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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 소설가의 쓰는 일, 걷는 일, 사랑하는 일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4월
평점 :
지금은 날마다 걷지 않지만, 날마다 걸었던 적도 있어요. 그건 예전에도 말했군요. 학교에 가고 집에 올 때 걸었다고. 그때는 별 생각없이 걸었던 것 같아요. 걸으면서 이것저것 봤는지 그건 생각나지 않네요. 아마 그냥 걸었겠지요. 학교에 가야 하니 걷고 집에 와야 해서 걸었습니다. 걸으면 갈 곳에 닿아요. 책도 보다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끝에 이르는군요. 이 책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도 읽다보니 다 봤습니다. 오가와 요코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썼어요. 다 생각나지 않지만 그 소설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미나의 행진》도 본 듯한데 이건 어떤 이야기였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국 작가도 다 모르고 일본 작가는 더 모르는군요. 책을 여러 권 본 소설가만 조금 압니다. 소설을 봐도 소설가를 알 수는 없군요.
글 쓰는 사람은 자주 걸을까요. 오래전 철학자는 많이 걸었다고 했군요. 걸으면서 글을 썼다고 했을 정도니. 걸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나중에 집에서 썼겠지요. 그런 거 보고 저도 걸으려고 했는데,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 나온 소설가 윤성희도 글을 못 쓰면 만 걸음 걸으라고 하더군요. 만 걸음 걸으면 쓸 게 떠오를지. 걷다가 쓸 게 떠오른 적도 있지만, 저는 거의 방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상상력도 별로 없는데, 없는 상상력도 이젠 바닥 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전문 작가처럼 꼭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쓰고 싶은데 못 쓰네요. 이건 무슨 마음일까요. 작가도 아니면서 글이나 이야기 쓰고 싶은 마음은.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런 게 많지도 않은데.
이 책 보기 전에 조금 걱정했어요. 뭘 걱정했느냐면 오가와 요코가 함께 사는 개 러브와 걸었다는 걸 보고 러브가 떠나는 이야기 나올까 봐. 러브와 지낸 일을 썼으려나 했는데, 읽어보니 그거 하나만이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러브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주 많이 슬프지는 않았어요. 러브 이야기만 봤다면 슬펐을 텐데. 오가와 요코는 많이 슬펐겠지요. 러브와 같이 걷던 길을 이제는 혼자 걷는답니다. 그것도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요즘은 개와 고양이와 사는 이야기 많군요. 아니 사람은 개와 고양이하고만 살지 않습니다. 오가와 요코는 문조를 기르려 하고 이름을 분짱이라 짓기도 했어요. 일본말로 문조는 ‘분초(쵸)’라 읽습니다. 오가와 요코는 새를 기르려고 마음먹고 새를 파는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새를 찾았는데, 집에 새장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새장과 여러 가지 준비하는 데 한달이 걸렸답니다. 그럴 수도 있군요. 저라면 귀찮아서 안 되겠다 할 것 같아요. 처음부터 새 기를 생각도 안 했겠습니다. 오가와 요코가 새를 기르려고 한 건 소설 때문이었어요. 어느 날 새가 마음에 찾아왔답니다.
문조라는 새 이름을 보니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났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에 《문조》가 있군요. 그건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어떤 사람이 오가와 요코한테 나쓰메 소세키 소설 《마음》을 산책하는 소설이다 했어요. 그 말 보니 재미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설로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도 말했어요. 앞으로 소설에 걷는 거 나오는지 잘 봐야겠습니다. 산책 소설로 제가 떠올린 건 없습니다. 소설에는 걷는 거 자주 나오는 것 같은데. 인상에 남은 건 없네요. 오랫동안 걷는 이야기는 생각나요.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레이철 조이스) 읽어본 적 없는 《로드(The road)》(존 맥카시)에서도 끝없이 걷는군요. 그건 산책과는 좀 멀지만. 오가와 요코는 소설이 막히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걸었어요. 지금도 걸을지, 걷겠지요. 걷기는 몸과 마음에 다 좋네요. 좋다 해도 날마다 못하지만. 다시 걷기를 말했네요.
러브가 차에 치인 적이 있어요. 사람이 차에 치여도 많이 다치는데 개는 더 심할 것 같습니다. 오가와 요코가 그 일을 어떤 편집자한테 말했는데, 얼마 뒤 택배가 왔어요. 오가와 요코는 편집자가 보낸 건가 하고 뜯어봤더니, 그건 <괜찮을 거야>라는 아라시 CD였습니다. 오가와 요코는 그걸 듣고 조금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저녁에 택배사에서 물건을 잘못 배달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받는 사람이 오가와 요코는 맞았는데 주소가 조금 달랐어요. 오가와 요코라는 이름 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오가와 요코는 다른 오가와 요코를 만나기도 해요. 그런 일 재미있을 것 같군요. 오가와 요코 앞에 사람과 뒤에 사람은 다른 사람이에요. 다친 러브는 좋아졌다고 합니다. 우연히 CD가 잘못 갔지만, 그게 오가와 요코 마음을 격려해줬습니다. 전 그런 우연 없었습니다.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을지도 몰라 하고 가 봤더니 진짜 있었던 일 있어요.
편하게 걷듯 책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걸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생각만 하지 않고 걸어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