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소부 밥
토드 홉킨스 외 지음, 신윤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1. 아내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이다. 첫 리뷰를 쓰고나서 미진한 느낌이 있어 다시 쓴다.
우선 이런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이 여전히 기독교 계열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한국인에게 딱 맞는 조언이나 보편적인 감명을 주는 책이 아니다. 또한 여러 구성상의 헛점을 볼때 기독교계의 홍보나 출판기획의 승리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2. 그럼, 왜 나는 이 책이 기독교인들의 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세 가지 눈에 띄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할 것 같다.
첫째, 지은이 두 분 모두 선교단체랄지 기독실업인회 회장 등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둘째, 책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는 청소부 밥 티드웰의 조언이 무척 기독교적이다. -예를 들어 첫번째 지침인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는 '안식일을 지켜라' 세번째 지침 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는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를 연상케 한다.
세째, 이 책은 중반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진정한 삶의 핵심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거의 교회 신앙고백 수준이다.
"앨리스와 나는 삶은 단 한 번뿐이므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믿었다네. 지난 주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신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모두에게 특별한 목적을 하나씩 맡겨주셨고, 우리 모두는 그 목적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또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이땅에 머무는 동안 신께서 내주신 숙제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거라고.
앨리스와 나의 가장 큰 바람이 뭐였는지 아나? 이곳에서의 삶을 다 끝내고 마침내 '천국의 CEO'를 만나러 갔을 때, 그분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나의 착하고 충실한 아들 딸아, 잘 해냈구나!'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였다네." (170쪽)
"자네가 지금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거라네. 자네는 그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174쪽)
약간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이상한 데가 많은 책이 이 책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이런 일방적인 기독교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종교서적쪽에 위치해야 할 책이다. 여하튼 이 책은 기독교인이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이다.
3. 그러면 나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무의미한 것인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해서 기독교인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선하며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첫 리뷰가 그런 걸 간과하고 있으므로 나는 이 리뷰를 쓴다. 내 질문이 이것이다. 이 책의 재미, 또는 주인공 밥 티드웰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렇지만 이런 류의 책에 복잡한 주석을 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기 계발서가 우화 형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뻔한 상식을 드라마를 통해 자기 체험화한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첫번째 지침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라는 어이없는 싱거움을 생각해보라. 무척 중요한 메세지지만 진부한 잔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드라마틱한 우화를 보며 공감한 독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데도 간과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책은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생각으로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좀 유식한 표현으로 우화 또는 드라마는 단순한 기억의 대상을 에피소드를 지닌 체험 기억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 우화 속에 들어가 마음껏 놀다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변화의 조짐이 생기는 것이다. 여하튼 이제 잡소리를 그만 두고 병마개를 약간 열어드릴까 한다.
4. 프롤로그의 '어느 누구도 잠들 수 없네'의 배경음악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Nessun Dorma이다. 곁다리로 새는 이야기지만 인터넷에 떠있는 폴 포츠(Paul Potts) 동영상의 첫부분에 나오는 감동적인 아리아이다. 난 폴 포츠의 노래를 들으며 이 책을 읽는다.
우선 [투란도트]가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라는 것도 조금 각별하게 와 닿는다. 이 우화에서 밥은 주인공이다. 그런데 아마도 푸치니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투란도트]를 만든 것처럼 밥도 인생의 마지막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본적인 스토리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분위기라는 것이다. 모리처럼 밥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가진 빛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가는 인물이다.
5. 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청소부 밥 티드웰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하고 누추한 일인데도 결코 주눅이 들지도 않으며 자신의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누추한 무대에서 우뚝 서있는 빛나는 인물이다. 그는 화려한 오페라의 주인공을 연상하며 청소 공연을 한다. 그는 책상을 엉망으로 만든 -직접 본 적은 없는- 비서 베키의 실수를 감싸주고 애정어린 메모를 남긴다. 그는 일 속에서 기쁨을 느끼며 관계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사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불쌍하며 천박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밥 티드웰을 보라!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예술 공연과도 같이 이루어내고 있다. 적은 연봉을 받으며 소소한 일을 하지만 이렇게 고상하고 깊은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엄청난 지위를 가졌으면서도 주위의 그늘진 곳의 도움을 외면하는 가난한 자들도 적지 않다. 나 자신을 돌이켜 봐도 '바쁘다. 바빠.'하면서 참 비인간적인 행세를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밥이 보여주는 여유와 포용을 보라! 그가 지나가면 향기와 온기가 가득 차는 것 같다. 이런 충격을 프롤로그는 전한다.
6. [투란도트]의 줄거리는 이렇다고 한다. 타타르인에게 복수심을 가진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구혼하는 사람에게 세가지 문제를 내어 풀지못하면 목숨을 빼앗는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가 남녀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투란도트를 사모하는 타타르인 왕자 카라프는 투란도트의 세 문제를 다 풀지만 투란도트의 진심을 얻지 못한 것을 알고 이번엔 자신이 문제를 낸다. 투란도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투란도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비밀의 답이 자신들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자신과 상대방의 본모습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청소부 밥]의 주된 메시지도 성공을 추구하느라 자신의 본모습을 잊은 CEO에 대한 충고이다.즉, 네 자신의 참된 이름이 무엇인가? 어떻게 네 자신의 모습을 찾을 것인가?
7.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어 꼭 죽이고 말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투란도트 공주의 마지막 밤! 이를 지켜보며 부르는 카라프 왕자의 노래가 바로 프롤로그에서 청소부 밥이 부르는 노래이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퍼온 의역을 약간 다듬은 것이다.
Nessun Dorma( = Nobody Shall Sleep! 누구도 잠들 수 없네!)
그 누구도 잠 들수 없네.
나의 공주님, 당신도 차디찬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네.
(그렇지만 그 복수심을 버리고) 저 별들을 보아요.
사랑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저 별들을...(이하 생략)
8. 화려한 궁궐에서 복수심에 불타서 차디찬 방에 자신을 유폐해버린 - 투란도트 공주와 -사랑과 희망이 사라진 사장실에서 일에 짓눌려 살고있는 -로저 킴브로우 사장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우리들에게 청소부 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망으로 전율하는 별들을 보라!" 이제 그들이 어떻게 미로를 벗어나는지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읽어내려갈 일이다.
9. 나는 30-39쪽을 읽으면서 무척 괴로웠는데 나 자신의 삶과 로저 킴블로우의 삶이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밤늦게 퇴근하면 맞벌이하는 마나님한테 쥐어뜯기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로저와 아내 달린-달링과 달린은 한끝 차이다.^^-이 서로 한마디씩하는 부부싸움도 어찌 이리도 비슷한지!
그런데 이 책의 재미는 이런 적나라한 현실 뒤에 청소부 밥 부부의 대책을 병치시키는 데에 있다. 즉, 로저-달린이 문제를 보는 방식과 밥-앨리스가 문제를 보는 방식을 병치함으로써 그 차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로저- 달린 부부가 서로의 처지를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상처를 안고 상대의 감정을 헐뜯으며 싸울때, 밥의 아내 앨리스는 문제의 본질을 더 깊이 응시한다. 앨리스가 발견한 비밀은 밥이 너무 지쳐있기 때문에 재충전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에너지가 고갈된 상대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그러면 이렇게 바쁜 직장인에게 알맞는 재충전의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린 아무 것도 안하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런 휴식이 재충전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앨리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일상의 한부분으로 들어올 수 있으면서도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는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린 바로 그 자발적인 일을 통해 열정을 얻고 영감을 받으며 휴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득 앨리스가 지친 밥에게 새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 이유이다.
물론 주인공 로저는 그런 소박한 지침에 동의하지 못한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 달린은 앨리스와 같은 부류의 여자가 아니어서 어찌 해볼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어 펼쳐지는 55- 58쪽 대화는 로저- 달린 부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전혀 닿을 길 없을 것 같은 평행선 같은 상황이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10.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네째 지침, 배운 것을 전달하라'와 '여섯째 지침, 삶의 지혜를 후대에 물려주라'의 의미와 두 지침 사이의 관계이다. 무슨 말이냐면 두 가지가 똑같은 이야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개 밖에 안되는 지침 중에 두 가지가 겹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여섯 번째 지침이라는 것은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라는 걸 생각해 볼때 분명 두 지침은 전혀 다른 의도로 말해진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다만, 네째 지침에서 배운 것을 전하라는 것이 단순히 말을 전하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배운것-곧 지침 또는 진리의 전파라는 것은 우선 자신의 삶에 창조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와 사회적으로 실천한다, 또는 모범이 된다는 두 가지 맥락이 있을 듯하다. 결국 기독교인 친구들의 말을 빌면, 말씀대로 살고 그것의 기쁨을 전하는 삶의 과정에 대한 얘기같다.즉,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얘기 아닐까?
그에 비해 여섯 번째 지침은 자신이 삶을 충만하게 살고 죽은 후 남겨주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는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헤매고 있다. 타는 듯한 갈증과 자꾸만 약해지는 의지! 그런데 누군가 사막을 벗어났다는 소식은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가? 인생의 승리자가 전하는 삶의 환희는 남겨진 자에게는 희망의 빛이요 참된 삶의 이정표인 것이다.
11. 끝으로 제가 팁을 하나 드리죠. [청소부 밥]의 삽화를 보세요.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꿈틀 꿈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요. 이걸 그린 사람은 최수연이라는 분입니다. 표지에 www.joooo.com이라고 연락처가 적혀있네요. 참 멋진 공간입니다. 이런 만남도 무척 즐거운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