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옛날에 우리나라 백제였던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제 때 쓰던 지역 이름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설마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요. 한때 일본은 우리나라가 쓰고 있던 것을 많이 바꾸어버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도 있고, 그런 것은 없애야 한다 하고 본래 이름을 되찾은 곳도 있을 겁니다. 대충만 알고 혼자 생각한 것을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끄러운 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그때 생긴 것을 없애려고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고 다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가운데 친일파도 많았다는 게 지금 떠올랐습니다. 일본 하면 이런 것을 생각 안 할 수가 없군요.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이 일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우리 피 안에 새겨져 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고 힘을 합쳐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런 말을 하니까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가 아주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군요. 그런 사람은 아주 많지 않을 거예요. 서로의 문화, 예술을 나누며 지내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 책 일본말로도 나온다는군요.

 

우리나라 사람도 일본에 많이 가겠지요. 이 책을 보고 그곳에 가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 조금 알고 가면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요. 아스카는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촌’으로 작아졌지만 먼 옛날에는 지금과 달랐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그곳에만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어디에나 있는 일입니다. 5세기에는 가야에서 건너간 사람이 일본에 철과 말, 그리고 가야 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까운 아스카’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6세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백제에서 많은 사람이 왜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가야도 백제도 살아갈 곳을 잃은 사람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 것으로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보다는 나았겠습니다. 왜에 불교와 문자를 전해준 것은 백제 왕실입니다. 왜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지요. 아스카라는 지명은 40곳이나 있고 오사카의 아스카를 ‘가까운 아스카’ 나라현의 아스카를 ‘먼 아스카’라고 했습니다. 아스카시대가 열린 곳은 ‘먼 아스카’입니다. 아스카는 우리나라 부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부여에 와서는 아스카를 떠올렸다고 하더군요. 나라를 잃고 새로운 땅에 가서도 고향을 잊지 못해 고향과 닮은 땅을 백제 사람들은 찾아내서 살았던 거예요.

 

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도래인이라고 했어요. 이 말도 역사책에는 ‘귀화인(천황의 덕을 흠모하여 귀순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1975년 무렵부터 도래인으로 바꾸어 표기했다고 합니다. 아스카시대 때 도래인은 왜가 고대국가가 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한테는 적이 많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가씨는 야마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었고 도래인은 소가씨 편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의 난’ 때 소가씨가 무너졌습니다. 도래인도 마찬가지였다는군요. 그렇다고 모두 죽지는 않았겠지요. 그 뒤에는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쥐게 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이런 것을 쓰게 되었군요.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스카 · 나라에서는 절, 불상을 많이 돌아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본은 불교를 하나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신도와 합친 신불습합이었습니다. 이름 있는 집안 소가씨와 후지와라씨는 자기들 집안 절을 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메이지유신이 들어섰을 때 불교와 신도를 나누는 신불 나누기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절과 불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후지와라씨 절인 흥복사는 아주 넓은 땅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나라 공원 안에 들어간 모습이 되었다는군요. 모든 게 다 사라지지는 않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냅니다. 일본 불교문화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스카시대에는 도래인한테 영향을 받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당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 바뀌었습니다. 그게 불상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보면 다른 느낌이 들까요. 우리나라 절에도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 절 모습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일본에서 문화유산도 볼 수 있지만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는 요시노 사쿠라(벚꽃)가 잘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벚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가는 길은 좁답니다. 그런 모습을 유홍준은 좋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을 깎고 길을 넓히고, 문화유산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게 만들어서 그곳 모습이 안 좋아진다고요.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잘 지켜가기보다 낡고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만들려고 할 때가 더 많고, 길은 좁은 채 놔두지 않고 넓히지요. 그래서 옛날의 정감있는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남아있는 것은 그대로 놔두면 좋겠습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만 해도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빈 터를 그대로 두지 않고 무엇이든 짓더군요.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제가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요. 예전에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일본에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전하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지요. 우리가 일본에만 무엇인가를 바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도 일본을 알고 일본이 가진 좋은 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첫번째를 보고도 한 말이군요). 다른 나라에 가면 박물관에도 가 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그런 곳에 거의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나라국립박물관에 갈 때는 어떤 특별전이 열리는지 알아보고 가랍니다. 정창원은 왕실 유물 창고로 우리나라에서 받은 것도 잘 가지고 있답니다. 덴리도서관에는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있다는군요. 일본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많이 흘러가기는 했지요. 빼앗긴 것도 많고 누군가 몰래 팔아버린 것도 있겠지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잘 풀어가기를 바랍니다. 일본 속에 있는 우리문화를 찾아보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도 잘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많은 사람이 보기를 바랍니다.

 

 

 

*미처하지못한말

 

제가 어디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처음 간 곳에서 저는 어떤 곳에 가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이어서 길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런 때는 그곳에 사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 제가 그런 거 잘 못합니다. 그때 시간이 많아서 저는 표지판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그렇게 한 게 한두번이 아니군요. 얼마나 말하는 게 어려우면 그럴까 하겠습니다(조금 귀찮기도). 네, 저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의 못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 제 힘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은 가끔 저한테 길을 물어봅니다. 저한테 물어본 곳을 알고 있으면 잘 가르쳐주는데 모르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가까운 일본에는 한번 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 책에 나온 아스카 · 나라뿐 아니라 일본 속 우리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말입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꼭 넣는군요.

 

 

 

희선

 

 

 

 

☆―

 

일본사람들은 불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토착신앙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쇼토쿠 태자는 신으로 격상됨과 동시에 부처님과 동격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결합을 단순히 복합 · 화합  · 융합이 아니라 습합(習合)이라고 했다. 곧 신불(神佛)습합이다. 삶 속에서 익히면서[習] 신도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저절로 합쳐진[合] 것이었다. 일본은 이런 습합의 귀재다.  (101쪽)

 

 

나는 순간 이것(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일본 나라시대 불상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가슴속으로 한껏 이 두 보살상을 예찬했다. 우리와 일본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관계를 생각하면 나는 감정을 자제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감정의 정직성에 따르건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독일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 감동하고, 이탈리아사람들이 독일의 뒤러에 감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일본 미술사가들이 우리 석굴암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듯이 내가 이 두 불상 조각을 예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위대한 예술은 이렇게 시공을 넘고 국적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로 다가오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낸다. 그렇다면 예술이야말로 과거사를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약재(藥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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