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my Emmanuel : Live at Her Majesty's Theatre Ballarat, Australia
Favored Nations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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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엠마누엘을 좋아해서 큰맘 먹고 구입했습니다. 좋은 연주이긴 하지만 워낙 낯설거나 치즈 냄새나는 곡으로 채워져 있어서 감명이 깊진 못했어요. 무척 돈이 아까웠죠.-- 참고로 이 연주가 벌어진 장소는 영국의 Her Majesty's Theatre,즉 왕립극장이니까 무척 영국인에게 어필하는 컨츄리 스타일의 연주가 펼쳐지는 셈입니다.

이것 말고  시판되는 토니 엠마누엘 DVD가 또 하나 있는데 그걸 권하고 싶네요. 보편적인 정서에 맞는 곡들로 채워져 있으니까 듣기도 좋고 마음도 평온해질거 같군요. 많이 들어서 진부하다 싶어서 모르는 곡이 많은 이 DVD를 산 것이 지금은 참 후회스럽습니다. 차라리 youtube.com에서 동영상 보는 걸로 만족했어야 했는데...에고고..

끝으로, 포크 기타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CD  [My Love, My Guitar](약 13000원?)에 DVD가 딸려있는데 전 세계 다양한 포크 기타 명인의 좋은 연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Accoustic Alchemy DVD나  Pat Metheny DVD는 언제나 좋은 기타 연주를 보여주니까 대안으로 삼을만 합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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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일반판 (2disc)
김지운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연초에 여러 날 날을 새워가며 영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주홍글씨] [달콤한 인생] [매그놀리아] [프리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몰두해서 영화를 보았던 지금이야말로 추억이 될 것이다. 


처음엔 [주홍글씨]나 [매그놀리아]가 난해하게 느껴졌고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은 스토리가 싱거운 단조로운 영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5번째 보고 있는 지금,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이야말로 도대체 풀리지 않는 퍼즐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멈춰서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리를 쥐어짜 보려고 한다. 나머지 틈은 눈 밝은 분들이 채우시라.


1. 죽는 순간에 누군가 그리워진다면 사랑이리라.


영화의 마지막에 이병헌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는 남은 힘을 다해 신민아에게 전화를 건다. 신민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이병헌은 말을 할 힘이 없다. 그의 머리 속에는 신민아를 좋아하게 되었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를 연주하던 신민아는 잠시 이병헌에게 미소짓는다.


이것은 가슴 아픈 비극이다. 이병헌이 사랑하는 신민아에게 처음 말을 건내려는 때, 생명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어지는 나래이션 :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웠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슬퍼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이병헌의 눈가에서 눈물이 도르르 흘러내린다.


2. 두개의 공간이 있다 : 스카이 라운지와 어두운 지하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1) 실력 좋은 2인자 이병헌이나 보스들이 존재하는 스카이 라운지와 (2) 김뢰하나 황정민, 그들의 똘마니 들이 존재하는 어두운 지하세계 또는 창고이다.


설혹 외관상 두 공간이 이질적인 곳처럼 보일지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폭력과 복종에 기반을 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입부에 이병헌이 황정민의 졸개를 혼내주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데서 보이듯 두 공간은 이어져 있다. 굳이 차이를 가리자면 스카이 라운지 쪽이 더 이성적이고 지하가 더 감성적이라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성적과 감성적의 차이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지하세계를 양아치로 생각하는 이병헌은 잔뜩 자만심에 차 있다.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꿈에도 자신의 추락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추락이란 현실의 응시일 뿐, 자만심에찬 현재야말로 사상누각과도 같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3. 스카이 라운지에서 나오다.


영화의 갈림길은 이병헌이 황정민의 졸개를 해치우고 스카이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치밀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고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으로 아마도 보스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이병헌을 끌어낸 것은 보스 김영철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애인을 감시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병헌이 신민아의 집에 도착할 때, 차 앞유리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이 잠깐 비쳐보인다. 그리고 차에 내렸을 때 회오리 바람이 이병헌을 스쳐지나간다. 최초의 나래이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다. 마음이다.”

 

여기부터 스카이 라운지는 신민아라는 초록빛 세계와 만난다.너무도 풋풋하고 연약하기에 치명적인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4. 흔들림은 스카이 라운지의 균열을 가져온다.


아마도 신민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병헌은 묘하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가 더 흔들리게 된 것은 신민아와 남자 친구를 미행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서로 다정히 속삭이며 식사를 하고, 몸을 비벼대며 춤을 춘다. 고독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던 이병헌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행을 마친 이병헌은 잠시 신민아의 사진을 응시한다. 그녀는 이미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이다.


이병헌이 완전히 변하게 되는 계기는 신민아와 남자 친구의 동침을 발각한 때였다. 이미 신민아를 좋아하게 된 이병헌은 남자 친구를 죽이지 못한다. 그들을 죽이는 대신, 그는 그들에게 모든 걸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이때 신민아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하는데, 이병헌은 큰 충격으로 멍해진다. 스카이 라운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마도 이 영화 해독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는 신민아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지워버려’ 하면 지워지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거 아니쟎아요. 지워지는 거 아니쟎아요.”

 


5. 두 가지 생존 방식 : 복종과 사랑


김영철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는 복종을 요구한다. 이유는 필요치 않다. 삼선교 응선이 말대로 ‘사과해라. 그러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이것이야 말로 조직의 불문율이다. 오야의 말은 그것으로 누구도 이유를 달지 못하는 권위이다. ‘왜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반역이 되는 슬픈 세계! - 그러나 너무도 강고하게 서있는 세계이다. 이곳에는 개인은 없고 조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려는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처절한 응징뿐이다. 이 세계의 이미지는 어둡고 닫힌 창고이다.


신민아로 대표되는 세계는 친밀함과 사랑의 세계이다. 누가 뭐라든 신경을 쓰지 않는 자신의 삶이 중시되는 세계- 음악이 흘러나오고 서로를 사랑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이미지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이다.

 

영화가 끝나고 종종 떠오르는 모습은 신민아가 남자 친구와 식사를 할때, 감시자인 이병헌이 목을 비틀어 오뎅을 먹으며 흘끔 그들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 오뎅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이병헌의 외로움인듯 싶어 애잔하기 그지 없다. 그토록 강하던 이병헌은 마음 깊숙히 외로움을 안고있는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남자인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지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신민아와 남자친구를 볼 때 그 관계의 낯섬이 그를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두 세계의 만남을 보여주는 차가운 바람 속의 이병헌이 따뜻한 유리창 속의 연인을 바라보는 장면은,  복종의 방식에 선 사람이 사랑의 방식의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묘한 흔들림을 담고 있다. 그 흔들림은 무척 치명적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6. 생매장 당했으나 탈출하다.


보스는 신민아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이병헌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신민아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 전화의 주인공이 이병헌 임을 알게 된다. 분노한 그는 황정민과 김뢰하를 통해 이병헌을 처벌한다.


보스가 “그애 때문이냐?”라고 묻지만 이병헌은 대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침묵은, 이병헌의 전화를 받지 않음으로써 이병헌을 감싸는 신민아 처럼, 신민아 탓을 하지 않음으로써 신민아를 보호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병헌은 침묵의 댓가로 손가락을 잃고 생매장을 당하게 된다.

 

생매장을 당했던 이병헌이 김뢰하 무리와 살벌한 난투극을 벌이고 탈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총쏘는 영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누아르 형태를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총으로 가기 전의 과정으로 불각목 액션도 필요했던 거다.) 철저하게 그 공간은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갈 것 같은, 열린 듯 닫힌듯한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액션이 필요했다. 각목이나 주먹질보다 더 강렬한, 그래서 불각목 아이디어가 나왔다. 불과 비 속에서 좀비처럼 달려드는 수하들, 이런 것들이 카오스적인 느낌을 줬다.능욕을 당했던 공간을 부수고 나온다는 의미로 카 스턴트까지 한 것이다."


7. 두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두 사람이 끝까지 가다. 


영화의 후반부에 보스 김영철은 두 개의 교회를 그리는데 교회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그려져 있다. 아마도 김영철과 이병헌의 끝까지 가는 것을 대칭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김영철은 이병헌의 불복종에 자존심을 상해 분노해 있다. 이병헌은 자신이 7년동안 충직하게 일했음에도 생매장을 당하게 된 것을 억울해 한다. 결국 보스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이병헌은 왜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묻는다. 보스는 자신의 여자를 건드려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병헌은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기서 보스는 거꾸로 이병헌에게 왜 마음이 흔들렸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러지 말고 예전처럼 돌아가자고 화해의 제스추어를 보낸다. 이병헌은 그럼에도 보스를 죽이고 만다. 왜 죽였을까?

 

영화는 유리창에 비친 상처투성이의 이병헌과 보스 김영철의 뒷모습을 한참 보여 준다. 두 개의 교회처럼 둘은 서 있다. 그러나 이병헌과 보스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거리감과 신뢰의 상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이병헌은 다시 스카이 라운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며 이병헌이 하는 말 “그렇다고 돌이킬 수도 없잖아요.” 왜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가? 여하튼 분명한 것은 신민아와의 만남으로 스카이 라운지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렇게 끝이 났다는 것이다.


8. 왜 이 영화는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을까? 나의 부족을 한탄한다.


이쯤해서 꼭 따져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왜 그런거냐?” “왜 흔들린거냐?” “왜 그랬어요?” 등 질문이 많지만 성실한 답변은 거의 없다. 기껏 대답을 해도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하고 재차 묻는데 이렇게 되면 아예 침묵으로 넘어가 버린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디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어쩌면 감독은 이 많은 사건의 추동력이 이성적인 일이 아니라 편견이나 맹목적인 충동에서 온거라는말을 하는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병헌은 신민아의 살랑거리는 치마와 목덜미, 가녀린 손가락을 본다. 그게 왠지 모르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 그 충격이 그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파악되거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일이후 삶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극 중의 인물들 역시 왠지 모르게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끝까지 집착하는지도..... 따라서 영화의 흐름은 스토리나 논리 전개에 따르기 보다는 화면 전환이나 이미지를 통해 감정 덩어리로 던져지는 거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짧은 생각이다.

 

**** 참고 :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 중 발췌


(1) [장화 홍련]에 대해 한 말이지만 [달콤한 인생]에도 유효한 말들 :

“서사와 내러티브가 아니라 주제에 해당하는 낱낱의 인상들이 초래하는 비극으로 영화를 전개하려 했다.”

“나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 때 왜 그랬을까? 그는 내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기억을 돌이키고 싶지 않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어 사람을 옭아매는 순간들 말이다.”


(2) [달콤한 인생]에 대해 [씨네 21]에서의 인터뷰 중 발췌:

“이 영화는 달콤한 자기 내부의 욕망에 의해서 달콤한 꿈을 꾸고, 달콤한 상상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영화”

“사람은 살면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윤리적 선택이냐, 미학적 선택이냐 할 경우 냉큼 인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으니까, 어떤 명분을 끌어들여서 선택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합리성의 담론을 갖고 들어와서 선택했을 때, 그 명분이 거짓 명분이었다는 것, 동기나 의도가 사실은 다른 것에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콤한 인생은 자기 감정에 서투른 한 남자가 모호한 감정의 흔들림 때문에 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마치 그것은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파멸로 치닫는 것인데, 결국 그것을 마지막 순간에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무언가 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달래줬던 인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욕망이 건드려졌던 것이고, 중차대한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그 순간에 그것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이미지의 잔상들이 큰 동기가 될 수도 있다.”    


9.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향한 복싱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하나 고른다면 마지막 유리창에서의 복싱 장면이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과 싸운다는 뜻일까? 간혹 보이는 이병헌의 웃음이란 자아도취와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그렇지만 스카이 라운지의 정점을 이루는 이 시점부터 이병헌의 삶은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닫는 것이다.


간혹 이 장면을 신민아와의 사랑을 꿈꾸던 이병헌이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복싱 장면에 해당하는 것은 황정민의 부하를 해치우고 커피를 마실 때이기 때문에, 신민아와는 만나지도 않았던 시점이다. 벌어지지도 않은 것을 꿈꿀 수가 있을까?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병헌이 “이건 너무 가혹해.”라고 중얼거리며 쓰러지는 장면과 기고만장하던 과거를 병치함으로써 인생의 무상감을 증폭시키려 했던 것이 아닐까? 여하튼 마지막 복싱장면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살이도, 당장 무엇이 닥쳐올지도 알지 못한채, 유리창 속의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웃음짓는 이병헌의 허무한 몸짓과 같다는, 무상감을 느끼게 하는  눈부신 장면이다.


10. 달콤한 인생은 무엇인가?


이제, 영화 제목인 '달콤한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과연 이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달콤했던 순간이라면 어떤 때가 될 것인가? 누구는 신민아와의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이라고 하고, 누구는 2인자로 잘 나가던 때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신민아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의 말대로 2인자의 생활이란 7년동안 개처럼 일한 시간이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손이 잘려지는 공포의 시간이고 폭력의 시간이었다. 그런 삶을 살고 있었기에 신민아의 첼로의 선율과 미소는 더 처절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으리라.

 

'달콤한 인생'이라는 말은 마지막 나래이션 속의 '달콤한 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래이션이 끝나면 이병헌이 눈물을 흘리며 죽는다.  과연 이 눈물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에필로그에도 나타나지만, 이야기 속의 제자처럼 이병헌은 너무도 가슴이 아파 울 수 밖에 없다. 신민아를 향한 사랑이란 처절한 파멸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무섭고도 슬픈 꿈이었다. 그렇다. 그의 풋사랑은, 맹목적 외사랑은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렸으나 아무 것도 새로 지을 수 없었다. 꿈은 꿈으로 완결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병헌은 그 꿈을 달콤하다고 말한다. 진정 신민아를 사랑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리라. 

 

그는 말한다. 달콤한 꿈을 꾸었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슬픈거라고... 그렇지만 그는 파멸의 고통을 겪으며 순수한 형태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리라. 꿈을 꾸는 것은 거져 얻어질지 모르나, 꿈을 품는 것은 결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 꿈은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지니는 고통을 받아들일 때 삶은 변화하고 성숙한다.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죽음에 다다라서야 신민아가 전화를 받는다. 이병헌의 신민아를 향한 사랑 고백은 처음엔 보스에게 가로막히고, 또 이제는 죽음으로 가로막힌다. 애닯어라! 그의 사랑이여! 그래도 그가 달콤한 꿈을 꾸었다면 그의 눈물에는 약간의 기쁨도 담겨있었으리라.

(이상은 이병헌이 연기한 극중인물 김선우의 슬픈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 배암발 :

 

이 영화의 한계로 죽음에 다다른 이병헌의 마지막 회상 장면에 너무나 많은 하중이 실린다는 의견이 있다. 엔딩 나래이션에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병헌과 신민아와의 관계는 유심히 보면 많은 실마리들이 있기 때문이다.휴대전화랄지 전등이랄지 서로의 얼굴표정이랄지...  연주를 끝난 신민아가 묘하게도 친구들을 먼저보내고 기다리고 있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엔딩에서 신민아를 상징하는 나뭇잎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은 괞챦은 영상이다. 이 영상만으로도 면죄부를 주고 싶다.

 

또 마지막 총기구입부터 총기 난사, 이병헌의 죽음으로 가는 장면이 긴장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감독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제일 찍고 싶었던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의도를 짐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하지 않은 뒤틀린 관계의 도미노,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 시끌벅적 소동을 벌이고 거드름을 피우지만 운명의 총알이 뇌를 통과하는 순간 여지없이 피를 흘리며 스러져야 하는 인간 군상들...참 맥베드적이라고 생각된다. 관객은 마지막까지 이성적인 결과를 요구하지만 감독은 조금 다른 곳에 서 있는 것 같다.

 

총기가 난사되는 마지막 전쟁터에서 인생의 무상감, 허무 이런 상투적인 표현 말고 무언가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너져내리는 암흑세계의 마지막 전쟁을 그리는 데는, 맨주먹이나 불각목의 서사적인 액션 보다, 싸움의 과정이 소거된- 총을 통한 살육이 적절하다고 생각이 된다. 이걸 생각해 보자. 영화의 자막이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등장하는  la dolce vita가 산산조각날 때 참으로 당혹스럽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이미지 아닐까? 그렇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당혹스런  불가항력적인 파멸을, 이성적인 논리를 소거시켜버리는 붕괴를 그려내는 데엔, 총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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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SE (2disc) - 할인행사
변혁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베어엔터테인먼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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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앞서서  왜 이 영화를 보게되었나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이은주, 성현아 라는 매혹적인 여배우들의 섹시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들의 미끈한 육신과 매혹적인 음성은 지루한 일상 속에 잠깐의 도피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영화는 제가 바라던 뜨거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며칠 동안은 속이 미슥미슥한 구토감을 안게 하는 트렁크 장면에서 저는 초라한 성욕을 잊어야했습니다. 삶의 이중성 속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1. 인트로 :  Pace, Pace, Dio, Mio (신이시여! 저에게 평화를 주옵소서!)


영화의 첫 장면부터 남자 주인공은 묘한 긴장감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한석규는 유능한 수사팀장으로 살인 현장에 가고 있습니다. 한석규는 클래식을 들으며 자유롭게 도로를 질주하지만, 마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감정이 폭발할 듯 위태위태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말이야. 대가리가 깨진 분은 얼마나 평화로울 것인가? 이렇게 좋은 날 대가리를 깨뜨린 사람은 또 얼마나 평화로울 것인가?”

그러나 한석규는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지탱하고 있던, 자신의 자신감을 받치고 있던 삶의 토대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아내인 엄지원과 애인 이은주 사이에서 수컷으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파국은 대가리가 깨지는 상황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 이렇게 좋은 날 말입니다.


(참고 : naver 지식 검색에서 hbula님의 의견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그 탁월한 리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부분 인용)

“첫 장면의 한석규가 드라이브 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 내용을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빠체(평화)라는 클래식 음악을 따라 부르는 한석규가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머리가 부서진 사람이 평화롭겠느냐고 머리를 부숴뜨린 사람이, 그걸 수사하러 가는 내가 평화롭겠냐고 합니다.

결국 (직업적으로나 남자로서나) 유능한 한석규의 평화는 평화롭지 않은 진실 위에 위태롭게 서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아내의 중절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한석규는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으면서 아내의 이야기(진실)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거짓 위에 세워진 평화를 유지하려 합니다.“)


2. 영화의 구조 : 한석규와 성현아의 다중 인생을 통한 전개:"성현아는 왜 나오는가?“


영화 [주홍글씨]는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혹평 속에 흥행에 실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1) 관객 입장에선 포스터나 홍보과정에서 강조한 화끈한 아니면 아리아리한 성애의 장면은 없으며 있더라도 불만스럽고 (2) 끊임없이 진행되는 이야기가 무언가 뒤섞인 듯 잘 아귀가 안맞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혐오감만을 가지고 ‘엽기 퇴폐 영화’라는 지적을 하는 분이 많으셨습니다. 여하튼 불편한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이다 이런 질문이 눈길을 끌었고 그것이 그동안 답답하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질문이란 “성현아는 도대체 왜 나오는가?”였습니다.

질문의 대답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김영하의 단편소설 [사진관 살인사건]과 [거울에 대한 명상]을 결합시킨 것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감독은 전혀 다른 소설 두 개를 결합하면서 스릴러를 만들고도 배후의 드라마를 찬찬히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낸 것입니다. 따라서 사진관 사건과 한석규 사건을 동일한 사건에 대한 입체적 시각이라고 보고 퍼즐을 맞추면 아귀가 잘맞는 무척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만, 별도의 사건으로 보게 되면 아주 난삽한 드라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가 난해하게 보인 이유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한석규, 엄지원, 이은주가 불륜의 관계라면 성현아와 남편, 사진작가 역시 불륜의 관계입니다. 게다가 모두 죽은 자들의 머리가 부숴지지요. 그리고 과연 누가 죽였냐가 석연치 않습니다. 양쪽다 얼마전까지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왜 죽었느냐를 찾아가는 게 이 영화이지요.

(2) 엄지원과 성현아 모두 남편 몰래 낙태합니다. 이것은 곁으로는 평화로운 삶이지만 사랑과 신뢰는 없는 위태로운 평화를 표면에 끌어올려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3) 극중의 구체적인 사물 역시 서로 이어지는데 성현아가 사온 콩나물이라는 일상적인 삶의 소재가 한석규의 콩나물로 이어지는 식으로 서로 혼합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사진관의 살인과 한석규가 겪는 일은 같은 일이다. 또는 성현아가 한석규의 또다른 분신이다.’라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4) 한석규가 이은주의 침대에 놓고간 ‘마음’이라는 그림과 사진작가가 보낸 ‘경희야 사랑해’라는 글자 역시 위태로운 평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고 서로 대칭을 이룬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성현아는 한석규가 되기도 하고 이은주가 되기도 하는 식으로 변형을 이루면서 사건의 나래이션을 하는 셈입니다.

특히 “사진관에 혼자 앉아 있으면 참 심심해요.”장면은 이은주가 한석규와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진만 봐도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성현아와 사랑하는 사람의 응큼한 속내를 알지만 사랑하기에 진심을 담은 음악으로 속마음을 들려주는 이은주는 참 서글프고 외로운 처지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는 성현아가 대신 “여자분이 기다리시겠어요. 전화를 걸어봐요.”하는 식으로 한석규를 다그치기도 하지요. 참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한석규는 그 이야기를 무시합니다. 당연히 이은주의 외로움, 슬픔,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는 못하는 애닯은 처지 등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게 됩니다.


3. 삼중 사중의 중층 구조의 완결 : 이은주의 자살과  곤객의 관음증이 트렁크에서 만나다. 


 

이 영화가 부각된 것은 이은주가 자살한 후 ‘[주홍글씨]에 노출이 많아서 우울해했다’라는 기사가 실려서 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경험으로 판단하자면 ‘그럴 리가 없어요. 이은주는 더 어렸을 적에도 [오 수정]같은 영화를 찍었는데 갑자기 노출이 심하다고 죽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배우라면 이 영화가 매우 좋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노출씬을 배치했다는 걸 알 것입니다. 노출은 절제되어 있고 노출씬마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감동을 줍니다. 제가 배우라도 이런 영화 찍는 걸 행복해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트렁크 장면은 사실 생각이 다릅니다. 아주 장시간에 걸쳐 감정을 쥐어짜며 연기를 하는데 저같은 무덤덤한 관객이 일주일 동안 그 장면에 휘둘리고 있는게 사실이라면, 배우는 훨씬 힘든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의 격정 때문에 자살해야 한다면, 한석규씨가 먼저 자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강인한 한석규씨는 영화처럼 살아 남으셨고, 실제로 죽은 것은 영화에서 처럼 애처로운 이은주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만큼 이은주가 감성적이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은주의 영결식장에서 한석규씨가 억지로 울음을 참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영화가 배우 이은주의 자살과 이어져서 죽음의 삼중구조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 삼중의 대칭구조는 영화에 무덤덤하던 저같은 사람이 노출씬에 대한 욕망으로 영화를 보게 되고,(이은주의 자살과 뒤이은 선정적 기사가 아니라면 어찌 제가 [주홍글씨]를 보았겠습니까?) 관객 자신의 삶이라는 마지막 사중의 대칭구조를 이루면서 완결됩니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화엄경에 나온다는 인드라의 망이니 사사무애, 이사무애 법계 같은 끊임없는 인연의 세계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끝내 닿게되는 것은 처절한 현실, 사랑없이 영위해 하는 일상성에 매몰된 바로 지금 '나'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대사는 이은주의 “소원하나 이루어졌네.”입니다. 트렁크씬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고백이기에 가장 처절한 종말을 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가장 가슴을 치는 나래이션은 한석규가 “그 와중에도 나는 그녀가 자살했다고 진술했다”입니다. ‘미안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은주와 헛된 꿈 이었지만 끝내 돌아가고 싶은 고향 엄지원 사이에서 터져나온 추락한 수컷의 서글픈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4. 에필로그 : “사랑했으면 괜찮은 건가요?”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 한석규가 자신의 분신인 성현아에게 “사랑하셨나요?”라고 묻는 걸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장면은 '과연 한석규는 이은주를 사랑했는가?'를 스스로 질문하는 것인데, 성현아의 “사랑했으면 괜찮은 건가요?”라는 반문으로 돌아옵니다.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 굳이 짐작하자면 이렇습니다. 비록 사랑했을 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다면 거기서는 어떤 결실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 감독인 변혁씨가 실제로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옮기면 :


질문 : 경희의 마지막 대사, “사랑했으면 괜찮은 건가요”라는 말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사랑했으면 그것으로 된 거지, 괜찮은 건 아닌 것 같다. 사랑했으면 굉장히 좋고, 그 자체만으로도 네가 누릴 것은 다 누린 거다. 하지만 사랑했다고 해서 네 부인이 속고 살아도 되고, 어떤 사람이 아파해도 되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석고상에 머리가 깨져서 죽으면 안되는 거다. ”사랑으로 인해 얻을 것을 얻었다면, 다른 희생은 강요하지 마라.“가 내 대답이다.”


5. 오마주 : hbula님의 리뷰(이 글을 쓰기까지 가장 많이 실마리를 주신 네이버 리뷰어 글)


“이 영화를 본 분들은 반전에 집착하는데, 이 영화는 앞 부분은 스릴러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삼각 관계의 파산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스릴러로서의 반전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전은 한석규의 사생활에서 드러납니다. 한석규는 이은주(재즈, 도발적인 언행, 그녀의 아파트는 빨강색)과 쾌락을 즐기지만 아내는 순수한 여성(클래식 전공, 다소곳함, 하얀 아파트, 결국 가족이라는 규범에 맞는 아내)으로서 사랑합니다. 이은주와는 성관계를 즐기고 엄지원과는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트렁크 씬에서 그런 아내가 동성애자이며 한석규를 사랑하지 않는 가장 거짓된 인물임이 드러납니다.


이 반전은 스릴러의 반전이 아니라(그래서 사람들이 웃는 거지요. 또 제가 본 영화관에서는 웃음보다는 혐오감의 속삭임이 많았습니다. 동성애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금기의 영역이지요.) 한석규가 품고 있는 꿈(빠체)의 진실이 드러나는 그런 반전입니다.


덧붙여, 살인 도구가 성모 마리아 상임이, 엄지원이 진실을 드러내는 곳이 성당임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부부싸움을 한 성현아가 콩나물을 사오고 남편의 시신 아래에 콩나물이 흩어져 있음과 한석규가 아내를 위해 콩나물 국을 끓여주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회적 금기(마리아상)과 쿨하고 평화로운 삶(콩나물 국)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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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열두달 2008-02-1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글이네요~추천 하나 드리고 갑니다

하늘연못 2008-02-12 10:0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하버드 동양학 연구소나 엘리아데가 계셨던 시카고의 종교학분과에 가고 싶었는데 어느덧 흐지부지하며 20년 가깝게 흘러버리고 말았네요. 지금은 10년 후를 생각하고 있어요. 분투하셔서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버드나 예일에 간 친구들을 보니까 특별히 뛰어난 친구도 있지만 대체로 꿈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고 꾸준히 준비한 사람들이더군요. 하버드의 벽이 높은게 아니라 제 자신 자기비하의 골짜기가 깊었던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먼길을 갈때는 우선 목표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하늘연못 2008-03-0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열두달님 댓글을 보고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참 근심 많을때 쓴 글이었습니다. 지금쓴다면 '4.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쓰고 싶습니다.
"사랑은 축복이다.원래 네것이 아닌데 너에게 다가온 것이다.사랑, 그것만으로 넌 다 누린거다. 그러니 판단을 멈추고 그저 감사하라.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축복을 준 상대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수호천사가 되어주어라. 사랑이란 서로를 보살피는 것이다."
아마도 이 정도가 인터뷰에서 말한 감독의 본뜻이 아닌가 싶네요. 사랑은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고 키우는 행위라는 것!

신동호 2022-02-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 이은주 님 기일 전후로 영화와 드라마를 다시 보고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리뷰를 읽게 됐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물 중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 건 가희 뿐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이자 연인에게 남자를 빼앗기고 축복 받지 못한 임신에 결국 트렁크 안에 갖혀 유산이 됨과 동시에 남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전 기훈의 마지막 진술에서 가희가 자살을 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불행의 바닥까지 가는 인물이 너무 안스럽습니다. 그 배역에 몰입해서 (쓰신 대로 관객의 100배는 몰입했으리라 추측합니다…) 결국 현실의 삶도 놔버리게 된 배우 이은주 님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언급하신 블로그도 검색해서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영화 자체는 굉장히 정교하고 스토리도 탄탄해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기사와 인터뷰에서 언급된 촬영 방식 등으로 인해 배우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배우 이은주 님이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 - 한 역사학자가 밝히는 <다 빈치 코드>의 진실과 픽션
바트 D. 에르만 지음, 이병렬 옮김 / 안그라픽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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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를 읽고 서평을 썼을때 호감을 보여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 논지는 소설을 소설로 읽자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까지 졸라매려는 신앙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한 글이었습니다.그렇지만 마음 속 한 구석으로는 '그래도 누군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찬찬히 알려준다면 좋으련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만 알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비교의 방법이 공부의 기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혹적인 주제에는 생각이 다른 개성있는 저자 2, 3명을 병렬해서 읽는 것을 기본적인 독서 방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이야기로는 [다빈치 코드]와 호교적인 신부님 또는 목사님 외에 다른 통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유선방송에서 나오는 다큐멘타리도 보구, [텔레즈만]이니 [영지주의]니 하는 책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읽고 있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읽는 책이 두 권인데 성서 역사학자의 객관적인 책인 이 책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하구 필립 얀시의 예수에 대한 책 [내가 미처 몰랐던 예수]였습니다. 10년 전 앨벗 놀란의 [그리스트교 이전의 예수]를 읽은 후로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중입니다.

한번 더 읽고 서평을 올리려구 합니다만, 우선 두 책 모두 좋은 책이라는 말씀만 먼저 드리겠습니다.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다빈치 코드에서 마치 사실인양 거론하는 이야기들이 성서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상식도 왜곡한 가상적인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는 점, 그런데도 저자가 처음부터 사실인듯 썼기 때문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점을 찬찬히 알려줍니다. 저같은 불신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객관적인 지식을 알기 편하게 들려줍니다. (내용은 재차 올리겠습니다.)

필립 얀시의 [내가 미처 몰랐던 예수]는 아마도 한국의 기독교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신약을 읽으면서 또는 예수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겪게되는 갈등을 생동감있게 적었는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절친하게 설명해줄수 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기독교 초심자들이라면 앨벗 놀란과 필립 얀시를 꼭 권하고 싶습니다. 

(빈약한 리뷰를 사죄드리며 다시 올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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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 O.S.T.
이재진 작곡 / 이엠아이(EMI)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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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와는 어울리지 않는 영화를 두 편 보았다. <달콤한 인생>과 <주홍 글씨>! 두 편다 너무도 멋진 영화이지만 슬프고도 처절해서 연초부터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느낌이다.

이은주가 영화 속에서 부른 주제가 Only When I Sleep은 너무도 사랑하지만 친구와 결혼해서 같이 밤을 보낼 수는 없는 한석규에 대한 바램과  자신의 고독을 잘 표현해 준 곡이다. 이은주는 원곡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잘 불렀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이제는 고인이 된 이은주의 마지막 독백처럼 들려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당신은 사랑에 빠진 저를  빙글 빙글 돌려 놓아 온통 혼란스러운 느낌을 들게 했요. 온통 당신 생각 뿐이지만 당신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제가 잠들때 뿐이죠.....전 낮엔 종일 일해요. 그리고 이렇게 쉴 때가 되면 침대에 눕는 답니다.  심장 구석에서 떨어지는 제 숨소리를 듣지요. 오직 침대에 누워 있을 때만, 전 메마른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래도 잠을 자는 내내 당신이 없다는 상실감에 울고 있어요. 잠이 들면 하늘 저 높이, 당신이 있어 천사들이 날고 있는 천국처럼 행복한 그 곳으로 가요.  오직 잠을 잘 때만 전 결코 죽지 않아요.꿈속에서 당신을 만나는 그 동안만 저는 살아 있답니다." 고독감과 우울감 속에서 죽었다는 이은주의 인생이 오버랩되는 곡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은주가 한석규에게 그렇게 거칠게 살지말라고 들려주는 Lysdal의 A Matter Of Time역시 듣기 좋은 명곡이다. "이제 막 태어나는 아이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어요. 왜 우리가 싸워야 하나요? 우리는 쓸데없는 상대에 대한 증오감으로 우리의 참된 인생의 빛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예요." And if you believe in a Life at first sight, There are reasons enough not to fight. Why do we fight? We,re blocking the Light. "당신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투쟁하나요? 왜 당신은 저주의 감정을 품죠? 왜 당신은 당신을 그토록 괴롭히는 일들을 벌이는 거예요? 그대여! 제발 눈을 감아요. 제가 이렇게 애원하는 것은 제가 잘 알기 때문이죠. 당신이 그토록 하길 원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요. 제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Why do you struggle? Why do you feel this woe? Why do you things that hurt you so? Baby just close your eyes. the reasons I ask you is because I know. You always wanted to have that flow. Baby, Just look up to the sky!  

사랑하는 이가 참되게 살기를 바라는 이은주의 마음이 묻어있는 좋은 곡이다. 생각해보면 이은주는 끝내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낳지 못하고 유산을 하고 만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밤을 지샌 것만으로 너무도 감사한다. 사실, 한석규는 이은주를 사랑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단물을 빨아먹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놈을 평생의 연인으로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자신이 얼마나 밉겠는가? 그럼에도  너무도 뜨거운 이은주는 트렁크 속에서 오줌싸고 똥을 싸면서 서로에 대한 추한 추억을 남길 것을 꺼려해서 자신을 죽여줄것을 애원한다.  트렁크 속의 현실은 처절하지만 이은주의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고 불타오른다. 그러니 내 어찌 그녀와 한석규의 트렁크 연기를 잊을 수 있겠는가? 

끝으로 영화의 처음에 한석규가 씩씩하게 부르고 내달렸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에 나온다는 Pace, Pace, Mio, Dio는 "평화를 , 평화를, 나에게, 신이여!"라는 뜻이라 한다. 두 여자를 소유하려 했던 남자는 결국 그 속에서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은주의 죽음 속에서 진정으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죽음으로 사랑을 채운 이에게 "미안하다"라고 할 수 밖에 없고, 같이 죽을 수도 없다는 것, 이처럼 처절한 비극이 어디있을까?그럼에도 살아난 그가 기껏 한 일이란 그녀가 자살을 했다고 진술하는 일이었다. 다시 자신의 평화를 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중성을 깨닫고 전쟁같은 싸움터를 벗어낫다는 점에서 한석규 역시 평화를 얻기는 했다. 그러나 너무도 초라하고 외로운 평화이다. 두 여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의기양양하게 질주하던 한석규가 풀죽은 초라한 남자로 추락하기까지 너무도 가슴을 저미며 보아야 했던 영화 <주홍글씨>! 이 영화를 그 속의 음악들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 배암발:  음반은 영화 속의 세 곡이 너무 좋아서 특별한 불만은 없었지만 클래식 곡과 재즈 곡이 섞여있어서 어수선한 감을 줍니다. 특히 영화 속의 클래식 곡은 불안하고 불편한 곡이 많아서 더 불편한 거 같습니다.  또, 영화 자체도 내용이 잔인하고 처절하며 중간 중간 야한 장면이 있어서 어르신들이나 10대들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볼 영화는 못 되죠. 또 너무 우울하신 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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