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마치 기본적으로 거대한 물질적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유전, 통신위성, 대규모 쇼핑 단지, 화려한 유흥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상 깊은 요소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경제는 상당 부분 우리의 집합적인 취향과 상상, 갈망에 의해 추진되는 심리적 현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어디에 기꺼이 돈을 쓰려고 하느냐‘가 이윤을 창출하고 투자 시스템 전체를 조직화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소비자 교육이 핵심적인 경제 운동의 하나가 되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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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속 얘기를 듣고 그것을 갚자면 자기 속을 털어놓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 P28

명준은, 대들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죽였다. 그를 향하고 있는 네 개의 얼굴. 그것은 네 개의 증오였다. 잘잘못간에 한번 윗사람이 말을 냈으면, 무릎 꿇고 머리 숙이기를 윽박 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짜증 끝에 성 낸, 미움에 일그러진 사디스트의 얼굴이었다. 빌자, 덮어놓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의 생각은 옳았다. 모임은 거기서 10분 만에 끝났다. 명준은 사무친 낯빛을 하고, 장황한 인용을 해가며, 허물을 씻고 당과 정부가 바라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했다. 지친 안도감과 승리의 빛으로 바뀌어가는 네 사람 선배 당원의 낯빛이 나타내는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명준은, 어떤 그럴 수 없이 값진 ‘요령‘을 깨달은 것을 알았다. 슬픈 깨달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슬기였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 P127

싸움이 멎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명준은 깊은 구렁에 빠졌다. 북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없었다. 아버지가 전쟁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수는 없었으나,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한 가지만으로 북을 택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살 테지. 효도 같은 걸 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리고 북녘 같은 데서 살붙이란 무엇이던가. 그러고 보면, 이제 그가 북으로 가야 할 아무 까닭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은혜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코뮤니스트란, 월북할 때 그러려니 그려본, 그런 인종들이 아니었다. 한때 그들의 존재를, 믿음이 없어진 현대에서, 한 가지 기적으로 생각했다. 이상주의의 마지막 지킴꾼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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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에 지상낙원이란 결코 있을 수 없어.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니까."
"맞아요."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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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의 독자 여러분,

한국은 조상을 공경하는 나라겠지요. 극동 아시아에는 가족 전통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 전통이 조금 무너졌고, 나는 그 점을 늘 아쉽게 생각해 왔습니다.

나의 책 『할머니의 비밀』은 남다른 시련을 이겨 내면서 꿋꿋하고 나름으로 아름답게 살아 온 한 노인의 삶을 보여 줍니다.

이 책은 서양의 청소년들에게는 노인의 삶에 귀를 기울여 보는 체험이 되겠지만, 여러분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지요.

혹시 여러분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여러분은 이 책에서 갱들이 주름잡던 시절의 미국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나는 열세 살 때 이곳 프랑스에서 한국인 사범에게서 태권도를 배웠고, 그때부터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동양도 내게는 낯선 세계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숙부가 베트남에서 태어나셨거든요.

한국의 독자 여러분, 멀리 프랑스에서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2003년 9월

장 프랑수아 샤바스

페이스 할머니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은 자연에 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말이다. 동네 작은 공원의 잔디밭이 아니라 대자연 말이다. 네가 커다란 사슴이나 회색곰과 마주치는 날, 밤이 되고 눈이 허리까지 차 오르는 캄캄한 나무숲을 여러 시간 동안 혼자 걷게 되는 날, 바로 그때 너는 네 자신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될 거다." - P65

"이유를 알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고약하고 심술궂은 미친 노파이기 때문이죠. 할머니가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평소 우리 집안 분위기대로 착하게 변한 거죠. 그게 이유예요. 이제 할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전 상관없어요."

나는 제기랄을 연발하며 복도로 나왔다. - P96

눈이 완전히 녹았다.

흔적도 없이 녹았다. 숲은 이제 긴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주변의 자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두려움조차 이따금 받아들일 정도로 이곳의 자연이 좋다. - P99

하지만 일기를 읽지 않은 두 분에게도 할머니는 처음과는 좀 달라졌다. 신랄하게 비꼬는 태도도 누그러졌고 식탁에서 식구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훑어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집에 꽃다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 음산한 도시에서 자연이 그리워 가져왔다고 둘러댔지만 아무도 곧이듣지 않았다. 우리는 할머니가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 P120

사람들은 부모님이나 경찰에 알리는 편이 더 간단하고 현명하다고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의견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 동네 방식은 좀 다르다고 대답할 것이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우리 동네에서는 자기 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처리한다고만 말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어리석고 위험하며 불법인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그렇게 한다. - P126

도너번이 이를 부딪치며 덜덜 떠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제기랄, 품위 좀 지켜라!"

그러면서 제발 도너번이 내 다리가 푸딩처럼 후들거리는 것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 P127

"네가 나처럼 숲속에서 팔십 년 가까이 살았다면, 자연이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거다. 대자연의 광활한 숲속을 걷다 보면 고통이 사라지지. 여기서는 밤이 돼도 하늘을 볼 수가 없어. 블랙버리에서는 스완 호수 언덕에 오르면 마치 별 아래 앉아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 P135

나는 두 분을 탓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보 천치 같은 도덕주의자들을 원망했어. 그 멍청이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사람들의 정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 정신을 정화하겠다고 나선 그들이 얻어 낸 것이라고는 온 나라를 총격전으로 몰아넣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뿐이었지. - P164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니, 너희 집에 무얼 찾으러 간 건 아니었어. 이 숲에 떠도는 기억에서 달아나려고 해본 거랄까. 하지만 그 기억은 너무 강했지. 그래서 곧 나를 붙잡아 다시 여기로 데려오고 만 거야." - P172

"시카고에서 아버지는 하얀 셔츠를 입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다녔지만 그때 이미 도둑이었어."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자기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페이스 할머니가 앙심을 품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 P176

"지금부터 얘기하는 사실은 내 마음의 짐을 덜거나, 과거 일에 대한 책임을 네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한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야. 모두 얘기하마. 열다섯 살 때부터 나는 도둑질을 했고 사람도 죽였어. 네가 본 대로 난 꼬마 예수와 그 일당을 죽였고 다른 사람도 죽였어. 운명이란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자신을 바로잡고 정직하게 살아 보려고 할 때마다 일이 터져 그럴 수가 없었단다. 내 가족은 화재로 죽었어. 다른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얘기할 마음도 시간도 없기 때문에 네게 다 들려줄 수가 없구나. … - P176

나는 잠자코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었고 아저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독이 되어 내 귀에 박혔단다.

"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어.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는 그 날 네 아버지가 앉은 탁자로 이끌리듯 가서 앉았단다. … - P178

"왜 아멜리 할머니는 한번도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아멜리는 아마 돌아올 수 없었을 거다. 악몽 속으로 다시 빠져 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할머니는 왜 남으셨어요?"

"그건 나도 잘 몰라. 어쩌면 우리 부모님의 기억을 돌볼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두 분은 여기 잠들어 계시니까. 그리고 이 숲에 추억이 어려 있기 때문이겠지. 그 추억은 약간 무겁고 역겨운 향기가 나는 꽃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고 바라보게 되는 그런 꽃 말이야." - P185

할머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1940년, 서른의 나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떠나 버렸고…… 아들은 열여섯 번째 생일에 집을 나가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권투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오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아버지였다. - P187

(옮긴이의 말)

페이스 할머니의 일기에는 이 혼란한 시대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할머니의 부모나 앙리 르구외 씨는 범법자이지만 결코 흉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정직한 신사이든 잔인한 갱이든 누구도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술을 사먹으면 누구나 범죄자가 되는 시대이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버젓이 블랙버리 거리를 나다닌다. 음주를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범죄를 일상의 친근한 일로 느끼게 만들고 결국 더 많은 범죄와 폭력을 낳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 논리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선과 악이라는 도식을 넘어 이 세상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복합성 속에서 보도록 한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울 거라며 지레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데, 그건 아이들이 세상을 진지하게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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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벽된 말을 들으면 그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한 말을 들으면 그 함정을 알며, 간사한 말을 들으면 그 도리에 어긋난 바를 알고, 회피하는 말을 들으면 그 논리의 궁함을 안다. - P139

맹자가 말하였다.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가령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쓰지 않음이 있으며, 이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오직 현자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데 현자는 이것을 잃지 않을 뿐이다." - P158

그러므로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견자는 인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생의 원칙은 ‘하지 않는 바’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이다. - P166

공자가 안연에게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나, 맹자가 "예가 아닌 예, 의가 아닌 의를 대인은 하지 않는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말은 모두 ‘하지 않는 바’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하게 죽여서 천하를 얻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지 않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견자의 ‘하지 않는 바’는 세속적인 것과 단절하고 도를 확고히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을 끌어올리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맹자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사람은 반드시 ‘견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광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견과 광은 서로 통한다. - P166

…오늘날에 이르러 유가 윤리 규범의 효용성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문화적 반성을 통하여 볼 때, 유가 윤리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응용상에 있어서 시대적·사회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리 규범을 표현하는 방법상의 문제이다. 과거의 표현 방식에 대해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하며, 반드시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 P172

불인에 안주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인심이고,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다. 성왕은 백성과 더불어 좋아하고 싫어하며,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근심한다. 이처럼 성인의 몸에 충만한 것이 ‘측은지심’이다. 그러므로 ‘인심을 미루어 인정을 실행’할 수 있다. ‘헤아리다·추측하다’라는 의미의 ‘추’는 유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정신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서’이고,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면 남도 도달하게 하라"라는 것은 ‘서’의 더욱 적극적인 표현이다. 맹자에 이르러 이러한 도리는 더욱 발휘되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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