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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뉴패키지 박스세트 : 디지팩 (4disc) - 초록물고기 + 박하사탕 +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 심혜진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1. 프롤로그 : 앞의 리뷰가 [초록물고기]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나는 [박하사탕]에 대한 리뷰를 쓰려 한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나는 이대현 선생의 책 [투덜이의 영화세상]을 많이 인용할 것이다. 내가 읽은 리뷰 중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2. 이창동 감독은 원래 소설가 였다: 1983년 등단, 1992년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 일보상 수상, 1997년 [초록 물고기]로 영화감독으로 데뷔
"그가 소설에서 영화로 이야기터를 옮긴 이유는 '일상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말의 관념성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소설은 이야기를 잃어버렸고, 이야기를 잃어버린 소설은 위기를 맞았다. 일상을 보여주는 데는 영화가 편하다. 일상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그 진실이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일 자체가 무모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그는 일상의 이야기꾼을 자처한다."
"이창동 감독은 "내 이야기의 모든 출발점은 인간"이라고 했다.인간을 어떻게 보고,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얼마만큼 덜 왜곡시킬까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였다.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가 바로 그 인간(한국인)의 삶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번째 작품 [박하사탕]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16쪽)
3. [박하사탕]은 2000년 1월 1일 개봉되었다.: "2000년 1월 1일, 새로운 천년의 출발점에서 왜 그는 주인공 영호(설경구)를 통해 20년을 거슬러가는 시간 여행을 할까?"
"[박하사탕]을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한 의미를 묻자 그는 "모든 과거는 지나간 미래이다. 한 젊은이가 최초로 삶을 바라보던 자리로 가보자는 것이다. 그 꿈과 희망의 자리를 지나온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 스무살에게는 현재이자 출발점이다"라고 답하였다.그러면서 인간의 사고와 욕망의 순서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순차적인 구성을 버리고 기차가 거꾸로 달리듯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방법을 택하였다고 하였다." (16쪽)
4. 영호의 절규 "나 돌아갈래"의 의미 : "시간의 기차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새 밀레니엄의 시간을 여는 한국영화 [박하사탕]은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처럼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 그것은 주인공 영호란 한 젊은이가 최초로 삶을 바라보던 그 꿈과 희망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시간을 지나온 자에게는 과거이지만, 영호가 마지막에 서 있는 스무살의 지점과 같은 나이의 젊은이들에게는 미래의 출발이다. "
"그러나 영화의 현재와 과거 20년은 선의 시간이 지배하는 사회다. 돌아갈 수 없다. 그 불가항력을 거스르는 일은 기차 선로 위를 거꾸로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는 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달려오는 기차에 맞선다. 그때부터 기차는 거꾸로 달린다. "(19쪽)
5.미친 시대가 주는 중압감과 남겨진 슬픔 :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데 꼬박 7년이 걸렸다. 처음 장면부터 몰입이 되지 않고 막막하다가 고문 장면정도 가면 이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보기가 너무 괴로웠기에 저절로 잠이 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창동 감독 역시 특히 고문장면 촬영을 하면서 무척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보면 정말 지난 20년, 우리는 미친 시대를 살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상황과 현실이 한 개인을 내버려 두지 않는, 폭력과 독재로부터 떨어져 있어도 그것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살았다. 그것이 삶의 상처와 어긋남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영호처럼 그 폭력에 편입하는 것이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간 것이라면 그 '함몰'이 너무 슬프다.영국의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광주사태 때 ....기억 때문에 영호가 첫사랑인 순임(문소리)와 헤어지는 장면이 가장 잔인하다고 했다. "(16쪽)
6.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설경구: 사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영화배우란 저런 걸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저절로 탄복할 만큼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과연 20년이란 세월을 오고가며 슬픔과 고통의 철로를 탈 수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이미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관객들의 너무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20년의 시간여행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신인이었던 설경구를 발탁했다고 한다.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설경구의 광인연기와 스무살 꿈많은 젊은이 영호의 복잡한 심사를 담은 마지막 장면은 '영화 배우의 얼굴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7. 문소리가 건네준 박하사탕과 카메라 : 이 영화를 보면 너무도 고통스런 기억 속에 첫사랑 윤순임이라는 존재는 현실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손길처럼 보인다. 관객이 숨을 돌이킬 시간이라곤 문소리가 나오는 잠깐밖에 없는 느낌이다.
수십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양과 변함없는 하얀 색깔로 남아있는 박하사탕 같은 변함없고 순수한 사랑! 영호가 그토록 그리던 구원이란 그런 거 였을까? 스무살 순임은 군대간 영호에게 편지와 함께 박하사탕을 보내주곤 했다. 잊혀졌던 박하사탕의 의미를 떠올리며 죽어가는 첫사랑을 위해 돈을 털어 박하사탕을 사서 길을 건너는 가엾은 영호의 모습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서 박하사탕이 전편을 감싸는 사랑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카메라는 무얼까? 카메라는 이 영화의 핵심주제인 시간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다. 다소 의아하게 끝나는 마지막 엔딩의 정지사진은 감독이 생각하는 착종된 시간에 대한 이미지이다. 그렇다. 저 착종된- 과거와 미래가 뒤엉키고, 미래가 주는 설레임과 고통스런 파멸이 공존하는-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산다. 그러한 시간의 소용돌이에서 영호도 순임도 가슴저미는 사랑을 한다.
"스무살의 영호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시간을 잡겠다는 것이다. 그때 시간은 멈추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의 정지는 그가 광주 진압군으로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차는 역에 멈추어 있다. 때문에 [박하사탕]의 시간은 단순히 일정하게 움직이는 선이 아니다. 그 시간대의 현재진행과 멈춤에서 인간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어긋남이 영호의 삶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영호는 소풍온 강변을 "언제 와 본 것 같다"고 한다. 그 장소는 바로 그가 20년 후 철로에서 기차와 맞선 영화의 첫 장소이다. 기시감은 미래 예감이다." (20쪽)
8. 좌절스런 순환과 자연스런 순환 : 사람이 고통스런 과거를 지니게 되면 그 과거는 마치 자석처럼 모든 생각을 그 곳에 묶어놔 버린다. 이 영화에는 영호가 자전거를 타고 끝없이 빙빙 도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렇게 살 바에는 기차에 깔려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의 구원이 무얼까? 자신을 망가트린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명만 죽이고 저승길에 함께 가고자 했던 영호가 고통속에 팽개친- 실은 그토록 잊지 못했던- 순임이 죽는 날까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일까? 악마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순수했던 과거를 -마치 죽은 아들의 옛사진을 고이 간직해온 어머니처럼- 품고 있었던 순임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러고 보면 지금 여기 있는 나만이 나는 아닌 것이다. 여하튼 박하사탕처럼 변함없는 순임의 사랑은 죽음을 향하던 영호에게 큰 충격을 던져 주는 것이다.
아마도 어둠 속에서 흐느끼며 영호가 빼어버린 카메라 속의 필름은 스무살 영호의 첫사랑과 푸른 꿈이 움트던 야유회 사진이었을 텐데,-아니면 순임이 애인 영호에게 오로지 푸르고 아름다운 것만을 찍으라고 담아둔 아무 것도 찍지 않은 필름이었을 텐데- 결국 순임이 유언처럼 남긴 메시지는 이런게 아닐까? '당신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니고 산다고 해도 우리 사랑하고 꿈꾸던 그 시간을 잊지 않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서글프게도 시간은 너무도 많이 흘러갔다. 영호가 박하사탕으로 자신의 사랑을 전하려 해도 순임은 받을 수가 없고 카메라는 쓸데 없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순임이 힘들게 돈을 모아 산 카메라를 단돈 4만원에 팔아버릴 수 밖에 없는 남루한 영호의 서글픈 흐느낌이 너무도 슬펐던 그런 영화였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기차를 거꾸로 가게하여 처음으로 되돌림으로써 슬픈 두 연인의 넋을 위로하고자하는 이창동 감독의 한바탕 굿판이다. 2000년 1월 1일은 굿하기엔 좋은 날이지 않은가?
아주 낭만적인 감상을 이야기한다면 크게 보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저 폭압적인 기차조차 다시 순환하지 않을까? 너무도 큰 상처를 받은 영호가 더 멀리 보고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여 새로운 삶의 정거장에서 새로운 기차를 타게 되는 그런 시대가 오기를, 그런 시대를 만들어가기를 기원한다.
9. 에필로그 : 새삼 너무 깊이 빠진 영화는 글조차 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이대현 선생의 리뷰가 없었다면 도대체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깊은 속내를 지적해줄 리뷰를 기대한다. 이만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