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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3월
평점 :
어렸을 때부터 나는 라디오 방송을 즐겨들었어. 지금도 들어. 음악을 들으려는 거였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해주는 말이 재미있었어. 학교 다닐 때 나처럼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 얼마 없었어. 예전에도 한 적 있는 말일 텐데, 한때 나는 라디오 방송 작가가 되고 싶었어. 그 생각을 하고 한 일은 없어. 꼭 되어야겠다보다 되면 좋겠다였던가봐(이런 어중간함은 여전한 듯). 하나 한 게 있다면 일기쓰기야. 그것도 글이라 생각하고 쓴 건지,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건지. 글을 잘 쓰려고 쓴 건 아닌 것 같아. 글을 쓴다고 하고 쓴 건 더 나중이야. 그때는 편지도 자주 썼어. 편지 썼다는 것도 말한 적 있구나. 다른 글은 거의 쓰지 못해서 쉽게 쓸 수 있는 것을 쓴 거지. 아주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엄청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왜 이런 말로 시작했을까. 아마 이 책을 쓴 사람이 라디오 방송 작가여서일 거야. 책속에서는 다른 글을 쓰려고 라디오 방송 작가를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 이 작가가 한 라디오 방송 가운데서 내가 들은 거 하나 있어. ‘이적의 텐텐클럽’이야. 몇해 전에 했는데, 그 시간도 흘러갔군. 그때까지는 밤 방송을 들었는데, 이제는 늦은 밤에는 듣지 않아. 그게 조금 아쉽지만 라디오를 아주 안 듣는 건 아니니 다행이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라디오는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 책도.
지금도 ‘그 라디오 방송 들었어’ 하고 같이 말할 사람이 없군.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무엇을 바라는 거야.
별거 아닌 이야기를 누군가와 해 본 적 있나 생각해보니,
……없어.
맨 처음에 강세형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뭐든 늦게 했다고 했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느리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대. 그것을 보고 나는 어땠더라 생각해봤어. 난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나았어. 그런데 그때도 이런 말을 했어. ‘자신이 없다’는. 이 말 언제부터 했던가. 어쩌면 중학생 때 편지를 나눈 친구한테 한 말일지도. 초등학생 때는 편지 안 썼으니까. 편지는 중학생 때부터 썼어. 또 편지 이야기라니.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어. 한글공부도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받아쓰기는 잘 못했던 것 같기도. 1학년 때는 다 비슷하지 않을지. 1학년 때도 공부 잘한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달리기도 잘하는 편이었어. 1등은 못해도 2, 3등은 했으니까. 누구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어느 정도는 한다고 봐. 지금은 조금 어려울까. 강세형은 언제나 숨이 차다고 했는데, 나는 나중에 그런 듯해. 어쩐지 처음에는 조금 빨리 달리다 힘이 빠져서 지금은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어떤 사람은 어릴 때는 늦어도 어느 때가 지나면 엄청 달라지기도 하잖아.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게 더 좋을지. 아니 좋고 나쁜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한테 맞는 걸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하겠지.
멈추지만 않으면, 걸음이 느린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 공자
천천히 가도 멈추지 않으면,
어딘가에 이르겠지.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그걸 잘 몰라서…….
앞에서 나는 어중간하다고 했잖아.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해서.
그냥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그것을 못하면 안 돼 하는 마음은 아니군.
책을 보면서 나도 해 보고 싶어진 게 있어.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한글창을 띄워서 글을 쓰는 거야(노트북 컴퓨터도 없는데). 멋있잖아. 작가는 자주 그런 말을 하더군.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는. 나는 볼펜으로 종이에 써. 컴퓨터를 켜고 한글창에 무엇인가 써 볼까 생각한 적 있는데 아무것도 못 썼어. 한글창에 타이핑한 글 붙여넣기해서 오타가 있나 없나만 봤어(한번 봐도 못 보는 것도 있어). 한글에 원고지가 있다는 거 알고 신기하게 생각한 적도 있어. 글은 무엇으로 쓰든 상관없는데, 다른 거로 쓰면 더 잘 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 다른 사람이 봐주고 괜찮다고 해주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한데, 그것보다 먼저 나만 알아도 좋으니 뭔가 써 봤으면 좋겠어. 책 이야기도 잘 쓰고 싶지만, 이것도 쉽지 않고.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써둔 글은 많아. 어제도 글 썼어. 요새 늘 쓰고 있어.’야. 이런 걸 부러워만 하다니. 그것보다 별로여도 뭐든 쓰는 게 좋을 텐데. ‘뭐든’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엇인가 쓰고 싶어하는 것 같네. 사람은 잘 못해도 놓지 못하는 게 있잖아. 나한테는 ‘글’이 그런 거야. 아직은 책 잘 보고 그것을 잘 쓰고 싶어. 어떤 책을 보면 글이 좀더 나아질까. 이것도 잠깐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을 먼저 보겠지.
책을 보든 안 보든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어.
좀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책이 도움을 주겠지.
책은 실제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경험하게 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해.
책을 아주 안 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보는 게 낫겠어.
그런데 왜 이렇게 흐른 거지.
언젠가 내가 게으른 건 조금 느린 거다고 생각하면 낫지 않을까 했어. 나는 느린 게 아니고 게으른 게 맞아. 어떤 건 해야 하는데 하면서 잠시 피하다가 겨우 하거든. 결국 할 거 마음먹고 하면 좋을 텐데. 아주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게으른 것보다 조금 느리다고 생각할래. 내가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가고 있다면 좋겠어.
우리 조금 느려도 조급해하지 말자.
*더하는 말
이 글 다시 보니 조금 우습네. 2014년에 책을 보고 쓴 거야. 이때 난 이랬군. 글로 보는 예전 나네. 예전에 쓴 거 잘 안 읽어봐. 우연히 이게 눈에 띄었어. 이때는 책을 보고 쓰기만 하고 다른 건, 유치한 시도 쓰지 않을 때야. 어쩌다 한번 쓸 게 떠오르면 썼던 것 같아. 2017년에야 마음 먹고 쓰자 하고 썼지. 백일 동안 글쓰기. 백일 글쓰기 하고 다음에도 썼어. 지금도 여전히 쓰지.
희선
☆―
나는 이제부터 무엇이든, 써야만 할 것 같다.
그것이 대단한 글이 아닐지라도,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글일지라도,
아니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일지라도,
어쨌든 날마다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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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대단한 글이 아닐지라도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글일지라도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 (28쪽)
“제 전성기는 아직, 안 온 것 같은데요?”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