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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사람에게 - 안태운 시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50
안태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평점 :
몇해 전부터 시집을 한달에 한권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달도 있고 못 보는 달도 있다. 한달이 가기 전에 시집을 안 보면 ‘시집 봐야 할 텐데’ 한다. 이 말 예전에도 했는데, 한국에는 시인이 많다. 시인이 많아도 내가 이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나도 한국에 시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시인은 소설도 쓴다. 누구라고 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가 쓰고 싶었지만 소설가가 되거나,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시인이 된 사람 있겠지. 자신이 쓰고 싶었지만 그걸 많이 쓰지 않아도 아주 안 쓰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으로 소설가 한강이 생각난다. 한강은 몇해 전에 시집 한권 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또 시집을 낼지도 모르겠다. 쓰고 싶은 거 써야지.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짐작 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시집을 보기로 한 건 시집 제목 《산책하는 사람에게》가 마음에 들어서다. 여기에 산책하는 사람 나온다. 흰 개와 걷는 사람. 안태운은 첫번째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로 제35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그 시집은 못 봤다. 여기 담긴 시는 거의 길다. 그리 두껍지 않은 시집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죽 보는 데 시간 좀 걸렸다. 글은 쓰는 것보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린다. 그래서 가끔 체하기도 하는지도. 긴 시 쓰기 힘들 거다. 그런 시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시를 써나갈까 한다. 이 시집 볼 때는 좀 졸렸다. 잠을 잘 못 자서. 지금은 잠 깼다. 다행이구나 쓸 때는 깨서. 시를 졸면서 보기도 해서 시가 꿈인지 상상인지 했다. 꿈을 시로 쓸 때도 있겠지. 아니 꿈처럼 쓴다고 해야 할지도. 꿈 같은 느낌이 드는 시도 있다.
산책했죠. 우산을 사러 가야지, 생각하면서. 비가 오고 있었으니까. 밖으로 나가니 그러므로 이제 필요해진 우산을 사야 할 거라면서, 나는 산책했죠. 그렇게 우산 가게로 갔습니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하지만 가게에는 마음에 드는 우산이 없었어요. 아무리 봐도 우산 같지 않았어요. 잠깐 우산 같은 게 무엇인지 골몰했지만 그랬음에도 어쩔 수 없었으므로 나는 가게를 나섰습니다. 우산 같은 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할 수 없이 더 먼 곳에 있는 우산 가게로 갔습니다. 우산 같은 건 무엇인지, 비는 내렸고 가게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나는 벌써 우산이 필요해져버렸는데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산책했죠. 눈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는 내리는 것 같았고, 나는 빗속에서 숨기도 하고 빗속에서 젖기도 했습니다.
-<산책했죠>, 55쪽
앞에서 흰 개와 산책하는 시가 있다고 했는데, 내가 옮긴 시는 <산책챘죠>다. 뭔가 사러 밖에 나가는 건 산책이라 안 하기도 하지만. 나도 볼 일 있을 때 걷는다. 자주 걷지 않으면서 걷기 좋아한다고 말한다. 학교는 다 걸어다녔다. 그때 기초체력이 쌓이지 않았을까. 오래 걸어다녀서 나중에도 걸어다닌 것 같다. 이 시에서 ‘나’는 우산을 사러 나갔다기보다, 비가 와서 산책한 것 같기도 하다. 난 비 오는 날 걷기 싫어하지만, 이 시에 나오는 ‘나’는 비 오는 날 걷기 좋아하는 것 같다. 비 맞는 것도. 그렇게 보이지 않나. 산책하면서 우산을 깊이 생각하는구나. 그런 것도 괜찮겠지.
지나가버린 편지. 벌써 쓴 편지. 못 건넨 편지. 너는 훗날 수신인을 되살려내 그제야 편지를 건네려다가도 문득 망설이지. 편지 내용과 달라져 있는 네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제 너는 그 마음을 또한 썼다. 지난 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이 되어서. 편지의 편지를. 편지 쓴 순간부터 천천히 바뀐 것들을. 그렇게 두 편지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고 있지. 이제는 순서를 거꾸로 해서 읽어보고. 또 되풀이해서. 그 사이에서 어떤 감정이 생겨날까. 편지. 너는 물성과 상실에 대해서 생각해. 두 편지를 접어 패를 섞듯 섞었지. 너는 오래 눈 감은 채 두 편지를 바라보았다.
-<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을>, 102쪽
이 시에는 편지가 들어가서 옮겼다. 편지를 말하는 시가 이거 한편만은 아니지만. 이 시보다 앞에 ‘그 편지를’이라는 시도 있다. ‘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을’에서 ‘너’는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못하고 나중에 편지를 또 쓴다. 먼저 쓴 편지와 달라진 걸. 그런 일 있기도 하겠지. 이 시에 나온 ‘너’는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와 또 쓴 편지 다 보낼까. 마지막에 오래 눈 감고 두 편지를 바라본 건 편지를 둘 다 보낼지 말지 생각한 걸지도. 편지, 쓰면 보내야지. 안 보내면 아쉽지 않나.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보면 창피하다고도 하지만. 편지를 늦은 밤이 아닌 낮이나 저녁에 쓰면 되잖아.
이 시집에 담긴 시 어렵다. 그래도 읽어볼 만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개도 나이를 먹으면 흰 털이 나기도 하겠지. 흰 개한테는 검은 털이 났다. 그걸 보고 안태운은 그 개가 나이를 먹었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은 방에 들어온 날벌레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방충망이 열리지 않아서 밖으로 나가서 방충망을 찢었다. 날벌레는 찢어진 방충망 사이로 나오고 이번에는 그 사람이 찢어진 방충망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나’가 지켜보았다. 이건 정말 꿈 같지 않나. 꿈에서는 뭔가 지켜보기도 한다. 그건 자신이었다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도 한다. 내 꿈도 뭐가 뭔지 모르기도 하는데, 남의 꿈은 더하지 않을까 싶다. 그걸 다르게 보면 재미있을지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