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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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새로 나온 책은 무척 표지가 간략하지만 내가 산 구판은 자전거포에서 주인공 따뷔랭이 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많은 자전거와 공구들이 그려져 있고 따뷔랭은 펑크가 났던 자전거에 바람을 넣는 모양인데 간략한 선으로 참 잘 그렸다. 쭉쭉 그린 듯한 선 세개가 따뷔랭의 다리인데 펌프질을 하느라 잔뜩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그 복잡한 자전거포 정경을 이렇게 간략하고 재치있게 표현하다니!

2. 책을 넘기면 어린 시절의 따뷔랭이 나온다. 그는 자전거를 타다가 이리 저리 다친 모양이다. 자전거도 찌그러져 있다. 나무 그늘에 숨어 멋지게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간략한 선과 색으로 따뷔랭의 부러움을 잘 표현했다.

사실 이 그림이야말로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노력을 해도 끝내 채울 수 없어서 포기하고 그렇게 포기한 후에는 삶의 숙제로 남는 그런 열망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음치라든지 춤을 추고 싶어하는 몸치랄지.....

연극무대에 한번 서보고 싶은데 남들 앞에 나서기만 하면 말한마디 못하는 사람도 있고, 멋지게 기타치며 밴드를 하고 싶은데 몇년째 초급반만 다니다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남부럽지 않게 출세해 보겠다는 욕망-이런 야망에 가까운 열망도 있지만 단지 다른 아이들처럼 전자오락에서 2번 스테이지에 가보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만 대학을 못나와서 맞선에 못나가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명문대 나왔는데 영어회화를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도 있었고, 결혼은 했는데 성생활은 서툰다든지, 경영컨설턴트인데 자기가 투자하면 왜 다 깡통이 되느냐는 친구도 있었다.

남들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그런 한계란게 있기 마련이다.

3. 말하자면 이런 열등의식이란 사람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산다. 그 이름은 호모 콤플렉수쿠스! 이 만화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은 그럼 어떻게 그 열등감을 탈출하게 되는가? 또는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는가? 이 책이 바로 그런 걸 그린 책이다.

따뷔랭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산다. 어렸을 적엔 낙법의 달인이 되고, 커서는 자전거 기술자가 되고, 풍부한 유머를 가지게 된다. 어떤 면에서 진주조개가 불순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진주를 만들듯 따뷔랭은 콤플렉스를 통해 더 성숙해 간다.

그럼에도 자전거 타기를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그 채워지지 않는 2%의 우울, 그리고 그걸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거짓을 벗기위해 고투하는 따뷔랭의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4. 사실 이 책은 글도 글이지만 그림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간략한 선만으로 이렇게 풍부한 표정을 잡아내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따뷔랭이 친구처럼 자전거를 타고 싶어 노력에 노력을 다하는 장면이랄지 조시안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도 정겹고 아름다워 가슴이 설레였다. 나는 머리가 무거울 때 이 책의 어디든 펼치고 이 간략한 선들의 춤을 응시한다. 그러면 그 선은 적당한 리듬감과 함께 나른한 여유를 선물한다.

5.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그림을 그린 때는 1932년 생인 장 자끄 상뻬가 63세였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60대가 그린 이 유쾌하고 발랄한 시선이 더욱 경탄스럽다. 마치 장자끄 상뻬가 '넌 지금 어떤 감정과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냐?'하고 꿀밤을 먹일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옹졸한 마음과 편협한 시선이야말로 쇠락의 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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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동의보감 지압법 - 웰빙건강법 6
한방생활연구회 엮음 / 초록세상(어린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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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안마, 마사지, 지압의 차이

1) 안마(按摩) : 按은 어루만지다, 摩는 비비다는 뜻이다. 손을 이용해서 주무르고 비비는 등 다양한 자극을 통해 단단한 부분을 풀고 통증을 줄이는 기술이다. 따라서 피부, 근육 등이 주된 자극 목표이다.

2) 마사지(massage) : 주로 손을 이용해서 피부에 자극을 주어서 기능을 회복하는 방법인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서양 안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마 또는 마사지는 특정 부위, 또는 비교적 넓은 면을 다양하게 자극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3) 지압(指壓 acupressure) : 指는 손가락 壓은 누른다는 뜻이다.따라서 손가락으로 누르는 자극을 통해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어디를 누르는가? 대체로 경혈(=침자리)이다. 따라서 경혈을 침으로 찌르면 침술이고 거기를 손이나 막대기, 손바닥 등으로 누르면 지압이다. 기본적으로 경혈을 자극하는 좁은 부위 자극이다.즉, 점자극이다.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지압은 특정한 점을 수직으로 아플 정도로 누르고 5-7초 유지하다가 서서히 압력을 줄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주무르고 비비고 두드리는 다양한 자극을 넓은 피부에 적용하는 안마, 또는 마사지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혈액순환이나 근육의 이완 등을 통해 기능의 회복을 도모한다는 점은 같다.   

2. 경혈 지압의 3원칙

1) 지압을 할때는 수직 압의 원칙으로 해야한다.  즉, 몸 표면을 향해 수직으로 압을 넣어야 한다.

2) 안정된 채로 지속적으로 압을 해야한다. 즉, 수직으로 압을 가하고 나서 그 힘을 늦추지 말고 일정 시간(보통 5-7초)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서서히 힘을 늦추어 압을 빼주어야 한다.

3) 지압할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즉, 상대방의 아픈 곳을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집중해야 한다.

3. 지압법의 종류

1) 일반법 : 가볍고 부드럽게 천천히 눌러 5-7초 동안 압력을 유지한다.

2) 완압법 : 천천히 가압하는 방법으로 일반법보다 2-3배의 시간을 걸린다. 때로는 2단 또는 3단 나누어 누르기를 한다. 예를 들어 한 번 누르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천천히 누르는 것이 2단 누르기이다.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3) 충격법 : 처음엔 가볍고 부드럽게 접촉하다가 갑자기 급속하게 눌렀다 바로 떼는 방법이다.

4) 흡압법 : 엄지를 뺀 네 손가락 또는 손바닥으로 피부를 빨아올리듯 하는 방법으로 상쾌한 느낌을 준다

5) 지속압법 : 손바닥을 이용해서 1분-3분간 지긋이 누르는 방법이다.약한 자극으로 통증을 줄여준다.

5. 예 : 졸음이 올 때 혼자서 하는 지압법(23쪽)

1) 눈썹과 눈썹 사이, 즉 양미간에 양쪽 약지의 끝이 맞보도록 댄 다음 강하게 누른다.

2) 좌우 관자놀이에 양쪽 엄지손가락 끝을 대고 강하게 가압한다.

3) 한쪽 손의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위의 코 등의 뿌리 부분을 잡고, 머리의 중심부를 향해 강하게 누른다.

4) 모두 한 번에 3초 정도 가압을 하는데, 세번 되풀이한다.

6. 예 : 축농증이나 코 막힘을 해결해주는 지압법(76쪽)

영향혈(콧방울옆)과 비통점(콧뼈 밑)을 검지나 중지를 이용하여 활처럼 둥글게 상하로 마사지하는 것이 요령이다.   

7. 이 책이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그림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압점을 표시하고 어떻게 찾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위 예를 보듯이 숙련자의 가르침 없이 이 책을 이용해서 혼자 지압을 배우기는 힘들다. 경혈이나 근육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성감대 애무 자극법 등이 나오는 성인용이기도 하다.물론 그림이 없으니 아주 건전한 성인용이다.- 

이 책은 그래도 아쉬우나마 실용가능한데 지압이 위험한 테크닉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략한 그림이 보여주는 부위를 살살 누르다보면 아픈 점이 나오는데 바로 그점이 경혈점이라고 예측을 할 수가 있다. 만약 그 아픈 점이 뭉친 근육이라면 단단할 것이고 침자리라면 조금 우묵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여하튼 눌렀다가 아픈 느낌이 드는데 잠시 지긋이 눌렀다가 떼었을 때는 상쾌한 느낌이 든다면 유효한 지압점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책의 간략한 그림과 맞춰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입문서로 활용할만 하다.

8. 제목에 나오는 '동의보감'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의 의서 [동의보감]과는 무관하게 쓴 것이다. 시골에도 '명동 칼국수'집이 많지 않은가! 그 아주머니들이 다 명동에서 일을 배우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유명하니까 이름을 그렇게 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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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의 전설 (1930~1998) 1~4집 [알라딘 특가]
KBS 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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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시작해서 유명한 프랑스 월드컵까지를 담았습니다. 즉, 1998년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 팀이 전 우승팀 브라질을 3:0 으로 완파하고 승리하는 것을 끝으로 이 DVD는 끝납니다. 특별한 나레이션 없이 경기 하이라이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유럽에서 제작된 FIFA 공식 라이센스 제품이어서 고급스럽고 수준높은 영상물입니다. 음성, 자막 모두 영어와 한국어를 지원하고 전체 상영시간은 무려 445분, 즉 7시간 반에 이릅니다. 저도 워낙 저렴하게 팔고있어서 망설이다 샀습니다만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구입을 권하고 싶은 좋은 자료네요. 적어도 작년에 구입한 [맨유2000골] 보다는 좋은 자료입니다.  

다만 그 방대한 내용을 실다보니 7시간 반이나 상영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경기를 30초- 2분 정도로 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경기의 분위기는 나름대로 즐길만 하고 과연 월드컵 관련해서 이 이상의 자료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최고의 축구 DVD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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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밥
토드 홉킨스 외 지음, 신윤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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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이다. 첫 리뷰를 쓰고나서 미진한 느낌이 있어 다시 쓴다.

우선 이런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이 여전히 기독교 계열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한국인에게 딱 맞는 조언이나 보편적인 감명을 주는 책이 아니다. 또한  여러 구성상의 헛점을 볼때 기독교계의 홍보나 출판기획의 승리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2. 그럼, 왜 나는 이 책이 기독교인들의 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세 가지 눈에 띄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할 것 같다.

첫째, 지은이 두 분 모두 선교단체랄지 기독실업인회 회장 등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둘째, 책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는 청소부 밥 티드웰의 조언이 무척 기독교적이다. -예를 들어 첫번째 지침인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는 '안식일을 지켜라' 세번째 지침 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는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를 연상케 한다.

세째, 이 책은 중반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진정한 삶의 핵심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거의 교회 신앙고백 수준이다.

"앨리스와 나는 삶은 단 한 번뿐이므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믿었다네. 지난 주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신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모두에게 특별한 목적을 하나씩 맡겨주셨고, 우리 모두는 그 목적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또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이땅에 머무는 동안 신께서 내주신 숙제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거라고.

 앨리스와 나의 가장 큰 바람이 뭐였는지 아나? 이곳에서의 삶을 다 끝내고 마침내 '천국의 CEO'를 만나러 갔을 때, 그분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나의 착하고 충실한 아들 딸아, 잘 해냈구나!'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였다네." (170쪽)

"자네가 지금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거라네. 자네는 그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174쪽)

  약간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이상한 데가 많은 책이 이 책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런 일방적인 기독교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종교서적쪽에 위치해야 할 책이다. 여하튼 이 책은 기독교인이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이다.

3. 그러면 나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무의미한 것인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해서 기독교인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선하며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첫 리뷰가 그런 걸 간과하고 있으므로 나는 이 리뷰를 쓴다. 내 질문이 이것이다. 이 책의 재미, 또는 주인공 밥 티드웰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렇지만 이런 류의 책에 복잡한 주석을 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기 계발서가 우화 형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뻔한 상식을 드라마를 통해 자기 체험화한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첫번째 지침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라는 어이없는 싱거움을 생각해보라. 무척 중요한 메세지지만 진부한 잔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드라마틱한 우화를  보며 공감한 독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데도 간과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책은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생각으로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좀 유식한 표현으로 우화 또는 드라마는 단순한 기억의 대상을 에피소드를 지닌 체험 기억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 우화 속에 들어가 마음껏 놀다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변화의 조짐이 생기는 것이다. 여하튼 이제 잡소리를 그만 두고 병마개를 약간 열어드릴까 한다.

4. 프롤로그의 '어느 누구도 잠들 수 없네'의 배경음악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Nessun Dorma이다. 곁다리로 새는 이야기지만 인터넷에 떠있는 폴 포츠(Paul Potts) 동영상의 첫부분에 나오는 감동적인 아리아이다. 난 폴 포츠의 노래를 들으며 이 책을 읽는다.

우선 [투란도트]가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라는 것도 조금 각별하게 와 닿는다. 이 우화에서 밥은 주인공이다. 그런데 아마도 푸치니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투란도트]를 만든 것처럼 밥도 인생의 마지막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본적인 스토리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분위기라는 것이다. 모리처럼 밥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가진 빛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가는 인물이다.

5. 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청소부 밥 티드웰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하고 누추한 일인데도 결코 주눅이 들지도 않으며 자신의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누추한 무대에서 우뚝 서있는 빛나는 인물이다. 그는 화려한 오페라의 주인공을 연상하며 청소 공연을 한다. 그는 책상을 엉망으로 만든 -직접 본 적은 없는- 비서 베키의 실수를 감싸주고 애정어린 메모를 남긴다. 그는 일 속에서 기쁨을 느끼며 관계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사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불쌍하며 천박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밥 티드웰을 보라!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예술 공연과도 같이 이루어내고 있다. 적은 연봉을 받으며 소소한 일을 하지만 이렇게 고상하고 깊은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엄청난 지위를 가졌으면서도 주위의 그늘진 곳의 도움을 외면하는 가난한 자들도 적지 않다. 나 자신을 돌이켜 봐도 '바쁘다. 바빠.'하면서 참 비인간적인 행세를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밥이 보여주는 여유와 포용을 보라! 그가 지나가면 향기와 온기가 가득 차는 것 같다. 이런 충격을 프롤로그는 전한다.

6. [투란도트]의 줄거리는 이렇다고 한다. 타타르인에게 복수심을 가진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구혼하는 사람에게 세가지 문제를 내어 풀지못하면 목숨을 빼앗는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가 남녀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투란도트를 사모하는 타타르인 왕자 카라프는 투란도트의 세 문제를 다 풀지만 투란도트의 진심을 얻지 못한 것을 알고 이번엔 자신이 문제를 낸다. 투란도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투란도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비밀의 답이 자신들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자신과 상대방의 본모습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청소부 밥]의 주된 메시지도 성공을 추구하느라 자신의 본모습을 잊은 CEO에 대한 충고이다.즉, 네 자신의 참된 이름이 무엇인가? 어떻게 네 자신의 모습을 찾을 것인가? 

7.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어 꼭 죽이고 말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투란도트 공주의 마지막 밤! 이를 지켜보며 부르는 카라프 왕자의 노래가 바로 프롤로그에서 청소부 밥이 부르는 노래이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퍼온 의역을 약간 다듬은 것이다.

Nessun Dorma( = Nobody Shall Sleep! 누구도 잠들 수 없네!)

그 누구도 잠 들수 없네.

나의 공주님,  당신도 차디찬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네.

(그렇지만 그 복수심을 버리고) 저 별들을 보아요.

사랑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저 별들을...(이하 생략)

 8. 화려한 궁궐에서 복수심에 불타서 차디찬 방에 자신을 유폐해버린 - 투란도트 공주와 -사랑과 희망이 사라진 사장실에서 일에 짓눌려 살고있는 -로저 킴브로우 사장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우리들에게 청소부 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망으로 전율하는 별들을 보라!"  이제 그들이 어떻게 미로를 벗어나는지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읽어내려갈 일이다.

9. 나는 30-39쪽을 읽으면서 무척 괴로웠는데 나 자신의 삶과 로저 킴블로우의 삶이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밤늦게 퇴근하면 맞벌이하는 마나님한테 쥐어뜯기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로저와 아내 달린-달링과 달린은 한끝 차이다.^^-이 서로 한마디씩하는 부부싸움도 어찌 이리도 비슷한지!

 그런데 이 책의 재미는 이런 적나라한 현실 뒤에 청소부 밥 부부의 대책을 병치시키는 데에 있다. 즉, 로저-달린이 문제를 보는 방식과 밥-앨리스가 문제를 보는 방식을 병치함으로써 그 차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로저- 달린 부부가 서로의 처지를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상처를 안고 상대의 감정을 헐뜯으며 싸울때, 밥의 아내 앨리스는 문제의 본질을 더 깊이 응시한다. 앨리스가 발견한 비밀은 밥이 너무 지쳐있기 때문에 재충전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에너지가 고갈된 상대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그러면 이렇게 바쁜 직장인에게 알맞는 재충전의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린 아무 것도 안하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런 휴식이 재충전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앨리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일상의 한부분으로 들어올 수 있으면서도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는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린 바로 그 자발적인 일을 통해 열정을 얻고 영감을 받으며 휴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득 앨리스가 지친 밥에게 새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 이유이다.  

물론 주인공 로저는 그런 소박한 지침에 동의하지 못한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 달린은 앨리스와 같은 부류의 여자가 아니어서 어찌 해볼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어 펼쳐지는 55- 58쪽  대화는 로저- 달린 부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전혀 닿을 길 없을 것 같은 평행선 같은 상황이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10.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네째 지침, 배운 것을 전달하라'와 '여섯째 지침, 삶의 지혜를 후대에 물려주라'의 의미와 두 지침 사이의 관계이다. 무슨 말이냐면 두 가지가 똑같은 이야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개 밖에 안되는 지침 중에 두 가지가 겹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여섯 번째 지침이라는 것은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라는 걸 생각해 볼때 분명 두 지침은 전혀 다른 의도로 말해진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다만, 네째 지침에서 배운 것을 전하라는 것이 단순히 말을 전하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배운것-곧 지침 또는 진리의 전파라는 것은 우선 자신의 삶에 창조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와 사회적으로 실천한다, 또는 모범이 된다는 두 가지 맥락이 있을 듯하다. 결국 기독교인 친구들의 말을 빌면, 말씀대로 살고 그것의 기쁨을 전하는 삶의 과정에 대한 얘기같다.즉,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얘기 아닐까? 

그에 비해 여섯 번째 지침은 자신이 삶을 충만하게 살고 죽은 후 남겨주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는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헤매고 있다. 타는 듯한 갈증과 자꾸만 약해지는 의지! 그런데 누군가 사막을 벗어났다는 소식은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가? 인생의 승리자가 전하는 삶의 환희는 남겨진 자에게는  희망의 빛이요 참된 삶의 이정표인 것이다.

11. 끝으로 제가 팁을 하나 드리죠. [청소부 밥]의 삽화를 보세요.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꿈틀 꿈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요. 이걸 그린 사람은 최수연이라는 분입니다. 표지에 www.joooo.com이라고 연락처가 적혀있네요. 참 멋진 공간입니다. 이런 만남도 무척 즐거운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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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 김태길 인생론
김태길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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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다니면서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국민윤리였다. 그러다보니 국민윤리 교과서를 집필했을 때 핵심 인물일 것 같은 선생님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김태길, 안병욱, 유안진, 김동길.. 이런 분들이다. 이분들은 또 [아무개 인생론] 같은 류의 책을 내셨다. 솔직히 운좋게 공부 많이 하고 대학교수 해먹은 것이 무슨 인생에 대한 통찰을 준단 말인가? 나는 아니꼬왔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80년대를 살아오면서 민주화에 기여하신 경우가 드물다. 눈에 보이는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 한마디 외친 적이 없는 냉혈인간 같은 사람들이 무슨 인생을 논하는가?... 이런 반감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나의 반발은 그런 정도를 지나 이 부류의 선생님들을 어용교수 비스무리한 인간으로 낙인을 찍고 있었다.

2.어찌 보면 삶과 독서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인생론류의 책처럼 비판과 성찰이 요구되는 글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도 그랬었다. 고등학교때, 대학 초년에, 군대 입대, 제대의 빈 시간에, 대학 말엽에, 또 사회를 살다가 지쳤을 때-인생이란 것이 문득 녹록하게 느껴지지 않고 버거울때-인생의 지침이 될 인생론이라는 책을 펼쳐보았었다. 누구도 인생에 대해 깊게 살펴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책들밖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책들이 도움이 되었던가? 듣고 싶은 말은 나오지 않아 지루해서 채 다 읽은 적도 없었지만,문득 의문시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정작 책들의 저자인 이들이 권력의 똥구멍이나 핥으며 도피적이거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주범이라면 그래서 그렇게 고상하지만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항상 들려준다고 하면 거기에서 무슨 희망과 전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이 인생론의 저자들의 삶을 추적하고 정치적 사회적 성향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 내 보리라 다짐했었다. -이 일은 정말 도전할 만한 일로 눈 밝으신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3. 어제 우연히 처남이 보다가 팽개쳐둔 이 책이 눈에 띄어서 호기심 삼아 책을 펼치게 되었다. 처음은 무척 시시껄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자가 글을 진솔하게 폼잡지 않고 쓰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인생론이 아니라 삶에 대한 수필로 느껴져서 생각보다는 술술 잘 읽혔다.

저자는 1920년 생이시니 1996년에 나온이책은 76세의 노숙한 식견이 담긴 셈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맥없고 싱겁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이야기가 귀에 들린다. 느릿하고 나직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의 마음도 두드리는 걸 보면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도 서문에 밝히시길 사람사는 것이 뻔한 것이기 때문에 뻔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글이 시시하고 싱거운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변함없는 모습 즉 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싱겁고 시시하다는 내 표현은 담담하다 또는 담백하다라고 바꿔야겠다. 

4. 거칠지만 선생님 책을 요약해 보겠다. 미리 말하지만 이게 선생님이 책 전체를 통해 말씀하신 핵심의 60% 정도 된다.  

(1) 사람이 추구해야하는 가치에는 두가지가 있다. 내면적 가치(인격, 사랑, 우정, 건강 등) 외면적 가치(권력, 돈, 향락) 사람은 내면적 가치를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  

(2) 사람들은 돈을 중심가치로 놓고 살고있다. 그렇지만 돈은 살아가는 도구라는 걸 잊지말라. 돈이 중심가치가 될 수 없다.

(3) 자기가 최고가 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지만 나만 아니라 서로 잘 살 수 있는 길로 가야한다. 배운 사람이란 공동체를 배려하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4) 나는 일제시대에 유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신학문을 한 사람이다. 미신이 횡횡하는 전근대성과 혈연에 이끌리는 폐쇄적인 공동체를 벗어나 보편적 논리적 자율적인 인간을 추구했다. 나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추구했다. 그렇지만 나이들고보니 그게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겠다.

5. 이 책을 보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님의 인품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선생님의 학벌과 사랑에 대한 부분을 요약해 보겠다.

(1)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서 30년넘게 교과서로 사용했던 렘프레히트가 쓴 [서양 철학사]의 번역자이다. 그야말로 대표적인 원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학벌도 무척 화려하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동경대 법대를 다니고 귀국해서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 홉킨스 대학교 박사를 했으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 가면 무척 절절한 고백이 펼쳐진다. 자신은 고등학교도 동기들에 비해 2년이 늦어졌으며 진로를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동경대에도 재수를 해서 들어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경대 법학부 정치학과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끝을 내지 못했고 전쟁통에 다닌 서울대 시절은 그야말로 고생스럽기만 하고 배운 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계속 자신이 뒤쳐지고 쓸데없는 데서 헤메고 있다는 느낌으로 20대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화려한 학벌에 감탄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한탄을 하고 있었다. 계획없이 낭비된 시간이 많아서 다시 살수만 있다면 좀더 현명하게 진로를 정하고 싶다는 후회가 참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또 누구나 최고가 될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적성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조언은 가슴에 새길 말씀이었다.  

(2) 책이 심심하다보니 처남의 책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새책이나 다름없는데 중간의 '연애'와 '진로결정'에 대한 부분만 줄이 쳐져 있다. 그런데 연애부분에서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선생님은 사랑이라는 것은 성욕에서 생기지만 우정이 합해져야만 지속될 수 있다고 쓰셨다. 그럴 법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선생님은 이어서 예를 들기를 창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성욕일 뿐으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다가 갑자기 뜻밖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생님은 사실 자신은 그런 걸 지켜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이런 이야기는 그냥 상상일 뿐이고 연애나 사랑은 잘 알지 못한다며 그만 넘어가자고 쓰셨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자신도 로맨스를 바라지만 로맨스와 샌님 중에서 굳이 택해야 한다면 적적한 샌님을 택하겠다고 하셨다. 이런 진실한 글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 분이 어디에 계시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인품만은 본받고 싶었다.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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