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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성냥갑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첫 출간된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부터 에코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었지요 (당시에는 에코가 출판시장에서 지금만큼의 지명도가 없었고, 저도 이 소설의 제목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에서 온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글은 에코의 가벼운 글쓰기에 속하는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 (또는 그 증보판 격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제목이 점점 길어지는 양상을 보이는군요. 책의 원제는 매우 간단한데 말이지요)'같은 책입니다.
이 '미네르바 성냥갑'도 앞의 책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이도 당연한 것이 같은 잡지의 같은 컬럼에 실린 글 중 웃음기를 꽤 빼낸 글들이 이 책의 내용이니까요) 조금 딱딱한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인 것은 확실합니다.
단 번역을 짚고 가야겠는데요, 역자인 김운찬 씨는 저자에게 사사받아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누구보다 이 책의 번역에 적합한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코의 문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역자의 우리말 다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석연치 않은 글들이 눈에 띕니다.
예를 들자면 "지난주 나는 어느 여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에게 기억나는 것이 있는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안젤로 오르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장난감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 순간 나는 이야기 전체를 제대로 재구성하지 못하였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야기 전체를 제대로 재구성하지 못하였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저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왜 재구성을 해야하지요? 범죄의 재구성?).
이렇게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 부분 (독자의 책임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만) 외에 윤문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가끔 있는데요, 예를 들면 파우스트의 유명한 대사를 "멈춰, 너는 정말 멋있어"라는 청춘물을 연상케하는 뉘앙스의 글로 옮기는 건 조금 곤란하지 않습니까?
어쨌건 몇 가지 사소한 단점들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에코를 좋아하시는 분께 기쁨을 주기는 충분할 것으로 봅니다.
추기 : 혹시 왜 재구성을 해야하는지 아시는 분은 덧글 좀 부탁드립니다.
추기 2 : 이 책에 붙어있는 역주는 조금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리어왕'의 코델리어가 왕의 부인이라고 쓰인 주석을 발견했거든요 (원문 - 6.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왕의 부인이다). 뭐, 역자가 코델리어는 '프랑스 왕의 부인이다'라는 의미로 이렇게 썼다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기는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