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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일반판 (2disc)
김지운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연초에 여러 날 날을 새워가며 영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주홍글씨] [달콤한 인생] [매그놀리아] [프리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몰두해서 영화를 보았던 지금이야말로 추억이 될 것이다.
처음엔 [주홍글씨]나 [매그놀리아]가 난해하게 느껴졌고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은 스토리가 싱거운 단조로운 영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5번째 보고 있는 지금,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이야말로 도대체 풀리지 않는 퍼즐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멈춰서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리를 쥐어짜 보려고 한다. 나머지 틈은 눈 밝은 분들이 채우시라.
1. 죽는 순간에 누군가 그리워진다면 사랑이리라.
영화의 마지막에 이병헌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는 남은 힘을 다해 신민아에게 전화를 건다. 신민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이병헌은 말을 할 힘이 없다. 그의 머리 속에는 신민아를 좋아하게 되었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를 연주하던 신민아는 잠시 이병헌에게 미소짓는다.
이것은 가슴 아픈 비극이다. 이병헌이 사랑하는 신민아에게 처음 말을 건내려는 때, 생명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어지는 나래이션 :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웠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슬퍼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이병헌의 눈가에서 눈물이 도르르 흘러내린다.
2. 두개의 공간이 있다 : 스카이 라운지와 어두운 지하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1) 실력 좋은 2인자 이병헌이나 보스들이 존재하는 스카이 라운지와 (2) 김뢰하나 황정민, 그들의 똘마니 들이 존재하는 어두운 지하세계 또는 창고이다.
설혹 외관상 두 공간이 이질적인 곳처럼 보일지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폭력과 복종에 기반을 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입부에 이병헌이 황정민의 졸개를 혼내주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데서 보이듯 두 공간은 이어져 있다. 굳이 차이를 가리자면 스카이 라운지 쪽이 더 이성적이고 지하가 더 감성적이라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성적과 감성적의 차이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지하세계를 양아치로 생각하는 이병헌은 잔뜩 자만심에 차 있다.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꿈에도 자신의 추락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추락이란 현실의 응시일 뿐, 자만심에찬 현재야말로 사상누각과도 같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3. 스카이 라운지에서 나오다.
영화의 갈림길은 이병헌이 황정민의 졸개를 해치우고 스카이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치밀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고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으로 아마도 보스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이병헌을 끌어낸 것은 보스 김영철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애인을 감시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병헌이 신민아의 집에 도착할 때, 차 앞유리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이 잠깐 비쳐보인다. 그리고 차에 내렸을 때 회오리 바람이 이병헌을 스쳐지나간다. 최초의 나래이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다. 마음이다.”
여기부터 스카이 라운지는 신민아라는 초록빛 세계와 만난다.너무도 풋풋하고 연약하기에 치명적인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4. 흔들림은 스카이 라운지의 균열을 가져온다.
아마도 신민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병헌은 묘하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가 더 흔들리게 된 것은 신민아와 남자 친구를 미행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서로 다정히 속삭이며 식사를 하고, 몸을 비벼대며 춤을 춘다. 고독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던 이병헌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행을 마친 이병헌은 잠시 신민아의 사진을 응시한다. 그녀는 이미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이다.
이병헌이 완전히 변하게 되는 계기는 신민아와 남자 친구의 동침을 발각한 때였다. 이미 신민아를 좋아하게 된 이병헌은 남자 친구를 죽이지 못한다. 그들을 죽이는 대신, 그는 그들에게 모든 걸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이때 신민아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하는데, 이병헌은 큰 충격으로 멍해진다. 스카이 라운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마도 이 영화 해독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는 신민아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지워버려’ 하면 지워지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거 아니쟎아요. 지워지는 거 아니쟎아요.”
5. 두 가지 생존 방식 : 복종과 사랑
김영철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는 복종을 요구한다. 이유는 필요치 않다. 삼선교 응선이 말대로 ‘사과해라. 그러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이것이야 말로 조직의 불문율이다. 오야의 말은 그것으로 누구도 이유를 달지 못하는 권위이다. ‘왜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반역이 되는 슬픈 세계! - 그러나 너무도 강고하게 서있는 세계이다. 이곳에는 개인은 없고 조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려는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처절한 응징뿐이다. 이 세계의 이미지는 어둡고 닫힌 창고이다.
신민아로 대표되는 세계는 친밀함과 사랑의 세계이다. 누가 뭐라든 신경을 쓰지 않는 자신의 삶이 중시되는 세계- 음악이 흘러나오고 서로를 사랑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이미지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이다.
영화가 끝나고 종종 떠오르는 모습은 신민아가 남자 친구와 식사를 할때, 감시자인 이병헌이 목을 비틀어 오뎅을 먹으며 흘끔 그들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 오뎅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이병헌의 외로움인듯 싶어 애잔하기 그지 없다. 그토록 강하던 이병헌은 마음 깊숙히 외로움을 안고있는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남자인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지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신민아와 남자친구를 볼 때 그 관계의 낯섬이 그를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두 세계의 만남을 보여주는 차가운 바람 속의 이병헌이 따뜻한 유리창 속의 연인을 바라보는 장면은, 복종의 방식에 선 사람이 사랑의 방식의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묘한 흔들림을 담고 있다. 그 흔들림은 무척 치명적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6. 생매장 당했으나 탈출하다.
보스는 신민아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이병헌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신민아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 전화의 주인공이 이병헌 임을 알게 된다. 분노한 그는 황정민과 김뢰하를 통해 이병헌을 처벌한다.
보스가 “그애 때문이냐?”라고 묻지만 이병헌은 대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침묵은, 이병헌의 전화를 받지 않음으로써 이병헌을 감싸는 신민아 처럼, 신민아 탓을 하지 않음으로써 신민아를 보호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병헌은 침묵의 댓가로 손가락을 잃고 생매장을 당하게 된다.
생매장을 당했던 이병헌이 김뢰하 무리와 살벌한 난투극을 벌이고 탈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총쏘는 영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누아르 형태를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총으로 가기 전의 과정으로 불각목 액션도 필요했던 거다.) 철저하게 그 공간은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갈 것 같은, 열린 듯 닫힌듯한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액션이 필요했다. 각목이나 주먹질보다 더 강렬한, 그래서 불각목 아이디어가 나왔다. 불과 비 속에서 좀비처럼 달려드는 수하들, 이런 것들이 카오스적인 느낌을 줬다.능욕을 당했던 공간을 부수고 나온다는 의미로 카 스턴트까지 한 것이다."
7. 두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두 사람이 끝까지 가다.
영화의 후반부에 보스 김영철은 두 개의 교회를 그리는데 교회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그려져 있다. 아마도 김영철과 이병헌의 끝까지 가는 것을 대칭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김영철은 이병헌의 불복종에 자존심을 상해 분노해 있다. 이병헌은 자신이 7년동안 충직하게 일했음에도 생매장을 당하게 된 것을 억울해 한다. 결국 보스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이병헌은 왜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묻는다. 보스는 자신의 여자를 건드려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병헌은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기서 보스는 거꾸로 이병헌에게 왜 마음이 흔들렸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러지 말고 예전처럼 돌아가자고 화해의 제스추어를 보낸다. 이병헌은 그럼에도 보스를 죽이고 만다. 왜 죽였을까?
영화는 유리창에 비친 상처투성이의 이병헌과 보스 김영철의 뒷모습을 한참 보여 준다. 두 개의 교회처럼 둘은 서 있다. 그러나 이병헌과 보스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거리감과 신뢰의 상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이병헌은 다시 스카이 라운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며 이병헌이 하는 말 “그렇다고 돌이킬 수도 없잖아요.” 왜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가? 여하튼 분명한 것은 신민아와의 만남으로 스카이 라운지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렇게 끝이 났다는 것이다.
8. 왜 이 영화는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을까? 나의 부족을 한탄한다.
이쯤해서 꼭 따져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왜 그런거냐?” “왜 흔들린거냐?” “왜 그랬어요?” 등 질문이 많지만 성실한 답변은 거의 없다. 기껏 대답을 해도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하고 재차 묻는데 이렇게 되면 아예 침묵으로 넘어가 버린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디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어쩌면 감독은 이 많은 사건의 추동력이 이성적인 일이 아니라 편견이나 맹목적인 충동에서 온거라는말을 하는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병헌은 신민아의 살랑거리는 치마와 목덜미, 가녀린 손가락을 본다. 그게 왠지 모르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 그 충격이 그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파악되거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일이후 삶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극 중의 인물들 역시 왠지 모르게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끝까지 집착하는지도..... 따라서 영화의 흐름은 스토리나 논리 전개에 따르기 보다는 화면 전환이나 이미지를 통해 감정 덩어리로 던져지는 거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짧은 생각이다.
**** 참고 :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 중 발췌
(1) [장화 홍련]에 대해 한 말이지만 [달콤한 인생]에도 유효한 말들 :
“서사와 내러티브가 아니라 주제에 해당하는 낱낱의 인상들이 초래하는 비극으로 영화를 전개하려 했다.”
“나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 때 왜 그랬을까? 그는 내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기억을 돌이키고 싶지 않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어 사람을 옭아매는 순간들 말이다.”
(2) [달콤한 인생]에 대해 [씨네 21]에서의 인터뷰 중 발췌:
“이 영화는 달콤한 자기 내부의 욕망에 의해서 달콤한 꿈을 꾸고, 달콤한 상상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영화”
“사람은 살면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윤리적 선택이냐, 미학적 선택이냐 할 경우 냉큼 인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으니까, 어떤 명분을 끌어들여서 선택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합리성의 담론을 갖고 들어와서 선택했을 때, 그 명분이 거짓 명분이었다는 것, 동기나 의도가 사실은 다른 것에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콤한 인생은 자기 감정에 서투른 한 남자가 모호한 감정의 흔들림 때문에 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마치 그것은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파멸로 치닫는 것인데, 결국 그것을 마지막 순간에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무언가 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달래줬던 인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욕망이 건드려졌던 것이고, 중차대한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그 순간에 그것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이미지의 잔상들이 큰 동기가 될 수도 있다.”
9.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향한 복싱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하나 고른다면 마지막 유리창에서의 복싱 장면이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과 싸운다는 뜻일까? 간혹 보이는 이병헌의 웃음이란 자아도취와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그렇지만 스카이 라운지의 정점을 이루는 이 시점부터 이병헌의 삶은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닫는 것이다.
간혹 이 장면을 신민아와의 사랑을 꿈꾸던 이병헌이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복싱 장면에 해당하는 것은 황정민의 부하를 해치우고 커피를 마실 때이기 때문에, 신민아와는 만나지도 않았던 시점이다. 벌어지지도 않은 것을 꿈꿀 수가 있을까?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병헌이 “이건 너무 가혹해.”라고 중얼거리며 쓰러지는 장면과 기고만장하던 과거를 병치함으로써 인생의 무상감을 증폭시키려 했던 것이 아닐까? 여하튼 마지막 복싱장면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살이도, 당장 무엇이 닥쳐올지도 알지 못한채, 유리창 속의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웃음짓는 이병헌의 허무한 몸짓과 같다는, 무상감을 느끼게 하는 눈부신 장면이다.
10. 달콤한 인생은 무엇인가?
이제, 영화 제목인 '달콤한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과연 이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달콤했던 순간이라면 어떤 때가 될 것인가? 누구는 신민아와의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이라고 하고, 누구는 2인자로 잘 나가던 때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신민아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의 말대로 2인자의 생활이란 7년동안 개처럼 일한 시간이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손이 잘려지는 공포의 시간이고 폭력의 시간이었다. 그런 삶을 살고 있었기에 신민아의 첼로의 선율과 미소는 더 처절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으리라.
'달콤한 인생'이라는 말은 마지막 나래이션 속의 '달콤한 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래이션이 끝나면 이병헌이 눈물을 흘리며 죽는다. 과연 이 눈물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에필로그에도 나타나지만, 이야기 속의 제자처럼 이병헌은 너무도 가슴이 아파 울 수 밖에 없다. 신민아를 향한 사랑이란 처절한 파멸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무섭고도 슬픈 꿈이었다. 그렇다. 그의 풋사랑은, 맹목적 외사랑은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렸으나 아무 것도 새로 지을 수 없었다. 꿈은 꿈으로 완결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병헌은 그 꿈을 달콤하다고 말한다. 진정 신민아를 사랑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리라.
그는 말한다. 달콤한 꿈을 꾸었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슬픈거라고... 그렇지만 그는 파멸의 고통을 겪으며 순수한 형태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리라. 꿈을 꾸는 것은 거져 얻어질지 모르나, 꿈을 품는 것은 결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 꿈은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지니는 고통을 받아들일 때 삶은 변화하고 성숙한다.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죽음에 다다라서야 신민아가 전화를 받는다. 이병헌의 신민아를 향한 사랑 고백은 처음엔 보스에게 가로막히고, 또 이제는 죽음으로 가로막힌다. 애닯어라! 그의 사랑이여! 그래도 그가 달콤한 꿈을 꾸었다면 그의 눈물에는 약간의 기쁨도 담겨있었으리라.
(이상은 이병헌이 연기한 극중인물 김선우의 슬픈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 배암발 :
이 영화의 한계로 죽음에 다다른 이병헌의 마지막 회상 장면에 너무나 많은 하중이 실린다는 의견이 있다. 엔딩 나래이션에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병헌과 신민아와의 관계는 유심히 보면 많은 실마리들이 있기 때문이다.휴대전화랄지 전등이랄지 서로의 얼굴표정이랄지... 연주를 끝난 신민아가 묘하게도 친구들을 먼저보내고 기다리고 있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엔딩에서 신민아를 상징하는 나뭇잎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은 괞챦은 영상이다. 이 영상만으로도 면죄부를 주고 싶다.
또 마지막 총기구입부터 총기 난사, 이병헌의 죽음으로 가는 장면이 긴장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감독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제일 찍고 싶었던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의도를 짐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하지 않은 뒤틀린 관계의 도미노,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 시끌벅적 소동을 벌이고 거드름을 피우지만 운명의 총알이 뇌를 통과하는 순간 여지없이 피를 흘리며 스러져야 하는 인간 군상들...참 맥베드적이라고 생각된다. 관객은 마지막까지 이성적인 결과를 요구하지만 감독은 조금 다른 곳에 서 있는 것 같다.
총기가 난사되는 마지막 전쟁터에서 인생의 무상감, 허무 이런 상투적인 표현 말고 무언가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너져내리는 암흑세계의 마지막 전쟁을 그리는 데는, 맨주먹이나 불각목의 서사적인 액션 보다, 싸움의 과정이 소거된- 총을 통한 살육이 적절하다고 생각이 된다. 이걸 생각해 보자. 영화의 자막이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등장하는 la dolce vita가 산산조각날 때 참으로 당혹스럽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이미지 아닐까? 그렇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당혹스런 불가항력적인 파멸을, 이성적인 논리를 소거시켜버리는 붕괴를 그려내는 데엔, 총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