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 숙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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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쓴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그러나 옳은 일을 실행하기 위해,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비판을 받고 설령 그들을 적으로 돌려야 할 만한 것이라도, 두렵더라도 역사의 평가를 믿고 묵묵히 나아갈 것.

숙종의 한계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으면서도 사대부의 반발을 우려해 군정의 폐단을 완전히 개혁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비대해진 왕실 재산을 축소하는 자기희생을 통해 명분을 확립하고 백성을 위한 군정 개혁을 실시하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지도자의 본분은 책임감을 갖고 다수의 약자를 위하는 것이다. 그는 부와 권력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도록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이상 사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은 인간 외부의 환경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도자의 바른 자세는 오늘날에도 숭고한 미덕이다. 유토피아의 도래, 그 때가 비로소 유능한 지도자가 불필요해지는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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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어느 겨울동화 / 공산당 선언 - 시와 사상의 만남
하인리히 하이네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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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 중 틈틈이 읽어서 그런지 집중하여 읽지 못한 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집중해서 읽었어도 비슷한 인상을 주었을까? 어쨌든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다시 한 번 읽고 나서는 어떤 평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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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월드북 46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홍사중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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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2009년에 나온 2판 3쇄본을 빌려 읽었다. 내용은 훌륭했지만, 무수한 오탈자가 몰입을 지나치게 방해해 매우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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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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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강제로서의 권력이라는 모델은 권력의 복합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강제로서의 권력은 타자의 의지에 대항해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의 매개 수준은 매우 낮다. 여기서 에고와 타자는 서로에 대해 적대적 관계에 놓이며, 에고는 타자의 영혼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매개 수준이 높은 권력은 타자가 하려는 행동에 맞서는 권력이 아니라 그 타자로부터 솟아나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 강한 권력은 타자의 미래를 봉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형성해준다. 그러한 권력은 타자의 특정 행동에 맞서려는 대신, 타자의 행동반경에 영향을 주거나 그것을 변화시킴으로써 부정적인 제재 없이도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게 한다. 이를 통해 아무런 폭력 행사 없이 에고는 타자의 영혼 안에 자리를 잡는다. - P18

21 권력이 자유를 배제한다는 견해가 고집스럽게 이어지지만,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에고의 권력은 타자가 자발적으로 에고의 의지를 따르는 관계에서 최고에 도달한다. 에고는 타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권력이란 모순어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가 자유로이 에고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절대적 권력은 자유와 복종이 서로 완전히 합일되는 순간에야 얻을 수 있다. - P21

73-4 푸코가 감옥, 군대 또는 병원에서 찾아내는 정형외과적 권력은 무엇보다 신체에 집중되어 있다. 푸코는 신체에 시선을 고정시킨 나머지 상징적 차원에서 관습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권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아비투스는 한 사회 집단의 경향이나 관습을 지칭한다. 그것은 특정한 지배 질서를 관철시키는 데 기여하는 가치나 지각 형태를 내면화함으로써 생겨난다. 반성 이전에 작동하면서 신체적으로 작용하는 아비투스는 현존하는 지배 질서로의 편입을 가능하게 하는 습관의 자동주의를 산출해낸다. 그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배제했던 지배 질서를 공고화하는 태도 전범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아비투스는 신체적인 것에서도 작동하는 지배 질서를, 의식하기도 전에 긍정하고 승인하게 해준다. 우리가 사회적 위치 때문에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도 이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취향이라고 양식화된다." 이를 통해 "희생자들이 사회적으로 부여된 운명에 스스로를 봉헌하고 희생하게 만드는 아모르파티,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 운명이 자유로운 선택인 양 체험되는 것이다. 피지배자들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자신의 상태를 자기 취향으로 삼게 된다. 빈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되고, 강제나 억압이 자유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지배전 권력관계가 합리적인 근거들과 무관하게 거의 마법적 방식으로 재생산되도록 만든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권력은 강제라는 모습으로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권력은 자유의 감정을 불러내는 곳에서, 어떠한 폭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막강하고 가장 안정적이다. 이때의 자유는 사실일 수도 있고 가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권력을 안정시키고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 P73

101-2 유한한 존재는 타자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주장이란 이 존재자가 타자와 접촉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자아의 연속성이 없다면 존재자는 타자가 불러낸 부정성과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서 이 부정성을 견뎌낼 수 없고, 타자를 자신 안에 통합할 능력이 없는 존재자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 권력/힘이 없는 것이다. 틸리히 또한 존재의 권력/힘을, 부정성 혹은 그가 말하는 "비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비존재를]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더 많은 비존재를 극복했거나 극복할 수 있다면 존재의 권력/힘은 더 커진다. 더 이상 이를 견디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인 무력, 모든 존재의 권력/힘의 종말, 패배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위험이다.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데, 이 위험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더 큰 권력/힘을 갖게 된다. [……]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서도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의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 P101

177-8 각주47) 이러한 경계 없는 친절함은 교환 원리에 근거한 소통적 친절함과도 대립된다. 소통적 "기술"로서의 친절함은 "자신의 견해나 기대의 표현을 적절한 순간이 올 때까지 미룰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순간까지의 시간은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채워진다." 소통적 친절함은 "타자의 자기묘사를 보장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기대를 배치하는 원리"에 의해 이끌어진다. 체계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소통적 친절함은 "형식적 체계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데 기여한다. 타자가 좋은 모습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한, 다시 말해 그 타자의 자기묘사가 성공하도록 해주는 체계는 ‘친절하다.‘ ‘친절한 자‘는 "타자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대로 그를 대해주는" 사람이다. 전략으로서의 친절함이란 "A가 파트너인 B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B 또한 A에게 그런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태도이다". 따라서 기술로서의 소통적 친절함이란 비대칭적 구조가 아니다. 친절한 자는 자기 자신의 기대나 견해,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소통적 교환의 장에 내놓을 적절한 순간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타자로 하여금 성공적인 자기묘사를 하도록 도와주는 수동적 혹은 능동적인 듣기는 자신의 묘사를 위한 우회로인 것이다. 따라서 소통적 친절함이란 결국 자기배려로 담지되는 교환 행위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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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현상 - 신뢰받는 언론인이란 무엇인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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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자아갈등ego conflict‘이 아닐까 한다. 명백한 사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서로 다르게 알고 있다든가, 서로 간의 가치관이 달라서 오는 갈등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든가, 서로 간에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아갈등, 즉 자존심의 싸움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이 결국엔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내가 많이 쓰긴 하지만 학문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에 머물고 만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과 자신의 진영만을 만족시키는 거꾸로의 일방적 소통일 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연결된다면 토론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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