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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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긴 시간 동안 이 책 《환한 숨》을 만났어. 단편소설 한편 한편 보고 생각해 봤다면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러지는 못했어. 한편 보고 나면 또 다음을 봤어. 여기엔 단편이 열편이나 담겼어. 적지 않지. 열편을 하나로 말하기는 어려워. 저마다여도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을 사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 소설가 조해진 잘 모르는데, 마지막 소설 <문래>는 조해진 이야긴가 하는 생각을 했어. 소설 쓰는 사람 이야기여설지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재개발이 일어나고 그곳에 살던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하겠지. 이 재개발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70년대, 80년대일까. 어쩐지 난 한때만 재개발이 일어났다고 여겼던 걸지도 모르겠어. 재개발은 지금도 일어나잖아. 여전히 그런 소설이 보이니 말이야. 그런 거 잘 쓰는 사람은 김혜진이 아닐까 싶어. 여기에 실린 <문래>는 예전 이야기야. 부모가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오고 문래 6가라는 곳에 살게 되고, 첫째는 외가에 맡기고 둘째는 집에 혼자 두고 문을 잠그고 부모는 일하러 나갔어. 그런 일이 70년대에만 있었던 건 아니던가. 여기 나오는 ‘나’가 어릴 때 집에 혼자 있었을 때 별 일 없어서 다행이군. ‘나’는 문래를 떠난 뒤 문래를 잊었다가 미국에서 문래와 비슷한 곳에서 문래를 떠올려. ‘나’는 문래를 잊은 걸 부끄럽게 여긴 걸지도. 지금도 문래 같은 곳 있겠어.


 이 소설집에 담긴 소설을 보면서 여기 나오는 사람이 하는 일이 여러 가지다는 생각을 했어.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는 간병인, <흩어지는 구름>에서는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하나의 숨>에서는 고등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어. 이렇게 쓰고 보니 두편은 아주 다른 일은 아니군. 하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거네. <흩어지는 구름>에서 ‘나’는 본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어. ‘나’가 사귀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려 했는데 잘 안 된 것 같아. ‘하나의 숨’은 어쩐지 슬퍼.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야. 특성화고 아이가 실습 나갔다가 사고로 죽기도 했잖아. 그런 일 지금도 일어나겠지. ‘나’는 계약직 선생님이어서 하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


 첫번째 소설도 조금 말해야겠군.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 강희는 혜원이 죽고 혜원이 관리해 달라고 한 아파트에서 살아. 혜원은 그 아파트를 언젠가 자기 아이한테 주라고 했는데. 혜원은 결혼하고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남편과 헤어지고는 만나지 못한 것 같아. 헤어진 남편은 아이와 미국으로 가. 혜원이 아들한테 전자편지를 보냈지만, 아이는 그걸 보지도 않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어. 혜원과 남편은 왜 헤어졌을까. 갑자기 이런 게 알고 싶다니. 소설도 다 말하지 않기도 하는군. 강희가 산에 갔다가 돌아온 것도. 강희나 혜원이나 쓸쓸했군. 사람은 다 쓸쓸해. 혜원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강희가 곁에 있어서 혜원은 괜찮았을 것 같은데. 강희가 혜원이 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사는 거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지. 혜원 아들은 앞으로도 소식 없을 것 같아.


 다시 생각하니 소설 여러 편은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오기도 하는군. <하나의 숨> <경계선 사이로> <파종하는 밤>에는 산업재해가 나오는 거. <경계선 사이로>는 신문기자 이야기군.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신문기자가 된 사람은 각서를 써야 했어.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노조도 만들지 않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신문기자는 제대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연진은 그런 기자가 되고 싶었을 텐데. 선배인 윤희 어머니는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일하는 곳에서 사람을 줄여서 오래 일해야 했어. 그러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가 평소에 술을 마셨다면서 산업재해로 인정해주지 않았어. ‘하나의 숨’에서는 일터에서 하나한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터 사람이 하나 엄마를 찾아오고 소송하지 않겠다는 서류와 위로금을 주었어. 하나 엄마는 나중에야 그걸 알았어. <파종하는 밤>에선 온도계를 만들던 남자아이가 수은 중독으로 죽은 걸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건 그저 꿈일 뿐이었을까.


 예전보다 일하는 곳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지. 여전히 산업재해는 일어나잖아. <눈 속의 사람>을 보니 언젠가 알게 된 책이 떠올랐어.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한국구술사학회 엮음, 휴머니스트, 2021)인데, 끝에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말했어. 어쩌다 보니 최길남은 정쟁 때 미군 말을 들어야 했지만, 눈 속에 있는 한 사람을 구했어. 누군가를 구하는 게 자신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높고 느린 용서>를 보니 미투가 생각나고 어떤 사람이 떠올랐는데. 교수인 아버지가 학생을 성추행 했다고 하면 아이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이야기는 미투 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남은 식구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어. 피해자 식구도 힘들지만, 가해자 식구도 힘들 거야. 효진과 경진이 살기를.


 알쏭달쏭한 <숨결보다 뜨거운>이었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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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3-19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중에 나온 단편들과 달리 한 시대를 뜨겁게 살다간 이들의 삶들이 담겨져 있네요.
요즘 가벼운 에세이들 웹소설, 숏트 영상만 읽혀지고 팔리는 시대에 이런 작품속에 담긴 인생의 밝음과 어둠 읽고 나면 마음 속에 잔향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

희선 2023-03-22 23:29   좋아요 1 | URL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일어나는 일이 담겨 있기도 하네요 소설가는 그런 걸 아주 잊지 못하겠습니다 여전히 지난 날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쓰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쓰기도 하네요 제가 그런 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희선

페넬로페 2023-03-19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한 숨‘ , 좋게 읽었는데 리뷰쓰기를 놓쳤어요. 세상엔 왜그리 슬프고 안되는 사람들도 많은지요^^
세상이 공평해지면 좋겠어요**

희선 2023-03-22 23:31   좋아요 2 | URL
어두운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희망을 찾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눈 속의 사람>은 더 그런 느낌이 듭니다 <하나의 숨>은 참 슬프네요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니...


희선

2023-03-1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2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3-20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어제는 날씨가 조금 흐리고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한 날이었어요.
이번주 화수목 날씨가 기온이 많이 올라갈 것 같은데, 이제 3월도 많이 지나왔네요.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3-03-22 23:37   좋아요 2 | URL
어제 오늘 많이 따듯한 것 같기도 합니다 벚꽃 아직이지만 제주에는 피었다는 말이 있기도 하더군요 지금 피면 빨리 피는 것 같은데... 삼월 열흘도 남지 않았네요 하루하루 잘 갑니다 하는 것도 없는데... 이건 늘 그렇군요 서니데이 님 봄 가끔 만나세요 밖에서 걷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