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친일 진상규명에 관하여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여자를 만날 때마다 퇴짜를 놓는다. 얼굴이 14인치 모니터라거나, 몸매가 영 아니라고 하고, 얼굴은 이쁜데 엉덩이가 짝짝이라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략 눈치를 챈다. 아, 저 인간이 결혼할 뜻이 전혀 없구나, 하는 것을.
언론사 세무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조중동을 비호하는 한나라당 애들은 이런 논리를 폈다.
"세무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하는가?"
하지만 한시라도 조용할 틈이 없는 우리 정치사에서 민감하지 않은 때가 한순간이라도 있었던가? 그들의 반대는, 말은 그렇게 안했지만 자기들과 한통속인 조중동에게 세무조사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거였다.
친일진상 규명을 위한 법 개정에 대한 토론회를 잠깐 봤다. 패널로 나온 사람들이 많은 말을 했지만, 그들의 말은 시청자가 했던 다음 말로 요약된다.
-친일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필요하며, 거기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있고, 국론분열이 우려된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굳이 이걸 해야 하나.
-경제가 어렵고 국민은 살기 어렵다. 왜 하필 이때?
정치인이 하는 모든 일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으며,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진상규명을 나중에 한다고 해서 국론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국론분열이라는 것도 사실 허구적인 개념이다. 국민의 80%가 친일 진상규명에 찬성하는 마당에, 일제 시대의 수혜자였던 세력과 그 후손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국론분열'로 호도할 필요가 있을까? 이 법안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친일의 전과가 있음에도 민족지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다른 할 일도 많다는 그의 말도 맞다. 하지만 친일 진상규명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이가 거기에만 매달려야 하는 건 아니다. 진상규명은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면 된다. 택시 기사는 운전을 하고, 이발사는 머리를 깎고, 나는 평소 하던대로 알라딘에 글을 쓰면 되는거다. 별 걱정을 다한다 싶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경제가 너무나도 좋았던 때가 얼마나 있었던가? 더구나 친일 진상규명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도 너무 늦은 일이다. 60년을 미룬 일을 국민이 살기 어렵다는 걸 빌미로 하지 말자고 한다면, 그건 사실상 친일 진상규명을 반대하는 거다. 의회권력에서 그래도 개혁적인 세력이 1당을 차지한 건 40년만의 일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 그런 의심이 타당하고 근거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나라당보다야 낫지 않을까? 지금이야말로 국보법폐지 등 각종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절호의 기회다. 미덥지 못한 열린우리당이지만, 욕하고 때리고 비판하면서 개혁의 길로 나아가도록 견인하자. 친일 진상규명은 그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