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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사람은 어릴 때는 부모 보살핌을 받지만, 그건 간병과는 다르구나.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걷고 스스로 많은 걸 한다. 아픈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모두 자기 앞가림을 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낫는 병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저 그런 것도 있다. 식물인간은 깨어날 확률이 아주 적겠지. 그런 사람을 돌보는 건 쉽지 않겠다. 엄마여서 아내여서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아빠가 아플 때도 있겠지만. 이 소설 《페퍼민트》에서는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것도 감염병으로 잠시 동안 심장이 멈추고 머리로 피가 가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희망이 없다 했다. 식물 같은 사람이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 있기만 하는.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세계를 덮쳤다. 여기에서는 프록시모 바이러스라는 게 나타났다. 코로나19처럼 감염되는 듯하다. 시안이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고 벌써 여섯해가 지났다. 시안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다. 아빠와 요양 보호사 선생님과 시안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엄마를 보살폈다. 그런 시간이 여섯해라는 거구나.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간병하면 참 우울하겠다. 엄마가 다시 좋아진다는 희망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없으니 앞이 캄캄하겠다. 이런 거 보니 내가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병원에 오래 있었다. 그때뿐 아니라 그 뒤에도 여러 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런 일 때문인지 난 병원에 가는 게 아주 싫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은 없으면 좋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병원은 정말 안 좋다. 병원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기는 하다. 누군가는 병원 사람이 친절하게 해줘서 그것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하는구나. 그게 지나치면 다른 사람 친절에 의존하는 뮌하우젠증후군이라 하던가.
시안이와 엄마 아빠가 프록시모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해원이 식구와 친하게 지내서였다. 해원이 엄마가 미국에 있는 동생을 만나고 와서 감염됐는데, 증상이 있었는데도 해원이 엄마는 일을 하러 갔다. 시안과 해원 그리고 해원이 오빠 해일은 함께 지냈다. 해원이 식구가 슈퍼 전파자 N번이라는 게 알려지고 해원이 식구는 그곳을 떠난다. 시안이한테는 말도 하지 않고. 슈퍼 전파자한테 많은 사람은 아주 안 좋은 말을 했다. 코로나19 때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슈퍼 전파자가 될지 누가 알았을까 싶기도 한데. 해원이 식구는 많은 사람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겠지. 해원은 이름도 바꾼다. 김지원으로. 지원이라는 이름이 흔한가. 흔한 사람 속에 묻히고 싶은 해원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시안은 해원이 오빠 해일이를 만난다. 해일은 시안을 보고 반가워했지만, 시안은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겠지. 그래도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은 아주 힘든데 해원과 해일은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겠다. 시안은 해원을 찾아가고 처음엔 엄마 일을 숨긴다. 그 일을 숨기려 해도 다 숨길 수는 없겠지. 시안은 해원이한테 부탁하는데. 그런 일을 부탁하다니 시안이 마음은 진심이었을까. 모르겠다. 힘들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자신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시안은 죄책감으로 살지 못했을 거다. 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구나.
어떤 일을 남 탓만 할 수도 없겠지만, 그때 조금 조심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겠다. 시안도 그랬겠지. 해원이네 식구와 아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많이 했을 것 같다. 코로나19도 아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밥을 같이 먹거나 가까이에서 이야기 하고 손을 잡거나 하면 안 되겠지. 감염병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좀 멀어지게 했구나. 아니 꼭 그럴까. 꼭 가까이 붙어 있어야 좋은 걸까. 조금 거리를 두고 살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 우습기도 하다. 난 거리를 좀 많이 둔다. 그러면 안 될까. 그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왜 이런 말로 흘렀는지.
사람은 어느 때 누군가를 간병하기도 하겠지. 혼자라면 그러지 않는다 해도. 자신도 누군가한테 간병 받아야 할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구나. 다행이다.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지 않아도 돼서. 그러니까 난 아파도 병원에 안 가고 그걸로 죽는다면 그런가 보다 할 거다. 병원도 아주 싫다. 난 이렇다 해도 다른 사람은 다르겠다. 누군가를 간병하는 게 아주 힘들지 않아야 할 텐데, 간병은 그러기 힘들겠다. 다른 사람한테 시설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기도 해야 한다. 난 마음을 닫아서 그게 어렵겠지만. 좋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니.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을까.
희선
☆―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너는 조금 일찍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 (191쪽~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