이, 자기 자신과 타 166 인 모두의 ‘앎’과 ‘새로운 앎에 대한 욕구’ 즉 창조의 원천인 호기심에 짓밟아 고만고만하게 만들어 버리고, 더욱 획일화되고 정체된 사회를 만드는 악순환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 P165

‘맞아, 바로 이거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왜 이 책이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한 게 아니라 규율사회와 성과사회가 공존 및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한병철이 묘사한 서유럽처럼 ‘다른 것,’ ‘낯선 것’에 대한 배척과 부정이 거의 다 사라지고 ‘긍정성이 과잉’된 사회가 아니다. 여전히 ‘성공한 삶’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이 강하고 그에 맞춰 남과 비교하는 강박이 있다. 또 막연한 공동체 도덕 ‘국민 감정’이 있어서 거기 어긋나는 사람들 (범죄자도 아닌 ‘이상’한 사람들까지) 전통의 형벌, 조리돌림을 당한다. 옛날처럼 북을 메고 마을을 몇 바퀴 도는 대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말이다. 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너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시시하게 평범해지지 말자.’ ‘너만의 길을 찾아 가라!’라고 압박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한병철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라고 외 189 친다. 그러니 우리는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로서 남 눈치를 보는 동시에 ‘성과사회의 성과 주체’로서 ‘나 자신이 인정하는 나’가 되어야 한다. 어휴, 환장할 노릇이다. - P187

 노리코는 뭐든 구체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도를 시작한다. 다도는 다실에 들어설 때 걷는 법부터 수건을 접는 법, 차를 만드는 법, 마시는 법까지 ‘쓸모 없어 보이는’ 엄격한 형식이 잔뜩 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이 동작은 무슨 의미냐고 노리코가 묻자 다케다 선생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집중하다 보면 몸이 저절로 움직일 것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노리코는 그것을 깨닫는다.

 "정신이 들자 나는 그저 묵묵히 진한 차를 개고 있었다. 차 한 잔을 개는 일에만 내 마음 전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새 초조함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온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그건 바로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니체를 인용해 말한 "속도를 늦추어 멈춘 상태," "사색적 집중 상태"였다. 무한한 선택지에서 빠른 시간에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강박으로 바삐 움직이며 "활동과잉으로 치닫는 상태, 그럼으로써 도 191 리어 모든 자극과 충동에 아무 저항 없이 바로 바로 응하는 과잉수동성으로 전도되는 상태"와 정반대의 지점이었다.
 공교롭게도 멈춤은 불교 명상 수행의 양날개인 ‘지(止)’와 ‘관(觀)’ 중 ‘지’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범어의 사마타(Samatha)에서 비롯된 ‘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멈추어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관(觀) 즉, 자신과 세계를 통찰해서, 깨달음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한병철은 형식이 사색을 위한 멈춤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형식은 느리다. 모든 형식은 우회이다." - P190

 그리고 성인이 되어 새삼 깨달았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쌍둥이일 뿐만 아니라 아예 한 몸의 두 얼굴이며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그 어느 쪽의 상태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럼 둘 다 맞이할 것인가, 쫓을 것인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불확실성 하의 선택’을 공부할 때 장난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공덕천과 흑암천의 파워가 같아서 251 각각 주는 이익과 손해의 크기가 동일하고 그 확률이 반반이라고 전제하면, 위험회피적(risk-averse)인 사람은 둘 다 쫓아내고 위험선호적(risk-loving)인 사람은 둘 다 맞아들일 것이라고.

 불교 철학에서는 둘 다 물리치는 것이 희비와 고락의 굴레에서 벗어나 니르바나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속세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은 둘 다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 둘이 언제나 함께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혼탁한 세상에 중심을 잡고 서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 P250

 그렇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은 가족과 인간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 세라핀이라는 괴짜 화가는 가족 없이 남의 집 하녀로 전전하면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 자연과 예술에 대한 샘솟는 사랑에서였다. 그 사랑에 조응해서, 그와 전혀 연고 없는 이들이 그를 재발견했고 기억한다.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인지도 모른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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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른이 됐다.
언제, 어떻게, 왜,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욕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막연히 알 것 같았다.

이름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
어느새 다른 세계. - P161

경험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 주면 좋지 않다. 누구든 어떤 이야기는 오래 들으면 결국 다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된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만큼 괴로워진다. 그 사람을 걱정하게 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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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세상일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주인이고 통제할 수 있지만,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의 주인은 타인이며 그의 통제하에 있으므로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없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타인의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회피하거나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처럼 통제해 보려고 헛수고를 하면서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 P50

결론은 이렇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떤 것이 정의의 길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는 자신에게 묻는 것이 빠르다. 이해타산이나 아집(我執)또는 감정이나 편견 등 주관적인 장애요소를 모두 털어버리면 당신이 체감하고 있는 정의의 상(像)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정의다. - P78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객기 부리듯 정의를 들먹여서는 안 된다. 먼저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력의 효과가 없더라도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아니라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왔을 때 전력을 다해 관철시켜야 한다. - P80

돌이켜보면 이렇게 나는 젊은 시절 실수가 많았다. - P136

막스 베버(Max Weber)는 "국가는 정당한 물리적인 폭력 행사를 독점하는 유일한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가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국가의 형태는 유지되겠지만 그 권력의 행사가 정의를 잃어버릴 때는 그 국가 권력은 결국 동요하게 된다. - P137

흔히 인류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이 이루어진 데에 대하여 두 가지 인류의 깨달음이 그 계기가 된 것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액턴(John Emerich Acton)이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깨달음이다. 둘째는 절대적인 당위 명제가 개념상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의 실천이성으로는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대립되는 가치관 중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일의적(一義的)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는 칸트의 관념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깨달음이다. - P169

두번째 깨달음 즉, 절대적인 당위명제가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으로부터는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 대표자들이 의회에서 ‘다수결‘로 가장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은 의견을 채택하여 이를 최선의 실천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민주정의 절차적 원리에 관한 지혜가 나왔다. - P171

한 시대, 한 사회에서의 기존의 진리와 가치는 사상의 자유경쟁과 도전을 거쳐 새로운 진리와 가치로 바뀌면서 발전 또는 창조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의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진리와 가치의 발전 및 창조는 때로는 기존의 진리와 가치를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도 현재의 보편타당한 가치 기준을 찾았으나 이 가치 기준이 앞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물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한 시대, 한 사회에서의 보편타당한 가치 기준을 찾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법관은 무의식중에 빠지기 쉬운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관행과 습성에서 오는 사고의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법관은 수시로 자신이 이런 것들의 영향하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검토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P193

"외롭지 않는가?"
"조금은 외롭지만 견딜 만하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렇게 계속할 생각이다. 이것이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이다."
나는 약간 놀랐다. 불과 열서너 명의 조사만으로 미국 법관 일반의 경향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세 번째 그룹과 같이 극단적으로 자기 규율을 지키는 법관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이 그룹은 가장 젊은 법관들이었다. 이들은 법관직에 대한 철저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토록 스스로 사교를 단절하면서까지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지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는 동양보다 개방되고 사교적인 사회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회에서도 법관 중에 자기의 몸가짐을 지키는 데 추상(秋霜)과 같은 기상을 보이는 이들을 만난 것은 더할 수 없이 상쾌한 경험이었다. - P200

진실의 열매가 저 너머에 보이더라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담장을 짓밟고 넘어가야만 따올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 열매를 포기하려는 것이 적법 절차주의의 기본 정신이고 이것은 조세 법률주의의 기본 정신과도 상통한다. - P433

다수결은 여러 의견 중 어떤 의견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지 가려내는 실용적 수단일 뿐이지 어떤 의견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결은 선과 정의를 가리는 것과는 상관없는 몰가치적인 해결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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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심자의 행운
2.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보상 시스템
3.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 없어 (빙고)
4. 점점 난이도가 오르는 과제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유발 / 이를 극복하도록 몰입하게 함
5. 과잉 소득, 과로사 = 현대 사회의 높은 생산성이 가져온 새로운 사회 문제
6. 과잉 소득과 과로사의 이유: 중단 규칙의 파괴
7. 난이도 중독 챕터의 결론

(이하 요약 생략)










초보자에게 따라오는 운은 중독성이 강하다. 성공의 쾌락을 맛보게 한 다음 앗아 가기 때문이다. 그 탓에 실현 불가능한 야심을 품고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기대할 수 있는 높은 목표를 세우게 된다. 두 번과 성공은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신기루일 뿐, 실패할 때마다 쌓여 가는 상실감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처음에 맛본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 닦달한다. - P199

사람들이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매료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게임에 내장된,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정교한 보상 사이클이다. 게임 초반에는 보상이 신속하게 제공된다. 두세 번 치면 괴물이 죽고, 5~10분 만에 한 레벨이 올라간다. 어렵지 않게 기술을 습득한다. 그러다가 보상과 보상 사이 시간 간격이 급격히 길어진다. 이내 다음 레벨로 올라가려면 5시간이 걸리다가 삽시간에 20시간이 걸리게 된다. 초반에는 즉각 보상을 해 준 다음 갈수록 높은 레벨에 다다르기 버겁게 하는 식으로 게임이 작동한다. - P200

데이비드 골드힐은 어느 정도의 고난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특급 영화배우들이 왜 비참하다고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매일 밤 새로운 상대를 만나고 식당에 갈 때마다 공짜로 밥을 먹는다고 상상해 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이기기만 하는 게임을 따분하다고 여깁니다." 골드힐이 말한 그런 게임은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금방 싫증이 난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상실감과 어려움과 역경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때마다 성공이 가져다주는 희열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한 휴식 시간에 어려운 십자말풀이를 하고 험준한 산을 오른다. 성공하리라는 확신보다 역경과 고난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역경은 중독성 있는 많은 체험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 요소다. - P210

근접 발달 영역은 강력한 동기 부여 요인이다.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학습 과정을 즐겁게 만든다. 1990년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imihaly가 도전을 극복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이득을 다룬 명저 <몰입Flaw>을 출간했다. 칙센트미하이는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 창작에 깊이 몰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가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몇 시간이고 작업에 몰두했다. 칙센트미하이의 설명대로, 사람들은 몰입 즉 대단히 집중된 정신 상태인 플로flaw-‘경지에 들기entering the zone‘라고도 알려져 있다-를 체험하면 진행 중인 작업에 너무나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이 지점에 들어서면 심오한 환희나 황홀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경과 마주하고 그 역경을 가까스로 극복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흔치 않은 상황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오랜 시간 지속되는 희열감이다. 칙센트미하이도 인정하듯 몰입은 오랫동안 여러 동양 철학과 종교의 근간이 되어 왔다. 그는 이 개념을 다듬어 대중에게 전하는 데 공헌했다.) 칙센트미하이는 점증하는 난이도가 몰입의 중요한 바탕이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유용한 도표를 만들었다. - P218

그들은 한번 소득을 올리는 행위를 하기 시작하자 이미 모아 둔 소득이 넉넉한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중단 규칙에 너무 무감각해져서 휴식조차 제쳐 놓고 정신없이 일했다. 3장에서 소개한 신경과학자 켄트 베리지는 더 이상 즐겁지 않은데 특정한 행위를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들은 일단 일에 갇히자 일에서 얻는 보람이 줄어들어도 멈출 수가 없는 듯이 보였다. 논문 말미에서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과잉 소득이란 개념은 지나친 일반화[어림짐작]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소득은 매우 낮았다. 가능한 한 많이 벌어 축적해 두는 일은 생존에 유용한 것[규칙] 이었다. 너무 많이 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는데, 애초에 너무 많이 벌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과식과 마찬가지로 과잉 소득은 생산성의 향상에서 비롯된 현대 사회의 문제며, 그로 인해 인간이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 P230

사람들이 무리해서 운동하게 만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을 24시간 직장에 묶어 놓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퇴근하면 업무를 잊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딜 가든 스마트폰, 태블릿, 원격 로그인, 이메일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중단 규칙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1960년대 말 이후로, 특히 지난 20년 사이에 일본 근로자들은 ‘과로사‘라는 말을 수군거려 왔다. 이 용어는 특히 일과가 끝나도 직장을 나서지 못하는 중견급과 고위직 간부들에게 적용된다. 과로로 인한 뇌졸중, 심장병을 비롯해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각종 질병으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예컨대 2011년 타이완의 나니아 테크놀로지Nanya Technology 라는 회사에서 일하던 한 엔지니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숨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엔지니어는 하루 16시간에서 19시간을 근무했고 때로는 퇴근한 뒤에도 일을 했다.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심장 쇼크‘로 밝혀졌다. 이러한 과로사 사례를 보면 사망자가 무리해서 일한 것이 사망 이유다. 대개 직장에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한다.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일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229

<테트리스>나 <2048>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인간은 ‘낭중취물‘과 ‘난공불락‘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달콤한 유혹의 지점을 뿌리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경제적 목표, 성공의 야망, 소셜 미디어의 목적, 운동 목표 등에서 최적 수준의 난이도를 원한다. 중독성 있는 체험은 바로 이 달콤한 지점에 위치한다. 목표 수립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중단 규칙이 허물어지는 지점 말이다. 테크놀로지 전문가, 게임 디자이너, 상품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제품을 다루는 실력이 향상되고 숙련되면 그것이 다시 확실하게 복잡하고 어려워지도록 수정한다. - P232

그는 "스마트폰이 독극물이에요, 특히 아이들에게는"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쳐다보지를 않아요. 공감할 줄도 모르고요. 알다시피 애들은 참 짓궂죠. 괜히 한번 건드려 보는 겁니다. 어떤 애한테 "야, 뚱보"라고 하면 그 애 표정이 일그러지죠. 그럼 "에이, 그런 표정을 보니 기분이 꽝이잖아"라고 하죠. 그런데 문자로 "야, 뚱보" 하고보내면 상대방 아이는 "음, 재밌네. 맘에 들어" 라고 한단 말이죠.

루이스 C.K.가 생각하기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소통은 필수다. 자기가 뱉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들이 배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P294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단죄하면 성 표출이 지하로 숨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보수 성향의 주에서는 10대가 임신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성관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소득, 학력, 낙태 시술 접근성 등의 차이를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억압은 성욕을 꺾지 못한다. 오히려 성욕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에게 이는 새로울 것이 없는 정보다.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억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지력만으로 중독을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193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특정한 개념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 개념에 끌리는 사람이라고 최초로 주장했으며, 그의 후계자인 시모어 페시바크Seymour Feshlbach와 로버트 싱어Robert Singer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P318

동영상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거기에 등장한 사람이 두려워했는지 물었다. 20년 전 프로이트가 예언한 대로였다. 두려움을 억누르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동영상 속 남성이 두려워했다고 대답했다. 이 학생들은 억누르라고 한 그 느낌을 자기 주변 세상에 투사했다. 두려움을 표현하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동영상 속 남성이 두려워했다고 답하는 확률이 훨씬 낮았다. 이 학생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억누르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들보다 두려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웠다.
진보 성향이 훨씬 강한 동북부와 북서부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더 많이 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전 프로이트가 예언한 것처럼 오히려 그 반대다. 전통적인 성 가치관을 지닌 보수 성향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온라인 포르노 서비스에 가입할 확률이 더 높다. - P319

어떻게 보면 <카우 클리커>는 전혀 해롭지 않은 재미난 게임이다. 그러나 보고스트는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바로 모든 것이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밥을 먹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사례를 보자. 한 가지 해결책은 식사를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음식을 비행기가 날아가듯이 입에 넣어 주는 것이다. 당장은 좋은 생각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아이는 식사를 게임으로 여기게 된다. 이제 식사는 게임의 속성을 띠게 된다. 밥 먹는 행위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할 가치가 없다. 생명 유지와 영양 공급이란 차원에서 밥 먹는 동기를 부여받는 대신, 먹는 행위 자체를 게임이라고 학습하게 된다.
이 아이가 식사를 실제로 게임으로 생각하든 말든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음식을 먹는 목적을 곧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가 식사의 진짜 동기를 재미와 맞바꾸듯이, 게임화는 다른 체험들 또한 사소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오덴플란 지하철역에 설치된 피아노 계단은 재미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실제로 건강에 바람직한 행위를 증진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운동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암시함으로써 운동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하는 행위라는 참뜻을 훼손할 수 있다. 피아노 계단처럼 애교 넘치는 게임화는 솔깃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내일, 다음 주, 내년에 운동을 대하는 생각을 바꿔 줄 가능성은 없다. - P379

선진국 인구의 절반이 뭔가에 중독되어 있고 그 뭔가의 대부분은 행위다. 우리는 스마트폰, 이메일, 비디오 게임, TV, 일, 쇼핑, 운동 등에 낚여 있다. 급속한 테크놀로지 발달과 정교한 제품 디자인에 힘입어 생겨난 이런 체험들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중에서 2000년에 존재했던 체험은 드물다. 2030년 무렵이면 우리는 지금 씨름하고 있는 중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중독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몰입도와 중독성 강한 체험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애초에 왜, 언제, 어떻게 행위에 중독되고 거기서 벗어나게 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하는 숭고한 이유를 따진다면 우리의 건강과 행복과 안녕이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시선을 맞추고 진정으로 교감을 나누는 능력을 유지할지 여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달렸기 때문이다. - P382

우리는 옛날을 돌이켜 보면서 많은 게 변했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서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고 삶은 더 단순했다. 반면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경향도 있다. 지금의 우리와 우리가 누리는 삶이 이대로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말이다. 이를 ‘역사의 종말 환상end of history illusion‘이라고 부른다. 1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무엇이 변했는지 알기는 쉽지만 지금과 비교해 앞으로 10년 뒤 무엇이 달라질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은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우리 존재가 더 이상 발전이 필요 없는 적절한 상태에 도달했으며 이제 삶은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다가올 변화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게 만든다.
행위 중독의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10년 전이었다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15억 명에 달하고 사용자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쓰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호소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수천만 명의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날마다 몇 시간씩 사진을 올리는 데 열을 올리고 매일 새로 올라오는 6000만 장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손목에 두르는 작은 기기로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세고 확인하는 사람이 2000만 명이 넘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P383

페이스북이 생긴 지 겨우 15년 남짓하고 인스타그램의 나이는 그 절반이다. 10년 후면 새로운 플랫폼이 대거 등장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골동품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10년 뒤에도 이런 플랫폼들이 선발 주자라는 이점을 안고 여전히 거대한 사용자층을 끌어들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할 플랫폼들이 갖출 흡인력에 견주면 아주 미미한 힘을 가진 1세대 유물로 취급될 공산이 더 크다. 물론 10년 후 세상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역사가 오늘날을 기점으로 변화를 멈추었다고 믿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리고 행위 중독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핏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할 근거 또한 전혀 없다. - P384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떤 기술 발전은 행위 중독을 부추기지만 어떤 기술 발전은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신중하게 고안해 만들면 중독성을 띠지 않을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중독성은 없는 제품이나 체험을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직장을 오후 6시에 폐쇄하면서 직장 이메일 계정 역시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폐쇄하면 된다. 부나 장으로 나뉘는 책처럼 게임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중단하는 지점을 만들어 넣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에서 수치를 제거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게 만드는 산술적인 피드백을 없애면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적절한 관리 아래 천천히 기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갑자기 한꺼번에 온갖 기기에 파묻히지 않게 하면 된다. - P384

중독 체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대개 문화적 요인에 좌우된다. 우리 문화가 일과 게임과 기기 화면에서 자유로운 시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시간을 누리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도 행위 중독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우리는 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직접 소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유대감의 불빛은 기기 화면의 불빛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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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네모 안의 글 - 어느 정도의 고난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 동의합니다. 실패나 역경이 없다면 행복도 없을 것 같아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먹을 것이 잔뜩 쌓여 있고, 누구나 자기를 사랑해 주고, 하는 게임마다 다 이기고 하는 천국이 있다면 인간은 지루해서 살맛이 안 날 거예요.
뽑아 주신 글, 잘 읽고 갑니다. ^^

베텔게우스 2021-08-26 16:04   좋아요 0 | URL
백번 동감합니다. 예로 폭염이라는 고난(?)이 없었으면 지금의 선선함도 별로 반갑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여름도 매력이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만.. ㅎㅎㅎ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