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1. 새로 나온 책은 무척 표지가 간략하지만 내가 산 구판은 자전거포에서 주인공 따뷔랭이 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많은 자전거와 공구들이 그려져 있고 따뷔랭은 펑크가 났던 자전거에 바람을 넣는 모양인데 간략한 선으로 참 잘 그렸다. 쭉쭉 그린 듯한 선 세개가 따뷔랭의 다리인데 펌프질을 하느라 잔뜩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그 복잡한 자전거포 정경을 이렇게 간략하고 재치있게 표현하다니!
2. 책을 넘기면 어린 시절의 따뷔랭이 나온다. 그는 자전거를 타다가 이리 저리 다친 모양이다. 자전거도 찌그러져 있다. 나무 그늘에 숨어 멋지게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간략한 선과 색으로 따뷔랭의 부러움을 잘 표현했다.
사실 이 그림이야말로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노력을 해도 끝내 채울 수 없어서 포기하고 그렇게 포기한 후에는 삶의 숙제로 남는 그런 열망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음치라든지 춤을 추고 싶어하는 몸치랄지.....
연극무대에 한번 서보고 싶은데 남들 앞에 나서기만 하면 말한마디 못하는 사람도 있고, 멋지게 기타치며 밴드를 하고 싶은데 몇년째 초급반만 다니다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남부럽지 않게 출세해 보겠다는 욕망-이런 야망에 가까운 열망도 있지만 단지 다른 아이들처럼 전자오락에서 2번 스테이지에 가보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만 대학을 못나와서 맞선에 못나가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명문대 나왔는데 영어회화를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도 있었고, 결혼은 했는데 성생활은 서툰다든지, 경영컨설턴트인데 자기가 투자하면 왜 다 깡통이 되느냐는 친구도 있었다.
남들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그런 한계란게 있기 마련이다.
3. 말하자면 이런 열등의식이란 사람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산다. 그 이름은 호모 콤플렉수쿠스! 이 만화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은 그럼 어떻게 그 열등감을 탈출하게 되는가? 또는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는가? 이 책이 바로 그런 걸 그린 책이다.
따뷔랭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산다. 어렸을 적엔 낙법의 달인이 되고, 커서는 자전거 기술자가 되고, 풍부한 유머를 가지게 된다. 어떤 면에서 진주조개가 불순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진주를 만들듯 따뷔랭은 콤플렉스를 통해 더 성숙해 간다.
그럼에도 자전거 타기를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그 채워지지 않는 2%의 우울, 그리고 그걸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거짓을 벗기위해 고투하는 따뷔랭의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4. 사실 이 책은 글도 글이지만 그림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간략한 선만으로 이렇게 풍부한 표정을 잡아내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따뷔랭이 친구처럼 자전거를 타고 싶어 노력에 노력을 다하는 장면이랄지 조시안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도 정겹고 아름다워 가슴이 설레였다. 나는 머리가 무거울 때 이 책의 어디든 펼치고 이 간략한 선들의 춤을 응시한다. 그러면 그 선은 적당한 리듬감과 함께 나른한 여유를 선물한다.
5.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그림을 그린 때는 1932년 생인 장 자끄 상뻬가 63세였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60대가 그린 이 유쾌하고 발랄한 시선이 더욱 경탄스럽다. 마치 장자끄 상뻬가 '넌 지금 어떤 감정과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냐?'하고 꿀밤을 먹일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옹졸한 마음과 편협한 시선이야말로 쇠락의 징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