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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자신한테 잘 해주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 ‘나’는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다. 사람 마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바뀐다는 걸. 난 그걸 언제 알았을까. 잘 모르겠다. ‘나’보다 늦게 알았을지도. 난 ‘나’처럼 말을 더듬지는 않지만, 말 잘 못한다. 못하는 것도 있고 그다지 할 말이 없어서 안 한다. 지금은 말 안 해도 큰 문제 없지만 학교 다닐 때는 말을 안 하니 친구가 없었다. 말을 해야 사람을 사귈 거 아닌가. 내가 말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말 안 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익숙해지면 했던가. 어쩐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생각 안 난다. 얼마나 말을 안 했으면 그런지. 다른 아이가 친해지는 사이 나만 혼자였던 것 같다. 그건 언제나 그랬을지도.
여기 나오는 ‘나’는 중학교 1학년이다. 말을 더듬어서 아이들이 놀리기도 한 것 같다. 다행하게도 심하게 괴롭히는 아이는 없다. 이건 학교 폭력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그렇구나. 다른 이야기였다면, ‘나’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을지도. 그런 걸 ‘나’는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엄마한테도 말하지 못했겠지. 이런 걸 생각하다니. ‘나’의 엄마는 혼자 ‘나’를 키웠는데, 마음이 불안정해 보인다. 일하고 나서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는 걸 보니. ‘나’가 말을 더듬는 건 그런 엄마 때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면 안 되려나. 아이를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해야 할지도. 엄마고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어른은 아니다. ‘나’의 엄마는 아이한테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보다 자신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 아이를 때려도 몰랐겠지. 예전에는 몰랐을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언어 교정원에 다니게 된다. 거기가 처음은 아니었구나. 그전에는 언어 치료소에 다녔나 보다. 치료소와 교정원은 뭐가 다를까. 이 소설속 시간은 1999년이다. 예전에는 언어 교정원이 있었을까.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고 지금도 그런 곳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말 못했는데 그런 데 다니고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해 봤다. 그런 곳 알았다 해도 안 갔을지도. ‘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위로받고 격려받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난 나랑 비슷한 사람 만난 적 없다. 그래서 여전히 말 못하는가 보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은 나이대가 달랐다. ‘나’가 만나는 사람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밖에 더 있을지도. 난 원장 어머니가 할머니라 하는 할머니인지 알았다. 갑자기 이런 걸 말하다니. 원장은 좋은 사람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중학생 남자아이를 남자 어른이 안으면 안 될 텐데. 아무리 ‘나’가 또래보다 작다고 해도. 또 엉뚱한 말을. 1999년이니 그렇다고 생각해야겠다.
언어 교정원에 다닌다고 ‘나’가 바로 말을 더듬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은 다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 말을 더듬거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가 좋아한 사람은 처방전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었다. 처방전은 외과의사로 ‘나’와 말할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독신주의자인데 ‘나’한테 아들이라 했다. 아이를 좋아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 마음 난 잘 모르겠다(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처방전을 이모라 하고 엄마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거 ‘나’가 엄마 사랑을 바라는 거 맞겠지. 엄마가 ‘나’한테 마음을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나’가 앞으로 잘 살기를 바라고 언어 교정원에도 보냈겠지.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보다 자신이 아이를 잘 보는 게 낫겠지만. ‘나’가 언어 교정원에 다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중에는 말도 더듬지 않게 되는구나. 언어 교정원 사람이 식구처럼 됐달까.
청소년도 넣어서, 아이한테는 어느 정도 부모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게 그 아이가 안 좋은 길로 가지 않게 하는 건 아니고, 그런 게 없어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아이도 있지만. 부모가 아니면 부모 비슷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아이는 괜찮다. ‘나’한테는 언어 교정원 사람이 진짜 부모나 형제 대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사람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그렇지 않나. 그런 건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거고, 이건 그런 소설이다. 소설에서 희망을 느껴도 괜찮겠지.
희선
☆―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 해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예전의 난 그랬다. 잘 해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9쪽)
마음이 어둡고 답답할 때, 괴롭고 어떤 것도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노트를 펼쳐서 뭐든 써. 그러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42쪽)